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가 성행 중인 때에 우리 회원님들은 방역과 건강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평소에도 교회나 모임 외에는 거의 집에서 혼자 지내는 우리 시청인들은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더욱 활동반경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대구지역은 신천지의 광신적 종교 집회로 인해 수많은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가장 염려하는 바는 우리 시청인들은 과연 코로나에서 안전한가 하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코로나바이러스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따라서 사람을 차별하는 일도 없습니다.
상대가 건장한 사람이든 약하고 장애 있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감염화되는 것이 바이러스의 속성입니다.
따라서 장애인이나 시청인이나 노약자나 임산부나 봐주는 법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약자를 공격대상에서 배제하는 인도주의적 차별이 가능하다면 그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천사일 겁니다.
바이러스의 이러한 속성을 생각하건대 이미 상당수 장애인과 시청인들도 이미 확진자가 되었거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신문에 보면 이미 여러 장애인시설에서 확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대육신이 성한 비장애인들도 바이러스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몸이 구속된 장애인들은 감염자가 봉사를 오거나 수발을 들어줄 때 꼼짝없이 전염당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타인의 손과 직접 접촉해서 소통해야 하는 시청인들은 감염 가능성이 몇배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난국을 피하려면 최대한 통역자나 도우미들과도 접촉을 피하고 장기간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혼자만의 끝없는 텅빈 공간과 지루한 시간 속에 유폐되어 있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 가장 절실한 문제는 밖에 못나가서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은 방송과 sns가 발달해 있어서 눈과 귀만 열려 있으면 집에만 있어도 할 게 무궁무진합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와 포스팅과 온갖 사이트와 게임 등으로 수백년을 집에 갇혀 있어도 심심할 틈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청인들은 그러한 시각 영상과 소리 콘텐츠들로부터 차단되어 있어서 영상을 즐기거나 음악을 벗삼을 수 없고 전화를 걸어서 다정한 친구와 통화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나마 우리에게 허용된 기기가 점자단말기 한가지가 있어서 이렇게 sns 활동이 가능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잔존 시각이나 청각이 있는 대다수 시청인들은 화면을 최대한 키우고 볼륨을 크게해서 영화나 음악을 감상할 수도 있고 점자조차 모르는 시청인들은 점자단말기조차 사용할 수 없는 극단적 고립에 처해 있습니다.
소통이 불가능한 시청인과는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소통을 할 수가 없으니 우리는 어느정도 소통이 가능한 이들과 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통 능력이 있다는 것은 대부분은 잔존시력과 잔존청력이 남아 있거나 과거에 보고 들은 기억이 남아 있는 경우입니다.
우리 그룹 시청인들 중에도 전맹전농의 고립상태에 처한 분들이 계시지만 완전히 실명하거나 실청하기 전에 보고 들었던 기억이 있기에 무료하고 심심하면 기억속의 이미지들을 떠올려서 행복한 공상이 가능한 분들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극단적 고립에서 탈출한 방법 한가지가 포착됩니다. 바로 공상, 상상입니다.
그런데 공상과 상상을 활용하려면 시청인이 되기전에 보고 들은 기억들이 많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시력이 좋았던 분들은 수많은 화려한 영상의 기억들이 보존되어 있어서 미적 감수성을 갖고 계실것이고 실청하기 전에 잘 듣던 분들은 좋아하는 음악들을 머리속에서 재생하며 시간의 단조로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태어날때부터 빛과 소리를 접하지 못한 선천성 시청인들은 추억할 수 있는 기억 콘텐츠가 오직 촉각과 냄새와 맛 이렇게 3가지에 한정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세상을 접했다면 빛과 소리를 상실한 좌절감도 없을 것이고 주어진 감각들 안에서 재밌게 사는 법을 터득했을지도 모릅니다.
맛이라는 한 가지 감각에 대한 상상도 나름 좋은 소재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시각과 청각의 무한히 다양한 영상들을 접해왔던 분들은 다채롭던 옛날의 기억에 비해 세가지 감각만 남아버린 현재의 세계는 너무도 삭막하고 황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뇌에는 상상이란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나름 재밌는 상상을 하며 무료한 시간을 의미 있게 가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시청인들이 보유한 기능과 감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상상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상력을 개발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티브이를 볼 수 없어서 답답하다고 가슴만 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스토리들을 티브이에 상상으로 투사해서 스스로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제작해서 감상하는 훈련을 해본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시청인들의 특성에 맞는 상상력 활용에 관한 정보를 아무데서도 접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예배 모임이나 자조모임에 가보면 십중팔구는 촉각을 활용한 의사소통과 그것의 연습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예배도 비장애인 예배와 똑같은 내용으로 교리중심의 설교를 할뿐입니다.
설사 누군가 상상력의 중요성을 안다해도 그에 관해 연구하고 강연하고 교육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참으로 할 일도 많고 공부할 것도 많고 연구할 것도 많은데 우리 시청인들의 절박한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고들만한 전문성은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전무하거나 극히 미미한 형편입니다.
현재 유일하게 시청인들의 활로를 위해 모색하는 부분은 헬렌켈러 법안의 시행을 통한 정부차원의 수혜를 기다리는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현재의 활보제도를 시청인 특성에 맞춰서 좀더 당사자의 니드에 가깝게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으나 사실상 소통방법과 내적 환경이 천차만별인 시청인들의 욕구를 몇 가지 제도나 서비스로 충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재로서 바랄수 있는 부분은 수화나 점화를 전혀 모르는 도우미들보다는 조금이나마 수화와 점화가 가능한 도우미가 연결되는 일인데 그것이 얼마나 실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저는 개인적 필요를 위해 계속해서 도우미들에게 점자를 교육시켜서 통역을 받아왔는데 도우미가 바뀌면 다시 처음부터 점자를 가르쳐야하고 그나마도 점화교육이 가능한 젊은 도우미들은 구하기 무척 어렵다는게 난관입니다.
그것도 내 개인의 특수한 필요에 의해 점화를 요청하는 것이고 점화를 사용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청인들에게는 점화조차 소용이 없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화 점화 타이핑이 가능한 도우미가 연결되더라도 시청인 당사자가 활용할 의욕이 없거나 방법을 모르면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대다수의 시청인은 도우미들을 만나도 길게 대화할 주제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맛있는 점심만 차려주면 그걸로 땡이고 운동이나 산책조차 관심이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삶의 내용이 빈약해져간다면 사실상 외부적 제도가 보완된다 해도 그것을 활용할 의욕이나 방안은 거의 기대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한번뿐인 인생을 값지게 살기를 소망하는 시청인이 계신다면 남들이 가르쳐줄 수 없는 자기만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해서 부단히 삶의 질을 높여가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잔존 감각이 있으면 그것들도 최대한 활용하고 시청각을 완전히 상실했다면 상상을 통해 부단히 재현하려고 노력해야하고 남은 감각도 오직 미각이나 촉각만 쓸 것이 아니라 후각과 상상감각을 최대한 활용해서 정신적 사막화나 황폐화가 진행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값지게 살아내려는 발버둥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제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지금까지 혼자서 고민해온 것들을 여러분과 공유하며 실천을 통해 검증해가고 싶지만 공부와 논문에 구속된 몸이라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일단은 이 짧은 글로나마 제가 고민해온 것들에 대한 일면을 제시하였으니 내용 중에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기억속에 저장해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시청각장애 극복 방법을 고민해 보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려봅니다.
물론 현재는 장애를 극복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평생 함께 가야할 동반자나 친구로 보는 패러다임이 주목되는 인권시대입니다.
따라서 시청각장애를 극복해야할 나쁜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고 기쁘게 살아가야할 반려자로 인식하고 동반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자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갖고 각자의 빛깔에 맞는 문화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통역자와 도우미들과 법적 제도를 만난다 해도 아무런 의욕이나 보람을 찾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니 각자가 각자의 전문가가 되어 길을 모색하는 공부에 전념해주실 것을 긴히 당부드립니다.
코로나19 방역에 최선을 다하시면서 각자의 포부와 꿈을 부단히 이루어가시기를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삶의 위협을 겪고 있지만
코로나가 없어도 모든 사람은 시간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시간이야말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코로나인 셈입니다.
극히 짧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소중한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바로 사랑 이 한 단어로 압축됩니다.
시청각장애가 있어도 사랑할 능력이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고
아무 장애가 없어도 사랑할 능력이 없다면
완전한 장애에 처한 것입니다.
다시한번 사랑하고 감사드리며 두서없는 글을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