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짇날과 단오날
삼척시 자료에, 오리동(올골)에서는 근산재 꼭대기서 매년 음력 3월 3일에 산신재를 지내고 있단다.
이날 우리 친구들은 각자 집에서 조금씩 가져 온 곡물로 동네 앞 산에 올라가 밥을 지어 먹는 잊지못할
추억이 깃든 날이다.
냄비 뚜껑 위에 무거운 돌멩이로 지두콰(눌러) 놓지 않으면 산 위에서는 밥이 선다는 것도 그 때 배웠어.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데서 직접 밥을 해서 나눠 먹던 친구들 보고싶어.
벌써 몇은 저 세상에 가고 없으니…. 그날은 밥도 하고, 감자도 구워 먹는 즐거운 날이었지.
그러고는 두 패로 나눠, 소나무 사이를 다람쥐처럼 빠져 다니면서, 긴 작대기를 칼 삼아 병정놀이도 했다.
나보다 한 살 아래, 키가 작아 나백이(보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로 보이는 동생들도 다 같이 어울려 놀았고.
그 때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소나무들이 지금은 얼마나 자랐는지 60년 세월에 이제는 저만큼 우러러보게 되었어.
음력 오월 오일(5.5) 단옷날
이 무렵이면 뒌(뒤안) 장독대 옆에 심은 앵두가 빨갛게 익기 시작해.
단옷날에는 근덕면에서는 근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단오놀이’를 크게 했어. 단오 축제야.
면에서도 주로 교가리 주민들이 대거 나와 갖가지 놀이를 즐겼고.
그 중에서도 그네 타기는 많은 관중을 모았다. 운동장 한 켠에 길고 굵은 통나무 기둥 두 개를 아주 높다랗게 세우고
그네 틀을 세워.
동네마다 날씬하고 매촐한(가늘고 호리호리한) 여자 선수들이 나와서 그네타고 높이 올라가기 시합을 했지.
누가 제일 멀리 올라 가는가를 재는 데, 그네 끝에다 명주실을 달아서 그 풀린 길이로 등수를 가렸어.
우리 동네 건식 선배 큰 누나가 1등을 한 기분 좋은 때도 있었고.
널뛰기할 때도 선수들은 참 멀리 올라가더군.
소분-추석-시제 –초례
추석이 가까워지면, 소분(掃墳)(벌초)하려고 6촌까지 다 모여 같이 조상님 묘에 풀을 내리러 갔다.
노끈으로 짠 줄메기(옛날식 백 팩)에 여러 자루 낫을 넣고, 절편 넣은 찬합과 과일, 술을 여러 명이 나눠 지고,
삽, 괭이도 메고, 쭐루리(줄지어) 산에 올라가 풀 내리고, 산돼지가 파헤쳐 훼손한 무덤 보수하고, 떡 제사를 올렸지.
음복은 어린이라도 조금씩 맛보게 했으니, 좀 알딸딸해도 산에서는 금방 괜찮아졌다.
그 때 우리끼리 웃으며 한 말이지만, “조상님들이 높은 산에 묘를 써서, 성묘 오는 자손들이 건강한지 시험하시는 거”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말도 맞고, 이 나이 되어 한나(하나) 더 보태자면, 형제와 ‘친척끼리 얼마나 화목한가?’도 시험하신 것 같다.
어머니에게 들었는데, 무릉동을 둘러 싸고 있는 동산에는 일체 무덤을 쓰지 않는 전통이 있었어.
그 풍습은 딱히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신성함을 지킨다는, 그런 신조겠지.
추석 차례 때도 “명일 차례입니다”라고 고하면서, 설날과 똑같이 시작했다.
시제(時祭) 때는 문중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제를 올렸고. 우리는 근덕중학교 옆 문중 묘역에서 어른 팔뚝만큼 굵은
절편 한 토막에, 맛이 끝내주는 마른 생선 찐 거 도(두어) 토막 얻어 먹는 재미로 참여했지.
이 또한 문중 어린이 어른이 한 핏줄임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초롓날(결혼식날)에 외지 신랑이 가마를 타고 오면, “남의 동네 처녀 데려간다”고, 신랑에게 잿봉다리를 던지거나,
떡이나 음식에도 못 먹는 것을 넣어, 신랑이 화나게 만들었다.
이건 다 신랑과 신부를 위한 ‘양밥(예방 처방)’이라 생각했고.
신랑이 ‘사흘도백이’(초례사흘 후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처가에 오는 행사)로 오면, 저녁에 동네 청년들이 모여,
키 큰 사람이 어깨에다 끈으로 신랑 두 발을 묶어 거꾸로 메고, 빨래 방맹이(방망이)로 발바닥을 때려서,
신부 노래도 나오게 하면서, 동네 처녀 뺏긴(?) 화풀이도 했으니, 보는 우리는 재미있었지만, 신랑과 신부는
막 화를 내기도 했지. 허허 그 새 사흘 만에 뭔 일이 있었는지, 신부도 신랑편이 되어, 동네 청년들 당황스러워 하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