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고 가장 안타까운 말이 바로 "쌤, 그거 배운게 언젠데 아직도 기억해요"라는 말입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듯한 그 말... 절대! 당연하지 않은 일입니다.
흔히 수학공부에 '왕도는 없다'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왕도는 분명히 있으나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왕도처럼 느껴지지 않을 뿐입니다. 무엇을 하든 기초가 튼튼한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다루는 수학용어들 각각의 정의와 성질, 이것들이 개념이라는 것이고 수학공부에서 핵심이 되는 기초입니다. 정의를 정확히 암기하고 정의로부터 유도되는 성질들 하나하나에 대해 왜 그렇게 되는지 논리적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완벽하게 이해해내는 것, 이렇게 해서 개념중에는 단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수학공부의 왕도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매번 공부할 때마다 처음부터 배운데까지 다 보는 것입니다. 문제를 풀라는 것이 아니라 1단원부터 배운데까지의 모든 개념을 쭉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중에 배웠던 것이지만 생소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나 잘못알고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부분을 다시 읽고 고민해서 익히고 또 익혀서 완벽히 숙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개념서는 항상 가지고 다녀야합니다. 개념서 없이 문제지만 달랑 들고 다니는 것은 이 과정을 거쳐 모든 개념을 다 알게 되었을 때나 할 법한 행동입니다. 매번 이렇게 처음부터 보려면 단원이 넘어가면 넘어갈 수록 봐야할 양이 늘어나지만 그만큼 잘 아는 부분도 많아지기 때문에 소요시간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마치 한 번 봤던 책을 다시 읽을 때 훨씬 더 빨리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렇게 공부하면 앞쪽에 있는 단원은 그만큼 더 자주 봤기 때문에 까먹을래야 까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배운지 오래되서 기억이 안난다는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도 당연하다 말 한다면 그것은 지나간 단원은 복습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덧붙여 선생님이나 잘하는 친구, 혹은 답안의 풀이방식을 따라하거나 비슷한 문제를 풀어봤던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결국 외운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까먹게 되어 있습니다. 순수하게 자기가 익힌 개념들만을 이용해서 그때그때 직접 문제를 분석해서 주어진 조건과 구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찾아내려고 노력하십시오. 거기까지만 되면 심화문제가 아닌 이상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가닥이 잡힙니다. 이렇게 스스로가 풀 방법을 고민해서 풀어내기 전에는 다른 방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풀어 낸 다음에는 다른 방식을 참고하여 자신의 방법과 비교분석하시면 좋습니다. 여러가지 방법과 시행착오를 직접 겪어보고 효율적인 방법을 스스로 '체득하는 것'과 그냥 '이 방법이 효율적이다'라는 남의 말을 '들어서 아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이 과정이 힘들다며 피하려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계속해서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새 실력이 몰라볼 정도로 향상될 것입니다.
공부는 어디까지나 자기주도적으로 해야 재미도 있고 효율도 좋습니다. '생각'이란 것을 배제한 채 기계적으로 공부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엇을 배우든 '어떻게 푸는가'만 알려고 하지 마시고 '왜 그렇게 푸는가'에 더 치중하십시오. '왜'를 알면 '어떻게'는 자동으로 알게 됩니다.
일례로 우리학원에서 입학 상담시 고2든 고3이든 제가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수학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이차방정식 문제가 있는데 인수분해가 안 된다. 그래서 근의 공식을 쓰려는데 근의 공식이 기억이 안 난다. 이 때 어떻게 하겠느냐?"입니다. 중학교에서 처음 근의 공식이란 것을 배울 때, 그 원리를 완벽히 이해한 학생은 서슴없이 "완전제곱식 변형요"라고 간단명료하게 대답합니다. 반면 유도과정이 단순히 완전제곱식 변형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문자 그대로 과정을 달달 외워버린 학생은 말로 설명을 못하고 유도과정 그대로 길게 써서 저에게 보여주며 "이렇게요" 라고 합니다. 또한 최악의 경우는 "그럼 못 푸는 거 아니에요? 인수분해하고 근의 공식 말고는 모르겠는데요"라고 합니다. 두번째 질문 역시 간단합니다. "이차 방정식의 판별식이 어떻게 되느냐?" 이 질문에 대부분은 "b의 제곱 마이너스 4ac요"라고 답합니다. 이렇게 답하는 학생에게는 제가 이어서 질문합니다. '내 질문 속에 a,b,c는 없었는데 그 a,b,c는 뜬금없이 어디서 나온거냐?' 그러면 그나마 좀 나은 학생은 그때라도 a는 이차계수 b는 일차계수 c는 상수항이라고 덧붙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한 학생은 처음부터 "일차계수의 제곱에서 이차계수 곱하기 상수항의 4배를 뺀 값이요"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그럼 왜 하필 그 값을 판별식으로 할까"입니다. 제대로 아는 학생은 망설임 없이 "근의 공식에서 근호 안에 있는 값이기 때문에 그 부호에 따라 근의 종류가 달라지니까요"라고 답합니다. 반면 그냥 결론만 외운 학생은 아무리 시간을 줘도, '근의 공식은 근을 구하는 공식이다 거기서 잘 생각해봐라'라고 힌트를 줘도 대부분 찾아내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그 이유를 제대로 몰라도 관련 문제를 푸는데 큰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몇가지 질문만으로도 그 학생이 평소에 공부할 때 개념을 대하는 자세가 어떤지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세를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이후에 배울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자세를 취할 것이고 그리되면 개념숙지 즉, 수학공부의 기초공사가 매우 부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위에 무엇을 쌓든 언제고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불안한 나날의 지속입니다. 혹시 아직도 이런 식으로 개념공부는 부실하게 하고 문제만 주구장창 풀면서 다양한 유형의 풀이 방식을 익히는 학생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개념 위주의 공부로 바꾸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다양한 유형의 문제를 접하는 것은 그런 다음에 해야 효과가 좋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막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긴 글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이 글을 읽는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첫댓글 정말 공감합니다
수학을 자꾸 이해과목으로 몰아붙여 생긴 폐해이거나 중딩때 벼락치기로 내신만 따던 습관이 굳어지면 대책없죠 ㅡ.,ㅡ
왕도가 있지만 왕도같지않아 애들도 힘들고 가르치는 사람도 힘들뿐..
수학이 이해과목인건 맞죠. 다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알겠다'하는 수준의 이해와 수학에서 말하는 이해가 다를뿐이죠. 수학에서 말하는 이해는 원리를 '체득'하여 그 내용이 스스로에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판별식이 왜 그 값인지를 이해한 학생은 양수일 때, 음수일 때, 0일때의 결론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어지죠. 당연한 것이 되니까요. 제 생각에 수학에서 암기가 필요한 부분은 딱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정의를 익힐 때입니다. 약속이므로 암기가 기본이죠. 두번째로 공식암기인데, 공식없이도 풀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우선이고 그런 후에 단지 시간 단축을 위해 암기가 필요하다 봅니다.
공감합니다.
공감합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
정말 백프로 공감합니다
공감 백배!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주입식 교육과 평가 위주의 교육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이해했다라고 하는 것이 받아들여졌다 또는 문제가 맞으면 알겠다라고 하는거죠
이것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지금교육에서는 어느정도는 인정해야한다고 봅니다 외워서 문제를 맞추나
이해하고 문제를 맞추나 결과에선 차이가 없으니까요
모든아이들을 수학자로 만들수는 없으니 어느정도는 타협하여 지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단기암기로 때운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직면한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요? 수학교육의 목적은 학생을 수학자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능력을 갖춘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수능 잘 봐서 학력만 높고 생각은 없는 고학력 바보들이 넘쳐나는 이유가 바로 성적에 초점을 맞춘 근시안적 교육방식이고 교육자로서 가장 경계해야할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지식팔이 장사꾼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성적이라는 결과가 상품성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겠지만 교육자의 마인드와는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좋은 글 좋은 생각에 많이 반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