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王의 길을 따라 은어의 길을 좇아”
여름 내내 작렬하던 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햇볕은 맑고 투명하고 고양이털처럼 부드럽다. 세상은 봄여름 내내
자연으로부터 소중하게 받은 초록빛을 익혀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여름 내내 사람들은 폭염을 이기기 위해 폭염
속으로 들어갔다.
▲ 트레킹
일상에 찌든 스트레스를 훌훌 터는 최고의 여름나기로 ‘트레킹’을 즐기는 피서객들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 트레킹 족들이
단연 으뜸으로 찾는 곳이 경북 울진의 젖줄인 왕피천 상류에 자리잡은 ‘굴구지’마을 계곡이다.
왕피천 중.상류에 처녀림과 비경을 끼고 자리잡은 ‘굴구지’마을은 지난 2010년부터 마을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하는
‘굴구지 피라미축제’가 가족단위 생태축제로 자리잡으면서 세간에 이름을 알렸다. 올해로 네 번째 치러진 ‘굴구지 피라미축제’에
는 입으로, SNS로 정보를 얻은 가족단위 피서관광객들이 서울을 비롯 경향각지에서 찾아든다.
올해에도 3000여명의 가족들이 굴구지마을을 찾아 왕피천의 비경을 가슴에 담았다. 굴구지마을이 세간에 알려지기 전까지
왕피천 용소계곡과 굴구지 ‘물병골’계곡은 국내 몇 남지 않은 처녀림으로 비경을 간직한 채 뭇사람들의 발길을 용납하지 않는
원색의 땅이었다.
경북 영양 금장산(金藏山 849m)에서 발원해 수비면 신원리·오기리·발리리를 지나 울진 통고산(通古山, 1067m) 남쪽사면을
흘러 여러 수계를 묶은 뒤 울진 근남면 구고동을 지나 원남면 매화리를 휘돌아 성류굴을 앞을 감고 동해로 흘러드는 60.95㎞ 의
왕피천은 “울진의 젖줄”이자 “왕과 은어의 길을 좇아 아마득한 선사시대로 걸어가는 길”이다.
선캄브리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소계곡은 화강편마암과 수평편마암이 누천년 자연에 몸을 맡긴 채 빚은 절경이다.
후대 사람들은 자연이 빚은 절경을 “왕피동천(王避洞天)”이라 부르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외경(畏敬)으로 여기고 기이하고
아름답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를 만들었다.
‘동천(洞天)’은 도가적 사상이 투영된 것으로 ‘천상의 마을’을 뜻한다. 울진지방에 전승되는 ‘왕피리 전설’은 세 가지 갈래로
구전된다.
하나는 실직국(悉直國) 왕의 피난설과 신라 마의태자와 모후(母后)인 손씨(孫氏) 피신설이다. 또 하나는 고려의 비운의 왕인
‘공민왕 피난설’이다. 세 갈래 모두 자신의 나라를 잃고 정처없이 떠돌던 망국의 한을 담고 있다.
설화가 당대의 사회정치적 맥락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왕피리 곳곳에는 ‘망국의 서러움’과 이 한을 보듬어 다시 복원하려는 당대
망국민의 한과 의지가 오롯이 스며있다.
울진군 근남면 구고동 ‘굴구지마을’초입에서 용소를 지나 학소대와 속사마을에 이르는 약 5Km 거리의 기암절벽과 폭포와
금강소나무 그루터기, 계곡을 보듬고 걷는 일은 이들이 남긴 족적을 따라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비장과 장엄의 길’이다.
울진군과 환경부는 지난 2005년 왕피리 일대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왕의 길’인 굴구지마을~속사마을로 이어
지는 5Km 구간을 ‘왕피천생태탐방로’로 개설.복원했다. 산불감시기간을 제외하고는 연중 어느 때나 이곳의 비경을 맛볼 수
있다.
▲
왕피천탐방로
◆ 죽변항을 잉태한 대가실 해변의 황홀
왕피리가 누 천년을 제자리에 뿌리 내린 채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처녀림을 고스란히 간직한 ‘태고의 공간’이라면
죽변항 ‘대가실 해변’은 자연에 순응하고 조응하면서 삶을 꾸려 온 울진 고대인들의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생태역사의 현장’이다.
▲ 대가실
죽변등대를 바라보며 오르는 ‘대가실 해변’ 언덕배기는 1만년 전 신석기 시대의 역사를 오롯이 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지난
2010년 동해연안 포구인 죽변항에 한국 역사학계를 긴장시키는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죽변리 죽변등대 일원 도시
계획도로부지 내에서 조기 신석기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죽변리 신석기 유적은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굴된
신석기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조기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확인됐다. 역사학계는 기원전 5800년 전 신석기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이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 어로할동 양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어로용 도구들이 무더기로 발굴됐다.
석부·결합식낚시축부·낚시추·작살·석창·석도·찰절구·보습·지석·고석 등 석기류 407점, 낚시바늘·창 등 골각기 3점, 목재 10점
등
1000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또 목재유물 가운데 목선박편(木船舶片)과 노(櫓)가 확인됐다.
◆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1만년전 조기 신석기 문화의 현장
▲ 죽변신석기 유물군
죽변리 유적에서 모습을 드러낸 목선박편과 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배 유물로 확인됐다.
특히 죽변리 유적에서 발굴된 ‘대형
돌추’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종류의 석기로서 역사학계를 긴장시켰다.
1만년 전 죽변항을 무대로 삶과 문화를 일구며 바다를
주름잡던 조기 신석기시대 죽변인들의 기질과 문화는 오늘날
죽변항을 무대로 오롯이 전개되고 있다.
▲ 죽변 석기류 / 죽변 융기문토기발
이들 1만년 전 문화 전승지가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로 발전한 죽변항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1만년 전 죽변항을
무대로 바다를
주름잡던 죽변인들이 제 자식처럼 보전해 온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 ‘대가실 해변’이다.
몇 해 전 이덕화와 송윤아가 주연한 ‘폭풍의 언덕’
촬영장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린 뒤 최근 ‘1박2일’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세인들의 발길을 모은 ‘대가실 해변’이 “해양생태역사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울진군이 지난 2013년 기존의 촬영장을 리모델링해 일반에게 공개하고 죽변등대를 에두르는 ‘죽전(竹箭)’ 으로 뒤덮힌
해안절벽에 ‘대숲길’을 복원하면서 동해안 최고의 “힐링에코로드”로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죽전(竹箭)’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려조정이 직접 조성한 대숲이다. 죽변항을 침범하던 왜구를 향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던 죽전소리는
가히 울진 대가실 해변에서만 들을 수 있는 ‘역사의 소리’이다.
▲ 죽전숲길
울진군은 죽전숲길을 “용의 꿈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실제 죽전숲길에서 아마득한 절벽아래 흡사 다도해처럼 박혀
있는 갯바위 군락은 ‘용추곶’으로 불리며 오랜 과거부터 죽변인들은 가뭄이 들면 이곳 용추곶에서 관제(官制) 기우제를
올렸다.
지난 해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
드라마세트장인 ‘어부의 집’에서 하트모양의 대가실 해변을 바라보면 생활의 근심과
스트레스는 죽전숲길 절벽에 부딪혀 하안 포말을 뿜으며 내밀리는 파도처럼 투명하게 사라진다.
▲ 드라마세트장
◆ 죽변항은 ‘맛’과 ‘멋’을 간직한 생활 재충전 배터리
아마득한 절벽 위에서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가실 앞 바다의 투명한 속살은 일상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청량함 그 자체이다.
동해안 최고의 어업전진기지인 죽변항은 “살아펄떡거리는 동해안 수산자원의 전시장”이다. 1만년 죽변항을 지켜 온 죽변의
어민들이 밤새 파도와 맞서 배를 띄우고 그물을 내려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은 오로지 죽변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삶의 희열이자 생활의 재충전”이다.
죽변항을 찾는 누구나 싱싱한 해산물을 값싸고 유쾌하게 만날 수 있다. 죽변항의 가을은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여름 내내 폭염에
시달렸다면, 하루하루 일상에서 탈출해 싱그런 삶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나고 싶으면 죽변항으로
오시라.
당신들의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 ‘1만년 전 신석기시대의 숨결과 왜구를 향해 날아가던 죽전화살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가슴으로 쏴아 밀려오는 투명한 파도와 싱싱한 바다먹을거리’를 오롯이 가득 펼쳐 놓은 죽변항이 있다.
한편 올 8월 현재 문화관광부에 등록한 울진의 주요 관광지점은 구수곡 자연휴양림, 금강소나무숲길, 기성리어촌체험마을,
나곡바다낚시공원, 덕구온천, 민물고기전시관, 백암온천마을, 불영사, 성류굴, 엑스포공원, 왕피리거리고마을, 울진과학체험관,
울진요트학교, 울진해양레포스센터, 캠프홀스, 한화콘도온천이용, 향암미술관 등 총 18개소이다.
8월 현재 울진을 찾은 관광객의 공식 집계는 약 91만명으로 추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