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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을 통해서 보아 분단과 이별의 희극화를 통해 슬픔과 아픔의 진정한 치료가 가능한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이재유(부산고 제36회 청조동문)
(참고출처: http://cafe.daum.net/FortheKidnapped/LfAU/107)
“적과의 동침”과 “웰컴 투 동막골”이란 국내영화에서처럼 남북한 분단이별의 슾프고 아픈 주제가 적과의 동침처럼 희극화가 되어 그 사실과 현실의 간격 사이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이 남의 일인 양 웃어넘겼어도 아니 되고 그 현실을 너무 슬퍼 아파서 헤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도 아니 되겠지만 분명히 강조해야 할 사항으로 그렇게 영화같이 희극화 되어 남북분단으로 인한 분단이별아픔이 가볍게 치부되거나 웃으면서 넘어가버려 흥행위주나 흥행을 생각해서 각색되면서 재밋거리와 우스갯거리 흥미진진으로 끌고 감을 아주 엄중히 경계해야 하면서도 그 적과의 동침이 국제사회든 국내사회든 억지 춘향식의 남북한 분단의 아프고 슬픈 현실을 보듬고 같이 가야 걸어가야 하는 상황을 언제든 어디서든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국제사회이다.
우리에게 서로서로는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총부리와 핵폭탄을 언제라도 겨누고 터뜨리겠다고 협박하고 있고, 실제 여차하면 북한이 나 잘 살자고 남쪽의 다른 한편인 동족인 남한사람들을 남보다 더 비참하게 몰살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 현실이 아닌가.
산 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통일은커녕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다고 남한 내에서든 바깥이든 야단이다. 어떤 이는 통일비용이 너무 들고 통일이 되면 통일독일에서 보듯이 남북한이 생활수준이 북한은 올라가지만 남한은 지금보다 통일비용 공동부담으로 남한내 생활수준이 통일전보다 더 내려가는 희생을 해야 하니 아예 통일은 접고 서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어떤 이는 통일 한국이 되면 북한의 핵무기가 남한 것이 된다고 스스로 북한의 핵무기 개발 보유를 변호와 변론을 내외심으로 하고 있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평화통일의 초석이 되겠는가. 제대로 된 자기만의 위안이고 평안을 위해 다른 폭력과 전쟁의 변장이나 위장인가, 진정한 남을 위한 위안이고 평안이 되겠는가. 고름이 제대로 된 살이 되던가.
우리의 한민족 5천년 역사 앞에서 그 긴 시간 통일된 조국앞에서 그에 비한다면 너무도 짧은 분단역사 62년을 굽어보면 너무도 아프고 슬프다.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부족한가. 한반도 주변에 4대강대국 미중러일이 있어선가.
갈팡질팡 어디를 가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하게도 냉철하게도 국제사회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고민하여야 한다. 적과의 동침이 필요하다면 해야 하든지 가야하든지 결정해야 한다.
국익에 도움이 되고 필요할 때에는 적과의 동침은 과거 역사에도 존재했고 타협을 했던 것이다.
그 제2차 세계대전의 원수국가나 적대국가인 일본과 미국은 상호 적대국이었다. 그런데 패전이후 일본은 커져가는 중국 앞에서 미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진 현재의 현실을 굴욕적이라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 아닌가. 적과의 동침이 아닌가.
이와 더불어 과거 식민지배와 근대 제국주의 식민과 피식민 국가가 사이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에서도 커져가는 대북한 대중국 국제관계 대응에서 같은 잣대를 놓고 보아야 한다. 과거 식민주의자들 일본으로부터 더욱 굴욕적이라 여겨질지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분명코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고 더욱 더 필요해지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과거에도 국제관계는 국익 앞에서 어제의 적국이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적국이 되는 상황이 왔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같은 민족인 한민족의 삼국시대 통일과정에서도 고구려는 백제를 침입하면서 신라와 동맹을 맺었다가 신라는 고구려와 동맹을 무시하고 통일과정에 고구려를 침입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의 힘의 강대함을 막기 위해 백제와 동맹을 맺었다가 신라는 외부 중국의 힘을 빌어서 나중에 역시 통일과정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고, 이런 역사적 사실은 현대에서도 일어나 미국의 힘으로 일본제국주의에서 독립한 남한 북한이 각자 다른 체제, 즉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체제로 남한은 자유주의 자본주의체제로 분단되어 있다가 북한이 6.25전쟁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일으켜 낙동강전선으로 거의 북한이 적화통일을 다 이루는가 싶었는데 미국의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확 뒤집으면서 한미 연합군세력이 북한군을 밀려 거의 패망에 이르게 되자 북한은 중국의 힘을 끌어들여 수많은 동족을 중국인들이 남한과 유엔군을 학살하도록 하였고 남한은 유엔군과 미군의 힘으로 북한군와 북한인민과 중국인을 죽이도록 하여 그렇게 남북한은 이민족의 손에 수많은 한민족을 학살하도록 서로 누가 동족을 더 많이 살상 하는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한민족 동족의 비극을 일으켰으면서도 아직도 분이 덜 풀려서 북한은 자체개발한 핵무기와 중국을 업고서 남한국민과 미국민을 다 죽이겠다고 하고 있고 남한은 미국의 힘으로 북한과 중국 세력규합이나 야합 동맹에 다시 무력적화통일의 꿈을 아직도 접지 않는 북한에게 뼈아픈 동족상잔을 막으려는 것인데 우리 남한사람들은 그간 좀 큰 연평대평해전, 연평도포격의 북한도발이 있었지만 전쟁이 거의 끝났다라고 여기고 있으나 사실은 아직도 6.25전쟁 한국전쟁은 휴전일 따름이지 아직도 전쟁 중이며 38선을 두고, 바로 지금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기도 한 것으로는 이는 남북한 분단역사에서 한민족의 국제법상 문제이기도 하지만 정전협정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한민족 동족상잔에 대한 책임 당사자 및 책임 소재자가 북한과 남한간이 아니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원수 김일성,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 대표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팽덕회,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미국 육군 대장 마크 더불유. 클라크, 국제연합군 대표단 수석 대표 미국 육군 중장 윌리암 케이. 해리슨, 즉 북한 및 중국 대 미국간 6.26전쟁 휴전협정(참고자료출처: http://neozea.egloos.com/1862673)을 맺고서 안간힘을 쓰고 대치되어 있다.
왜 남한이 한민족 휴전협정의 당사국으로 서명이 되지 않았나에 대해서는 별도의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우선 대충 개괄적 논의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의 스탈린의 지원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제조한 탱크로 38선을 넘어 남침해 왔고 오전 9시경에는 개성 방어선을 격파하고 당일 오전에 동두천, 포천을 함락시켰으며, 26일 오후에 의정부를, 27일 정오에는 이미 서울 도봉구의 창동 방어선을 넘고 있었고, 창동 방어선이 뚫린 대한민국 국군은 강북구의 미아동에 있는 미아리 고개에 미아리 방어선을 구축하였으나 조선인민군의 전차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28일 새벽 2시 30분에는 한강에 있던 한강대교가 폭파되었고, 이후 서울에는 공산군이 주둔하였던 것이다. 이에 1950년 7월 14일에는 대한민국 국군의 지휘권이 미군에게 넘어갔고, 대한민국 이승만 정부는 대전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전했었다.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지략으로 1950년 9월 15일에는 인천 상륙 작전으로 같은 해 9월 28일에 낙동강 방어선을 넘었고, 10월 1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다다랐으나,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그 와중에 거창 양민 학살 사건, 국민 방위군 사건 등의 사건이 일어났고, 1953년 7월 27일에는 휴전선을 중심으로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고, 한국 전쟁은 원칙적으로 현재까지도 존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1)
이런 개괄적 논의에서 보듯이 남한은 6.25전쟁 당시 북한의 기습남침을 받고서 유엔군과 미군의 힘이 없으면 바로 패망에 이르도록 수도 서울이 북한에게 점령되자 이승만 남한 정부는 군사지휘권을 6.25전쟁 발발한지 19일만인 1950년 7월 14일 미군에게 넘겼고 이후에도 북한군에 남한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에게 밀려 한반도 전역을 다 내어주고 겨우 경남경북 지역의 낙동강전선만을 남겨두고서 북한에게 거의 패망해 한반도 전역을 다 내어주는 지경에 이르렀고, 미군과 유엔군에게 의지한 채 남한정부 홀로는 결코 북한과 중국의 북쪽 동맹의 힘에 살아남지 못하고 남한정부 명맥은 오로지 미군과 유엔군의 힘으로 자유대한민국이 존속하였던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한 잔재는 결국엔 지금 전시작전권이양의 문제를 낳게 되었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다시 과거 한반도 역사로 돌아가 그렇게 북한이 중국을 끌어들이고 남한이 미국과 유엔을 끌어들여서 서로의 체제유지를 하였지만 결국에는 체제경쟁은 경제력과 국방 무력경쟁에서 뒤진 쪽이 패망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진리지 않는가. 현재에도 진행 중인 남북한은 끊임없이 북한은 중국 없이는 남한은 미국 없이는 서로의 체제위협에 스스로 홀로서기 국방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 아닌가.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 때 그 때 외세사정에 적과의 동침이라는 외교술로 서로의 생존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고 북한이 인류최상의 무기인 핵무기를 가진 이상 남한도 그 핵무기를 가져야만 자주국방의 핵무기균형 내지 긴장의 균형으로 전시작전권 이양만 받는다고 자주국방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한 자체 핵무기보유와 북한과 중국 등 장거리 사정거리 확장이 없는 남한의 전시작전권 이양은 오히려 북한과 중국에게 남한이 약한 대한민국으로 비쳐서 침략과 도발의 빌미나 유혹만 제공할 따름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렇게 남한 자체 핵무기보유와 북한 중국까지 장거리에 드는 핵무기와 핵탄두개발만이 동북아 화약고에서 긴장의 균형 속에 남한 스스로 국민의 목숨과 재산을 지킬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다시 역사문제로 돌아가서 삼국통일대업을 신라중심으로 되면서 한민족 그 후손들이 고구려군은 물론이고 백제군은 일본으로 상당수 패주하여 결국에 현재의 일본의 왕실 후예와 상당수의 일본인의 피에는 백제인과 고구려인들의 피가 흐르고 있고 오늘날 일본왕실을 잇고 있게 하였고 끊임없는 애증의 세월을 한민족와 일본민족간에 있게 하였다
무엇보다 얼마 전 과거와 현재에 당면하여 가장 가슴 아픈 것은 한일월드컵이 열리고 있던 시기에 노벨평화상 대통령의 체면을 구기기라도 해서라도 어쨌든 북한이 그 무엇이든 국제적 환심과 지원이든 더 얻고자 하나 남한은 한반도 노벨평화상을 받는 대통령 앞에 한없이 체면을 구기지 않아야 하고 제대로 공격을 하지 못하고 허를 찔리리라는 대통령과 정부인사들 편에서든 온통 남한 월드컵개최국의 지위에 먹칠을 하려는 연평해전으로 남북한이 서해바다에서 총부리를 맞대어 서로 한민족끼리 더 많이 죽이고자 하고 있었다라는 사실과
바로 지금 우리 나라내에는 아닐지라도 지구촌시대에 대한민국내 많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깥 유로 2012년 축구대전인 축국 강대국 독일과 이탈리아 전이 열려 그 축구열기의 관심을 바깥에 두고 있는데, 중국은 남한과 미국보다 더 많은 무역량으로 경제적으로 중국의 힘에 더 휘둘려야 하고 국방안보군사적으로는 한미동맹앞에서 억지춘향식 미국의 힘에 의지를 더 해야 하는 더욱 국가적 외교적 갈등과 진퇴양난이나 딜레마 구조로 가고 있는 상황에다 남북한 대치 상황으로 북한이 다시 남한을 향해 전쟁 제대로 된 총부리를 겨눌 준비를 차근차근하면서 북한 수호이기, 미그기 각종 전투기, 폭격기를 38선 휴전선 근처 서울 앞에다 더 가까이 갖다 옮겨다 항공기로 핵폭격, 전투 전쟁을 바로 하겠다고 하고 있는데 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국의 핵우산이 있는데 설마 북한이 서울을 핵폭격하겠나 라고 안심안주하고 있고,
(참고자료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551727
http://newminjoo.com/sub_read.html?uid=6614§ion=section16)
핵무기를 소형화시켜 국지전에도 활용하겠다는 복안을 계속해 무인 장거리 미사일에 핵탄두 장착을 하여서 다시 한번 전쟁도발을 할 준비를 착착하고 있는데도 남한 내 안보 국론통일은커녕 네 정책이 옳니 내 정책이 옳니 국회파행에다 각종 국방안보에서 갈갈이 의견이 나뉘어져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언제 했는지 얼마나 오래전해서 잊었는지 북한의 호전성을 까마득히 모르고 내 밥그릇 챙기기만 열중하고 서로 많이 챙기고자 싸우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6.25전쟁 당시 상황을 다시 들추어내 살펴보고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에 살면서 다시금 곱씹고 반성하여야 할 점을 삼고자 한다. 1950년 당시 남한인 대한민국의 국방력은 북한에 비해 얼마나 허술하였는지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은 남한의 한반도 남쪽바깥에서의 항전할 대안이 있었다라는 사실, 즉 과거 일본제국주의에 패망해 상해임시정부를 꾸렸던 대한민국이 다시 남한에서의 패망이후의 계획이 세워졌다라는 것이다. 즉. 이승만은 일본 야마구치 현에 망명정부를 설치하는 방안도 세우고 있었다. 이승만 정권 관리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한국에게 피해를 주었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주의 국가에다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세우겠다고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야마구치현에 망명정부 수립의사를 일본에 전달했으며, 일본 정부는 야마구치현 지사 다나카에게 6만여명을 수용할 시설 및 식량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다나카 지사는 현의 소학교를 망명정부 시설로 확보하는 방안과 일본 정부에 대해 특별 식량배급요청 여부를 검토하기도 했다. 1950년 6월27일 이승만은 대통령과 내각으로 구성된 망명정부를 일본에 수립하는 방안을 주한 미국 대사에게 문의해왔고, 이는 그대로 미 국무성에 보고되었다.
한편, 미국은 1950년 6월 30일 해리 S. 트루먼이 더글러스 맥아더에게 지상군 투입과 38선 이북의 군사 목표를 폭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에 따라, 7월 1일 미국 육군 제24사단 21연대가 부산에 상륙했는데 이 부대는 대대장인 찰스 스미스(Charles B. Smith)중령의 이름을 따서 스미스 부대(Task Force Smith)로 알려진 것으로 그 스미스 부대는 7월 5일 오산 북쪽 죽미령에서 조선인민군과 첫 교전을 하여 큰 피해를 입었고(오산 전투), 스미스 부대의 패전 이후, 미군은 윌리엄 F. 딘 소장이 이끄는 육군 24사단을 대전에 투입했고 딘 소장은 대전에서 적의 선봉을 꺾고, 한강까지 북상하여 방어선을 구축하겠다고 장담했지만, 미 육군 24사단도 소련제 전차인 T-34에 대적할 화기가 없었으며, 대전을 공격하는 조선인민군은 군인들의 숫자도 많았고, 사기가 높아 T-34를 앞세워 미 육군 24사단을 공격하여오면서 그렇게 계속된 인민군의 공격에 상당한 손실을 내던 대전의 미 육군 24사단은 마침내 7월 20일 패주하고 말았고, 사방에서는 압도적인 숫자의 조선인민군이 밀려서, 지휘계통이 무너진 가운데 미 육군 24사단은 무질서하게 후퇴했으며, 제24사단장인 윌리엄 딘 소장은 함께 후퇴하던 부상병에게 먹일 물을 구하던 중 낭떠러지에서 실족하여 길을 잃었다가 인민군에 의해 포로로 붙잡혔고, 대한민국은 그처럼 대전을 빼앗기고나서 대구를 거쳐 부산을 임시수도로 정했었다. 그렇게 방어선이 무너질 때 대한민국 정부와 군인 60만 명을 이동시켜 서사모아 제도 근처의 사바이섬이나 우폴루섬에 새로이 '신한국'을 창설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1)
남한내 각계 인사들이 남한의 제 국방안보문제에서 다른 나라의 남 일이나 남의 바둑에 훈수 하듯이 대하면서 역사적 진리와 시실이 보여주듯이 나라의 운명이나 명운이 망하거나 흥하거나 둘중 어느 하나이지 그 둘 다가 될 수 없듯이 일국의 국방안보는 나뉘거나 흩어지면 죽거나 망한다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 등에서든 현재에도 국론이 갈려 있다라는 점도 아주 심각한 문제이고 또한 더욱 가슴 아픈 일이다.
(참고자료 출처: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182174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6/29/0503000000AKR20120629149800043.HTML?template=2085
)
국가가 가는 방향이 옳아야만 한다. 그래야 흥할 수 있는 기초조건이 되는 것이다. 국가와 정권은 국민을 배불리 최소한 먹일 능력과 기초조건이 되어야 존속하는 것이다. 그럴 능력이 안되면 그 국가와 정권이 제아무리 철권통치든 강압강권통치든 망하든지 오래가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과 교훈이 말해주고 있다. 현재 북한의 김정은이 정권을 잡고 잘 지탱할지 현재 제대로 가고 있는지 보면 그런 역사적 사실이 앞으로 어떤 말로과 경로를 밟을지 그 정답을 바로 알려주고 있다.
(참고자료 출처: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6/28/0505000000AKR20120628106200014.HTML?template=2087)
탈북을 하였다가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을 두고 온갖 선전선동과 홍보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북한의 현실은 거꾸로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탈북을 하려고 안달이 나 있거나 기를 쓰고 감히 죽음 사선을 넘어서라도 북한을 벗어나려고 하고 있는지 아무런 대답과 응답은 없고, 그런 찬양고무 선전이 그 모든 사람들이 무지몽매하여 모르는 자들이니 그들을 위한 현혹과 유혹인가 아니면 북한내든 남한내든 세계든 가장과 위장으로 거짓을 덮어서라도 위선을 해서라도, 북한 주체사상이 좋아서 굶어죽어도 좋다고 하든지 말든지 간에 북한을 찬양동조해 북한 더 들어가면 더 잘 산고 거짓 선전선동하면서 북한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해야 하는 절박함의 표시인가 아니면, 그런 점을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참고 자료 출처:
http://n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96744&url=n)
국가가 해야 할 일 중 최우선 과제가 국민을 굶주리게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의 핵폭탄, 화약, 총과 대포보다 앞서 있어야 하는 과업이고 과제이고 국정 최우선과제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공영, 그리고 평화통일이 목표라고 하지만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북한에게 아무리 그런 소리는 귓가에 메아리로만 들릴 것이다. 핵무력무장의 힘만 가진 조폭 앞에 평화와 상생공영이나 폭력으로 싸우지 말자고 아무리 외쳐 봐도 귓가에 메아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 아닌가. 그런 엄정하게 대가를 죄과를 치르게 하는 것을 비롯해 조폭에게 무엇이 답인지 벌써 나와 있었다.
제2연평해전은 우리나라가 한일 월드컵에 빠져 있던 2002년 6월29일 발생했는데 당시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는 이를 `서해교전'이라고 하고, 이후 노무현 정부까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기념식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대한민국이 지탱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목숨 바친 이에게 예우를 다하여야 하고 그 고귀한 희생의 댓가를 제대로 보상하여 하고, 그런 희생은 마땅히 그 어떤 노벨평화상보다 더 존중받아야 하고 더 고귀하게 다루어야 하고 그런 노벨평화상 앞에 더 가볍게 다루어지거나 은폐해서도 가려져서도 숨겨져서도 아니 되고, 그 목숨을 바친 사랑과 헌신을 영원히 기억해야만 그래야 감히 그런 국가에게 생명을 저버리는 일에 국가에 희생할 이들이 스스로 과감히 나서고 그들의 희생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그 희생 위에 국가생존이 지탱되는 것인만큼도 대한민국의 혜택으로 이 땅에 발 붙이고 조금이라도 은혜 받았거나 받아온 자인 온국민이 어느 누구도 너나 예외도 없이 그 더욱 고귀한 희생을 되뇌이고 되새기며 각인하고 추모해야 함과 더불어 그런 피해를 준 당사자에게는 그 본때를 제대로 보여주어야만 전쟁억제효과가 있는 법이다.
(참고차료 출처: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20629_0011234670&cID=10302&pID=10300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2/06/29/0501000000AKR20120629081251001.HTML?template=5565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62901030223334002&w=n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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