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 들어가는 따로국밥. 볼 품 그렇게 훌륭하지 않지만 맛은 참으로 훌륭하다. 대구 어딜가나 섭섭치 않게 만나게 되는 따로국밥. 대구음식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춥고 배고픈 날 저녁', 생각만으로도 무너져 내리는 국밥 한 그릇이다. 대파 흐드러진 달착지근한 국물에 숭덩숭덩 꺼뜨려 먹는 선지에다가 이런저런 채소들 푹푹 익어 내지르는 진한 뒷맛이야말로 대구식 따로국밥의 진미다. 대구 내려와 매일매일을 그저 금복주에 젖어 살던 때 만났으니, 그 후로 한번도 '배신 땡기지 않고' 사랑했으니, 국밥 어느 새 깊은 애정의 길목에서 떼어낼 수 없음이다. 대구는 그야말로 국밥 '천지삐까리'다. 절품으로 차려내는 막강한 따로국밥이 있는가 하면, 같은 계열 육개장(이 음식을 서울 을지로 어느 식당에서는 大邱湯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대구스타일 탕국이라는...)도 읍성 담벼락처럼 진을 치고 있어서 해장 하나는 확실하게 풀어내는 대구다.
혀 데일 만큼 뜨겁지 않다. 그저 뜨끈한 정도. 따로국밥 면면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도록 뜨거운 것이 좋으냐, 그저 따끈한 정도가 좋으냐... 내게 묻는다면(사실, 물어올 사람도 없지만서도...^^) 나는 그 집 점지해주는 대로 먹겠다, 편이다. 그림이건, 서양음악이건, 판소리건, 밥이건 간에 적어도 긴 세월 그 나름의 칼라로 지켜왔다면, 온전한 그 자체를 맛보는 일 더 소중하겠기 때문이다. 시시때때로 너무 편승하는 일은 종국에 이르러 '니맛 내맛'도 다 잃게 되는 것 아닐까 싶은 마음도 든다. 대구시 중구 전동(田洞이라고 쓴다) '교동따로'(053-254-8923) 스타일은 데일 듯 뜨거운 국밥 아니다. 그저 묵직함 넘치게 따끈한 정도. 바로 교동따로 국밥 칼라다. 내 입맛 오랫동안 사무치게 하는 집. 음, 얼마나 근사한 맛인지... 국밥 휘휘 저어 나의 몫을 확인한 다음, 소담하게 담아 놓은 마늘다지기 박박 긁어 넣고(마늘 남기면 너무 너무 너무 아깝다. 언제 어디서 어떤 마늘을 만난다 해도... 늘, 초지일관 너무 아깝다. 마늘!^^), 다시한번 휘휘 저은 다음, 빙산의 일각만큼으로 잠겨 있는 한 덩어리 선지 끌어올려 숟가락으로 푹푹 꺼뜨리며 떠 먹는 교동따로 '국밥'이다.
대구 내려와 살면서 참으로 여러 집 따로국밥(토렴으로 말아낸 국밥 보다는 밥은 밥의 자리에, 국은 국의 자리에 있는 작품을 더 좋아한다.) 경험했다. 나름 이름있는 집들도 여럿 있다. 그렇지만 꼭히 뭐, 멀리 갈 것도 없다. 대구에서 따로국밥 괜찮은 집 찾기로는 말하자면 말이다. 그저 재래시장 푹푹 끓여대는 가마솥 국밥만 한 술 차려내도 그 맛은 너끈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파가 그렇게 좋다. 큼직하게 뚝뚝 썰어넣은 대파 속속들이 짭짤하게 맛이 배어 결마다 미끄럽게 톡톡 씹히는 맛도 굉장하고, 흐물흐물 휘휘 늘어지는 문드러진 대파도 그지없다. 교동따로는 이렇다. 굵직한 탕국물 속 대파 달디 달게 저작하면서 새콤하게 맛 깊어진 파김치를 곁들이 맛. 나 만의 비밀스러운 행복이라고 할까. 교동따로는 그렇다.^^ 아주 드물게는(그러니까 먹어도 먹어도 해장은 요원한 듯한... 거두절미, 기력 쇠잔해 들것 필요한 날...요즘은 알아서 거기까지는 가지 않지만...^^) "국물 더 주세요."를 간절히 외쳐보기도 하는데, 새 국물에 마늘다지기 풀어낸 다음 꾸역꾸역 떠 먹으면 이게 바로 '술꾼의 행복', 잠시 실감나기도 한다. '빠꼼한 날' 없었던 때 얘기지만.
국물 있는 것으로 대구에서 매력있기로는 대구 태생 누른국수와 쌍벽이다. 선지국밥. 맑고 선선한 느낌이면서 좋은 맛을 내는 지하철 2호선 성서공단역 언저리에 있는 '성서따로'도 아주 좋아하는 집이다. 동료들에게 '말빨 딱 서 주어' 점심으로 성서따로집 향하는 날이면 살짝 설렌다. 산울림 노래에 '어머니와 고등어'라는 노래 있는데, 그랬을까 싶다. ... 한밤 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 코고는 소리 조그맣게 들리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주려 하셨나 보다. 소금에 절여놓고 편안하게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엔 고등어 구일 먹을 수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절여놓고 주무시는구나. 나는 내일 아침에는 고등어구일 먹을 수 있네. 나는 참 바보다. 엄마만 봐도 봐도 좋은 걸 ... 성서따로에서 해장국으로 따로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해도 좋은 걸... 이라고.^^ 뜬듬없이.
성서따로는 명문 교동따로하고는 같은 선지국이면서 조금 다르다. 교동이 흐무러지도록 진한 국물에 달착한 여운이 강하다면 성서따로는 상대적으로 국물이 맑고 깔끔한 편이다. 두 집 다, 대구에서 눈물나게 좋아하는 선지국 집이다. 선지국 혹은 육개장 같은 경우는 '시종여일한 국물 맛내기' 불가능하지 않다고 혼자서 생각하는데, 실제로 나의 그날 그날의 컨디션이 다를 뿐, 교동따로나 성서따로는 거의 같은 맛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집이다. 우리 동네 한 귀퉁이에 그렇게 녹록치 않은 선지해장국 있다는 것만으로도 뜨겁게 감사한다. 사실 성서따로 인근은 내게는 가히 해장국의 본거지나 다름 없는 곳이다. 반경 엎드리면 코 닿을 자리에 너댓집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지국으로는 '성서따로'가, 복어 매운탕으로는 성서 최고 '향록복어(본점)'가, 뼈다귀뚝배기해장국으로는 향록복어 바로 뒷블록에 있는 전통의 '홍천뚝배기'가, 그 아랫쪽에는 은근히 짭쪼롬한 조개 샤브샤브 국물 맛 일품인 '토속정'이, 그 골목 바로 옆으로는 복어 맑은탕 국물 아슴프레하게 젖어드는 '마산전통복어'가 있다.
그저 '존재'의 의미로 있는 집들이 아니라 다 제 나름 일가를 이룬 맛이라고 혼자 생각하는 집들이다. 토속정의 뱃속까지 편안해지는 시원한 조개 샤브샤브 국물 맛은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이다.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뽀글뽀글 끓여내는 향록복어 복어매운탕은 언제 먹어도 각별하다. '매운 국물'이 크게 해장국으로 적절치 않다는 말씀도 있으나, 향록복어 매운탕은 별로 그런 기운 느끼지 못한다. - 향록복어는 매운탕이, 마산복어는 맑은탕이 좋다 - 향록은 콩나물 비빔 맛도 빼놓을 수 없는 집이다. 그런가 하면 마산복어는 맑은탕에다 복어튀김이 아주 근사한 집이다. 금방 튀겨낸 복어튀김, 살짝 와사비장에 찍어 먹으면 사각사각 튀김 맛이 혀끝으로 스며든다. 그 부드러움이란 것이 정말 ... 홍천뚝배기집은 연세 지긋하신 주인장 할머니께서 차분차분 차려주시는데, 그득하게 담아내신 뚝배기 자태 얼마나 소담스러운지, 풀풀 피어오르는 김서린 뼈다귀 해장국 위로 기어이 눈물 한 방울 똑 떨어지고야 말 정다움 서리는 집이다. 누린내 없이 담백한 국물 참 좋은 홍천뚝배기다.
교동따로는 선지국밥 집이다. 田洞에서 선지국 하나로 30년을 훌쩍 넘긴 집. 파김치도 맛있는 집. 국물 맛 참으로 깊은 집. 내게 인상지워진 교동선지국 맛이다. 이런 스타일 아주 유사한 선지국밥집이 하나 더 있었다. 서문시장 좁은 식당골목 안에. 실비식당이라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만 문을 닫고 말았지만, 그 집 허름하고 작은 식당에 혼자 앉아 골목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선지국밥 맛 아주 각별했었다. 대파를 얼마나 크게 썰어 넣었던지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할 정도였는데, 속속들이 씹힐 때 마다 배어나오던 흥건한 파즙, 육즙 맛이 아직도 입에 침 고이게 한다. 선지라는 것이 소피이기는 하지만, - 대구 처음 내려왔을 때는 직장 선배들이 "소피국 한 그릇 어때...?" 그렇게 불렀었는데, 하긴 요즘도 소피국이란 말 어색하지 않다. 조금 주저했던 기억 남아 있다. 음, 소의 피로 국을...?^^ - 어느 책에서 보니 선지는 칼슘과 철분이 쇠고기의 두 배나 된다고 한다. 성장기의 어린이들에게도 좋은 식품이라는 설명까지 곁들일 만큼...
아무튼 그 선지국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田洞이다. 이곳에는 대구 따로국밥의 시작을 알렸다는 집도 있고, 교동과 연륜 엇비슷한 또 다른 따로국밥집도 있다. 자료에 보면 교동따로 아랫쪽, 은행 뒷골목 사잇길이 예로부터 '진골목'의 시작점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다. 서울 피맛골(딱 그 골목에 위치하지는 않았지만)에도 명성 자자한 해장국밥집 있고, 대구 진골목에도 대구를 대표하는 해장국인 따로선지국밥집 있다는 점. 기름 많은 것 크게 와 닿지 않아 교동따로에 가면 언제나 "기름 빼고 주세요."를 외쳐댄다. 이렇게 끓여놓고 보면 사실 처음엔 이것이 육개장인지 따로국밥인지 잘 몰랐었다. 니중에 알고 보니 대체로 선지가 들어가면 따로국밥, 양지가 들어가면 육개장,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쉽겠다는 생각 하게 되었다. 대구 육개장에는 양지가 들어간다. 손으로 일일이 찢어 부드러운 질감을 주는 경우도 있고, 깍뚝썰기로 썰어넣어 씹히는 맛을 더해주는 경우도 있다. 대구 육개장.
[출처] 전동 / 진한 국물, 부드러운 선지를 느낀다 ...'교동따로' |작성자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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