인류의 기원을 찾아서
“한국인의 조상은 아프리카-터키-만주를 이동해 한반도에 정착” (스펜서 웰스 박사)
축치족(오른쪽)은 러시아 북동쪽 끝에 사는 유목민이다. 이들의 조상 중 일부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원주민이 됐다.
나미비아의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산 부시맨은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으로, 이들의 먼 친척은 인류 족보의 시작이 된다.
한 축치족 가족의 모습. 영하 70도까지 떨어지는 기후에 사는 이들은 팔다리와 손가락이 짧고 몸통 역시 짧고 둥근데, 추위에 노출되는 표면적을 최소화해 열을 덜 빼앗기기 위함이다.
이 둘이 아무리 달라 보여도 최초의 조상은 같다. 미세한 유전적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생김새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동굴은 네안데르탈인의 안식처였다. 그러나 이들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2만8000여 년 전에 멸종했다. 사진·자료 :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제공
“저는 제가 아프리카에서 왔는지 너무 궁금해서 왔습니다.”
지난 8월 7일 오후 3시,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대강당에서 스펜서 웰스 박사 초청 강연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아내 윤미래씨와 함께 참석한 가수 ‘타이거 J.K’(본명 서정권)씨가 했던 말이다. “아내가 혼혈이라 그런지 인류가 한뿌리에서 나왔다는 데 더욱 호기심을 느낀다”는 그는 아내 윤씨와 함께 스왑테스트(swab test)를 받았다. DNA를 분석하기 위해 구강점막 샘플을 채취하는 테스트다. 이들은 6주 후면 자신들의 조상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강연은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는 내용을 담은 프레젠테이션이 주를 이뤘다. 이어지는 동영상은 웰스 박사가 전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고립부족의 DNA를 수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반응은 뜨거웠다. 강연이 끝나자 다양한 질문이 그에게 쏟아졌다.
―한국인은 어디서 기원한 것입니까.
“저는 한국인을 아프리카에서 터키,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더 많은 DNA 샘플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가 한 사람에게 비롯됐다는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DNA를 분석하면 인류의 가지가 보입니다. 인류는 공통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죠. 그것을 추적해 올라가면 수만 년 전의 한 사람에게서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그 먼 대륙까지 이동했어야 했나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물과 식량을 찾아 이동했겠죠. 이렇게 지도로 보면 어마어마한 거리를 움직인 것 같지만, 실제 이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이뤄졌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노그래픽 프로젝트’
스펜서 웰스 박사는 ‘생물학’과 ‘역사’라는 두 가지 학제 간 연구인 ‘지노그래픽 프로젝트’(Genographic Project)를 수행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소속의 유전인류학자다. 내셔널지오그래픽社(사)와 IBM이 공동으로 출범시킨 5개년 연구 계획인 지노그래픽 프로젝트는 전 세계의 방대한 DNA 샘플을 수집해 인류가 어떻게 이동을 했고, 지구 곳곳에 자리 잡게 됐는지를 알아내는 프로젝트다.
연구팀은 주로 오지의 고립부족으로부터 얻은 DNA를 통해 인류 이동패턴을 알아내려 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수백 세대 동안 고유의 유전자 정보를 외부와 교류하지 않고 보존했기 때문이다. 현재 약 1만여 명의 고립부족민 DNA를 수집했고, 향후 10만여 명의 DNA를 채취할 계획이다.
일반인도 위의 타이거 J.K씨 부부가 했던 스왑테스트를 통해 지노그래픽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다. 스왑테스트 키트를 주문해서 우편으로 받은 후, 구강점막 샘플을 추출해 보내면 되는 것. 6주 정도의 검사 소요 기간이 지나면, 키트에 들어 있는 고유한 ID 번호를 이용해 지노그래픽 프로젝트 웹사이트(http://www.nationalgeographic.com/genographic )에서 자신의 조상이 어떤 경로로 이동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인류에게 장벽이란 없다”
지노그래픽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인류가 유전적으로 모두 동일하다는 이론에서 시작한다. 평범한 사람의 DNA를 친·인척이 아닌 같은 지역 사람과 비교해도 99.99%가 일치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고대 인류를 추적하면서 DNA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남자의 경우는 Y염색체가 복제돼 이어졌고, 여자의 경우는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 구조에 있는 DNA가 유전됐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를 토대로 웰스 박사는 6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남자의 Y염색체만이 살아남아 오늘날 모든 남성에게 복제됐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15만 년에서 20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자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모계로만 전달돼 오늘날 모든 여성이 이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인류의 기원을 밝혀낸 웰스 박사가 한국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문화적인 장벽은 지속되겠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애초에 그런 장벽이 없었습니다.” 李根平 /月刊朝鮮 2009/09/
서울대병원에서 강연하고 있는 스펜서 웰스 박사. 그는 “인류의 기원은 아프리카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나치의 인종차별 광기 … 현대과학 결론은 ‘인류는 하나’
1941년 8월 히틀러는 “유럽은 지리적 실체가 아니라 인종적 실체”라고 선언했다. 나치는 북유럽인을 포함한 이른바 아리안족만이 가장 완전한 인간이며 인류의 진보에 현저한 기여를 한 유일한 인종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업적과 정신적 특질은 혈통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나치는 유대인의 독일시민권을 박탈하고 독일인과 유대인의 결혼을 금지시켰다. 유대인들은 외출 시에 ‘다윗의 별’을 달도록 강요당했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동성애자·집시·폴란드인·우크라이나인 같은 ‘바람직하지 못한 인종들’도 유대인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히틀러가 구상한 ‘신질서’는 열등한 인종들의 위협을 억제하고 유럽에 독일적 세계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인류학자들은 피부색에 따라 백인종·흑인종·황인종 등으로 인종을 구분했다. 19세기 초 혈액형의 존재가 처음 발견됐을 때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인종의 존재를 재확인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에서는 B형이 이민족의 특성을 가진 혼혈의 상징이며, 순수한 아리안족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음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인종 연구의 역사는 선입견의 산물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이었다. 현대 과학은 ‘인종’이란 용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유전학자들이 지구상의 다양한 지역에 살고 있는 인류의 유전자를 비교한 결과 모두 동질적임이 밝혀졌다. 이토록 드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도 동질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자들이 인류 조상들의 생활 조건과 그들의 유전자가 전해진 과정을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인류는 아프리카 또는 서남아시아 특정 지역(아마 이곳이 ‘에덴’일 것이다)에서 기원전 15만∼10만 년에 출현했다고 한다. 인구 3만 명가량이었던 ‘에덴’ 거주자들이 기원전 10만 년께부터 ‘지구 대정복’에 나서 5개 대륙을 누볐고, 그 결과 현대 인류가 있게 됐다.
같은 아파트 층에 살고 있고 혈액형이 다른 이웃 사람의 혈액보다는, 자신과 같은 혈액형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의 혈액을 받는 편이 더 낫다. 흑인·백인 유전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결론이다. 우리 사회가 다인종 사회로 접어든 지도 오래됐다. 외국인에 대한 비과학적 편견을 털어낼 수 있도록 사회 각 분야의 교육과 계도가 더욱 강화돼야겠다.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 2009.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