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청현스님
녹취/굿데이님
정리/사사나스님
<지금 수행하는 대로 자신의 수행을 하십시오. 수행을 하면서 사야도 말씀은 들리면 들리는 대로 자연스럽게 듣지
일부러 들으려고 애쓰지는 마십시오. 사야도 법문만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수행을 하면서 들리면 들리는 줄 알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사띠를 억지로 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단지 지금 알고 있는가 하고 일깨워주면 됩니다.
잘못된 생각을 하지 않고 생각 속에 빠지지 않는다면 마음속에 사띠가 있는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이란 지혜의 일입니다.
알아차리는데 있어서 활짝 깨어서 알아차려야만 합니다.
그저 맹하니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깨어 있으면서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사실은 사띠를 두었다 하면 지혜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에는 집중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 지혜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띠가 있다면.. 일어나면 일어나는 줄 알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줄 알고,
변하면 변하는 줄 알고.. 힘이 좋으면 좋은 줄 알고 힘이 약해지면 약해지는 줄 압니다.
사띠가 있으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사마디가 있으면 사마디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노력(위리아)를 하고 있으면 노력을 하고 있는 줄도 알아야만 합니다.
신심이 있을 때에도 신심이 있는 줄 알아야만 합니다.
지혜가 있을 때에도 지혜가 있는 줄 알아야만 압니다.
사람마다 지혜는 다 가지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지혜.. 그러나 힘이 없을 뿐입니다.
정말로 사띠가 좋아진다면 차츰차츰 지혜도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말한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실제 하는 가장 높은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며 체험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어떻게 일하며 작용하는가, 어떻게 서로 다른가...
보이는 것이 완전하지 못하면 지혜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대상도 알아야하고 작용하는 마음도 알아야 합니다.
일어나는 것도 알아야 되고 하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지금은 대상에만 골몰해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에 대해서 지혜가 나지 않습니다.
일어나는 것은 아는데 왜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사띠가 항상 이어졌을 때, 원인과 결과를 알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말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담마는 모두가 다~ 원인/결과입니다.
원인/결과를 이해한다면 ‘무아’를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고 마음의 느낌에 대해서도 알아야 되고 마음도 알아야만 됩니다.
이 세 가지가 다 법의 자연적인 이치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순간에 많은 것들이 어떻게 연관 되어 있는지도 알아야만 됩니다.
그것은 마음을 알았을 때에 변하는 모든 것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보든지 간에 아는 마음과 함께 봐야만 됩니다.
마음이 알고 있는데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대상만 골몰해서 봐서는 안 됩니다.
대상과 관계되는 모든 것들을 다 알도록 해야만 합니다.
마음이 대상을 알고 마음이 대상에 대해서 느끼고..
감정이 일어나는 것들도 같이 알아야만 합니다.
대상에 관계해서 마음이 어떤 의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어느 곳으로도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마음이 달아났다는 것은, 생각 속에 빠져서.. 거기에 푹 빠져 있는 것을
사람들이 마음이 달아났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있었던 모든 일들, 그런 것들이 일어나기도 하고..
집에서 있었던 일들도 생각나기도 하고..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단지 일어나는 것일 뿐인데 그것을 갖다가..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갖다가 달아났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기억하는 마음이 일어났고..
그것은 단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것일 뿐입니다.
마음이 집에 간 것이 아니고 또한 마음이 일하는 곳, 일터에 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성질은 지금 현재 여기에서 일어났다가 여기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제 성질대로 알 수 있다면
거기에서는 무상도 알 수 있고 dukkha도 알고 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은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보이는 것’이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깨닫는 것입니다.
둑카, 아낫따 역시 다~ 마찬가지로 깨닫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단지 경험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확실하게 깨닫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경험할 때마다 이해할 수 있을 때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마음 상태와 관계가 있습니다.
마음에 낄레사의 힘이 강할 때도 이해의 힘이 약해집니다.
낄레사의 힘이 아주 약해졌을 때 그럴 때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아주 미세한 번뇌들이 일어났을 때 바로 일어나자마자 알게 된다면
그 번뇌들은 더 이상 커지지 않을 것입니다.
깊은 지혜가 생겼을 때는 탐/진/치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내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수행을 했을 때에..
그냥 자연스럽게 수행이 되었을 때에 그때 지혜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알아차림의 가속도가 붙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랫동안 수행하는 사람들은 가속도를 죽이게 하지 마십시오.
계속해서 가속도가 붙게 하십시오.
사람이 따라 가면서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저절로 수행을 하게 되어야 합니다.
내가 수행을 한다는 생각이 있게 되면 지혜의 힘이 그렇게 크게 좋지 못합니다.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수행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저절로 수행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지혜가 점점 깊어질 것입니다.
마음에 가속도가 붙게 되면 사람이 수행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가끔 한번씩 사띠가 있는지 없는지 점검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에 가속도가 붙어 있다가 가속도가 뚝~ 떨어지게 되면
그때는 그 시점에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도록 해야 됩니다.
사띠가 계속 이어져야만 되고, 사마디도 항상 있어야만 하고..
그렇게 되었을 때 지혜가 생기게 됩니다.
알아야 할 것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래되면 될수록 점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7각지의 사띠, 위리아, 법의 조사가 들어 있는데
이것은 원인으로서 일하는 것이고, 사마디, 빠삿띠, 삐띠, 우뻬카는 결과입니다.
수행을 바르게 했다면 삐띠도 생겨야 하고 빠삿띠도 우뻬카도 생겨야 합니다.
결과라는 것은 억지로 취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인이 갖추어졌을 때 그 결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위리아란, 집중을 해서 애를 써서 하는 것을 위리아(노력)라고 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편안해지고자 행복해지고자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어떠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가 났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것은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혜가 나게 되면 낄레사가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괴로움도 없어지게 됩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편안해지고 싶어서 수행을 한다면 거기에는 탐심이 들어 있습니다.
물질적인 행복, 그러한 편안함, 욕망으로서의 행복만을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느끼기 좋고 즐기기 좋은 곳.. 그러한 것을 행복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우뻬카.. 마음의 평등심이란 괴로움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괴로움이 없을 때 우뻬카라고 합니다.
마음이 아주 깨끗하고 자유롭고.. 어떤 좋고 나쁜 것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욕망으로서 행복함, 편안함, 그것만 알지..
사마디(선정)으로서의 편안함, 지혜로서의 편안함, 도와 과를 얻어서 편안함..
이러한 것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사마디가 생겨나서 아주 고요한 그런 상태를 dukkha의 행복이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행복하고 편안한 느낌, 그것들도 사실은 dukkha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느낌으로서의 행복,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다 dukkha입니다.
사람들이 dukkha라고 한다면 아주 고통스러운 느낌을 갖다가 苦라고 생각합니다.
苦/dukkha라는 것은 그것들 보다 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무아(Anatta)에 대해서도 '내가 아니다' 하는 것 외의..
원인/결과를 이해 했을 때 정말로 무아를 이해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상(Anicca)에 대해서도 단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면 사라지고.. 그리고 계속 변화되고..
이러한 것들이 새록새록 다시 일어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상을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힘이 생기도록 계속해서 본인들이
무엇을 더 키워나가야 될 것인지 알아서 키워 나가도록 하십시오.
마음의 힘이 충만해지게 되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게 됩니다.
바라밀을 갖추었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제가 제할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가 되면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마음이 저절로 제가 알아서 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뭔가를 거기에 개입되어서 할려고 한다면 로바가 됩니다.
그래서 바라밀 충만하게 충분히 갖추어 지도록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수행을 하십시오.
마음의 성질은 일어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의 종자는 남아 있습니다.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그것의 종자는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마음들이 많이많이 일어나게 되면 그런 종자들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들을 살펴보십시오.
선한 마음들이 많은가, 악한 마음들이 많은가를..
이 말은 순간순간이 수행하는 시간임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시킨다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할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수행하는 것을 공경스럽게 분명하게 확실하게 하십시오.
_(2014‘ 6월 17일 아신.떼자니아 사야도 초청 위빠사나 집중수행 아침유도법문)_
첫댓글 "실질적으로 말한다면 위빠사나 수행은 실제 하는 가장 높은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해서.. 마음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며 체험을 하게 됩니다..."
사두 사두 사두..!!!
행복하세요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