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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9:1-3 ”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제가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애국조회’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초로 기억되는데 그동안 ‘월요조회’로 진행되던 것이 애국조회로 바뀐 것입니다. 아마도 학생들에게 나라사랑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애국조회가 되면서 형식과 내용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우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습니다. 이 때 ‘국기에 대한 맹세’가 울려 퍼집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다음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제창했습니다. 그리고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한 뒤에 국민교육헌장이 낭송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 훈화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어찌나 길었던지 이 때 쓰러지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의 교육현장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도 애국조회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린이 집에서도 애국조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형식과 내용은 달라졌겠지만 언제적 애국조회를 아직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다음 세대에게 나라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맞게 그리고 다음 세대의 성향에 맞게 교육이 실시돼야 하지 않을까요? 더더욱 요즘 나라 사랑과 관련해서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요즘 나라사랑 교육에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 사랑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고 할 때 문제가 되는 것들을 어떻게 대처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다음 세대들에게 나라 사랑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이 우리가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고 할 때 중요한 통찰을 주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우선 바울은 자기에게 큰 근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근심이 있는데, 그 근심이 정말 큰 근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마음에 고통이 일어나는데, 그 고통은 멈출 수가 없는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는 것은 양심의 차원이고, 성령이 증언해 주신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동족에 대한 근심과 고통이 단지 감정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고, 성령께서도 확인해 주시는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을 수만 있다면 마치 예수님께서 인류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셨던 것처럼 자기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기를 그렇게까지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 보면 바울은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당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진 박해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자기 동족들에게 박해를 받아서 쫓겨나고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습니다. 정말 동족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치가 떨리도록 밉고, 다시는 보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기 동족을 이렇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해 보냄을 받은 사도입니다. 그래서 늘 그의 마음속에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사랑을 한 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들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나라 사랑에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이런 교훈이 나라 사랑을 올바로 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해 줍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기초해서 오늘 우리가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특히 우리가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극복해야 할 문제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개인주의를 극복하라
최근 우리사회에 새롭게 유행어로 자리 잡은 말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헬조선’이라는 말입니다. 헬이란 지옥이란 뜻이고, 조선이란 우리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을 중심으로 현재의 우리나라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입니다. 특히 청년들의 눈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이 해결될 길 없이 고착되어 보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불평등 구조 속에서는 자신이 꿈꾸는 목표를 향해 나갈 수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마치 근대화 이전의 사회적 모순과 같이 깨뜨려지기 힘든 장벽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해서 헬한국도 아닌 헬조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 11일 서울대 사회학과 추자연교수가 한 포럼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안타까운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청년들 중에 오늘의 한국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본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80.6%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수저는 금수저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85.3%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탈조선 즉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75.4%나 된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한 마디로 청년들에게 우리나라는 지옥처럼 느껴지고 있고, 기회만 되면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을까요? 과연 이런 청년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오늘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고 할 때 걸림돌이 되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나 개인과 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나라 사랑 문제가 깊은 영향을 받게 된 것입니다. 나라가 내게 유익을 주면 나라를 사랑하고, 나라가 나를 힘들게 하면 나라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저들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박해는 바울이 회심한 직후부터 시작됐습니다. 행 9:23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 머무는 동안 바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 23:12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바울은 로마로 끌려가게 되었고 순교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은 예수를 믿게 된 직후부터 마지막 순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고, 유대인들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습니다. 그러면 유대인이라면 지긋지긋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할 텐데 바울은 여전히 유대인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나라 사랑은 자기의 개인적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나라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대구지역은 전시를 방불케 하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염자가 급증하면서 의료진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원하는 의료진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3일 만에 무려 490명이나 지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경기 의정부에 있는 서울 신세계 안과의원 조아란(37)원장은 지원을 위해서 두 주간 휴가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내일부터 대구로 가서 두 주간 머물며 진료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조 원장은 "대구의 상황이 어려워 보였다. 조금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나서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동료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조 원장은 "제가 빠지면 일이 많아지니까 다른 선생님들이 반대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마스크 등을 챙겨주시며 조심해서 다녀오라고 하시더라"면서 "지금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는 의사들 마음은 다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휴가를 내서 자기에게는 손해가 생기고, 또 자기도 감염이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라가 어려울 때 손을 보태겠다는 것 아닙니까? 개인주의를 극복한 나라 사랑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나라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개인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나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야 하고, 나의 감정적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애국주의를 극복하라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난 유행어 가운데 또 하나는 ‘국뽕’이라는 말입니다.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의 합성어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 되어 있는, 그러니까 무조건적으로 한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말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를 너무 의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 사람들을 만나면 손흥민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미국사람들을 만나면 BTS를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을 만나면 꼭 소감이 어떠냐고 묻고, 한국음식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영국에서 뛰는 손흥민이 골을 넣기라도 하면 발 빠른 유튜버들은 당장 영국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다느니,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본 축구 팬들과 중국 축구 팬들의 반응이 어떻다고 영상을 올립니다. 그런데 정작 외국인들은 이런 한국인의 국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을 합니다. 한국의 문화, 예술이 뛰어난 것은 이제 세계인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구지 외국인들에게 확인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나라 사랑이 일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애국심이 지나쳐 애국주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애국주의는 자기 나라에 대한 자긍심, 자기 나라의 번영에 대한 열정적 헌신, 자기 나라의 정부에 대한 열렬한 충성심을 특징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 애국주의가 더 심해지면 ‘쇼비니즘’(chauvinism)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광신적 애국주의 또는 눈먼 나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다가 주변 나라들을 적대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한참 반일감정이 극에 달해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일 때 일본 여행을 간다고 하면 친일이라고 몰아붙이는 태도를 말합니다. 또한 중국이 사드배치에 보복을 가해올 때 중국인들을 돕는다고 할 때 친중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성경에 이런 애국주의적 태도로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부하고 정반대인 배를 타고 다시스로 도망칩니다. 풍랑을 만나고 큰 물고기 뱃속에 삼일을 머무는 우여곡절 끝에 순종하여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자기가 전한 말씀을 듣고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자 크게 화를 내면서 하나님께 따지고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요나는 지금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가 자기 나라와 적대관계에 있다고 해서 그 나라가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합니다. 그 나라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바로 요나는 잘못된 나라 사랑에 심취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요나와 다르게 나라 사랑을 하고 있는 바울을 소개해 줍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자기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전도여행을 해오면서 이 사실을 체험적으로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방인들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 갔습니다. 롬 1:14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이방인들에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심정을 가지면서 또 동족인 유대인들에 대한 사랑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유대인 우월주의에 빠지거나 다른 나라와 민족을 미워하거나 무시하는 애국주의에 빠지지 않은 채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 선생은 기독교인의 애국의 특성을 이렇게 말한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에 격려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사람을 사랑하고 전 인류를 사랑하게 된 결과로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나라와 동포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나라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 인류를 사랑하게 된 결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 12:48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이 말씀은 사랑은 혈연에 얽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 사랑이 그렇습니다.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만을 사랑하는 민족주의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자기 나라만 사랑하려는 애국주의에 얽매여도 안 됩니다. 우리의 나라 사랑은 하나님 나라 확장으로서의 나라 사랑이어야 합니다.
저는 1919년 4월 11일 제정된 상해임시정부의 임시헌장을 보고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습니다. 전문의 첫째가 하나님과 인간의 뜻을 하나로 해서 만들어진 나라라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7조를 보면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류의 문화와 평화에 공헌하기 위해 세워진 나라라고 되어있고, 또 선포문에서 우리 민족은 하나님이 건설하실 하나님나라의 건설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비전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주축이 된 상해임시정부는 하나님나라 건설의 비전을 품고 시작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상해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은 나라 사랑을 이렇듯 애국주의를 넘어서는 뜨거운 애국심으로 불타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이 삼일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나라 사랑을 부르짖었던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랑스러운 나라 사랑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주의 때문에 나라 사랑을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애국주의 때문에 잘못된 나라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상도중앙교회 박봉수위임목사님 설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