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정신을 극복하는 시
2024년 시애틀문학 신인문학상에 응모된 작품은 과거에 비해서 양적인 발전을 보였다. 협회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시애틀문학신인문학상 공모전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민 사회에 한글 문학의 저변 확대에 그 목적이 있음이 분명하다. 45편의 작품을 접하며 응모자들의 시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 시의 씨앗이 움트는 단계인 작품들이 많았다. 시에 관심과 열정이 습작의 인고를 견딘다면 이번에 시상에 들지 못한 응모자들 또한 장래 시인으로 우뚝 서리라 기대해 보는 바이다. 응모작 중에 김규원과 성유경의 작품이 단연 눈에 띄었다.
김규원의 “마음에 병”은 첫 행의 “흰 천 위에”와 셋째 연 첫 행의 “흰 천 위로”가 시의 실마리를 잡는 단어일 것이다. 시의 하단 부분에 “이제 어디 쓰이는지 모를 연장을 찾아 나를 고치죠”라는 문장이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시간의 장난”이나 “고장난 깡통” 같은 단어들은 시의 이미지에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없으므로 조심해서 써야 될 시어들이라 생각한다.
성유경의 블러드 문외 4편의 작품은 모두 현대 시 조류에 부합하는 좋은 시들이었다. 관념을 극복하며 팽팽한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진술과 신념이 독자에게 동조되게 만드는 수작이었다. 개인적으로 "floral tape" 이나 “식물원” “오버 밸런스”도 좋은 작품이라 생각이 들었다.
“블러드 문”에서 해와 달이 오버랩으로 등장한다. 해가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된다. 하늘에 늘 있어왔던 것들이 개기 월식같이 어느 날 사라진다. 누구에게는 사라진 달은 어머니가 될 수 있고 연인이 될 수도 있다. 응모자는 갑작스러운 부재를 경험해 보았는지 모른다. 해의 부재,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노끈으로 해를 떠서 겨우 하늘에 매달” 듯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동시를 응모한 이지영의 “겨울비”는 시애틀이 배경이 확실한 것 같다. 아침인지 밤인지 낮게 드리운 비구름으로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지낸다. 겨울을 지내는 동안에도 노란 장화를 신고 빗물 웅덩이로 가고 싶은 동심을 잘 표현하였다.
시가 어려운 것은 시는 결코 흑과 백의 이분법, 삼분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현대 시는 9분법을 넘어 10분법, 분열하는 현대 인간 정신을 통찰하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시간의 시련을 견뎌 내며 시대정신을 극복하는 시일 것이다. 수상하신 세 분 모두 읽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기를 기대하며 수상을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문창국(글) 윤석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