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재 안무의 『목화 꽃 희게 피는 날』
목화, 이미지 의상사, 패션 2006 그리고 춤
2006년 12월 19일(화) 20일(수) 오후 8시, 동숭동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타 대극장에서 공연된 밀물현대무용단의 2006 서울시 무대지원작품 선정작 『목화 꽃 희게 피는 날,When the cotton blooms white』은 ‘목화의 과거와 오늘’을 따스한 이미지로 연결시킨 작품이다.
3장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 ‘목화’ 스키마는 문익점을 거쳐 천과 패션으로 이어진다. ‘춤 패션을 입다.’라는 카피는 랩(LAP, Line and Point)의 핵심들인 선과 점의 목화 이미지들을 전통방식과 현대를 섞어 따스한 ‘이불의 추억’과 카튼 필드의 서정을 팝콘처럼 튀겨낸다.
하이앵글로 잡히는 무대를 익숙한 시각관습으로 보면 탱글탱글한 과실들을 익힐 햇빛이 필요한 것처럼 세기(細技)를 빛내줄 뒷 스탭들인 테크니션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일(一)자로 빨려 들어옴은 공연이 은근히 재미있다는 것을 뜻한다.
손에 꼽을 수 없는 숱한 스타들의 현란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춤 테크닉은 일반관객들을 춤 팬(dance goer)으로 만들기에 제격이고 작품은 브랜드화될 조짐이 다분히 보인다.
이 작품의 매력은 우선 목화라는 친밀감 있지만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듯한 소재의 제자리 찾아 주는 작업이 설득력 있게 와 닿고 있다. 두 번째 어렵게 연습해서 쉽게 보여주는 전문 무용수들의 노련함과 무엇이나 소화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다.
도입부로 들어가면 의상 디자인실. 오버랩된 인터뷰 음이 현대를 알리면 디자이너(이해준)와 비서(박희진)가 가벼운 판토마임을 보여준다. 오늘의 목화의 쓰임이 보여 지며 다시 천연섬유를 쓰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스쳐간다.
류정재(리포터)와 허문선(모델)의 연기가 펼쳐지고 마침내 디자이너는 자연 친화적 소재로 목화를 선택하고, ‘우리민족이 목화를 얻게 되는 과정’을 패션쇼의 컨셉으로 정한다. 작업대에서 떨어진 하얀 실타래를 따라가다 보면, 목화/ 원 나라 사신 문익점 / 씨앗 세 개의 이미지화 작업과 연결된다.
신종철, 이보경, 곽지원이 각각 씨앗으로 역할 담당한 삼인무는 고난도의 테크닉 그레코로망으로 씨앗의 발화와 사멸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이중 하나의 씨앗만 살아남는다.
이 씨앗이 살아남아 실이 되고 천이 되는 과정은 김은희의 사인무가 맡아 천을 갖고 추는 춤의 서정과 환타지를 하이 키 조명으로 극대화 한다. 신비하고 순백의 이미지는 곧장 목화로 연결된다. 디자이너 김남희 (돌실라이 대표) 패션의 아름다움이 한껏 돋보이는 장면이다.
의상을 주조로한 시각적 비쥬얼과 춤의 필연적 조우는 무대를 품격있게 만들고, 안지홍의 창작곡은 대중성과 안정감을 줌으로써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역사의 한 모퉁이 구테타적 사실(史實) 하나가 남긴 깊은 철학의 정점, 문익점. 그에게서 오늘에 이르는 목화 대장정은 서사적 틀을 갖고 신화적 발화를 준비한다.
화학섬유는 자연 섬유를 짓밟고 혁명을 일으킨다. 이정화의 혁명군은 매캐한 포그와 공장을 상징하는 현대의 도회에서 블랙유희의 공간을 창조한다. 화학 천 의상 패션쇼는 거부 반응을 일으켜 다시 천연섬유를 찾는다. 인간의 심성마저도 바꾸어 버리는 화학섬유, 목화와의 천연덕스런 대비는 코믹을 유발한다.
우리의 무명천은 수수하지만 다시 빛을 얻는다. 테마가 있고 드라마트루기를 읽을 수 있는 이 작품은 양 손에 걸려있는 목화처럼 은은한 향을 풍긴다. 몸으로 사고하는 국내 정상 밀물 단원들이 문익점 대사에게 올리는 제의(祭儀),특히 패션쇼는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가득찬 것이었다. 다시 현대 도시 한가운데 힘을 얻은 솜 소재 개량한복은 힘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백색 충만한 『백조의 호수』를 보았고, 전통과 인접한 사물의 소리를 들었으며, 겨울 이야기의 긴 여정을 살필 수 있으며, ‘덩실 덩실, 덩 덩실’로 하나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목화, 소박하지만 포근하고 정겨운 옷, 춤이 증명하였다.
장석용(문화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