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바다를 가로질로 안좌, 팔금을 지나 수많은 섬들 사이를 지나면 비금도가 보인다.
비금도에 내리면 맨 먼저 해안가를 가들 메운 염전이 눈에 들어온다.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전 천일염전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비금도는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목포로부터 54.5km의 지점(동경 125。45", 북위 34。45")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암태.팔금.안좌면과, 서쪽으로는 흑산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연도교가 가설된 도초면과, 북쪽으로는 자은면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6개로 형성 되었고 해안선은 86.4㎞이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이,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쳐있다.
그 사이에 동서부 평야가 펼쳐있고, 북쪽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명사십리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오른 형상이라 해서 飛禽島라 칭하였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어 해안의 절경뿐만 아니라 내륙의 산들도 절경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섬 중 하나다.
세 바위가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이나 바위 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 색의 조화가 오묘한 바위들이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들 한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 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1946년). 그 이전까지 주을염전 등지에서는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1948년 4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 쿠데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 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국 소금이 수입되고 화학소금이 쏟아져 나와 옛 경기는 다 잃었지만 한때는"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비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진 원평해수욕장은 해당화 붉게 피고 고운 모래 해변이 십 리쯤 뻗어있다고 해서 명사십리로도 불린다. 더욱이 이 곳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시뻘건 태양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마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황홀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해수욕장 또한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비금의 용소와 몸섬 내부에 있는 기린봉, 떡메봉, 전통사찰인 서산사 등도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고서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32호로 지정된 칠발도 해조류번식지가 있으며, 역사적인 유적지로는 광대리 뒷산 용굴을 넘는 고개마루에 성치산성이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 이 성은 높이 12m, 면적 45.936㎡로써 주위가 130칸 되는 돌성이다. 1231년 몽고병이 침입하기 이전만 해도 성 밑에 마련된 넓은 땅에서 군사훈련을 하느라고 함성과 말발굽소리가 요란했다고 한다. 성치산 성지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오늘날까지도 성치산성의 맨 꼭대기에는 봉화대가 뚜렷이 남아 옛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성치산성 봉화는 옛날 우리나라의 서남해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곳으로 흑산 봉화를 받아 목포 유달산, 무안 삼향 왕산, 함평 옹산, 개성, 강화도로 이어졌으며, 이 곳에 봉정이 주둔했다고 한다. 이 성지의 남서쪽에는 용이 살다가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승천했다는 용소와 광대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비금의 민속으로는 밤달애놀이가 유명하다. 밤달애놀이는 망자의 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로 호상을 당한 상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밤샘을 하며 치룬다.
문의안내 : 비금면사무소 (☏061-275-5231)
서해바다를 가로질로 안좌, 팔금을 지나 수많은 섬들 사이를 지나면 비금도가 보인다.
비금도에 내리면 맨 먼저 해안가를 가들 메운 염전이 눈에 들어온다. 소금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비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전 천일염전을 시작한 곳으로 유명하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오른 형상이라 해서 飛禽島라 칭하였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어 해안의 절경뿐만 아니라 내륙의 산들도 절경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섬 중 하나다.
칠발도는 동경 125동 47분 5초, 북위 34도 47분에 위치한 섬으로 일곱 개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져 속칭 "일고바리"라고도 불린다. 해발 104m정도에 불과하여 밀물 때에는 7개, 썰물 때에는 8개의 바위봉우리가 우뚝 솟아 보인다.
바다 가운데 돌출한 경사가 60이상이나 되는 가파른 등대 섬이기도 하다.
섬의 둘레는 바위절벽이나 암석이 노출된 일부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키가 1m나 되는 모락풀이 자라고 있다.
이 곳의 풀과 나무들은 찾아드는 철새들에게는 먹이가 되거나 숨을 수 있는 장소가 되는 등 훌륭한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칠발도는 철새들의 이동경로 상의 출발지점이며 또한 철새들의 휴식지로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성치산성은 비금면 광대리 성치산에 위치한 석성이다.
고려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산성은 주위가 130칸되는 성으로 성축의 높이는 12m이다. 내외국 사신이 왕래할 때 성치산성에서 신호를 보냈고, 국가비상시 연락망이었다 라고 하며 성치산성이 봉수대를 겸한 성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진 원평해수욕장은 비금도 북쪽, 원평항 의 동쪽에 있다. 백사장 길이가 4.3km, 폭이 30m(간조 때는 1백m)로 웬만큼 눈이 좋은 사람도 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이 십리쯤 펼쳐져 있다 해서 명사십리라고도 불리우며, 특히 이 곳 모래는 그렇게 고울 수가 없고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것이 특징이어서 행여 점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곱고 부드럽다.
서산사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고려 후기인 1375년 (우왕 1년)에 내월리 선왕산 뒤편에 처음 세워졌었다는 구전이 전해질 따름이다.
이 외의 사적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으며, 주지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위축되었던 포교활동을 1898년 목포 개항과 함께 다시 시작하려 하였으나 산길이 너무 험해 1920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1955년에 세워진 대장군 장승으로써 50년대 어느해 마을의 젊은이들이 원인 모르게 사망하는 등 마을에 액이 겹치자 풍수지리에 밝은 이 마을 주민 전남균씨가 선왕산 숭애봉의 세찬 기 때문이라 해석하고 숭애봉과 마주보는 장승을 세우도록 주장하고, 주민들은 큰 바윗돌을 구해다 장승을 깎아 세워 앞산의 기를 꺾음으로써 액을 막을 수 있었다고 믿고 있다.
매년 내월리 마을에는 하누넘에서 불어오는 재냉기(재넘어에서 부는 바람) 바람으로 농사를 망치곤 하여 이 곳에 돌로 담고 쌓고 바람을 막아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하고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길이 40m, 높이 3m, 폭 1.5m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우실(마을의 울타리)이다.
주소 : 신안군 비금면 덕산리 87-1
대표전화 : 061)275-5231, 275-5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