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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본 사이트의 허경선사께서 민음사를 통해 번역서를 한권 출간하여 이에 소개해 드립니다. 책 제목은 위에 있는 것과 같이 "라캉 이론의 신화와 진실 : 콘텍스트로 라캉 읽기"입니다. 그리고 아래에 인용한 책에 대한 소개는 온라인 서점인 Yes24에서 퍼왔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소개 어떤 사상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나가는 데는 수많은 계기와 과정이 있다. 그 계기와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없이 최종적인 결과물만을 놓고 사상 전체를 환원론적으로 해석한다면 그 분석과 평가는 정당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을 주장하고 니체는 계보학을 외쳤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라캉 이론의 최종적 결과물에 관심을보이는 것이 아니라 형성 과정에 주목한다. 기존의 라캉 연구서들은 라캉의 후기 저작을 라캉 사상의 완결판으로 삼아 이전의 텍스트들을 그 완결판에 끼워 맞추는 해석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텍스트상에 나타난 개념들의 용례 및 사례들을 분석해, 개념의 형성-도입-정착 과정을 프랑스 지성사, 정신분석의 역사 속에서 추적하고 이에 맞게 라캉의 사상을 읽어낸다. 라캉의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이라고 종종 주장되어 온 <라캉과 구조주의의 연관성>은 이 책을 통해 부정되고, 초현실주의, 바타유 및 초기 프랑스 현상학과 라캉의 연관성이 드러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에서 라캉의 코제브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소쉬르, 야콥슨의 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에 기대고 있던 라캉이 자신만의 랭귀스트리를 향해 나아가는 궤적을 보여준다. 한편 저자는 여성성에 연관된 라캉과 그의 동료들의 저작을 세밀하게 읽어냄으로써 라캉의 이론이 강력한 성 차별주의 담론에 의존하고 있음을 폭로한다. 결국 라캉주의 정신분석이 젠더 및 성적 차이의 이론, 페미니즘 등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기존의 견해는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제7장에는 라캉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이력서가 포함되어 있다. 충실한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이 이력서는 년 단위가 아닌 월일 단위까지 라캉의 삶을 추적하고 있어 라캉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라캉에 대한 잘못된 이해들을 불식하고, 기존의 이해들과는 반대되는 혹은 알지 못하고 있던 라캉의 면모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 ■ 저자 및 역자 소개 저자 : 데이비드 메이시 1982년 프랑스의 작가이자 언론인인 니장 Paul Nizan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라캉에 관한 탁월한 연구서로 유명한 이 책 외에도 미셸 푸코에 관한 뛰어난 전기이자 연구서인 『미셸 푸코 전기The Lives Of Michel Foucault』(1995)를 저술하였다. 그 밖에 레지 드브레의 『정치 이성 비판』, 이브 라코스트의 『이븐 할둔 : 역사의 탄생과 제3세계의 과거』, 알랭 리피츠의 "『신기루와 기적』, 클로드 르포르의 『민주주의와 정치 이론} 등 20여 권의 프랑스어권 저작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현재 영국 리즈 대학 불문과 명예 연구 교수로 있다. -------------------------------------------------------------------------------- 번역 : 허경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강원대, 숙명여대, 순천향대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마르크 블로슈 대학 철학과 대학원 박사 논문 과정에 있다. 옮긴 책으로는 스튜어트 슈나이더맨, 『자크 라캉: 지적 영웅의 죽음』이 있다. -------------------------------------------------------------------------------- ■ 목차 옮긴이 서문 : 라캉 신화의 해체 서문 일러두기 1 최종적 상태 2 회고 3 이른 아침의 볼티모어 4 철학과 포스트철학 5 언어학인가, 랭귀스트리인가 6 어두운 대륙 7 자크마리 에밀 라캉의 이력서 참고 문헌 -------------------------------------------------------------------------------- ■ 책 속으로 옮긴이 서문에서 이 책은 데이비드 메이시의 Lacan in Contexts(London/New York : Verso, 1988)를 완역한 것이다. 원서의 제목에서 잘 드러나는 것처럼 저자는 라캉이라는 프랑스 사상사의 한 거목에 대한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비평의 방식보다는 어떤 하나의 개념 혹은 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맥락 비평의 방식을 택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 책에서 저자가 채택하고 있는 구체적 방식은 이른바 텍스트 분석 혹은 비평의 방법론이다. 간단히 설명해 보자. 누군가가 어느 사상가의 특정한 개념을 연구하고자 한다면, 그 연구자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개념에 대한 일반적이고 도식적인 이해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이때의 도식적이고 일반적인 이해란, 오랜 시기에 걸친 그 사상가의 지적 여정에 나타난 해당 개념의 출현과 발전·생성 및 최후의 정식화 과정 등을 무시한 채 그것이 처음부터 완전하고 정태적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가정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사실상 주어진 해당 개념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선험적인 개념>으로 가정하는 일종의 오류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하는 메이시의 맥락 비평 혹은 텍스트 비평은, 그 개념이 생성·도입되고 정착되는 과정은 그것이 일어났던 각각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분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는 철저히 텍스트상에 나타난 그 용어의 용례 및 사례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개념이란 그것이 일단 한번 생성되고 나면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자신만의 역사를 갖는 일종의 유기체 혹은 생물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이는 푸코의 <개념의 고고학·계보학> 혹은 데리다가 말하는 <보편 명사의 정치학>의 분석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모든 보편 명사는 구체 명사이다. 모든 보편 명사는 그것이 자라난 구체적 맥락이 있으며 그 맥락은 항상 넓은 의미의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맥락에서 유리될 경우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각한 의미의 변형을 겪게 된다. 따라서 저자의 맥락 비평은 텍스트상에 나타난 구체적 용례 혹은 사례에 나타난 개념의 흔적들 및 그것들 사이의 동일성과 상이성을 추적하는 작업이다. (.......) 한편 이러한 라캉의 상징화 이론 구축 과정에는 약간의 복잡한 <정신분석의 국제 정치학>이 작용하고 있다.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는 것처럼 정신분석, 즉 독일어를 사용하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 프로이트의 이론은 처음 프랑스에 수입될 때 프랑스인들로부터 <고상한 프랑스적·라틴적 정신에는 적합하지 않은> 독일놈 Boche의 학문, 유대인 학문으로 배척되었다. 당시 20세기 초의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역사적으로 몇 차례 큰 전쟁을 겪은 후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신분석은 파리의 몇몇 문학 서클을 중심으로 조용히 자신의 지지 기반을 넓혀 가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이나마 <파리 정신분석 협회>(SPP)가 정식으로 설립된 것은 1926년으로 이는 베를린보다는 18년, 뉴욕보다는 15년, 영국보다는 7년이 늦은 시기였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무렵, 정신분석은 이미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는 물론 비엔나에서 파견된 외제니아 소콜니카 이외에도 에마뉘엘 레지스, 앙젤로 에나르, 르네 라포르그, 마리 보나파르트, 뤼돌프 뢰벤슈타인 등의 공헌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는 우리에게는 다다·초현실주의 계열의 작가들로 잘 알려진 필립 수포,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및 살바도르 달리 등의 참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종전(終戰)과 함께 프랑스와 파리는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라는 이전의 지위를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새로운 전승국이자 소련과 함께 양대 강국으로 등장한 미국과 뉴욕에 자리를 양도하고 만다. 프랑스는 이름만 전승 연합국의 일원일 뿐 실제적으로는 이웃 경쟁국인 독일에 국토의 대부분을 빼앗겼다가 주변국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땅을 겨우 되찾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노력의 일부는 자신을 구원해 준 <해방자>로 자처하는 미국에 대한 정서적 반감의 형태로 표출된다. 더구나 라캉의 스승이었던 뤼돌프 뢰벤슈타인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에른스트 크리스 등과 함께 전후 미국 에고 심리학의 주된 창건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리고 전후의 라캉은, 프랑스의 <해방자>로 자처하는 미국의 에고 심리학에 대항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지적 영웅으로 떠오른다(그리고 이에는 이전 자신의 스승들 중 하나였던 뢰벤슈타인에 대한 공격이라는 개인적 측면도 포함된다). 에고 심리학에 대한 이러한 반감과 이를 무시하는 라캉의 태도는 동시대 라캉의 행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라캉은 전후 <국제 정신분석 연합>(IPA)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미국 정신분석 연합>(APA)과 그 <이데올로기>인 에고 심리학의 횡포에 대항하는 <프랑스적·라틴적 정신의 화신>으로서 화려하게 국제 무대(적어도 프랑스라는 무대)에 등장한다. <에고 심리학이 프로이트 이론의 정통적 계승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는 매우 이론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문제이며, 게다가 메이시의 지적대로 프로이트의 <에고> 개념 자체가 가졌던 애매성에서 직·간접으로 기인하는 문제이다. 이처럼 라캉은 자신의 고유한 프로이트 독해에 의해 당시의 정통적 해석으로 등장하고 있었던 에고 심리학으로부터 멀어졌지만, 이는 또 다른 한편으로 에고 심리학이라는 미국적인 정통적 해석의 반대편에 자신의 전선을 위치시켰던 것이기도 하다. 라캉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고 말했지만 이러한 언명이 프로이트의 어떤 화석화된 이론으로의 무조건적인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라캉 자신은 실제로 자신이 해석한 프로이트의 <참된> 입장과 정신에 따라 기존 프로이트의 결론과 학설을 변경시키고 수정했다. 그런데 그가 미국의 에고 심리학에서 발견한 것은 프로이트 <근본 정신>의 왜곡과 수정이었다. 라캉에 따르면, 에고 심리학은 <동질적 주체>를 가정하는 의식적 에고의 조정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무의식에 보다 큰 우위를 두었던 원래의 프로이트 사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에고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리비도·에로스, 즉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을 대등한 것으로 설정한 프로이트의 후기 이론과도 문제를 일으킨다. 결국 라캉에게 있어 에고 심리학은 물질적 풍요에 기반한 미국의 낙관주의에 기초하여 프로이트를 행동주의적·생물학주의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사회 적응 심리학>,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회 공학>으로 축소시키는 것이 된다. 따라서 라캉은 이전의 <프로이트적 균형 Freudian Equilibrium>을 되찾기 위해 주류 에고 심리학에서 무시되는 <타자 Autre>와 <죽음>의 개념을 다시금 도입하고자 시도한다. 바로 이 과정에서 라캉은 소쉬르, 야콥슨, 레비스트로스 등의 언어학·인류학의 도움으로 (그리고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가 젊은 시절 탐닉했던 초현실주의적 급진성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자신만의 언어학적·상징화의 이론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라캉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다 생물학적인 함의를 갖는 자지를 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팔루스로, 오르가슴을 주이상스 jouissance로, 욕구를 요구 demande로 대치시킨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라캉이 궁극적으로 의도하고 있는 바는 바로 정신분석에 <프로이트적 균형>을 되찾아 주는 일이다. --- pp. 5 ~ 9 -------------------------------------------------------------------------------- 저자 서문에서 스코틀랜드에는 먼로 Munro라 불리는 3,000피트 가량의 고립된 산봉우리가 있다. 먼로 산맥을 등정하는 일은 약간의 위험을 제외한다면 손쉬운 기분 전환거리 정도이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산맥의 모든 봉우리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는다면 그것은 쉽사리 하나의 강박 관념이 되고 만다. 정상에서 얻는 전망은 분명 볼 만한 것이지만, 거리가 가까워지고 또 낮은 지대가 평평해 보이게 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어느 정도 전망을 잃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많은 점에서 1970년대 초반의 지적 기상도는 먼로 산맥의 등정이라는 강박 관념의 이론적 대응물이다. 이 시기를 연구하는 학파들에게 이론들이란 산맥의 봉우리들이었고, 그들은 라캉이 그 시기의 최고봉 중 하나임을 암시하는 지도 혹은 일람표들에 대한 독해를 자신들의 작업 지침으로 삼았다. 마치 누군가가 알튀세를 정복했다면, 다음에는 소쉬르를 거쳐 라캉에 이르는 고지를 횡단해야 하고, 프로이트는 이 과정에서 지나치게 되는 하나의 산마루이며, 또한 피숑(1890-1940)이나 라포르그(1894-1962) 같은 선사 시대 인물들이 살고 있는 늪지대를 지나기 위해 다시 산을 내려올 필요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내부의 화산 폭발력으로 인해 정상으로 던져 올려진 찌꺼기들만큼이나, 라캉이라는 고지의 낮은 쪽 비탈에 위치한(초현실주의의 파편, 현상학의 부스러기들, 헤겔의 잔해 등과 같은) 자갈밭을 조망하기란 기만적일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기껏해야 그것은 보다 덜 중요한 풍경이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정상에 오르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참을성 있는 탐사를 위해 정상으로 향하는 질주를 멈추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탐사는 등고선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그 지질학적 형성 과정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오랫동안 라캉의 독자들은 하나의 완고한 딜레마에 봉착해 왔다. 그것은 <전면적 수용 혹은 전면적 거부> 사이의 양자택일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한 가공할 개인의 존재에 의해 촉발된 격렬한 충성 혹은 적의의 반영이며, 동시에 정신분석에 의해 너무도 자주 촉발되곤 했던 분파주의적 감정의 반영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라캉의 작업이 온전히 그 자체에로만 향해 있는 하나의 전체이며 프랑스 지성사의 지난 반세기와는 무관한 어떤 순수한 이론적 개념화 작용의 결과라는 환상에 의해 파생된 하나의 효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라캉의 작업이 (충분한 검토도 없이 무조건 거부되거나 종교적 충성심의 대상이 되어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평가된다면, 이러한 환상은 제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먼로 산은 주변의 지형 및 그 아래의 지층과 연관되어야 한다. 우리가 라캉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맥락들은 이 자리에서 전면적 승인 혹은 전면적 거부의 딜레마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될 것이다. 1장 [최종적 상태]에서는 <라캉>이라는 이론적 통일체의 생산 과정을 다룰 것이다. 또한 그것을 영웅 신화에 연관시킬 것이다. 영웅 신화는 프로이트가 플리스(1858-1928)에게 <내가 꿈의 비밀을 발견한 이 '집'이 언젠가는 어떤 확고한 표지에 의해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고백한 이후 끊임없이 정신분석의 역사 서술을 괴롭혀 왔다. 2장 [회고]와 3장 [이른 아침의 볼티모어]에서는, 프랑스 정신분석의 최초 세대 및 라캉이 원래 훈련받았던 고전적 정신의학 전통이 라캉 사상과 맺는 연관성을 탐구함으로써, 그리고 라캉의 언어에 대한 견해 및 여성성의 도상학 모두에 영향을 미쳤던 초현실주의가 라캉과 맺는 연관성을 탐구함으로써 이중적인 역사적 관점들을 소개하게 될 것이다. 라캉은 단순히 프로이트에게로 돌아갔던 것이 아니다. 그는 또한 중요한 순간에는 그 자신이 <정신의학에 있어서의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불렀던 클레랑보와 피숑 같은 거의 잊혀진 인물들로부터 물려받은 분명한 전통들로 돌아갔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묘할 정도로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호와 상징을 조작했던 초현실주의자들과 자신의 일정한 친연성을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용했던 예술적·시적 실천들은, 그가 1950년대에 그렇게도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던 소쉬르와 언어학자들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라캉의 언어에 대한 이해에 기여했다. 한편 그가 이루어낸 정신분석에서의 개선들 중 적어도 하나는 초기 프랑스 정신분석의 전통 및 프로이트와의 논쟁으로의 회귀를 표상하고 있다. [5장에서 다루어지는] 언어학 linguistics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소쉬르에게 라캉이 지고 있는 부채는 (라캉 자신 및 그의 연구자들의 글 모두에서) 지나치게 과장되어 왔으며, 몇몇 언어 체험들에 대한 라캉의 지속적 매혹 또한 어떤 엄격한 언어학과의 심각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너무나도 자주 오해되어 왔다. 라캉은 존재론을 어원학과 결합시키고, 원초적 상징들을 음소들과 결합시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구축함으로써 종종 언어학의 엄격한 교의들로부터 이탈했다. 분석의 수준들은 융합되고 혼돈되었으며, 따라서 실증주의 언어학의 매력이 정신병 언어의 그것 앞에서 무력해짐에 따라 결국 언어학은 랭귀스트리 linguisterie에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 pp. 21 ~ 23 -------------------------------------------------------------------------------- 「철학과 포스트철학」 중에서 라캉을 읽은 후에 또다시 코제브를 읽어보는 것은 재인식 recognition의 충격, 다시 말해 하나의 참으로 무시무시한 uncanny, 어디선가 보았던 것을 또다시 본다는 느낌 sensation of dj vu을 체험하는 일이다.) 이제 다시 헤겔을 읽어보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마도 이 철학자와 정신분석가 사이에는 상당한 친연 관계가 존재하리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경우 충격은 이전처럼 크지는 않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다음과 같은 점, 즉 <라캉을 헤겔 자체에 대한 그리 심도 깊은 이해를 가진 인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싶다. 사실상 모든 점에서 라캉의 헤겔 이해는, 그를 <헤겔적> 주제들로 이끌어 주었던) <거장> 코제브의 관점을 통해 걸러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라캉이 하나의 <헤겔주의자>였다기보다는 차라리 하나의 <코제브주의자>였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코제브-헤겔에 대한 라캉의 이러한 관점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는가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를 대략 1930년대 중반의 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라캉의 1932년] 박사 논문에는 헤겔에 대한 참조가 전혀 없으며, <거울 단계의 원(原) 판본 Ur-version>이라 부를 수 있는 [1936년의] 논문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1936년의] 논문 [<현실 원칙>을 넘어서] 역시 헤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다만 동물 세계의 환경과의 동근원적(同根源的) 관계 relation of connaturality에 대한 논의 부분에서 우리는 확연한 코제브적 어조를 읽어낼 수 있다.) 1938년이 되면, 우리는 드디어 헤겔-코제브에 대한 참조가 중심적 요소로 부각되는 논문 [가족 La Famille]을 만나게 된다. 이 논문에서 라캉은 헤겔의 다음과 같은 공식을 인용하고 있다. <인정을 위해 투쟁하지 않는 개인은 결코 살아 있는 동안 하나의 인격이 될 수 없다.>) 10년이 지나면, 헤겔은 인간 존재론 내의 공격성 기능에 대한 <궁극적 이론>을 창안한 인물로서 칭송받게 되며, 드디어 라캉에 의해 <광기의 현상학>의 <일반 공식>을 제시했던 인물로서 주장된다.) 헤겔이 라캉의 담론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살핀 연대기적 연구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사실만은 명백하다. 비록 라캉이 [1960년의] 논문 [주체의 전복]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자신의 헤겔 언급은 다만 에고 심리학을 쉽게 비판하기 위한 예비적 참조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설명을 위해 채택된 순수한 인용 이상의 성격을 갖고 있다. 게다가 라캉이 논문을 처음 작성하고 나서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사후에 부가한 주석들 중 몇몇은 헤겔을 에고 심리학에 대한 투쟁을 위한 보조물 정도로 축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후에 라캉이 수행하게 되는 에고 심리학에 대한 비판의 씨앗은 실제로 거울 단계의 이론화 작업 안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고에 대한 논쟁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은 1936년이나 1938년 시기가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이다. --- pp. 250 ~ 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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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실되게 살자 원문보기 글쓴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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