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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 12 강 메시지 아산UBF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 마가복음 8:1-26
요절/ 마가복음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우리는 모두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주의 일을 하기위해서 다른 것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고 그러지 않습니까? 살면서 나에게 사람이 있어야 하고 돈도 있어야 하고 이런 것들을 동원할 수 있는 자리나 권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조금씩 조금씩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이 내 마음과 삶 속 예수님이 있어야할 자리를 차지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위험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삼가 듣고 주의하여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얻는 길 가기를 기도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말씀은 “그 무렵에”로 시작합니다. 그 무렵은 헬라인 수로보니게 여자가 개 취급을 당하였는데도, “주여 옳소이다.” 말하여 그의 어린 딸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는 은혜를 받은 그 무렵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유대인을 넘어서서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여기서의 큰 무리는 갈릴리 호수 동편 데가볼리 지역의 이방인 무리입니다. 이들도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셨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이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함께 지낸 지 3일이 흘렀습니다.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들을 먹이지 않고 이대로 보내면 멀리서 온 사람들은 가는 길에 쓰러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구체적인 상황과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한지 제자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 제자들은 무엇을 하였을까요? 앞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일 때에는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뭘 좀 먹게 해야할 것 같은데요” 먼저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흘이나 먹을 것이 없어 사람들이 배가 고픈 상태인데도 제자들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왜 전과 다른 모습이 되었을까요? 오병이어 때는 유대인들이었고 이번에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내 집안 식구 중 누가 굶고 있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 해서 어떻게든 먹이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방 땅 다른 집안 사람들의 배고픔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을 자기들이 먹여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이 없이 살아가는 이방인들은 제자들의 눈에 괄호 밖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흘 동안 제자들이 무슨 말을 할까 기다리시다 아무 말이 없자 결국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하고 먼저 말을 꺼내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때는 무리를 먹이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했고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다고 구체화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에 대한 제자들의 마음은 냉담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는 “우리가 왜 이런 이방인들까지 감당해야해” 라는 생각이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제자들이 가져온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을 겪었음에도 예수님께서 풍성히 먹이실 수 있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냉담한 반응 앞에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때와 같이 제자들에게 있는 것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을 대하는 것이나 이방인을 대하는 것이나 제자들에게 일관된 자세를 요구하십니다.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율법아래 있건 그렇지 않건 주의 제자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먹이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나에게 있는 것을 찾아 예수님께 들고 가야합니다. 이방인들에게 냉소적인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는 순종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것을 찾아 예수님께 “일곱개가 있습니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어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었습니다. 사흘 동안 거의 먹지 못하여 기진했던 사람들이 흡족하게 먹고도 많이 남았습니다. 이 때 배불리 먹은 사람이 약 사천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때와 같이 먹인 사람들을 흩어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도 불쌍히 여기시고 풍성히 먹이시는 주님이심을 나타내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구분하여 차등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누구라도 불쌍히 여기시고 먹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의 제자들이 이같은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는 이런 예수님을 얼마나 따라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나와 잘 통하는 사람 아닌 사람, 내 취향인 사람 아닌 사람, 내 말을 잘 듣는 사람 아닌 사람 구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는 매년 실험동아리에 멤버를 모집하는데 이번에 관심있는 신입생들이 “교수님 동아리 들어가려면 노래를 잘하고 학점이 4.0이상이 되어야한다는데 맞아요?” 하고 물어왔습니다. 저에게 선호하는 사람의 모습이 있고 그것이 학생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구나 알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자는 그러지 말아야합니다.
마가복음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와 동일한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민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 하면서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면 예수님과 다른 시선으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불성실하니까, 저 사람은 품행이 좋지 못하니까,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괄호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내 호불호를 따지지 말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을 편견없이 사랑하고 각 사람에 맞게 풍성히 먹이는 목자되기를 기도합니다.
2. 누룩을 주의하라
1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 서쪽의 달마누다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다시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곳에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힐난한다는 것은 자기 관점을 고집한 채로 논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자기들이 가진 율법에 기초한 생각,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넘어서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맞다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보라고 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기적, 가르치고 규제하기에 좋은 율법에 집중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이 문제는 바리새인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과 제자들을 포함한 세대 전체의 문제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실존하는 현상에 과도하게 집착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많은 표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중풍병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못 듣고 말 못하는 사람을 듣고 말하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 들었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고 더한 표적을 보여달라고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시고 예수님을 힐난하는 이들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새로운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하지만 이와 같은 요소를 가진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상대하며 도우십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일곱 광주리나 남은 떡이 있었는데, 제자들이 떡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배에는 떡 한 개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포함하여 먹어야할 사람이 열세명인데 떡은 하나이니 제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셔도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 먹는 문제를 해결하야하고 그러려면 떡이 넉넉하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여 주의할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바로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입니다. 누룩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면 반죽을 크게 부풀게 만듭니다. 제자들에게도 바리새인들과 헤롯과 같은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두면 크게 자라나 제자들의 정신과 삶을 지배하게 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차지하며 휘두르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율법을 무기로 율법을 가지고 지키는 자신들과 율법을 모르고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높임을 받고 이권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헤롯은 정치권력을 차지하고 그것으로 부를 누리고 힘을 과시하였습니다. 결과는 자기 정욕을 정당화하고 옳은 말 하는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의 눈도 함께 하시는 예수님보다도 당장에 먹을 것, 주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을 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이방인 무리를 보면서 “우리 안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모세오경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는가?” 사람을 구분하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려고 해도 당장 나에게 먹을 것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세상을 바꿀만한 힘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했습니다. 이대로 두면 바리새인과 헤롯과 같은 길을 가게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없는 이 세대를 도울 수 있는 새로운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시기 위해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이 바리새인이나 헤롯과 다르게 오직 예수님을 통해 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강력하게 경고하십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우리가 떡을 안 챙겨와서 예수님이 저러시는 거야” 하며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이 예수님의 말씀보다도 눈에 보이는 떡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기 원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닌데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이 전에 겪었던 일들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보도록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제자들이 “열둘이니이다” 답하였습니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물으셨고, 제자들은 “일곱이니이다” 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권능을 베푸신 사실이 있었고 제자들은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 누룩 얘기를 하시자 제자들은 떡이 없어서 그러하시는가 완전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예수님이 누구신이신지 생각하기 보다도, “떡”,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그 문제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럴 때 더 가지고 더 챙기고 더 힘을 얻는 것에 마음이 향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놀랍도록 하신 일들을 기억나게 하시고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다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이 있으니 그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들의 실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할지 깨달음이 있어야 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 현장에 그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나병환자에 손을 대어 고치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시며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더 이상 떡문제에 메여 더 가지려 하고, 힘이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구분하며, 자기 권력을 지키려하는 지도자들과 같이 되지 말아야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합니다. 목자는 학생들의 영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도와가야하는데 학생들이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알기는 커녕 그저 자기 먹는 문제에 매이고 내가 극복해야할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큰일입니다. 학생들은 나의 앞날에 대해서 확신이 부족합니다. 예수께서 팍팍 밀어주셔서 좋은 직장에 취업하게 해주면 좋을 텐데, 대학원생들은 좋은 논문도 쓰고 특허도 내고 여기저기서 오라고 할만큼 각광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학과 학생들이 취업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을 보고 있습니다. 나에게 매년 2억씩 5년 정도 지원받는 연구프로젝트가 주어진다면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역량을 키워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것들이 주어진다면 하나님의 일을 잘 하고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없이 일이 진행된다면 예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업적과 권력과 돈에 더 마음이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져서 다른 사람을 돕기는 커녕 표적만 요구하는 흉기가 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려는가 생각하기보다 예수님 앞에 나는 어떤 존재인지 나의 본질을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는데 힘써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오늘 저에게, 그리고 주의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섬기기 위해 좋은 학위, 업적,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내 속에 있거나 자라고 있다면 철저히 찾아내고 완전히 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길을 가던 나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이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바구니에 거두신 것처럼,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시고 일곱 광주리에 거두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는 넉넉히 해결될 줄 믿습니다. 제가 이 한가지를 깨닫고 연구지원을 빵빵하게 받는 일에 몰두하기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예수님께 쓰임받는 것에 마음과 힘을 쏟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먹는 문제에 매여 사는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맛보고 전하며 사는 주의 제자되기를 기도합니다.
3.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깨닫는 것은 쉽게 되지 않습니다. 한번에 빠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앙생활을 한지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났는데 잘 바뀌지 않고 깨달음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면 어떡하나 낙심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한가지 사건을 통해 소망을 가지도록 도우십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당장 코 앞에 있는 것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고 옆에 계신데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떡문제에 매여있는 제자들의 모습과 오버랩됩니다. 예수께서 이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눈에 침을 뱉으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주변을 쳐다보고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셨습니다.
현재 제자들은 자기 문제에 마음이 팔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안수하시고, 또 안수하심으로 단계적으로 밝히 볼 수 있게 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말씀과 영으로 계속해서 터치하고 또 터치해 주십니다. 제자들의 답답한 상태가 지금 나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낙심하지 않으시고 단계적으로 도와가시는 예수님이 계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보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고 주님의 터치를 잘 받는 주의 제자되기를 기도합니다.
관건은 무엇을 보는가입니다.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을 통해 사람과 주변 현상을 보아야합니다. 예수님 없이 세상을 보고 사람을 바라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나에게 보이는 것 자체에만 집착하게 되며 그것이 누룩이 되어 나의 정신과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율법과 명분만 남고 실제에서는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위선적인 인생이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삼가 주의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금 내 인생가운데 일하고 놀랍도록 일하고 계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나아가 제대로 보지 못하여 어둠 속에 고통하며 배고픔에 떨고 있는 한 영혼을 먹이고 예수님께 인도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얻게 되는데 쓰임받아야합니다. 바로 자 자신이 그런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며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내 속에 파고 들어오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삼가 주의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 어떤 누구라도 먹이고 살리는 주의 제자로 쓰임받을 것을 믿습니다. 크신 사랑과 인내로 이 일을 이루어가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아멘!
아산 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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