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신문 2022.09.22. 윤승원 칼럼
【윤승원 칼럼】
잊을 수 없는 경찰 동료의 따뜻한 인정과 배려
― 인정 많았던 경우(警友)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윤승원 수필가,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재향경우회 홍보지도위원
국가 공무원인 아들이 직무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했다. 1주간의 합숙 교육이다. 코로나 시대에 단체 생활이 걱정됐다. 합숙 생활은 챙겨야 할 소지품도 많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단체 교육이니 상비약도 꼭 챙겨가라고 당부했다.
과거 경찰학교 초임 교육 시절이 떠올랐다. 환절기에 경찰학교 합숙 교육은 감기 환자가 유독 많았다. 발병 초기에 치료하지 못해 기침이 심했다. 한밤중에 기침이 일단 시작되면 밤새 그치질 않았다.
같은 생활관 동기생들에게 미안했다. 특히 바로 옆자리 동기생의 수면 방해가 컸다. 부산에서 온 백광진 동기생이었다. 40여 년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그의 이름을 잊지 못한다.
그는 한밤중 기침이 심한 나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부모 형제처럼 안타까워했다. 따뜻한 물을 떠다 주면서 마시라고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인정과 따뜻한 배려였다.
옆에서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바로 옆자리 동료가 심하게 기침을 해대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속이 상할 만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똑같이 일어나 앉아서 잠을 설치면서도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밤만 되면 더욱 심해지는 기침. 그는 매일 밤 수면 방해를 받으면서도 나의 기침이 가라앉기를 기도해 줬다. 친동기간 못지않은 따뜻한 인정이었다. 어느 날 밤은 그에게 미안하여 복도 밖으로 나와 서성이면서 기침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가장 가까운 침상 옆자리에서 잘도 참아주고 오히려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준 그가 정말 고마웠다. 큰 은혜를 입었지만, 교육 수료 후 각기 헤어져 바쁜 경찰 생활에 파묻혀 그를 잊고 지냈다.
▲ 경찰학교에서 함께 교육받았던 동기생들 - 경우(警友)들에게 이 글을 통해 안부 전합니다.
세월이 흘렀다. 30여 년 경찰 생활을 마감할 무렵이었다. 이른 아침 경찰 내부망에 어느 경찰서 경무과장의 걱정스러운 글이 올라왔다.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요즘 따라 날씨 탓인지 우리 경찰서에는 병가를 내는 직원들이 많다. 어떤 파출소는 직원 몇 명 안 되는 데 병가가 넷이나 된다. 개인적인 교통사고도 있고 현재 7, 8명 정도가 근무한다. 아픈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몸이 아파 쉬는 것은 어쩔 수는 없는 일이니, 개개인이 평소 몸을 좀 아끼고 조심들 해야 할 듯싶다.
다리 골절 둘, 발목 골절, 우측 인대 파열, 갈비뼈 골절이 둘, 급성 췌장염 등이 사유인데, 특히 다리 부분을 다치는 사고가 더 잦다. 우리 직원들을 곁에서 지켜보면 왜들 저럴까? 왜 저렇게도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저러다가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생활하는 경찰들이 많다.』
일선 경찰서 경무과장이 어떤 자리인가. 현장 경찰관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직책이다. 직원 사기와 복지 문제, 승진 전보 인사 관리와 예산 집행 등 경찰서 살림을 총괄하는 살림꾼이다. 어디 그뿐인가.
크고 작은 행사 주관은 물론, 직원들의 애경사까지 파악하고, 연가, 병가 등도 처리해야 하는 자리다. 가정에 비유하면 ‘어머니 같은 역할’이 일선 경찰서 경무과장 직책이다.
경찰 생활 30여 년 넘게 해오면서 일선 경무과장이 이렇게 인정 어린 마음으로 직원들을 자상하게 살피고 걱정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병가를 낸 직원들이 어디가 아파서 병가를 냈는지 세밀하게 분석하면서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대안까지 제시하는 글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정의 어머니와 같은 자상한 당부는 또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각자가 건강관리에 유념했으면 한다. 평소 가벼운 몸풀이 운동이나 탁구 같은 운동도 짬짬이 하면서 관절이나 근육 인대의 유연성 단련도 필요하지 싶다. 더 중요한 것은 조금 여유 있게 천천히 다니고, 특히 수사 형사나 교통경찰, 그리고 일선 파출소 직원들은 발목 관절 등 다리 부분의 부상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경찰관은 몸을 아낄 수 없는 직업이다. 안전을 특별히 당부하던 경무과장의 이 같은 글이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을 당시에도 사고가 발생했다. 모래바람 부는 추운 길거리에서 사고 처리하던 교통경찰이 순직했다. 내 고장 충남 서산에서도 음주운전 단속하던 의경이 안타깝게 중태에 빠졌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일에는 춥고 더운 계절과는 상관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의 몸을 돌보기 어려운 것이 현장 경찰관들이다. 폭력 시위 현장에서 중경상을 입고 경찰병원에 실려 간 동료 경찰들도 많았다. 어디 그뿐인가.
대간첩 작전 중 안타깝게 순직한 경찰 동료도 있었다. 30대 젊은 두 경찰관의 장례식 때 내가 조사(弔辭)를 썼다. 동료 경찰의 장례에 조사를 쓰면서 누구보다 큰 슬픔을 가슴으로 느꼈다.
한밤중 기침을 심하게 하는 내 등을 어루만지면서 가족처럼 걱정해 주었던 경찰학교 동기생의 순수한 인정. 병가를 낸 파출소 경찰관의 건강을 하나하나 살피며 따뜻한 염려의 글을 경찰 내부망에 올렸던 어느 경무과장의 가슴 뭉클했던 동료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들의 따뜻한 인정을 잊지 못한다. 오늘날 경찰 후배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인간적 동지애를 이어갈 것으로 믿는다. ■
첫댓글 ♧ 카카오톡 메시지
◆ 권호영(경우회 홍보위원장) 22.09.23. 오후 12:14
윤 위원님!
‘경우신문’ 칼럼
따뜻한 인정과
배려의 글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인정이
메마르지 않은
경찰조직에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2.09.23.오후 12:35
경우신문을 가장 먼저 읽으시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조직이 삭막하게 보여도
경찰관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세계는
부모 형제간처럼 따뜻한 인정이 흐릅니다.
어려운 직무 환경일수록 서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현직 경찰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문학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2.09.24. 06: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따듯한 배려가 ‘인생의 향기’라고 할까요.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2.09.24. 11:45
힘들고 어려울 때 정을 베풀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적인 따뜻한 배려를 해주면
평생 잊지 못하지요.
감사합니다.
♧ 대전문인총연합회[대전문총] 카페에서
◆ 김태양(대학생, 청년작가, 배재대학교 재학) 22.09.26. 11:42
선생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읽는다기보단 마음 한켠에 자리잡았다고 할까요.
지금 대학교에 다니고, 어딘지도 모르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학생으로서
‘아픈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은 큰 벽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따뜻한 인정을 잊지 못한다는 것은 선생님의 말씀처럼
‘인생의 향기’라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사람은 결국 향기로 남는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남들에게 전하는
가벼운 인사 한마디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주니까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22.09.26.12:10
우선 김태양 청년작가님이 문총에 처음 가입하여 저의 글을 읽어 주신 것만도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진심이 담긴 청년작가의 따뜻한 댓글을 만나는 필자는 행복합니다.
시를 쓰기 위해 많은 날 고뇌하고, 때로는 아파한 청년작가의 잘 조탁된 언어가
필자인 저의 가슴에 감동으로 촉촉이 젖어 듭니다.
앞으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문단의 글 마당에서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