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에게 물주기
하나의 소원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끝없이 증식한대. 간절했던 소원이 끔찍해지는 거야. 소원에 갇혀 질식하는 거지. 소원은 깊고 출렁여서 헤어 나올 수 없대. 결국은 가라앉고 말아. 대부분의 죽음은 소원 때문이야. 하지만 그걸 눈치 채는 사람은 흔치 않아. 아무도 모를 수 있지. 소원은 보이지 않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잎사귀를 넓히니까. 종려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소원을 본 적 있어. 돌멩이로 쌓아 올린 소원도. 잿더미처럼 흩날리는 소원도. 선인장 가시에 맺혀 있는 소원도. 모두 같으면서 다른 소원이지. 팔꿈치를 굽힐 때마다 소원이 쏟아지지. 보이지 않는 소원과 말하지 않은 소원의 미래 같아. 조금씩 키가 자라는 스투키를 옮기듯 소원은 여기에서 저기로 옮아가며 이유 없이 자라고 이유 없이 죽곤 해. 소원의 최후이자 최선 같아. 이루어진 소원은 죽는 걸까. 이루어지지 않아서 죽는 걸까. 침엽과 활엽으로 나뉘는 기준처럼 울창하고 자연스럽지. 소원을 통제하려고 인간을 복제했대. 복제 인간에게 소원을 투입하고 쏟아지는 소원은 폐기되지. 소원을 소원하려고 먼 우주로 날아가. 광활한 미지가 필요하니까. 무수한 소원에 둘러싸이면 소원은 소원인지도 모르니까. 조그만 유리병에 작은 씨앗처럼 전시된 소원을 봤어. 소원에게 물을 주고 빛을 쬐며 정성을 쏟았지. 마치 한 그루 나무인 것처럼. 없는 모양을 그려주고 색을 입혔어. 무럭무럭 자라줘. 나를 뚫고 나와 줘.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야?
강 주, 「상상인」, 2023년 7월호
“대부분의 죽음은 소원 때문이야. 하지만 그걸 눈치 채는 사람은 흔치 않아.”
“소원”이 생겼다. 나의 “소원”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종려나무”, 나만의 “선인장 가시”, 나만의 ‘별’이다. “조금씩 키가 자라는 스투키를 옮기듯 소원은 여기에서 저기로 옮아가며 이유 없이 자라고 이유 없이 죽곤” 하지만, 나의 “소원”은 그 간절함으로 눈물 마를 날 없는 고통이다. 어떤 “소원”은 일생일대의 도박과도 같아서 자신을 올인 하게 된다.
“소원”은 “이루어” 져서 “소원”일까. “이루어지지 않아서” “소원”일까.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을 “소원”하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리움의 지옥이다. 스스로 울음을 자처하는 일이다. 불행의 원인이자 희망의 근거지이기도 한 “소원”, “하나의 소원이 두 개가 되고 세 개가 되고…… 끝없이 증식”할 때, “간절했던 소원”은 “끔찍해”진다. “소원에 갇혀 질식하”게 된다. “소원”의 본거지가 욕망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소원에 둘러싸이면 소원은 소원인지도 모”른 채, “소원”의 노예가 된다.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원”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소원”은 광폭한 “죽음”이다.
나의 간절한 “소원”에게 “물을 주고 빛을 쬐며 정성을 쏟”는다. 세상만사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겠는가. 나의 “소원”이 “무럭무럭 자라”서 “나를 뚫고 나와”주기를… 너와 나의 사랑 또한, 그늘진 곳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나의 기쁨이 되어주기를… “소원”을 “소원”하는 한, “소원”은 “소원”이다. 사랑을 사랑하는 한, 내 사랑도 어디에선가 나를 “소원”하고 있을 것을 믿는다. 진창인 나락에서도 내 “소원”이 살아 돌아올 것을 “소원”한다. 달빛과 이슬의 시간을 “소원”한다.
대체, “소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거야?” 대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도 “소원”인 거야? (홍수연)
🦋 다시, 시작하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