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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상과 한민족 연방 | ||||||||||||||||||||||||||||||||||
동방족의 터전인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민족 연방시대 열어야.. | ||||||||||||||||||||||||||||||||||
[역사논단]한반도 '경성(서울)'을 중심으로 고대 우리 동방족(동이)들의 활동 영역이였던 쥐나대륙의 '북경',일본열도의 '동경',동남아 지역의 '남경',티벳지역의 '서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바로 동방족의 터전인 한반도가 인류문명을 태동시킨 어머니 땅이며, 한반도에서 발원한 동방족(동이)이 만주를 중심으로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분산되어 위대한 한민족의 문명을 개척하고 전파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유라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에 분산되어 있는 우리 동방족들이 한반도를 무역과 정보의 중심지로 삼고 역사인식에 대한 공유를 전제로 문화적 교류와 경제협력 등으로 하나되어 위대한 한민족 연방시대를 열어 나갈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주성과 주체성과 창조성과 개방성이 강했던 우리 한민족의 시대적 비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구이(九夷)는 동이와 동등시했거나 또는 동이에서 파생된 민족을 일컫는데, 그 근간을 구환(九桓)의 후예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복희와 치우가 만주에서 산동으로 진출한 이후 산동과 안휘 등의 회대(淮岱) 지역이 동이족이 되어 이들 대부분 복희와 치우의 후손으로 자랑하게 된 것으로, 즉 단군조선 당시 하(夏)의 우왕(禹王)이 나온 이후에 한반도를 포함한 요녕성, 산동성, 안휘성, 절강성 등의 황해 연안 지역이 모두 동이 또는 구이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러시아 남방의 바이칼 지역과 알타이 지역 모두 한대(漢代) 무렵에는 북이(北夷) 또는 북적(北狄)으로 불렀는데, 산해경에서 말하는 쥐나대륙 북서쪽의 숙신(肅愼)과 백민(白民), 그리고 정령국(釘靈國)이 아마도 이 일대에 해당할 것입니다. 한무제(漢武帝) 이전에는 사실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거의 대부분 유목 민족으로서 수시로 나라를 이리저리 옮겨다녔기 때문에 두만강 유역에 근간을 두었던 숙신과 백민도 한대(漢代) 이전에 서쪽으로 이전하면서 서방에서 동진하던 백계 러시아(Belarus) 민족과 융합하여 알타이 일대에서 안드로노보(Andronovo)와 카라숙(Karasuk) 문화를 이룩하고, 그후 한대(漢代) 들어 현재의 바이칼 호반에 정령국이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고고학적으로 알타이와 바이칼 일대에서 발견된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과 유물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특히 알타이를 비롯한 시베리아 전역에서 발견된 모든 석조물과 돌무덤들은 모조리 선돌(立石), 돌널무덤(石棺墓) 또는 그로부터 파생된 둘레돌(護石, 環狀列石) 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들 유적 모두 만주와 한반도에서 성행하였던 고인돌(支石墓) 이후에 나타나는 유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고인돌은 한반도 황해도에 있었던 군자국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과거 북한학자들이 고인돌을 황해도 장산곶을 통하여 외지로부터 유입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유럽에서 공부하였던 도유호의 판단 오류입니다. 세계 고인돌의 70%에 해당하는 어마 어마한 무게의 한반도 고인돌들을 유입했다는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일본 학자는 구주에서 세계의 고인돌 양식이 비롯되었다고 말하여 이를 유럽 학자들이 받아들인 적이 있으나, 그의 주장은 자신들의 구주 고인돌만을 근거하여 아전인수격으로 말한 것으로, 지하의 남방식에서 지상의 북방식으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한 것인데, 구주 지역의 고인돌 분포가 한반도와 인접한 구주 북방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으로 여기게 되었습다. 고인돌은 영국 .인도 등 유라시아 지역과 아메리카 인디언 유적지에서 발견되었다. 세계 70%가 분포된 한반도가 고인돌 문명의 중심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면 정신이 나갔거나, 식민사관적 논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또한 알타이 일대에서 발견되는 모든 청동기도 사실상 은대(殷代) 청동기 이전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은대(殷代) 무렵에 요녕성의 동이와 섬서성, 감숙성의 서이의 영향으로 알타이 청동기가 형성되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즉, 쥐나문헌들을 보면 요동과 요서지역에서 급성장한 청동기 문명의 주역을 부여와 고구려의 직계 조상이 되는 예맥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예맥족의 실체는 당시 만주와 한반도 지역의 고인돌 문명의 주역들인 동이족과 융합하고 청동기 문명과 천제사상 등 고급문명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하여 단군조선을 건국한 단군족은 알타이산맥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여 동진해온 서이족으로서 단군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단군족이 이후 동방문명을 주도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군족도 결국 조상의 뿌리는 동방족입니다. 그리고 고인돌 문명의 주역은 단군족이 만주로 유입되기 전까지 곰족 등 만주와 한반도의 동방족이지, 동진해온 단군족의 문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단군족은 청동기 문명의 주역이였습니다. 이런 점을 쥐나의 사서와 각종 문헌에서도 누누이 말하여 왔는데, 즉 쥐나 화하족(華夏族)의 조상은 동이이며, 북이는 동이에서 파생되었고, 북방과 서방을 주름잡던 흉노족 또한 그 조상을 동이에 두고 있으며, 검(劍)은 만주 동이족인 치우에게서 비롯하였고, 그 후 칼(刀子)이 서이(西夷)의 수인씨(燧人氏)에게서 비롯하였다고 말입니다. 또 북이는 북호(北胡)와 북적(北狄), 즉 동호(東胡)의 후예를 뜻하는데, 동호는 한무제 당시 구려(句麗)에서 갈라져 나간 동이족을 말하며, 이런 과정이 여러번 거듭되면서 동호의 갈래인 돌궐(突厥)이 탄생하여 오늘날의 터어키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남한은 선사 시대에 어떤 역사가 있었을까요. 여러 문헌을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남한의 남해안은 쥐나대륙의 절강성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원래 일본의 구주(九州) 섬 북방과 함께 남이족(南夷族)의 동쪽 끝 영역이었다가 한반도 남해안과 중국 절강성, 일본 구주가 분리하는 시기에 단군조선이 세워지면서 요동(遼東)에 근거하고 있었던 단군조선에서 강화도(江華島)의 남이를 정벌하고 마니산(摩尼山, 摩璃山)에 참성단(塹城壇)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한반도의 남북이 합쳐져 북쪽 지역은 청천강 이북까지 단군조선이 영역을 넓히고, 남쪽 내륙은 단군의 후예들이 배달(倍達)의 청구국(靑丘國)을 이어받아 남쪽의 청구국을 세우게 되어 단군조선이 세워지면서 한반도가 처음으로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삼조선(三朝鮮)으로 확충되면서 북쪽으로는 요동의 진조선(眞朝鮮), 서쪽으로는 산동의 번조선(番朝鮮), 남쪽으로는 막조선(莫朝鮮)이 됩니다.
물론 북쪽의 만주에서는 단군조선이 망해가자 단군 왕실의 후예인 해모수(解慕漱)가 기자 후손들과 약속하여 유민을 모아 부여(夫餘, 北夫餘)를 세우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해모수를 단군이 아니라, 고조선 유민들의 의병장으로 설정한 mbc주몽은 고대사를 왜곡한 사극입니다. 그 후 서이족인 진시황(秦始皇)이 쥐나 내륙에서 동이를 몰아내고 강력한 통일정책을 펼치자 과거 중국으로 들어가 쥐나 각 지역에서 왕족과 귀족이 되었던 동이족들이 진시황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다시 한반도로 이주하여 귀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한에서는 이주민들에게 마한 동쪽을 떼어주어 진한(辰韓)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하였는데, 이 진한이 점차 성장하면서 마한에서 독립하여 신라(新羅)를 세우게 되었으며, 이들이 과거 대인국(大人國)의 후손이었던 변한(弁韓)과 가야(伽倻)를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자 신라의 김씨 왕조(김알지 왕조)에게 밀린 가야의 왕족과 귀족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 열도에 들어가 세력을 확장하면서 구주(九州)의 왜국(倭國)을 대신하여 일본(日本)이란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됩니다. 멸망한 백제왕족과 귀족들도 일본 열도로 이주하게 되고 이들 가야인들과 백제인들은 신라를 원수보듯하게 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관계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없이 한일 양국 모두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결코 근본적인 화해와 해결책이 나올 수 없습니다. 신라의 김알지 후손들은 백제계와 가야계인 일본 황실에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일본황실 또한 한반도 침략에 대해 사죄하고 일제하 피해보상을 해 주어야 진정한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에서 보면 소수로 신라건국에 참여한 흉노족 출신인 신라의 김알지 세력들은 피(유전자) 자체가 호전적이고 교활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유전자들이 아직도 그러한 자신들의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해 반성없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민족발전을 가로 막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래 흉노족이 단군을 호위하는 무사계층이라지만, 서진하였다가 동진해온 흉노족은 조금은 민족의 동질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러한 생존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사례:고구려의 남하에 대비하기위해 백제와 맺었던 100년간의 동맹도 먼저 파기하고 백제를 선제공격하여 신라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 까지 결국 원수지간이 되어 버림)을 가리지 않는 반 민족성을 유지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흉노족의 기원은 [한단고기]에 보면 단군에게 무례하게 반항하다 유배당한 '색정'이라는 신하인데, 그러한 기록만 보아도 상당히 '색정'이라는 사람은 호전적이고 무례한 기질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색정이 서방을 두려움으로 내 몰았던 흉노족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예의없이 건방진 사람을 '삭정이 같은 넘'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삭정이'는 흉노족의 조상인 '색정'을 의미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 때문에 과거 한국전쟁 당시에 남북 분리에 찬동하였던 일본 학자들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남쪽은 한(韓), 북쪽은 조선(朝鮮)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결과적으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는데, 이 당시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학파 가운데 식민주의와 사대주의 성향의 일부 학자들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진한(辰韓)과 신라(新羅)의 근본을 마한과는 근본이 전혀 다른 중국 바깥의 몽고, 알타이 또는 바이칼 인근으로부터 유입된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북방의 기마민족 대부분은 북이의 동호(東胡)와 말갈(靺鞨) 특징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으며, 따라서 가야와 신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기마 문화는 동호의 후예들이 남긴 흔적으로 볼 수 있는데, 흉노 등 동호는 원래 단군조선의 무사계층(武士階層), 즉 왕을 보좌하기 위하여 검을 받드는 귀족 출신이어서 그 후예들이 세운 가야와 신라는 무사 계층이 주도한 만큼 검과 더불어 기마족 특성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특징이 알타이 지역과 더불어 과거 서이의 영역이었던 감숙성 일대의 월지(月氏,月支)와 월지의 후예이었던 천산산맥 서쪽의 카자흐스탄 이색(伊塞, 이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동호의 근본이 구려이며, 구려는 다시 그 근본이 치우천황이 세운 신시 청구국에 있는지라, 이들 모두 그 뿌리가 동이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단군세기에서도 몽고(蒙古)의 조상('한단고기'-5대 단군의 동생이 몽고리 칸으로 임명)은 단군 초기에 동이로부터 갈라져 나갔다고 말하고 있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며, 고대 12한국영역을 복원하여 유라시아 대륙을 경영한 몽고리(몽골)의 징기즈칸도 한반도를 "무지개가 뜨는 나라"라는 의미의 '소롱고'라 하여 성스럽게 생각하여 징기즈칸 통치하에서는 한반도를 침범하지 않았고, 인도의 무굴 제국 또한 자신들의 문화 근원을 한반도로 말했었으며, 또한 아시아와 유럽을 함께 아우렀던 막강한 오스만 터어키 제국에서도 오로지 한반도 만큼은 자신들의 조상 나라로 확인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참고로 단군조선에서 나온 몽골이 한반도를 일컬어 ‘소롱고’라고 했는데, 소롱고는 서리국, 시라국, 아라국과 통하여 본래는 오랑캐를 뜻합니다. 쥐나인들이 동이족을 일컬어 불렀던 오랑캐의 본래 의미는 오색 무지개 빛에 둘러싸여 태초 인류가 된 것에서 비롯하여 무지개가 피어나는 나라를 일컫는 말이 되었는데, 무지개는 곧 금 또는 구리 금속을 뜻하여 결국 금(구리)이 변하여 사람이 된 것을 말합니다.
즉 오랑캐는 금성(金城) 또는 금국(金國)으로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신라(新羅)라는 말도 금국, 즉 쇠나라에서 비롯한 말로, 이 말은 처음 만주 하얼빈에 근본을 둔 진한(辰韓, 眞朝鮮)에서 비롯한 말입니다. 진(眞)은 진(辰)과 통하여 신(新)이 됩니다.
상고 문헌에서 말하는 부상(扶桑)은 지금의 금강산(金剛山)의 모체(母體)를 이루었던 청색 용암 기둥을 일컫는 말인데, 인류문명을 태동시킨 꽃같은 무지개가 바로 이 부상에서 피어나는 무지개 꽃을 말함입니다. 즉 처음에는 황해도에 자리한 군자국(君子國)에서 동쪽의 부상(扶桑)에서 피어나는 무지개 꽃을 무궁화라 불렀으며, 이를 후세에는 연꽃으로 불러 불교에서 이를 받아 들여 처음에는 무궁화를 연꽃으로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지금의 연꽃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되었고, 만주에서는 무궁화를 모란꽃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9158§ion=section78§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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