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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card님의 다시 쓰는 여름향기 엔딩 ( 10회 ) 날 짜 : 2004/12/13 편집-여름향기최고 포토출처 - 드라마 여름향기
혜원은 한순간 자신의 육체적 활동기능이 마비되는 듯한 충격속으로 빠져드는지 움직 임이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 같았다. 키보드 를 누르고 있는 그녀의 손만이 흔들리는 컵속의 물처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미경은 싱크대에 기댄체 혜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근접할수 없을것 같은 바위처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침묵에 압도되어 꼼짝않고 혜원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혜원의 어깨너머 모니터에 나타난 정재의 사진이 미경의 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얼만큼 흘렀을까. 키보드위에 있던 혜원의 두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책상위를 더듬거렸다. ".......혜원아, 너도 알지? 오빤 말이야 원래 내세 같은건 믿지 않잖아, 그런데 맘이 바꼈어. 오늘부터, 아니 지금 이시간부터 믿기로 했어. 그 래야 현세에서 못다이룬걸 내세에 가서 이룰수 있지 않겠어? 오빠도 별수 없이 죽음앞에서는 신을 찾는 나약한 존재라고...? 만약 니가 이 렇게 묻는다면 긍정도 부정도 않겠다.....어쨋든 내가 다시 태어날 세상 은 일은 없고 사랑만 충만한 그런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어. 일은 정 말 너무 힘들어......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도태된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줄은 몰랐어... 인간들은 왜 세상을 살아 갈까?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살아가는 걸까? 아니야. 세상은 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거지. 그런데 오빤 말이야 이런 단 순한 진리를 훤히 꽤뚫고 있기 때문인지,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오빠한텐 해당되지 않는 말이더라구. 오빠눈으로 보이는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없 어. 속세에 오염되면 다들 이런생각들 한번씩들은 하지만 오빠문제는 이 것과는 별개지만...뭐 솔직히 네가 염세비관이라고 치부해도 할말은 없어. 분명 한건 오빠는 한순간 무너지는 모래성같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거야. 빌 딩 꼭대기 서 있다가 떨어지면 이런기분일거야. 오빤 이날 까지 살아오면 서 아무것도 이룬게 없어. 우리 잘난 아버지때문에 호위호식하고 대가없이 노력 없이 큰사업 힘안들이고 하나 물려받았다가 말아 먹은것 밖에 없어. 세상에 나같이 못난놈이 있을까? 오빤 인생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 어. 재생 불능이란 거지. 사람은 태어날때는 자신도 모르게 태어나지만 죽을때는 죽을때를 안다는 말이 있어. 회사까지 하루 아침에 이모양이 되다 보니 모든걸 잃고 삭풍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남겨진 듯한 추위 와 절망감이 밀려 오면서 죽음이란 단어가 나를 세뇌해 버렸어. 죽음 이 두려운 사람은 악착같은 삶이 구원이고 삶이 두려운 사람은 죽음이 구원이라는 말이 있어. 들어 봤어? 죽음이 오빨 구원해 줄거야. 요람 에서 무덤까지란 말 알지? 오빤 조금 일찍 갈 뿐이야. 먼길 떠나는 마 당에 걱정되는게 꼭 한가지 있어. 설마 그럴일은 없겠지만 혜원이 니 가 나의 죽음으로 인해 충격을 받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오빠가 너한 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어쨋든 시간이 흐르 면 사람의 죽음은 어느순간 잊혀지게 되어있어. 주위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면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 힘들겠지만 모든건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심장병을 갖고 있는 혜원이가 만약 잘못된다면 오빠는 죽어서도 영원히 눈을 감지 못할거야. 그렇게 되면 결국 오빠가 널 죽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야. 하지만 오빤 널 믿 는다. 너한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만약...? 기우겠지만 니가 잘못되 면 니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이점 꼭 명심해. 오빤 혜원이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걸 꼭 지켜볼거야. 글씨가 삐뚤삐뚤 형편없지...어제오늘 좀 마셨거든....지금 밤이 꽤 깊어진것 같 은데 몇신지는 모르겠다. 오빠 그만 간다......잘 있어라....안녕....영원한 내사랑 에스메랄다(노틀담의 곱추에 나오는 집시 여인)...." 고개를 떨군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이 편지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에서 아리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것은 마치 불에 달군 젖가락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그녀는 통증을 견딜수 없는지 가슴을 쥐고 책상에 엎드렸다. "어..언니! 왜그래요? 언니!" 미경이 사색이 되어 양손으로 혜원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그녀의 말이 끊어질듯이 이어졌다. 그녀는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 는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어...언니, 제발....." "미경아, 이제...괜..찮아." "정말 괜찮아요?" 혜원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녀는 통증이 가라앉는지 목소리가 한결 차분해져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미경은 비로소 안도하는 눈빛이었다. "어..언니. 정말 미안..해요. 일부러 정재아저씨일을 숨기려 한건 아니예 요. 정말 미안..해요..... 민우아저씨가 언니한테 절대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미경이 혜원이 심한 충격을 받은듯 괴로워하자 마치 큰죄를 지은것처 럼 두려움과 긴장으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혜원은 고개를 숙이 고 두손으로 다시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들썩였다. "언니...울지 말..아요."
"이렇게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하네." 정재부친과 모친이 지하 커피숍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뒤를 정아 가 따르고 있었다. 민우가 소파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를 한다. "민우선배, 오래 기다렸지?" "아냐, 괜찮아." 정아는 언제 갈아입었는지 검정색 양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왼쪽가슴에는 흰꽃이 달려있었다. 정재부친과 모친은 여전히 흰상복을 입고 있었다. 박재덕씨가 머리에 쓰고 있던 두건을 벗어 테이블위에 올려 놓는다. "저... 상주가 이렇게... 나오시면 안되지 않습니까?" 민우가 민망함과 미안함이 교차된 표정으로 묻는다. "괜찮네 이사람아. 이제 조문은 그만 받을거야. 곧 영결식이 있을거야." 정재부친은 갈증이 나는지 테이블에 놓여진 물컵을 들이킨다. 정재모 친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찍고 있었다. 그녀의 눈두덩이가 퉁퉁부어 있었다. "저 외람되지만....장례모실곳은 정하셨습니까? 선영을 모신 선산이 있 으...시겠죠?" 민우가 깍듯하게 정재부친에게 묻는다. "글쎄 민우씨, 아빠가 화장해서 바다에 뿌릴려구 하셨지 뭐야. 그래서 종정어르신께서 극구 말리셨어." 정아가 민우를 보며 박재덕씨에게 눈을 흘긴다. 박재덕씨는 팔장을 낀 채 말이 없다. "그래, 선산이 어디야?" "응. 충북 음성이야. 거기가 고향이야. 거기서 태어나고 중학교 마칠때 까지 거기서 살았는데 뭐, 혜원이도 잘 알아." "그..래. 여기서 가깝네." "여기서 두시간 반정도면 돼." "저..유민우씨..." 그때까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정재모친이 고개를 들어 민우를 쳐다보았다. "혜원이 어떡했으면 좋아요...혜원이 좀 부탁해요. 한땐 민우씨를 원망 한적도 많았고 그로인해 혜원이도 미울때가 많았어요. 하지만 다 부질 없는 짓이란것을 알았어요. 미우나 고우나 혜원인 우리 친딸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정재와 혜원인 민우씨도 아시다시피 각별한 사 이였습니다. 두사람이 한때 민우씨로 인해 갈등도 많았지만 알고보면 정재나 혜원인 남매이상으로 서로 아껴주는 사이였습니다. 지금도 마 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심장이식하고 한때 우리집에 들어와서 살았지 만 혜원이는 우리에게 부담이 된다며 혼자 살겠다고 나갔습니다. 우린 그냥 가엾기만 한데 혜원인 저희한테 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 냥 우리하고 같이 살다가 시집이나 가면 될텐데...알고 보면 혜원이가 우리한테 짐될게 하나도 없읍니다. 정아아빠 사업이 이렇게 큰것도 다 혜원이 부모가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혜원이는 저희한 테 부담느낄 이유가 없다는 거죠....이젠 혜원이도 결혼을 해야하는데..... 이젠 혜원이가 의지할데가 없어요. 걔 혈혈단신인거 민우씨도 알고 있 죠? 이제 유민우씨 아니..면..." 정재모친은 말을 마치자 감정이 복받치는지 흐느끼기 시작한다. "엄마! 그만 울어!" 그러면서 정아는 고개를 돌려 손을 눈으로 가져가면서 훌쩍인다. "그래 민우씨 자네가 이제 혜원이를 좀 맡아줘. 민우씨도 알다시피 혜 원이는....." 박재덕씨가 한동안 민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혜원이는 심장병이 아직 낫지 않았어....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혜원이 는 영원히 약을 먹어야하는 불쌍한 애야. 자네가 이런점을 모르고 혜 원이와 사귄다고는 생각지 않아. 난 자네의 모나지 않은 착한 심성을 잘 알아. 여기 이사람도 금방 얘기했지만 혜원인 우리 친딸이나 마찬 가지야. 이제 정재까지 잃고 더군다나 혜원이까지 잃으면 내가 나중에 죽어 저승가서 혜원이 부모를 뵐 면목이 없어져. 자네 내말 알겠지...? "예..잘 알겠습니다." "자네가 혜원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내가 이런 얘길 할 이유가 없어. 혜 원인 어떡해서든 살려야해. 우리가 보통사람은 평생한번 심장기증받기 도 힘들다는걸 두번씩이나 기증받아 이식한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일세. 한마디로 죽기살기 식으로 혜원이를 살린거야. 근데 이제 또 다시 혜원이에게 위기가 닥쳐왔어." 박재덕씨가 다시 컵을 들어 물을 들이켰다. 종업원이 찻잔을 테이블 한켠에 가지런히 놓고는 상복입은 정재모친을 한번 흘깃보고는 돌아섰 다. "심장이란게 고장났다고 뗐다 붙였다 할수 있는게 아니야. 만약...이제 또 혜원이 심장이 잘못되면...." 박재덕씨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고는 입술을 깨 문다. 민우는 착잡한 심정에 고개를 숙인채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잘못되면...그땐 방법이 없어." "회장님, 잘 알겠습니다." 민우는 달리 할말이 없었다. 자신이 혜원일 사랑한다는데에 대해서 굳 이 부연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민우선배, 차마셔."
사진 -홈피에서 가져옴
대풍이 정원귀퉁이에 서서 영결식을 준비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었 다. 정원이 워낙커서 그런지 발인제를 하기에도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 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배님!" 대풍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현관쪽으로 돌렸다. 상열이 현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자네 언제 왔어?" "전 아까 조문하러 들어갈때 선배님 여기 앉아있는거 봤는데요?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 사람같더군요." 상열이 실실 웃었다. "그래 자네는 부고를 받고 온거야?" "아뇨? 누가 저같은놈 한테 부고장을 보내겠습니까. 더군다나 대기업의 사장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럼, 기사보고 온거야?" "당근이죠." 그러면서 상열이 또 웃는다. 대풍이 못마땅하다는듯이 상열을 쳐다본다. "아니 자넨 상가집에 와서 뭐가 좋다고 연방 실실 웃고 그러나? 이사 람 가만보니 사람 못쓰겠구만. 누가 보면 어쩔려구 그래." 대풍이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인상을 쓰며 상열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선배님...그런가요." 상열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이사람 꼭 어린티를 내는구만. 상가집에 와서는 무엇보다도 표정관리를 잘해야돼." "선배님, 실은...좋아서 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대풍이 뚱한 얼굴로 상열을 바라본다. "등촌동 정보문화센터 공사도 같이 하게 되었잖아요." "그게 그렇게 좋아?" "아. 그럼 좋죠." "난 미래기획과 자네하고 또 같이 일한다는게 끔찍하기만 한데...." 대풍이 짐짓 관심없다는 듯이 먼산을 보며 말한다. "왜요 선배님? 신한쇼핑센터 공사할때 도면 잃어버린것 때문에 그러 는 거죠?" "이 사람 알긴 아는구만. 사람이 말이야 프로다운 기질이 있어야지 원..." "헤헤...선배님 다신 실수 안할께요." 상열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는다. "참! 선배님 팀장님과 혜원씨는 안왔어요?" "왜? 혜원씨가 보고 싶어?" 대풍이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아뇨, 팀장님과 혜원씨 두사람 다 보고 싶어요." 상열이 아무렇지도 않다는듯이 말한다. 이젠 대풍의 살갑잖은 말투에 어느정도 적응을 한것같은 표정이다. "민우는 잠깐 밖에 나갔고 혜원씨는......." "혜원...씨는요...?" "혜원씨는 아직 박정재씨가 죽은지도 몰라." "예? 그게 무슨 얘기...예요?" "자네... 말이야." 대풍이 눈을 가늘게 뜨고 심각한 얼굴로 상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왜..요 선배님?" "혜원씨가 심장이 안좋은거 알고 있잖아." "예...알고 있죠. 그런데요?" "그런데요는 뭐가 그런데요야. 혜원씨가 정재씨 죽음을 알면 안된다는 거지." "예! 그럼 혜원씨가 아직 박정재이사님 돌아가신걸 모른단 얘기입니 까? 그리고 그걸 숨긴다는게 가능한 일입니까?" "어쨋든 자네도 절대 모른척해 알았지?" "예....알긴 알았어요." "어, 저기 민우오네."
민우가 정재부모와 정아뒤를 따라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민우와 정 아가 대풍과 상열쪽으로 걸어왔다. "어? 상열씨 왔어?" "예, 팀장님 오랫만이네요." "상열씨도 참, 공사끝난지 며칠됐다고....." 민우가 미소를 지으며 손목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이런 벌써 3시가 다 돼어가네. 형 나 그만 가볼께." "그래 어서 가봐. 빨리 병원가봐야지." "정아야, 넌 이따 영결식 끝나고 장지 가야하지?" "응, 가야지." "그래, 그럼 갔다와서 보든지 하자. 아니지 참, 못보겠네 난 또 보성내 려가든지 해야하니까. 영결식 보고 갈려구 했더니 늦어서 안되겠네 정 아야 미안해. 난 그만 가 볼께." "그래 어서가 선배." 민우가 세사람한테 손을 흔들고는 뒤돌아 섰다. "참! 선배." "왜? "병원갔다가 다시 보성 내려갈거지?" "어디 다른데 여행이라도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지금 꼼짝할수 없는 상황이잖아. 움직이면 정재씨 소식에 노출될까봐 걱정이야." "그럼 외국에라도 좀 나가 있으면 안될까?"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혜원씨가 반대할것 같아...." "........." "일단 내가 설득은 하번 해볼께. 갑갑하게 보성에서 계속 머문다는것도 문제야. 나 그만 갈께." 민우가 대문을 나가자 정아도 대풍과 상열에게 미소를 한번 지어보이고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선배님, 병원이라니 무슨얘기예요?" "이사람이 뭘그리 소소히 알려구 하나. 어서 자리에 앉자구 영결식 준 비가 끝났나 보네." "선배님, 병원이라면 혹시...혜원씨 심장병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상열이 대풍의 팔을 잡는다. "알았으면 됐어."
민우가 정재네 본가를 떠나 잠실대교 부근에 이르렀을때 휴대폰이 울 렸다. 민우가 핸들을 한손으로 잡은채 휴대폰을 꺼내 발신처를 확인했 다. 혜원이 가게 전화번호였다. 민우는 차를 세우고는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 뚜껑을 열었다. "여...여보세요?" "아저씨, 저 미경입니다! 신미경이요!" 미경의 목소리가 매우 다급하게 들렸다.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아저씨, 저...언니 언니가요...." 미경은 마치 숨이 넘어가는듯 했다. 민우의 얼굴이 굳어지고 있었다. "언니가 정재아저씨 소식을 알아버렸어요. 아저씨 이제 어떡해요?" "그...그게 정말이예요?" "예, 정말...이예요! 언니 금방 나갔어요. 근데 아무말도 없이 나갔어 요." 민우는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것을 느끼며 핸들에 고개를 떨궜 다.
"다음은 전경련 한승일 이사님의 추도사 낭독이 있으시겠습니다." 정원은 발디딜 틈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당 우측 담장앞에 간소하 게 영결식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긴 단상이 놓여져 있고 단상 뒤에는 계단식으로 된 플라워 도열대가 놓여져있었다 도열대위 많은 조화속에 정재의 영정사진이 중앙에 놓여있었다. 사진위에는 큰 글씨가 적힌 흰 천조각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있었다. 액자에는 천상병시인의 `귀천`이 란 시가 적혀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쓰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손짓 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플라워 도열대위에는`고박정재 신한쇼핑센터대표이사 영결식`이란 명조 체 글씨가 쓰인 현수막이 가로 걸려있었다. 한승일 이사가 단상위에 올라왔다. 그가 안경을 고쳐쓰고 추도사를 낭독했다. "박정재 이사님, 도저히 믿기지 않은 비보에 황망한 마음을 금할수 없 는데 오늘 이사님의 영전앞에 서니 가슴이 메어질 뿐입니다. 아직도 갈길이 멀고 하실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왜 이렇게 홀연히 떠나셔야 했습니까? 기업인으로서 이제 한창 꽃을 피워야 할 때에 이렇게 꼭 떠 나셔야 하셨습니까? 이제 누가 이사님의 빈자리를 대신 한단 말입니 까? 같은 기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저로서도 이사님이 겪은 그간의 외 로움과 통한을 다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사님의 영 전을 대하는 마음이 애통하고 편치 않습니다. 이제는 이승에서의 모든 고뇌와 슬픔을 내려놓으시고 영면에 드시기를 삼가 바라옵니다.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아울러......" 추도사 낭독이 끝나고 한승일 이사가 내려가자 조객들의 분향이 이어졌다. 정아와 정아모친 은 앞자리 유족석에 앉아서 넋을 잃고 앉아있었다. 박재덕씨와 친지들은 분향을 마친 조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폐식사가 끝나고 운구차에 관이 실여졌다. 친지들과 일부 회사관계자들이 운구차와 승용차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사모님, 어서 타시죠." 신한그룹 비서실장이 넋을 놓고 앉아있는 정아모친에게 차에 오를것을 권유한다. "엄마, 어서 타 빨리 가게." 비서실장이 정아모친을 일으키자 정아모친은 다리가 풀린듯 후들거린 다. "아가씨도 어서 타세요." "알았어요." "정아씨 잘다녀와요." 대풍이 상열과 정아를 배웅한다. "고마워요 대풍씨." "정아야! 잠깐만!" 정아가 박재덕씨 승용차에 타려하자 민우가 정아를 부르며 큰길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아니..민우씨.. 왜 왔어?" 정아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대풍과 상열도 달려오는 민우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민우는 망연자실한듯 얼굴에 핏기하나 없었다. 민우가 정 아의 팔을 끌어당겼다. "선배!" "민우야 무슨 일이니?" "큰일났어 정아야. 혜원씨가 알아버렸어." 민우가 그자리에 머리를 쥐고 쪼그리고 앉았다. "뭐..선배 그게... 정말이야!" "그..래 정말..이야." "그러게 내가 뭐랬어. 올라오지 말랬잖아. 이제 어떡 할거야!" 정아가 소리를 지른다. 대풍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선배! 혜원이는 지금 어딨어?" "모르겠어. 조금전에 가게에서 나갔다는데 여기 올지도 모르겠어. 정아 야 넌 안가면 안되겠니?" 정아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휴.....알았어 일단 혜원이를 기다려야지." 정아가 박재덕씨가 타고 있는 승용차에 다가간다. "정아야, 무슨일이니? 민우씨는 왜 또 왔어? 혜원이 하고 병원간다며?" "아...아녜요 아빠... 엄마, 아빠 전 안갈께요 급한 일이 좀 있어요. 빨리 가세요 미안해요." 정아가 부친과 모친을 번갈아본다. "정아야 대체 무슨일인데 장지에 안갈려구 그러는거야. 혹시 혜원이에 게 무슨일 생긴거 아니니?" "아니라니까요 엄마, 어서들 가세요." "그래 알았다 그럼 넌 남아서 사촌들과 집안 정리나 하고 있어라." "알았어요 아빠." "정아야 그럼 갔다올께. 근데 소서방은 왜 안보여?" "일 때문에 아침에 일찍 나갔어, 엄마, 잘 다녀와." 차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집주위는 텅비었다. 민우가 시계를 들 여다보고 있었다. 네사람은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대문앞 에서 서성거렸다. "민우씨, 지금 몇시야? 혜원이가 왜 이렇게 안오지? 분명 여기로 올텐 데." 정아가 초조한 기색으로 민우를 쳐다보았다. "팀장님, 혜원씨한테 전화해보죠." 상열도 불안한 표정으로 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혜원씨 휴대폰 고장났어." "그...그래요?" "혹시 우리집에 간거 아닐까? 내가 전화한번 해볼께." 대풍이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장미씨? 나야." "어머 대풍씨 그래 장례식은 끝났어요?" "그래 끝났어....근데 혹시 혜원씨 그기 안왔어?" "아뇨. 아직 안왔는데요. 근데 무슨일이예요?" "............" "철이 아빠, 무슨 일인데 그래요?" "혜원씨가 정재씨일을 알아버렸어." "뭐..라구요? 그게 정말이예요? 어머 정말 큰일났네." "혜원씨한테 혹시 전화올지 모르니까 전화오면 나한테 전화좀해줘." "아....알았어요. 어머 이를 어째..." 대풍이 전화를 끊고는 대문앞 계단에 앉는다. "민우씨, 혹시 혜원이 병원간건 아닐까?" "혜원씨가 정재씨 죽음을 알았는데 병원갈 정신이 있을까." 민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근데 민우씨, 혜원이가 어떻게 알았대?" "정재씨가 혜원씨 가게로 연하장을 보냈대." "선배, 연하장...이라니?" "민우야, 그게 무슨... 소리니?" "27일 새벽에 정재씨가 자살하기전에 혜원씨한테 편지를 썼나봐 그 편 지를 받은 가게 종업원이 오늘 혜원씨한테 무심코 그 편지를 줬나봐." "종업원한테 비밀로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어?" 정아가 다그치듯 묻는다. ".......편지 겉봉투에 보낸사람 이름과 주소가 없었데....종업원도 그게 정 재씨가 보낸 편지인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시간이 흘러 어느덧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민우가 일어섰다. 그의 표정은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게에라도 가보자. 가면 혜원씨가 갈만한곳을 찾을수 있을지도 몰 라." "충격 받아서 어디가서 쓰러진건 아닐까?" 정아가 초조한 눈빛으로 민우를 쳐다보았다. "우리집에서도 연락이 없는걸 보니 그기에도 안온 모양이네. 다시 전화 해볼까?" 대풍이 전화를 끄집어 낸다. "대풍씨, 아직 혜원이 안왔어요. 이제 어떡하면 좋아요?" 대풍이 휴대폰을 접었다. "어서 가게에 가보자." "민우씨 잠깐만, 집에 들어가서 얘기좀 해놓고 올께."
차가 가게에 도착하자 시간은 7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민우가 혼잡 한 차도를 비켜 인도에 차를 세웠다. 셔터를 반쯤내린 가게안에서 희 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네사람이 가게에 들어서자 미경이 소파에 앉아있다가 황급히 일어섰다. "어머...아저씨 어서 오세요. 언니 못찾으셨어요?" "여기도 연락... 없었죠?" 민우가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예, 아저씨 연락... 없어요." "아가씨, 혹시 혜원씨가 어디 갈만한데 없어요?" 대풍이 소파에 앉으며 묻는다. "전...모르겠어요. 지금 이런 상황에 언니가 어디 가겠어요. 정재아저씨 집에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미경이 두손을 앞으로 모아쥐고 어깨를 움츠린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 다. 벽시계의 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정도로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민우가 고개를 돌려 뒤쪽의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8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민우가 잠시 두손으로 머리를 감 싸는가 싶더니 책상옆에 장승처럼 서있는 미경을 올려다 본다. "미경씨, 언니가 정재아저씨 편지를 읽었을때 언니가 어떠했어요?" "참! 아저씨 언니가요 정재아저씨가 돌아가신걸 알고는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은것 같았어요. 언니가 굉장히 고통스러워했어요. 전 꼭 언니가 잘못되는줄 알았어요." 미경이 숨도 쉬지않고 단숨에 얘기했다. "정아..야, 너 정재씨 묻힐 장지가 어디랬지?" "그건..왜? 충북 음성이라고 했잖아." "지금쯤 하관이 끝나고 돌아오고 있겠지?" 정아가 손목시계를 본다. "아마..그럴거야. 근데 민우씨, 그건...왜? "정아야, 다시 집에다 전화해봐, 혹시 혜원씨 왔을지 모르니까. 만약.... 아직 안왔다면 음성에 가보자." 정아가 민우말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휴대폰을 꺼낸다. 정아는 통화를 하는가 싶더니 휴대폰을 호주머니 넣었다. "안왔대." "음성에 가보자." 민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간다. 민우가 운전석에 앉으면서 문을 닫자 대풍이 운전석문을 연다. "민우야, 내가 운전할께." "아..아냐 형, 내가 할께." 민우가 돌아보지도 않고 시동을 걸었다. "빨리 내려와 자식아!" 대풍이 강제로 민우팔을 잡고 운전석에서 끌어내렸다. "너 임마 지금 제정신이 아냐! 넌 뒤에타! 정아씨는 길을 가르쳐줘야하 니까 조수석에 앉아요. 상열씨도 갈거야?" "예, 선배님 나도 갈거예요." 상열은 벌써 타고 있었다. 차가 올림픽대로를 타고 동쪽으로 달려 중 부고속도로에 올라섰다. 차창밖은 흐릿한 불빛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민우의 시선이 차창밖에 머문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손으로 턱을 괴었다. 온갖 상념들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정아씨, 혜원씨가 그기 갔을까요?" 대풍이 정아를 돌아보았다. "글..쎄요... 혜원이가 지금 이상황에서 달리 갈데가 없다고 보면 음성에 가지 않았다고 단정지을수도 없어요." ".........." "혜원이가 오빠한테 할말이 많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집 에는 일부러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만약에...혜원씨가 그기 있다면.....날씨도 이렇게 추운데 지금 산중에 있다면 보통 큰일이 아닌데....." "빨리가요, 대풍씨," 가속패달을 밣고있는 대풍의 발에 힘이 들어간다. 차가 음성톨게이트 에 도착하자 시간은 10시를 훌쩍넘고 있었다. 차는 톨게이트를 나와 한참을 더 달렸다. 밤안개가 전조등 불빛에 흩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달 렸을까... "대풍씨, 조금만 더가면 왼쪽에 생극초등학교가 있어요. 어두워서 그냥 지나칠지 모르니까 천천히 가요." 대풍이 고개를 숙이고 전방을 두리번거린다. "아! 대풍씨 저기 생극 초등학교 교문이 보이죠? 정문앞에서 좌회전해 요. 그럼 아홉살이라는 고개가 나와요. 그기서 조금만 가면되요." 차가 학교를 돌자 곧 고개가 나왔다. 완만한 경사지만 꽤 길어보였다. 고개를 미처넘지못해 오른쪽에 이재연장군생가란 표지판이 전조등불빛 에 들어왔다. "대풍씨, 저 표지판에서 우회전하세요." 차가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어 5분쯤 달렸다. "대풍씨, 다왔어요. 여기예요. 민우씨 다왔어." 네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대풍이 올때 사온 후레쉬를 켰다. 그들은 산 길을 올라갔다. 밤공기가 꽤나 차가왔다. 대풍이 후레쉬를 이리저리 비 췄다. 경사진산길을 조금만 올라가자 곧 평평한 잔디밭이 나타났다. 꽤 나 넓어보였다. 대풍이 후레쉬를 멀리 비추자 그곳에는 여러개의 무덤 이 보였다. 족히 대 여섯개남짓 되는것 같았다. 묘앞에는 전부 영좌가 꾸며져 있었다. "대풍씨, 여기가 선영들을 모신곳이예요. 대풍이 주위를 비추자 사람들 이 다녀간 흔적들이 나타났다. 패인자국과 진한 황토색의 흙덩이들과 발자 국, 그리고 조화들이 잔디에 떨어져 있었다. "정아씨, 정재씨 묘는 어딨어요?" "아마 저쪽 맨뒤 나무옆에 있을거예요. 민우씨, 뭐해 빨리오지 않고." 민우가 따라오지 않고 저만치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는 마치 움직일 줄 모르는 석상처럼 서 있었다. 민우는 혜원이 제발 여기 없기를 바랬다. 민우는 자신이 가자고 하고서는 정작 자신은 자신의 예측이 맞아떨어 질까봐 불안에 떨고 있었다. 묘지들 사이사이엔 큰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대풍이 여러개의 봉분들을 뒤로하고 맨끝 나무뒤에 후레쉬를 비췄다. 불빛이 천천히 나무를 타고 내려와서 어느지점에 멈췄다. 봉분 앞에는 많은 꽃들이 놓여 있는것 같았다. 한눈에 봐도 오늘 안장한 묘 였다. 대풍이 후레쉬를 비추며 묘로 다가갔다 뒤를 정아와 상열이 따 랐다. 묘에 후레쉬를 비추며 다가가던 대풍이 멈춰섰다. 대풍이 흠칫 놀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꽃이 놓여진 영좌밑에 검은 물체가 영 좌에 기대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고슴도치가 웅크리고 있는것 같았다. 대풍이 보기에 분명히 사람같아 보였다. 대풍이 무릎을 끓고 한손으로 살며시 검은 물체를 안아서 돌려 후레쉬를 비췄다. "혜원씨! 이봐요! 혜원씨!" 대풍이 혜원을 흔들었다. "혜...혜원아..." 정아가 두손으로 입을 가린채 대풍의 어깨너머로 혜원이 얼굴을 내려 다 봤다. 그녀의 목소리는 재갈을 문 사람의 신음소리 같았다. 정아는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대풍선배 빨리 혜원씨 저한테 업혀줘요. 빨리요!" 상열이 혜원이 앞에 등을 대자 대풍이 혜원을 안아 상열의 등에 업혔 다. 대풍이 윗도리를 벗어 혜원의 등을 감쌌다. "빨리 내려가 어서!" 정아씨 어서가요!" 그들은 조심스레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민우씨! 뭐해 빨리내려오지 않고!" 정아가 뒤돌아보면서 발이 땅에 붙은듯 움직일줄 모르는 민우를 불렀다. 하지만 민우는 뭔가에 홀린듯 정아의 외침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 다. 검은 물체가 혜원임을 확인하는 대풍의 소리에 설마하던 우려가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민우는 대풍의 혜원씨! 라 는 소리에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견딜수 없는 겪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손과 발에서 시작된 마비증상이 머리까지 차올라 정수리를 관통 하는 듯한 느낌에 마치 가위에 눌리는듯, 움직이려하지만 움직일수가 없었다. 민우의 시선은 동공을 잃어버린체 혜원이 웅크리고 있던 자리 에 시선이 멈춰있었다. 그런 민우를 보고 있던 정아가 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묘지를 둥글게 에워싼 숲위로 뻥뜷린 하늘만이 희 미하게나마 묘지의 윤곽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정아는 뒤에서 민우의 팔을 잡아 돌렸다. 정아는 민우의 표정을 자세히 볼수 없었지만 그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짐작이 갔다. "이러구 있을거야? 이러구 있을거냐구!" 정아가 새된 소리를 지르며 민우의 팔을 잡아 끌었다. "빨리가 어서! 혜원이가 위험해!"
"대풍씨, 일단 가까운 병원에 가도록 해요! 혜원이가 의식이 없는것 같 아요! 빨리가요! 히터 좀 더 틀어요!" 정아가 상열과 뒷자석을 전부 제끼고 혜원을 눕혀놓고 팔다리를 문지 르면서 소리를 질렀다. 민우는 대풍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두손으로 머 리를 감싸쥐고 있었다. "의...의식이 없다구요? 그럼 어떻게 해야...해요? 체온은 어때요?" 대풍이 운전을 하면서 목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차가 비포장도로를 럭비공이 튀듯이 빠져나와 아스팔트길로 나왔다. "옛날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체온은 따뜻해요. 실신한지는 얼마 되지 않은것 같아요." "그럼 정아씨가 어떻게 응급처치라도 좀 해봐요!" 대풍이 핸들을 잡고서 연신 뒤돌아 보았다. 정아가 혜원의 블라우스 단추를 열고 귀를 가슴에 대었다. "어....어떡해요? 혜원이가 숨을 안쉬어요 대풍씨!" "그...그럼 심장이 멈췄다는 겁니까?" 대풍은 심장이 멈췄다는 정아의 말에 편도1차로 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정아의 안색이 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정아가 마른침 을 삼키며 혜원의 흉골에 두손을 모아 한순간 힘껏 눌렀다. 혜원의 몸 이 정아의 누르는 힘에 출렁거렸다. 정아가 다시 똑같은 동작을 반복 하고는 혜원의 가슴에 귀를 갖다댔다. 정아가 낙심한듯 일그러진 얼굴 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대풍씨! 차 앞유리에 있는 화장지 통채로 좀 줘요!" "화...화장지..요? 대풍이 콘솔박스위에 있는 화장지박스를 집어 정아에게 건네자 정아가 화장지를 두손으로 뭉개어 높이를 낮춘다음 혜원의 목에다 받쳐 혜원 의 머리를 뒤로 제쳤다. "저...상열씨라고 했나요? 제 옆에 좀 오세요. 어서요!" 정아가 상열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예...아....알았어요." 혜원의 옆에 앉아 혜원의 팔을 주무르고 있던 상열이 혜원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정아와 나란히 앉는다. "자, 봐요 제가 하는걸, 이렇게 두손바닥을 포개서 여기 늑골과 흉골 이 만나는 곳을 순간적으로 눌러주세요. 그냥 눌러서는 안돼요. 깊이 함몰되게끔 강하게 눌러야해요.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세요. 알았죠? 자, 제가 혜원이 입으로 숨을 한번씩 불어넣을때 마다 바로 동작에 들 어가야해요. 상열씨와 저하고 시이소 타듯이 하는 거예요 아시겠죠?" 정아가 단숨에 내뱉고는 혜원의 머리로 자리를 옮겼다. "예, 아...알았어요." 잔뜩긴장한 상열이 떨리는 두손을 모아 혜원의 가슴을 짚었다. 정아 가 왼손으로 혜원의 코를 막고 구강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 으로 혜원의 입에 공기를 길게 불어넣고 코를 잡았던 손을 놓았다. 정 아가 잡았던 손을 놓는 동시에 상열이 혜원의 흉부를 눌렀다. "그래..요 그렇게 계속 하는 거예요. 지금 안돼면 병원가도 가망없어 요." 상열이 한번씩 혜원의 가슴을 눌렀다 놓을때마다 혜원의 몸이 시트와 들썩거렸다. 일분정도 반복을 하고는 정아가 숨소리를 감지하기 위해 혜원의 코에다 자신의 빰을 갖다댔다. 하지만 혜원의 코에서는 아무 런 느낌도 감지할수 없었다. 정아는 다시 혜원의 경동맥(목에 뻗친 대 동맥의 분맥)에 엄지와 검지를 갖다댔다. 그러나 그 어떤 느낌도 감지 할수 없었다. 정아는 안색이 흑빛이 되어가면서 등짝에서 긴장으로 인 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혜원의 입 에다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상열은 정아의 동작에 호흡을 맞추느라 그녀의 행동에 온통 신경이 쏠리고 있었다. 혜원의 가슴 누르기를 반 복하고 있는 그의 이마에도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시 쉬지 않고 80 회 정도 반복을 한 정아가 땀을 쏟아내며 다시 혜원의 코에다 자신의 빰을 갖다댔다. 한 동안 그러고 있던 정아가 고개를 들며 절망적인 신 음을 쏟아냈다. "아....안...돼.. 너무 늦었어..." 정아가 쓰러지듯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상열은 무릎을 꿇은채 멍하 니 혜원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대풍은 앞만 보고 뭔가에 홀린듯 속 도만 내고 있었다. 순간 쿵쿵 하는 소리에 대풍이 민우를 돌아보았다. 민우가 콘솔박스상단에 머리를 부딪치고 있었다. "야! 민우야! 너 뭐하는 짓이야!" 대풍이 자해를 하는것 같은 민우를 보고 고함을 지른다. 창문에 기댄 정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륜구동 엔 진소음만이 차안을 윙윙거릴뿐 무거운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차가 칠 흙같은 어둠에 묻힌 구불구불한 국도를 한참을 달려 음성시내에 도착 했다. 대풍이 무작정 시내를 관통하면서 눈길이 차창밖 좌우를 두리번 거렸다. 시간이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서인지 시내는 어둠에 묻혀 있었 다. 종합병원을 찾아야 했다. 지금 이시간까지 문을 열고 있는 곳은 종 합병원 응급실 밖에 없을 것이다. 대풍이 거리를 두리번 거리다 땀 에 젖은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아씨! 여기 병원이 어딨어요? 종합병원 말입니다! 어서 가르쳐 줘 요!" 그의 목구멍에서 창호지가 찢어지는것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 아는 여전히 차창에 기댄체 넋을 놓고 있었다. 상열은 꿈을 꾸고 있 는듯 혜원의 얼굴에 시선이 멈춰있었다. "대풍씨...늦었어요. 혜원이 죽었...어요." 정아가 차창에 기댄체 말했다. 그녀의 음성이 깊은 지하에서 흐르는 물처럼 음울했다. "정아씨가 의사입니까! 정아씨가 혜원씨 죽은지 어떻게 알아요! 빨리 병원이나 안내해요!" 정아가 대풍의 고함소리에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차창밖을 두 리번거리다가 운전석으로 고개를 내민다. "다 왔어요. 저 앞 두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오른쪽에 음성 세브 란스 병원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