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전시사칼럼
어둠을 느낄 때만 먼동을 본다.
영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이다. 아비규환으로 범벅이 되었던 거대한 여객선을 삼켜 버린 차디찬 바다 대서양, 그 침묵의 바다 위에는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 조각 부유물에 매달린 채 파도에 출렁거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의 그림자는 밤안개처럼 밀려오고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갈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희미한 손전등 불빛과 호루라기 소리가 다가온다. 하지만 손들어 흔들 힘도 없다. 살려달라 소리 지를 힘도 없다. 이미 모든 게 다 바닥이 드러 났다. 그러나 그 불빛과 호루라기 소리는 이 절망의 망망대해에서 그나마 살아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의 불씨, 생명의 온기였다.
지난 한주일 동안 이 땅을 휘몰아친 광풍이 우리네 일상의 평온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길바닥에는 찢겨나간 나뭇가지, 깨어져 내린 창문의 유리조각, 널브러진 전신주, 뒤 집어진 자동차들이 흩어져있다. 우리는 지금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혼돈과 혼돈의 쓰나미에 휩쓸려간다. 어느 한 곳 손 내밀고 도와달라 부탁할 데가 없다.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하루아침에 그토록 아름다운 자유의 강산이 살기 넘치는 폭력과 비겁한 배신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느덧 피냄새에 미쳐버린 검경(檢警)사냥개들, 눈물 질질 짜는 똥별들, 머리 처박은 장관들......그 뒤집어진 풍경 속에서 이성과 상식은 너덜너덜 찢기어 나부끼고 오직 선동과 선동의 나팔 소리만 가득하다. 순식간에 60년 전 저 붉은 대륙을 덮쳤던 문화혁명의 악몽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지독한 카오스, 아노미가 뒤엉켜 밤낮의 구분조차 힘들다. 거리에는 신문방송에는 SNS에는 오늘도 붉은 완장을 찬 홍위병들의 발자국이 어지럽다. 몽둥이, 죽창 대신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든 사람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린다. 여기까지 읽고 이글이 못마땅한 독자들은 나를 욕해도 좋다. 나는 본시 어둠을 잘 느끼는 사람이다.
침묵하는 이 나라의 착한 백성들은 계엄과 탄핵, 여의도의 거친 바다가 삼켜버린 타이타닉호에서 차디찬 바다로 밀려나온 힘없는 승객들이다. 이대로 가면 더러는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뒤집어진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늘 아래 어느 누구든 물구나무서기로는 절대로 오래 버틸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마치 타이타닉에서 살아난 사람들처럼 따뜻한 담요로 몸을 감싸고 따뜻한 수프를 마시며 포근한 가족의 품에 안길 줄 안다. 이제 두고 보면 안다. 2024년 세모의 한국인들은 꽃피는 새봄이 오면 비로소 달라진 세상 앞에서 조금씩 아픔을 느낄 것이다. 아니 정말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날 것이다. 서서히 어쩌면 빠르게 절망의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한 조각 널빤지 위에서 흔들거리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박수치는 사람에게만 먹잇감을 던져 주는 세상, 그 포퓰리즘의 늪에서 서서히 사육당하는 세상, 그런 뒤틀린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둠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다시 말한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들에게 우리의 내일을 맡기지 말자.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땅을 덮친 이 순간의 어둠을 제대로 느껴야 한다. 그래야만 먼동을 볼 수 있다. 그래야만 절망의 바다에서 손전등 불빛을 볼 수 있고 호루라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록 그럴지라도 이 시간 이후 살아날지 말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건 빙산도 살피지 못해 거대한 여객선을 침몰시킨 어리석기 짝이 없는 윤석열 선장의 책임도 아니고 그런 배를 사정없이 삼켜버린 이재명 여의도의 잔혹한 바다도 아니다. 호화로운 여객선 안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밤새 웃고 떠들고 마시고 춤춘 타이타닉 승객들의 업보라는 편이 훨씬 더 솔직하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겠다는 사람은 살아남는다. 세상의 지독한 소음 속에서도 호루라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살아남는다. 세상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한줄기 전등불 불빛을 찾을 수 있다면 살아남는다. 한 줄기 희망마저 버리면 바로 그때 우리는 죽는다. 그렇다 이제부터는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고 당신이 살고 우리가 살고 이 나라가 제대로 살아남는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은 점점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이게 바로 우리의 희망이다. * 20241211/글 최익제 장로(敎博)
----------------------------------------------------------------------------------------------------------------------------------------
* 전짓불과 호루라기
1. 12월 12일 조국의 대법원 상고심 선고 확정
2. 윤대통령, '나를 탄핵하라. 하야는 없다.' 마침내 선언
3. 대법원의 일간지 광고 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