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입동치성 태을도인 도훈
영광의 길, 형극의 길
2020. 11. 7 (음 9. 22)
안녕하십니까? 태을도인 새달입니다. 상강 추위가 입동을 맞이하면서 오히려 좀 풀렸습니다. 생일 하루 전날인 어제, 종장님 생신 미역국을 끓이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시부모님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살아계셔서 아들의 생일상을 함께 하셨으면 좋을걸.. 그런데 가고 안 계신 빈자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허전해서 생각이 더 납니다.
저희 우리 부부가 30년 전에 결혼할 때 시부모님 나이보다 한 살 더 많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30년 후면, 우리도 저세상에 갔거나 갈 날을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동안 제가 잘 살아왔나 되돌아보니, 열심히 살려고 나름 애썼지만 주변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은 삶이었습니다.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살아온 삶이었습니다.
꿈- 현모양처와 외교관, 천하사
여고 시절에 어느 선생님 시간인지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수업 시간에 각자의 꿈을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하더군요. 전 그때 속으로 ‘아니, 그건 누구나 결혼하면 여자로서 당연한 거고, 그거 말고 자기만이 이룰 수 있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거나 벅차오르는 그런 꿈이어야 진짜 꿈이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꿈은 국위를 선양하는 외교관이었지요. 지금은 그 꿈이 바뀌어서 이렇게 태을도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증산상제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을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사실 뭔지 그 내용을 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진짜 내 꿈을 찾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고, 증산이라는 인간에 매료되었으며, 대두목의 역할과 위엄 앞에 고개를 숙였더랬습니다. 부모님과 가족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오히려 진리를 몰라보는 그들을 안타까워하면서, 굳은 결심으로 천하사의 길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하사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앞이 막힌 것처럼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는 어느 대학교 모토처럼 진리를 만나서 더 자유로워야 하는 데, 오히려 구속과 신앙의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개인신앙으로 돌아섰고, 현실 안에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종장님이 느닷없이 천명을 받게 되고, 마침내 태을도를 열게 되었습니다.
태을도를 통해 신앙의 지평이 확연히 열리고, ‘아, 태을이 진리이구나.’하는 깨달음으로 정말 기쁨에 차서, 또다시 천하사의 길을 지금까지 23년간 허위허위 걸어왔습니다.
천하사와 뒤늦은 꿈, 현모양처
그 사이에 부모님은 가시고, 형제들은 저처럼 나이가 들었습니다. 자식들은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가족 간의 갈등을 겪어내느라 자식들의 어린 가슴 속에는 상처가 깊숙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들과 딸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셨던 부모님이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눈 감으신 것에 대한 서운함이 가슴에 가득한 양쪽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제사 나를 돌아봅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그건 의무사항이지 한 사람의 꿈이 될 수 없다고 여겼던 ‘현모양처’는 천하사 길을 걸어오느라 제대로 챙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현모(賢母)도, 양처(良妻)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 길을 걸어온 결과로 지금 아파하는 자식들을 바라보면서, 이젠 제가 부모로서 내심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다 보니 ‘아, 우리 부모님도 그랬겠구나.’ 싶은 게, 그분들이 얼마나 속을 끓이셨을지, 또 자식 걱정에 제대로 밤잠을 못 이루셨을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딱 그 나이가 되어봐야, 딱 그 상황이 되어봐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나 봅니다. 지금 와서 보니 전 효녀(孝女)도, 효부(孝婦)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것만 해도 고맙다고, 사랑과 이해로 절 감싸준 종장님과, 꿈을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 부모를 너그럽게 받아주는 이해심 많은 두 딸이 있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형제들도, 자기들이 힘든데도 그래도 일 있을 때마다 외면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하며 애써주었습니다. 형제들 가슴에 자리 잡은 앙금이 다 사라진 것 아닌데도 말이지요.
종장님과 제가 손잡고 함께 걸어온 태을도인의 길은 그래서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한 길이면서, 또 참으로 힘든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23년을 걸어오는 동안 결코 저희 부부의 힘만으로 걸어온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가족의 사랑과 또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또 그 사랑으로 인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간, 신앙으로 함께 해준 귀중한 인연 태을도인들이 있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영광과 형극의 태을도인의 길
그 사이 태을도에 많은 분들이 거쳐갔습니다. 태을도인으로 입도해서 활동을 좀 하다가 떠난 분들도 계시고, 입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떠난 분들도 계십니다. 태을도에 대해 좀 알아본다고 다녀만 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올 때는 참으로 반갑고, 떠날 때에는 참으로 괴로웠습니다.
그 숱한 인연들이 저희 부부에게 귀중한 경험이, 또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는 고수부님 말씀을,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되새기면서, 그분들의 태을도 인연이 예사 인연이 아니라고 굳게 믿기에, 마침내 그분들이 태을도로 다시 인연이 될 날을 기다리며 태을도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습니다.
지금 태을도를 묵묵히 지키고 계시는, 분명 우리 부부가 겪었던 그런 어려움을 각자 처한 상황에서 숱하게 겪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금까지 지켜오고 계시는 태을도인들에 대한 고마움은 사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더할 수 없이 영광된 길이고 정말 기쁘고 행복한 길이면서도 또 동시에 세상이 아직 알아주지 않는 형극의 길을 우리 모두 걷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저희 부부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계시는 우리 태을도인들에 대한 고마움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태을도인의 길, 가족과 함께
살아오는 동안,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참으로 많지만 그래도 더없이 행복했던, 앞으로도 행복할 진리의 길 태을도인의 길이기에, 다시 태어나도 전 종장님과 함께 이 길을 걸을 겁니다. 다만 현모양처 효녀효부 또한 제 꿈에 포함시켜서, 그 꿈도 함께 이루어서 이번 생의 아쉬움을 메꾸고 싶습니다.
지금 증산신앙을 하시는 증산신앙인들과 태을도인님들, 앞으로 태을도를 하시게 될 미래의 태을도인님들, 모두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 겪지 않고 정말로 가족 간에 화합하고 가족 안에서의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증산신앙의 길 또한 최선을 다해서 걸어준다면, 저희 때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면서 덜 괴로운 진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길이 태을도인의 길입니다. 평범하면서 일상적인 삶에 천지부모님의 가르침을 체화한 녹익은 진리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가을햇볕에 누렇게 익어 머리숙인 벼처럼, 태을도를 배우고 익혀 더욱 겸손하고 성숙한 태을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