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서문학회 평창문예대학
나눔 마당 - 名詩 ‧ 名文 감상
제 26 호(2014. 10. 29)
장진주사(將進酒辭)
[원문]
한 잔(盞) 먹새그려 또 한 잔 먹새그려.
곶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無盡無盡) 먹새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帳)*만인(萬人)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白楊) 수페 가기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풀이]
술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나무 가지 꺾어서 잔 수를 헤아리며 끝없이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으로 덮어서 졸라매고 가든
아름답게 꾸민 상여 뒤를 많은 사람들이 울며 뒤따르든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무덤을 말함]에 가기만 하면
누런 해, 흰 달. 굵은 눈, 소슬바람 불 때. 누가 한잔 먹자할까?
하물며 원숭이가 무덤 위에서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계주문(戒酒文)
나는 대체로 술을 좋아한다. 그 원인은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심신에 불평이 있어서 마시는 것이고, 둘째는 어떤 감흥으로 인해 마시는 것이며, 셋째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마시는 술이다. 그리고 넷째는 남이 권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마시는 술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물의 관계로 인해 불평이 생길 때에는 이해하면 될 것이고, 어떤 사물에 대해 감흥이 있을 때에는 노래나 시를 읊으면 될 것이다.
또 친구가 왔거나 어려운 손님이 왔을 때에도 자기대로의 정성과 친근만 베풀면 그만이겠고, 보통 술자리에서 지나치리만큼 권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자기의 주관만 뚜렷하다면 흔들릴 것이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습관을 기르지 않고 차마 그럴 수 없다는, 또는 그래서 안 된다는 옅은 관념에서 끝내 소신을 관철하지 못하고 일생을 망치고 있으니 그것이 무슨 까닭일까?
나는 조용한 생활을 하려고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상감으로부터 다시 관직에 오르라는 恩旨를 무려 다섯 번이나 받았다. 마지못해 금년 봄에는 서울에 올라가 아주 벼슬에서 休退하게 해달라고 상소를 올리기까지에 이르렀다.
사람이 한번 산림 속에 묻혀 조용한 생활을 하고 싶으면 의당 종적을 감추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데, 외면으로는 산림에 묻힌 체하면서 행동엔 조금도 변화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실수는 더 잦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천만 가지의 邪曲과 망령된 일이 모두 술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것이다.
술을 마셔 취했을 때에는 멋모르고 일을 저지르다가 술이 깨었을 때에는 언제 했느냐는 듯이 얌전하다. 그것은 한 가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했을 때의 그 광태를 본 사람은 언제든지 있다. 이때 그 사람이 취했을 때 저질렀던 일을 얘기해준다. 그러면 처음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딱 잡아떼다가 만약 그 사실이 밝혀지면 수치를 참지 못해 곧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생각은 오늘에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다. 내일도 모레도 계속 심신을 괴롭히고 있다. 그리하여 그 회한은 산더미 같이 쌓인다. 청소해 버리고 싶어도 청소할 여가가 없다. 친구들이 이와 같은 꼴을 보았을 때 매우 애석한 일이라고 동정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범연한 사이엔 침을 뱉고 도망간다. 이것은 천명을 더럽히고 기강을 모독한 일, 名敎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해독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달 초하룻날 아침에 家廟에 들어가 四拜를 올리고 집을 나섰다. 강을 건너려는데 나를 환송하는 사람들이 배에 가득했다. 뱃전에 앉아서 멀리 서울을 바라본다. 지나간 일이 하나하나 회상된다. 마치 도적질을 하려다가 주인에게 쫓겨 겨우 칼을 모면한 사람이 대낮에 인간을 마주한 것처럼 두렵고 어줍어 몸 둘 곳을 몰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분명 죄진 사람이었다. 말을, 행동을 삼가지 못해 지은 죄인이었다. 그 술 때문에 저지른 죄였다. 그때에 하향하면서 나는 이 강을 건넜다. 다시는 나가지 않고 은퇴하리라 하고 들어왔다. 그러나 이 강을 또 건너게 되었다. 목멘 듯한 물소리는 역시 나를 경계해주고 있다. 나는 이 물을 보는 순간마다 善의 마음이 발작하고 있다.
조용하기 어려운 것은 ‘마음’이고 상실하기 쉬운 것은 ‘뜻’이다.
마음이여! 뜻이여! 너를 통솔하더냐? 주인옹은 항상 반성하라. 만일 반성하지 못하면 다시 이 강물을 보지 못할 것이다.
鄭澈(1536~1593) 호는 松江. 이조 명종, 선조 때의 문신, 시인. 서인파의 거장. 호탕하고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 고산 윤선도와 쌍벽을 이룸. 《송강집》, 《송강별곡》, 《추록유사》 등의 문집을 남김. 그의 작품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사〉 등은 조선 문학의 압권임
첫댓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