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짓는다는 것(엘렌 데이비스, 성서유니온, 2026)
엘렌 데이비스의 『희망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설교집이 아닙니다. 이 책은 51편의 설교와 5편의 설교학 에세이를 통해 “성경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통합된 답변을 제시합니다. 데이비스는 현대 강단을 지배하는 주제설교, 예화 중심 설교, 심리치유형 설교와 거리를 두고, 성경 본문 자체가 빛을 발하도록 만드는 설교를 추구합니다.
1. 본문 주해와 적용의 독특성 및 장점
① 본문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설교
데이비스의 가장 큰 특징은 설교자가 메시지를 만들어 본문에 얹는 것이 아니라, 본문 자체가 말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그녀는 설교의 목적을 “본문이 더 빛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성경이 드러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이 때문에 그녀는 지나친 예화 사용을 경계합니다. 좋은 설교란 청중이 설교자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 후에 성경 본문을 다시 읽을 때 그 말씀이 새롭게 들리는 설교라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스토리텔링 설교"와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② 작은 단어 하나에서 신학을 발견하는 세밀한 주해
데이비스는 본문 속의 사소해 보이는 표현을 집요하게 관찰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장 설교 「피조물 됨은 먹는다는 것입니다」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창조 질서나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지만, 데이비스는 “먹는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인간은 먹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먹지 않으신다는 차이에서 피조물성과 하나님의 초월성을 읽어냅니다. 이후 음식과 농업, 생태계, 환경위기, 성만찬, 창조질서를 연결하여 현대 세계를 읽어냅니다.
즉 그녀의 설교는:본문 → 신학신학 → 현실현실 → 제자도라는 흐름으로 전개됩니다.
③ 성경으로 세상을 읽는다
오늘날 많은 설교는 현실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성경을 끌어옵니다. 반면 데이비스는 성경을 통해 현실을 해석합니다. 그녀는 환경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기가 환경위기를 이해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이 세상을 흡수해야지 세상이 성경을 흡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그녀의 설교는 본질적으로 예언자적입니다.
④ 감상주의를 거부하는 설교
데이비스는 현대 설교의 가장 큰 적을 "감상주의(sentimentality)"라고 봅니다. 감상주의란 현실의 죄와 고통을 외면한 채 듣기 좋은 위로만 제공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장례 설교조차 지나친 위로와 낭만화를 피합니다. 시편의 탄식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부활의 희망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그녀 설교의 깊이입니다.
2. 설교 관련 에세이에 나타난 성경관
데이비스의 설교학은 결국 성경관의 문제입니다.
① 성경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녀에게 성경은 연구 대상이기 이전에 교회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이유는 우리가 “그것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설교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생명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② 성경 전체는 하나의 이야기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언하는 설교」(에세이)에서 데이비스는 성경을 하나님과 인간의 소외와 화해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로 읽는다고 말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분리되지 않습니다.창조 → 타락 → 포로 → 회복 → 십자가 → 부활 → 새 창조라는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를 형성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개별 본문을 이 큰 이야기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③ 성경은 끊임없이 새롭게 읽혀야 한다
데이비스는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를 "피상적 성경 읽기"라고 진단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성경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성경 읽기를 "상상력의 훈련"이라고 설명합니다. 본문을 천천히 바라보고, 반복해서 읽고, 단어를 음미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④ 성경은 교회를 새로운 세계로 초대한다
데이비스는 설교자의 역할을 "언어의 기초를 가르치는 교사"라고 정의합니다.
설교는 단순히 교훈을 주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이 보여 주는 세계 안으로 회중을 초대하여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3. 오늘의 설교자에게 주는 통찰
① 설교자는 이야기꾼보다 먼저 주해자여야 한다오늘날 강단은 종종 예화 경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설교자의 가장 큰 자산은 재미있는 경험담이 아니라 본문을 깊이 읽는 능력이라고 가르칩니다.
좋은 설교는 예화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기억하게 합니다.
② 설교자는 상상력을 훈련해야 한다
데이비스에게 상상력은 공상이 아닙니다. 본문 속 단어와 이미지와 이야기를 오래 바라보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입니다.
설교자의 중요한 과업은 회중의 상상력을 훈련시켜 성경의 세계를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③ 설교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데이비스는 환경파괴, 전쟁, 죽음, 빈곤, 폭력 같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러나 사회비평에 머무르지 않습니다.성경이 그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따라서 설교는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직면의 행위입니다.
④ 구약 설교를 회복해야 한다
데이비스가 교회에 주는 가장 강력한 도전 중 하나는 구약 회복입니다.그녀는 구약을 예수님의 예표 모음집 정도로 취급하는 태도를 비판합니다. 오히려 구약 자체가 오늘의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론
『희망을 짓는다는 것』은 설교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설교자의 영혼을 훈련시키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엘렌 데이비스는 설교를 "본문을 통해 하나님을 증언하는 거룩한 작업"으로 회복시킵니다. 그녀는 예화보다 본문, 기교보다 주해, 감상주의보다 진실, 현실 적응보다 성경적 상상력을 강조합니다. 결국 이 책이 보여 주는 최고의 설교는 “성경이 말하도록 허락하는 설교”이며,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이 가장 절실히 배워야 할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 송광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