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내려 안개가 자욱하고 공기는 차고 무거운 아침이다. 조카들의 안내로 오늘은 경기도 파주 헤이리 마을(Heyri Art Valley), 임진각, 자유의 다리, 화석정, 문산 선유리 등을 여행하기로 했다. 조카들은 이모부님이 3년간 군생활을 했던 선유리 포병부대도 방문 일정에 넣었다고 약속했다. 고양 일산 조카댁에 올라온 이후, 계속되는 여행일정에 나의 마음은 한결같지만 몸이 영 따라주질 않는다. 그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47년전의 주마등 처럼 지나간 추억의 군 생활때 익힌 파주 지역의 기억을 생생하게 되 찾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조카들이 준비한 두대의 차로 나눠타고 일산 주엽을 출발하여 77번 자유로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탄현면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근현대사 박물관 방문이다. 자유로 77번 고속도로는 북쪽으로 흐르는 한강변 물줄기 옆으로 건설되었다. 남과 북이 분단된지 어언 70년, 그러나 내 조국 한민족의 애환이 얶힌 한많은 한강의 물줄기는 소리없이 흐르고 있다. 한강과 임진강이 교차되는 성동리 부근을 지날때 육안으로 북한 땅이 눈 앞에 보이고, 임진강변에는 가는 곳 마다 철조망이 있고 그곳 사이를 두고 초소를 주야로 지키는 초병들과 무인 카메라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자유로를 거처 헤이리까지는 약13 Km 의 짧은 거리를 타고 도착했다. 토요일 오전이지만 헤이리 마을은 비교적 한산해 보였다. 우리가 찾은 한국 근대사 박물관은 음악, 역사, 만화, 조각등 주로 개인 소장품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대변할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전시했다. 헤이리 마을을 찾는 다면 "한국 근대사 박물관" 은 꼭 관람할수 있도록 권하고 싶다. 특히 20-40대의 젊은 층은 우리 선조들의 배 고픔과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배울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의 주인이 모든 전시물을 수집하여 전시한다고 하는 이곳은 경의롭고 옛 향수가 물신 풍기는 추억의 산 증거물이 있는 곳이었다.
헤이리 마을에서 19Km 떨어진 임진각으로 출발했다. 내가 문산 선유리에서 군 생활하던 1972년 북한 실향민을 위하여 세워졌다는 임진각은 오늘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많은 관광객들로 인하여 혼잡스러웠고 잘 단장된 주차장도 만원이 될 정도로 체워졌다. 연중 무휴로 개방되는 이곳은 파주시의 대표적인 유명 관광지라는 걸 느낄수 있었다.
평화의 종도 보이고....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곳, 망배단
사진 하단의 가로로 연결된 다리가 자유의 다리, 강 맨 왼쪽에 있는 다리가 도리산역과 개성역으로 연결되는 임진강 철교 상행선, 중간에 다리 기둥만 남은 것이 임진강 철교 하행선, 그리고 맨 오른쪽에 있는 일부만 복원된 다리가 독개다리이다.
임진강 독개다리 입구
소정의 입장료를 내고 입장하여 독개다리 끝부분에서 사진촬영이 허용되지만 극소수의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군사 작전 GOP 지역은 촬영금지라고 표시되어 있다.
다리 교각기둥만 남은 임진강 철교 하행선
다리 교각에 있는 6.25 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
임진강 건너편 사진 상단 중간 부분에 희미하게 보이는 북한 땅
이 기관차(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한국전쟁 중 피폭, 탈선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남북분단의 상징물이다.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본존하기위해 문화재로 등록된 후 포스코의 지원으로 녹슨 때를 벗겨내고 역사교육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경기도 관광공사의 적극적 의지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 전시되고 있다.
당시 이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한준기, 1927) 의 증언에 따르면 군수물자를 운반하기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 도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한포역에서 후진하여 장단역에 도착했을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기관차는 1,020여개의 총탄 자국과 휘어진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표지판 전문내용)
철마는 달리고 싶다.
기관차 전시 옆쪽 철조망에 이산가족들의 슬픔과 애환과 소망이 적혀있는 수많은 사연들의
내용을 볼수있다.
아들 며늘과 함께...
임진각에서 서쪽으로 통일대교가 보인다.
동쪽으로 보이는 임진각 주차장, 1500대를 주차할수 있다.
작은 조카 와 큰 조카와 함께 임진각 휴게소 관망대에서..
임진강 철교 상행선, 중간에 다리 기둥만 남은 것이 임진강 철교 하행선, 자유의 다리와 망배단도
보인다. 강 건너편은 민간인 출입통제가 되어있는 GOP 군사작전 지역이다.
임진각 지역 구경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으로 향했다. 화석정(花石亭)은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으며, 율곡리는 율곡 이이선생의 고향이며, 당시에는 서원도 있었으나 지금은 화석정만 남아 있다.
율곡리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 양식의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초익공(初翼工) 형태이다. 정자에 서면 바로 밑을 흐르는 임진강을 굽어볼 수 있고, 난간에 기대어 보면 서울의 삼각산과 개성의 오관산도 볼수있는 곳이다. 화석정의 현판 글씨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이다.
화석정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임진강은 포병부대 근무할때 북쪽의 좌표 설정때 항상 나타나는 지역의 한 부분이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이다.
화석정에서 출발하여 선유리로 돌아올때는 내가 근무했던 부대의 입구와 부대번호도 달라져 있었다. 70년대 초반에는 155 미리 견인포를 5톤의 미국이 제공한 트럭에 달고 훈련 혹은 비상시에 다른지역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곳의 근무지는 육군 제1사단 전진부대의 중앙(브라보)포로 자리잡은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포가 벙크에 들어있고 포구만 북쪽을 향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포병부대도 자동화되어 K-55A 형 자주포로 탱크처럼 바퀴는 자동프로펠되어 있다. 32 Km 의 최대 사거리에, 명령 받은 후 초탄을 15초 내로 분당 2-4발까지 발사할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제한된 사격장 사정으로 단거리 4Km의 사격연습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최대 32Km 까지 갈수있는 거리를 장약을 바꾸며 4 Km 까지 포를 쏘는 연습을 하고 있다니 여단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는 포대가 될수 있을지 큰 일이다. 단지 내가 목격한 포가 K-55A 인지 그 무시무시한 K-9 인지는 모르겠다. K-9 은 사단을 지원하는 부대로 알고있다. 미군들이 활개를 치던 선유리 도로는 70년대 초반의 그모습 그대로 변화지 않았다. 남대문 시장의 깡통시장까지 물건을 지원해 주던 그런 유명한 곳이었다.
조카들 덕분에 참 좋은 추억의 역사의 현장을 방문하고 법원리를 거처 시골길을 타고 고양 일산으로 돌아왔다. 일산 동구에 있는 미송플러스 샤브샤브에서 조카들의 식구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식사를 갖었다. 그 동안 고국 방문을 잘 할수 있도록 도와준 친척들과 동기 친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건강하게 변함없는 미국 생활 잘 하고 있지만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는 아직도 생각 중입니다.
글/ 사진 孫永寅
첫댓글 이제야 여행기를 읽어보았구나
네가 본 임진각과 화석정의 중간부분에
내 주말농장이 있다
요샌 봄이라 뭔가를 심을 철이 되어
사흘에 한 번씩은 그곳에 가곤하지 ᆢ
내가 수시로 보는 임진각, 화석정, 선유리 등을
언급하니 새롭기도 하고 정감이 가는구나
올해도 이것 저것을 심었으니 그걸
가꾸기위해서라도 자주 가봐야지 ᆢ
건강하고 행복한 나날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