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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개벽: 최제우, 최시형, 이돈화, 김기전」 2. 두 가지 방법과 능동적 신비주의
이규성(李圭成, 1952-) in 한국현대철학사론: 세계 상실과 자유의 이념,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2, pp 39- (P.975)
종교적 체험을 현실에서 긍정적이고 역동적으로 보는 것은 신비주의의 한 형태이다. 다른 형태는 저세상에 귀의하는 것이다. 전자의 것은 현실의 삶에서 체험, 즉 지각과 기억을 동반하는 것으로 신체와 더불어 일어난다. 이러한 경험이 무극대도(無極大道)와 같은 극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어렵고 드물다. 그럼에도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플로티노스의 경험과 이론을 수용하듯이, 수운의 체험은 소중하다.
우리가 보기에 신비주의의 두 가지 길이 있다. 황홀경을 느끼는 것인데, 하나는 자기를 망각하는 망아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포함하여 자연을 그끼는 것이리라. 전자를 망가경(ex-tase)라하고 후자를 몰아경(en-tase)라 부르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는 영혼과 신체의 문제에도 연관이 있다. 신체없는 경지가 있는가 하면 신체와 더불어 경지에 이른다. 후자의 경우에는 삶이 먼저라는 점이다. (51T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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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자유와 현실 39
제1장 표현과 개벽: 최제우, 최시형, 이돈화, 김기전 41
1. 천명(天命)과 무극대도(無極大道) pp 41-61
2. 두 가지 방법과 능동적 신비주의 pp 61-67
3. 경험과 표현(表顯) pp. 67-83.
이돈화는 ‘수운주의(水雲主義)’가 갖는 무극대도의 무한한 포괄적 성격과 약동적 ‘표현’[(表顯)]의 활력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가 보기에 무한자로서의 무극대로는 최싱형의 언급대로 ‘약동불식(躍動不息)’하는 것으로서, 베르그송과 상통하는 생명원리였다. 그리고 그는 스피노자적인 만유재신론(萬有在神論, panentheism)에서 주장하는 내재성에 바탕한 사상으로 수운주의를 이해했다. (61)
이돈화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인민주권론과 크로포트킨(Peter A. Kropotkin, 1842-1921)의 상호부조론을 동학 정신과 일치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맑스(Karl Marx, 1818-1883)의 자본주의 비판을 수용하여 계급의식과 인도주의[humanitaire]를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문명의 후진성도 아울러 극복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실증주의적 사회공학까지 인류의 진보를 반영하는 가치들 안에 포괄했다. (61)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적 진화론은 ..제국주의적 성격 때문에 .. 이돈화는 그것을 제일원리로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펜서를 콩트(Auguste Comte, 1798-1857)의 실증주의와 함께 언급한다. (61-62)
이돈화는 그의 신인철학(新人哲學, 1930)에서 ‘수운주의’를 ‘범신관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언급하면서, 내재적 신(神)인 한울을 자연과 사회를 상승적으로 진화시키는 진화론적 원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그가 ‘시대정신’으로 파악한 과학과 물질문명의 진보를 수용하여 그것을 수운주의에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동학의 철학적 종교성과 자신의 역사 진보론을 균형있게 조화시키고자 했다. (62)
그 후 역사가들의 연구 태도는 .. 그러한 역자주의적인 태도는 삶의 의미를 역사의 진보적 발전에서 찾고자 한다. .. 따라서 무한자가 유한자 속에 현존(顯存)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직관적 경험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수운주의와는 언제나 긴장관계에 놓이게 된다. (63)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과 베르그송이 지적하듯 신비주의적 경험에는 현실에 개입하여 활동하게 하는 창조적 능동성[역동성]과 개방성[확장성]이 있다. 그들은 경험을 ‘능동적 신비주의’로 간주했다. (63)
한편 최제우나 최시형의 종교적 근본 경험을 역사적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개인적 내면세계에서의 체험으로만 다루는 주관주의적 태도 역시 동학의 저항적이로도 능동적인 사회적 실천을 간과할 수 있다. (64)
또한 영혼의 초월적 순결에 몰입하고 구체적 현실의 모순점들을 삶과 무관한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실제로는 현실에 기대어 살면서도 자신의 영혼은 순수하다는 자기기만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영적 주관주의는 외부세계를 버리는 영혼의 빈곤을 면치 못 한다.
영적 주관주의는 영적 체험만을 진리 검증의 기초로 보는 사실상 종교적 실증주의이다. 종교적 실증주의는 외부 현실을 무시하고 내면을 찾고자 하지만, 외부를 상실한 대가로 내면을 상실하는 역설에 봉착한다. (65) [내면을 상실한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내면이 초월성이 아니라면 내면은 과거의 총체로서 상실이 있을 수 없다. 외부는 현실적으로도 여러 면에서 상실이 있고, 외부의 극한으로서 상징은 경험이 아니라 논리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또는 초월로부터는 문제를 상실하는 위험이 있다.]
그러나 능동적 신비주의인 동학의 주체성은 밖으로는 비인간[비인격]화된 사회의 변혁을 도모하고, 안으로는 우주적 생명원리와 소통하는 인간 본연의 심층적인 심성의 세계를 경험한다. 또한 동학의 내면성은 그 약동(躍動)의 활력과 감응(感應)[공감]의 소통력을 외부로 표현[구현]하는 사회성을 갖는다. .. 동학의 근본[심층] 경험은 내면의 광대한 공간을 열어젖히고 삼라만상의 존재를 신성(神聖)의 조명아래 긍정한다. (65) [신성(神聖)의 조명아래 긍정: 불교의 화엄경에서 티끌에도 불성이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벩송에서 보면 자연(본성: 삼라만상)의 권능이 실재성이며 긍정이다.]
최시형이 체험한 근본경험은 실천적 능동성을 가지고 생명의 부정에 기초한 시대의 어두운 폭력에 저항하는 빛이었다. .. 새로운 개벽을 도래하게 하려는 실천성을 갖는다. 송(宋) 호상학파(胡湘學派)인 호적계(胡籍溪)[胡憲, 1086-1162, 호, 적계]의 이학적(理學的) 언어로 말한다면 동학의 철학적 구조는 “마음 본체를 밝혀 현실의 적용에 이르는 학(明體達用之學, 명체달용지학)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내면과 외면의 통일적 완성을 지향하는 내외합일의 길(內外合一之道 )이다. (65-66)
물론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닌 주체성과 객관성이 어떻게 일원적으로 통일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동학과 같은 사상들이 그러한 두 측면을 함께 갖고 있다면, 그 두 측면을 모두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 (66) [두 측면을 나누어 놓고서 결합하는 것은 언제나 부조리가 있다. 전제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관성과 객관성을 첨예하게 대립시키는 것은 유럽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에 기원하는 것으로, ... 현대인이 객관적 사물이라고 하는 것은 동학적 해석의 관점에서는 기(氣)라고 부르는 생명원리의 자발적 표현이다. 동시에 기(氣)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은 그 본원에서 동일하다. (66)
약동불식(躍動不息)[지속성, 영원성]하는 창조성이 하나의 심적 속성이라면 고체적 물질도 본질에서는 그러한 심적 속성을 내부에 지니고 있다. 물질도 의식의 흐름처럼 연속적 흐름의 성질을 그 내면에 간직하고 있다. (66)
또한 .. 내외합의 길은[,] 인간을 인질로 삼고 그 위에서 명령체계로 작동하는 ‘경제 본위주의’(이돈화)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들의 창조적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최제우, 최시형의 종교적 근본 경험이 갖는 생명 원리의 표현성과 개벽이라는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오늘의 우리에도 시대적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현존과 무한성, 무(無), 개방성과 연속성, 영원과 개벽, 역사와 시간 등의 개념들에 대한 이해와 해명을 필요로 한다. (66-67)
3. 경험과 표현(表顯) 67-83
최시형의 종교적 근본경험은 우주를 하나의 연속성을 지닌 살아있는 개체처럼 보는 것이다[생태계로 본다]. 이는 스승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험이자, 만유와의 우주적 연대성을 감응하는 공감의 방식으로 느끼는 것이다. (67) [연속성과 공감은 벩송과 유사하다. 연대성의 감응이란 상호침투라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돈화가 “인류와 기타 천지만유는 하나의 연쇄 위에 세워져 있는 신(神)의 자기표현(自己表顯)이다”라고 한 것은 최시형의 경험이 갖는 위와 같은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손병희(孫秉熙, 1861-1922)에 의하면 ‘세계’ 내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보전하며 인간성을 ‘표출(顯明, 현명)’하는 세 영역이 있다. 바로 “신앙과 철학과 제도”이다. 이 가운데 철학은 인간의 궁극적 ‘본성계[性界, 성계)의 영원성(久, 구)’과 ‘신변계(身界, 신계)의 유한성(暫, 잠)’을 나누어 추구하는 영역이다. .. 제도는 본성의 영성을 갖춘 ‘성령인(性靈人)’과 ‘육신인(肉身人)’을 합일시켜 ‘하나의 광대한 이상세계(一大素天圖, 일천소천도)’를 구성한다. ... 그러나 철학과 제도의 원천은 신앙에 있으며, “신앙은 사람이 한울(天, 천)에 다가붙어(粘着, 점착) 자기 있음을 잃어버리는(自有를 忘, 자유를 망) 것이다.” (67-68) [자기를 하늘과 일치시켜 자기를 잃어버리는 길을 망아(忘我, estase)의 길일 진데, 이는 유일신앙의 길이다. 신앙을 상층으로 만든 것은 문제이다. 사람이 자연 또는 심층과 하나 되어(沒我, 몰아, entase) 즉 온자아(Moi)되어 나와 자연의 일치의 작동과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 부처의 길이도 득도의 길일 것이다. - 있어도 있는 것 같지 않고 없어도 없는 것 같지 않다.]
신앙이 철학의 근거다 된다는 것은 종교적 근본 경험에 개념의 창조 및 그 의미의 원천이 있다는 의미이다. 형이상학적 사변은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비교종교학적 연구가 보여주듯이, 동서를 막론하고 궁극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 주는 “열매”에 근원하고 있다. .. 그러한 철학은 거듭나는 재생의 직관적 경험에 근원하기에 ‘두 번 태어나는 철학(twice-born philosophy)’이 된다. 손병희도 암시하듯이 신앙과 철학에 대한 인간론적 접근은 인간경험의 다층적[다질적] 차원 인정할 수 있다. (68)
사변으로부터 경험을 연역하는 것은 철학의 월권행위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대한 폭넓은 경험주의적 이해는 그러한 월권을 범하지 않는 이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68) [사변 대 경험, 의식 대 신체. 그런데 경험 또는 신체로부터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의식으로부터 신체 또는 경험을 규정하는 더 어렵다. 말하자면 토대는 경험론이어야 한다. 그 경험이 생명의 경험이며 실재적이고 기억적이고 유전적이다. (51TLI)
사변적 개념들의 의미는 종교적 직관에 연원한다. .. 카발라 철학과 같은 신비주의적 정서를 존중한 셸링(Friedrich Schelling, 1775-1854)은 우주에 대한 어떤 심연의 느낌에서 세계의 발생적 연원을 사유하는 철학을 시도했다. 그에 의하면 “.. 이 믿음은 이성과 사변보다 내적인 감정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였다. 성서도 우리가 신 안에 살며 신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의 확증과 담보를 자유의 의식 가운데서 발견하는 것이다” (68-69) [사변적 개념들(les concepts)은 논리적 극한에서 성립하는 추상의 직관이다. 상층은 종교적 직관이라기보다 기표이며 기호로서는 상징이며 언어로서는 메타적이고 명령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유의 활동과 작동은 심층적이며 느낌, 공감에서 나온다. 이것의 개념화작업(conception)도 개념이라고 하지만 표현이며 활용 기호(signe)일 것이다. (51TLI)]
신비가들의 사유는 “인간은 신[자연] 바깥에 존재하지 않고 신[자연] 안에 있으며, 그 행위 자체는 신[자연]의 생명에 속한다”는 것을 생활신조로 갖는다. 그리고 이것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탈출구’[탈주선]이다. 생의 궁극적 근거를 추구하는 종교적[자연의] 철학은 세계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 존재는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 우주의 무한한 근원에 대한 신비적 감각을 추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일 뿐이다. (69) [자연으로 바꾸면 벩송과 들뢰즈를 읽을 수 있다.]
신비가의 경험에서 현시되는 영원하고 무한한 궁극의 실재는 그의 삶의 양식을 결정적으로 전환하며 세상과 반대되는 위기의 삶을 살게 한다. 이 위험한[고독한] 여행은 기존 질서를 예속 상태로 보고, 새로운 미래의 삶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모험이 된다. .. 그들에게 근본적 사유는 언제나 스승의 경험이 갖는 영원한 의미를 회상[기억]하는 재음미의 사유이다. 회상적 사유는 과거의 결정적 순간을 [새로이] 반복함으로써 그것을 미래의 새것으로 만드는 창조적 활동이다. (69-70) [과거의 동일 반복이 아니라 이질 반복, 즉 확장 반복이다. 그것은 달리 살기, 달리 말하기, 달리 접속하기, 달리 되기... 즉 전쟁기계로서 리좀의 접속을 행하는 다양체이다.]
그러므로 근본경험의 신앙적 진리와 전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경험자에게 일어난 인격적 사건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 정이(程頤, 1033-1107, 호 伊川, 이천)의 주장대로 “성인을 관찰하면 우주를 이해한다[觀乎聖人 則見天地, 관호성인 즉견천지]” (70)
최시형이 계승하고 경험했던 ‘우리 도의 진리[오도진리]’는 최제우에게 일어난 결정적 사건과 결정적 시점(1860년 4월 5일 오전 11시)의 연장선에 있다. 이돈화의 보고에 의하면 여러 차례의 경험이 같은 해 9월 20일까지 지속된다. (70)
(1) 첫째 경험: 눈앞에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고 다만 무한한 허공에 찬란하고 휘황한 빛이 가득 차서 뛰고 동하고 번쩍 어리되 宇宙(우주)의 한 끝과 한 끝이 서로 맞당은 듯하며 한울과 땅의 뿌리가 서로 얽히어 온 천지 만물이 그 밑층으로부터 났다 꺼지고 꺼졌다 다시 나는 듯한 지라 대신사(大神師)[는] 이것이 영부(靈府)임을 알고 ...
... 우주의 편만한 광채는 “한울과 땅의 속을 뚫고 일만 물건의 가운데 통(通)하여” 있다. .. ‘한울의 말[天語, 천어]’로써도 계시하고 상징적 부적을 주기도 하는 인격적 한울은 약동하면서 내재하는 자연종교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또한 근원의 실재와 달리 만물은 그 안에서 생멸하지만 만물의 생성ㆍ소멸의 과정은 그 율동을 영원히 지속할 수 있다. (71)
근원 실재을 상징하는 영부의 도상(圖像)은 태극의 형상(∽)과 궁(弓)자를 연결해 놓은 것 혹은 궁(弓)과 을(乙)을 연결한 것 같다고 하는데, 실재의 약동적 리즘을 그린 것이다.
생명의 원리인 영부는 “천지만물의 생명”이다. 그것은 “사람의 죽은 혼을 산 혼으로 돌이키고”, “사회의 모든 죄악과 병폐를 다스리는 불사의 약”이다.
동학의 근본 경험은 그 종교적 정서 속에 장자(莊子, 전369?-전286)와 같은 생성의 철학을 담고 있다. .. 그것은 “혼융한 근원적인 하나의 생명력[混元之一氣혼원지일기]”이다. .. 근원적 생명이 최수운의 심정에 현존(顯存) 혹은 임재[降臨(강림)]한다.
그러나 ‘대각(大覺)’의 사건이 주는 심원한 의미가 최시형에게 전승된다. 그것은 그를 현존과 긍정의 거장으로 만든다. ... 장자莊子의 「大宗師(대종사)」에 의하면, 권력의 영광을 기뻐하거나 그 상실을 슬퍼하며 자아의 죽음을 자연의 변화와 연속하여 생각하지 못하고 탄식하는 관점은 ‘대몽(大夢)’이다. (72)
(2) 둘째 경험: 무궁(無窮)을 외고 무궁을 노래하니 천지 일월성신 초목금수 인물이 한 가지로 그 노래에 화답하여 억천만 리 공간(空間)이 눈앞에 있고 억천만 리의 시간(時間)이 눈앞에 있어, 먼 데도 없고 가까운데도 없으며, 지나간 시간도 없고 오는 시간도 없어 백천 억 무량수의 시간과 공간이 한 조작 마음속에서 배회함을 보았었다. (72-73)
이 경험은 “내 마음이자 곧 너의 마음이니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적 계시가 끝나는 ‘순간(瞬間) 갑자기’ 일어난다. .. 수운주의는 플라톤에서 볼 수 있는, 시간을 넘어선 무시간의 영원성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무궁의 시간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는 시간 자체의 끝없는 무한성이다. (73)
성리학적 어휘를 활용하자면, 개별 사물에 집착하는 삶에서 이탈하는 ‘태허(太虛)’에 대한 ‘열림[開闊(개활), 開放(개방)]’의 사건에서 드넓은 ‘공활세계(空豁世界), 진잠실(陳潛室)’가 경험된다. (73)
.. 만유는 하나이자 전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최제우]는 ‘궁극의 생명력[至氣(지기)]’을 ‘만물의 어머니며 생명’으로 이해하고 “전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74)
그런데 최제우는 영원무한자인 무극대도와 세계와의 관계를 사변적으로 추론해보았다. 그의 「불연기연(不然其然)」에 의하면 “각기 이루어짐이 있고 각기 형태를 가진[각유성 각유형(各有性 各有形)]” 만물은 이미 알고 있는 현상이다. (74)
그러므로 하ᅟᅵᆸ리적 필연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세계는 이성적으로 긍정되지 않는다. 친숙한 사물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견지에서 보면 세계는 긍정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먼 근원을 견주어 추구하면 세계는 거듭거듭 긍정될 수 없다. 하지만 세계를 조물자(造物者)에 의거해서 보면 그렇다고 긍정할 수 있고 그럴 만한 이치가 있게 된다.
是故亂必者不然 易斷者其然 比之於究其遠則 不然不然 又不然之事 付之於造物者則其然其然 又其然之理哉 (74-75)
윤석산의 「수운 최제우 연보」에 의하면 최제우의 이 말은 1863년 11월에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1860년 현존의 경험에서 이해한 무극대도에 대한 사변적 정당화를 시도한 말로 보인다. (75)
필연적인 존재인 신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존재 원인이다. 이로보아 우주론적 신 존재 증명이 나오는 17세기 마테오리치(Matteo Ricci, 利瑪竇, 1552-1610)의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최제우가 보았을 가능성도 상상[유추]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와 유사한 추리가 장자(莊子)와 열자(列子), 주희의 태극론(太極論)에도 나타난다고 한다면, 최제우는 전통 철학서에 대한 독서의 기억을 살려 무국대도의 존재를 합리적으로도 논증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75)
최제우의 무극대도의 논변은 그 논증에 의해 대도의 존재가 입증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이 경험에서 열린 세계는 생명의 뜻[春意춘의]으로 가득한 평화의 영역이다. 그의 「제서(諸書)」에 의하면 봄과 같은 긍정의 정신은 “마음의 조화(調和)롭고 몸의 기운도 조화로운 가운데 봄의 조화를 기다린다[心和氣和 以待春和 심화기화 이대춘화]. (76-77)
유병덕에 의하면 ... 불연기연 두 명제 .. 하나는 “이율배반의 세계풍광”을 ‘모순의 통일’로 귀결시키는 ‘조화(調和)의 철학’이며, 또 하나는 현실적 역사와 화해하지 못하는 “불연속적인” “불연의 심정을 경험함으로써” 그 부정적 불연(不然)을 “끊임없이 其然으로 돌리는 작업”이다. 후자는 ‘불연속의 연속’을 성취하려는 ‘역사철학적’ 의미를 갖는다. (77)
최시형이 열망하는 이념이란 .. 그[최시형]는 최제우에 의해 빛으로 경험된 ‘무극대도(無極大道)’를 ‘천령지령(天靈之靈)’ ‘심령지령(心靈之靈)’ ‘성령(性靈)’으로 이해하고[,] 빛과 표현(表顯)의 형이상학을 구성한다. 본체계는 “대우주, 대정신, 대생명(大宇宙, 大精神, 大.生命)”이며, “만물화생의 근본이다[萬物化生之根本]”. 이것이 기(氣)이며 “기는 현상계의 창조와 변화의 근원 본체요, 근본이다[氣者, 造化之元體根本也].” (77)
“기의 운행은 강건하여 쉬지 않으며 창조적 변화는 현묘 무위하다[氣運 剛健不息 造化 玄妙無爲 기운 강건불식 조화 현묘무위].” (77-78)
그러나 주희가 태허[(太虛)]라는 공활한 본원을 태극으로서의 이(理)로 본 반면, 최시형은 그것을 기(氣)로 본다. “기는 현상계의 창조와 변화의 근원 본체요 근본이다[氣者, 造化之元體根本也]” .. “기의 운행은 강건하여 쉬지 않으며 창조적 변화는 현묘 무위하다[氣運 剛健不息 造化 玄妙無爲 기운 강건불식 조화 현묘무위].” .. 본체는 “천지 우주의 절대 원기이고 절대 성령[天地宇宙 絶代元氣 絶代性靈]이다.” (78)
위대하도다! 천도(天道)의 영묘(靈妙)함이여. 일[事(사)]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사물[物(물)]에 있지[有치] 아니함이 없나니, 만상이 다 천도(天道)의 표현(表顯)이나라. (79)
천도는 스스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로서 자기를 [스스로] 표현하는 역동적 전개의 힘을 갖는다. [스피노자처럼] ... 최시형은 ..“심령(心靈)의 약동불식(躍動不息, 쉬지않고 약동함)하는 모습[形容형용]을 표상(表象)하여 시천주(侍天主, 한울님을 모심)의 뜻을 가르친” 것으로 이해했다. .. 손병희에 의하면 “우주는 원래 심령(靈)의 표현인 것이다[宇宙 元來 靈之表顯者 우주 원래 영지표현자]” (79)
우주는 일기(一氣)가 역사한 것[所事소사]이며 일신(一神, 하나의 神氣)이 동한 것[所爲소위]이라, 안전에 무수한 형상들[百千萬像]이 비록 그 형체가 각기 다르나[各殊 각수], 그 원리는 하나(其理一)이다. 하나는 곧 천(天)[한울]이니 천이 사물을 조직(組織)에 의하여 표현(表顯)이 각기 다르다[各殊]. (79)
원래 일자인 태극이 기의 다양한 응결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분량[量]으로 내재하여 개체의 본성[性]을 구성하게 된다는 견해는 이학(理學)에 익숙한 것이었다. “하나인 실재와 수많은 나누어짐[一實萬分 주렴계(周濂溪)]” “원리는 하나이고 나누어짐은 특수함[理一分殊, 정이천(程伊川)]”이라는 존재론적 구조 .. 그[최시형]에게도 우주는 “나누면 하나의 원리가 무수히 특수하고, 종합하면 하나의 기일 뿐이다[分則 一理萬殊, 合則 一氣而已]”. (80)
또한 정이천이 ‘생명원리[生之理]가 내재한 본성을 종자(種子, (穀性)곡성)’에 비유하듯이, 최시형도 내재한 한울을 종자[씨알]에 내재한 “종자의 생명[種子의 生命]”으로 이해한다. (80)
이러한 견지에서 최시형은 사물들의 차이 가운데 그 종성[種類, 종류]의 차이에 주목하여, “복숭아와 자두의 열매[挑實, 李實]”가 다르게 익는 것을 지적한다. ‘동일한 비에도 종자는 다르게 자란다’. (80)
‘한울 전체로 본다면’ 동질화는 종 내부의 ‘상호부조’를 이루게 하였고, 이질화는 “종끼리 서로 먹게 함으로서” “기화를 소통(通)시켰다”는 것이다. 이종 사이의 투쟁관계만을 보는 것은 좁은 견해[偏見편견]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우주는 ‘조화(調和)’의 관계를 형성한다. 영적 생명 원리는 모든 곳에 편재하기에 “각각의 개체는 서로 순응함이 있고, 조화가 있다[各各順應이 有하고 調和가 有하다]. (80)
... 그러나 조선 후기의 상황은 조직력을 가진 동학으로 하여금 물리적 혁명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결국 최시형은 혁명을 지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평화적 조화의 원리와 모순되지 않는다. 동학의 조화의 원리는 기존의 권력이나 사회와 조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양반과 평민의 분열과 제국들의 위혐에서 오는 고통을 극복한다는 변혁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81) [인민의 조화 또는 새로운 배치는, 상층의 논리적 위계적 조화와 달라서, 인민이 전쟁기계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든 제국이든 상층이 자기 유지를 위한 포획에는 인민이 접속을 달리하기에 탈코드와를 걸을 것이다. 그 시대는 동학이라는 코드가 있었지만, 21세기 촛불인민이 탈코드와를 걷기에는 배치와 접속이 매우 다양하여 시간이 필요하다. 제국으로부터 탈영토화가 아직 아니라 하더라도, 남북이 스스로 탈영토화와 재영토화의 길을 갈 역동성이 있다는 점이다. (51TLC)]
최시형은 바로 이러한 이학적 사고를 계승하고 있다. .. 개체들은 종적 차이를 보이면서 ‘우주의 마음[天地之心]’이자 우주의 기[天地之氣]‘인 “천지만물의 본래일심(天地萬物 本來一心)”을 체현하고 있다. .. 미세한 입자적 존재도 신령한 우주정신에 평등하게 참여하고 잇다. “위로는 일월의 큼과 아래로는 미진의 작음이 다 천도의 영광”을 표현한다. (82) [저자는 주염계와 정이 영향을 입은 것으로 이학적 사고라고 하였는데, 혹시 불교의 화엄에 대한 영향은 없었을까? - 억불정책이 심하여 불교가 인민들 속에 있지 못했을까?]
이러한 사상을 몸소 살았던 최시형은 ‘새 무리가 뜰 나무에 앉아 우는 것을 보고’ ‘천도의 영묘(靈妙)’가 ‘간섭(干涉)’하여 “밝게 임재하고 있는[照臨조임]” 것으로 직관하고 그것을 ‘시천주의 소리’로서 듣는다. 그 어떤 미미한 개체라도 자신의 내적인 신성한 영적 본성에 의해 우주와 연속되어 있으며, 그 본성에 의해 자신의 고유한 존재의의를 표현한다. 이 때문에 어떤 개체도 공경을 받는다. (82)
최시형은 시대에 대한 충성과 충돌을 점차 운명[天命]으로 받아들인다. 그는 세상의 불안과 희망을 시대의 ‘운수’로 겪어야 했다. 동학이 보는 시대는 무섭고 불안한 현실이다. .. 이러한 역사의 굴곡은 태초에 무극대도가 나타나 성장하다가 쇠퇴하고, 이제 다시 나타나 성장해가는 필연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82-83)
(11:16, 51TMC)
** 인명록
1824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1) 조선 말기 동학의 창시자, 천도교 창시자. 아명은 복술(福述), 호는 수운(水雲)이며, 본관은 경주. 동경대전, 용담유사
1825 이필제(李弼濟, 1825-1871) 1863년(철종 14) 동학에 입교, 이후 1871년 말까지 9년 동안 진천, 진주, 영해, 문경 등지에서 4번에 걸쳐 봉기를 주도하였다. 1871년 3월 10일(음) 전개된 영해봉기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 영해봉기에 대해 지금까지는 최시형과 연결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최근 연구에는 둘 사이에 밀접한 연결이 있었다고 한다.
1827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 1827-1898) 조선의 종교인, 교육자, 사상가이자 동학의 제2대 교주. 초명은 경상(慶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경상도 경주에서 출생하였다.
1857 김연국(金演局, 1857-) 강릉 김씨, 자는 치구(致九), 호는 구암(龜菴). 동학교단 3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농민전쟁에 참여하였고 상제교를 창시.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송암(松菴) 손천민(孫天民)과 함께 이른바 3암으로 불림.
1857 서우(曙宇) 전병훈(全秉薰, 1857-1927) 구한말의 사상가. 호는 성암(成庵)이고, 본관은 정선이다. 평안남도 에서 출생했다. 고종 29년(1892)에 의금부 도사, 대한제국 광무 3년(1899)에 중추원 의관을 지냈으며, 순종이 즉위하던 해(1907)에 관직을 버리고 중국 광동으로 건너가 정신연구에 몰두하였다. 도호는 현빈도인(玄牝道人)이다. 1920년에 저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이 출간되었다.
1859 박은식(朴殷植, 1859-1925) 일제 강점기의 학자, 언론인, 독립운동가, 교육자, 애국계몽운동가, 정치가. 자(字)는 성칠(聖七), 호는 겸곡(謙谷), 백암(白岩·白巖·白菴), 태백광노(太白狂奴), 무치생(無恥生)이며 본관은 밀양(密陽).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1861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천도교(동학) 지도자, 한국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밀양. 자(字)는 응구(應九)이며, 망명 중 사용한 가명은 이상헌(李祥憲), 최시형에게 받은 도호(道號)는 의암(義菴)이다.
1863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철종 14)-1916). 대종교(大倧敎)의 초대 교주·독립운동가. 본관은 금성(錦城). 본명은 인영(寅永), 전라남도 보성(寶城) 출신. 29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 1907 매국 대신 암살 기도, 1909년(46살) 중광절에 단군교 창시
박은식(朴殷植, 1859-1925)
1880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적 아나키스트, 사학자이다. 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丹齋), 일편단생(一片丹生), 단생(丹生)이다
1884 야뢰(夜雷) 이돈화(李敦化, 일제명: 白山一熊, 백산일웅, 1884-1950) 일제 강점기의 천도교 지도자, 사상가. 천도교 도호는 두암(豆菴)이며 아호로 야뢰(夜雷)와 백두산인(白頭山人)이 있다.
1894 갑오 농민항쟁(류종렬), 갑오 농민전쟁(朴宗根, 愼鏞廈), 갑오 농민봉기(노태구),
1901 씨알 함석헌(咸錫憲 1901-1989), 동경사범 출신, 박정희 유신에 저항한 재야 학자.
*** 연구자..
1925 최동희(崔東熙 1925–2013) 출생지 북청, 철학, 번역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928 임승국 (林承國, 1928-2001). 고려대 영문학과 출신으로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를 지내다 백제사를 고리로 한국고대사 연구에 나서 이른바 강단사학계와는 다른 길을 걸은 대표적인 재야사학자다. / 고려대 정치학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취득.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 숭실대 영문학과 교수, 명지대에서 한국 고대사 강의, 한국사학회 회장, 공군정신연구원 교수, 새마을연수원 교수를 지냄. / 둘 중애서 위가 정설일 것 같다.
1930 유병덕(柳炳德, 1930-) (퇴직) 원광대학교교수, 동양철학.
1931 신일철(申一澈, 1931-2006) 대한민국의 철학자,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 출생, 8·15 광복후 서울에서 성장. 독립운동가 은암 신언준의 아들인 그의 주체사상 비판으로 이름을 날렸다. 고대 철학과 학사, 고대 철학과 석사, 박사.
1937 신용하((愼鏞廈, 1937-) 제주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대학교수 독도학회 회장 수상2007 제3회 독립기념관 학술상 외 4건..
1937 황문수(黃文秀, 1937-) 경기, 대학교수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학력 고려대학교대학원 박사 42.
1938 황선희(黃善嬉, 1938-)는 「동학사상의 인본주의적 성격」 / 전 상명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 사회과학부 사학전공 교수, 학력 단국대학교대학원 사학 박사
재일사학자 박종근(朴宗根) (구마모토 대학) 갑오 농민 전쟁 연구자. 부산대 책 기증 / 朴宗根, 日淸戰爭と朝鮮, 靑木書店, 1982(朴英宰 역, 淸日戰爭과 朝鮮-外侵과 抵抗, 一潮閣, 1989). / 청일전쟁과 조선(박종근, 박영재역, 일조각, 1989).01.01
1940 김경재(金敬宰, 1940-) 한신대 명예교수 조직신학 / 최수운의 신개념, 한국사상 12, 한국사상연구소, 1974 / 金敬宰, 崔水雲의 侍天主와 歷史理解 -原始基督敎의 終末論的 신앙
1941 김영작(1941-) 동경대학 출신 국민대학 교수.
1943 구양근(1943-) 한국외국어 대학 출신, 성신여자대학 교수, 중국소설(청말견책소설)
1946 노태구(1946-) 경남 김해시, 고려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2006 민족통일학회 회장 외 2건.
1947 윤석산(尹錫山, 1947-) 한양대 국문과 고전시가(가사문학)전공, 동학 전문가. 동학 창시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모시는사람들 2004). 3대째 동학을 믿어온 교인이면서 수운의 포교가사집인 ‘용담유사(龍潭遺詞)’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동학 교리의 권위자.
1951 차옥숭(車玉崇, 1951-). 여 (퇴직) 한일장신대학교 교수, 비교종교학 (비교종교), Johann Wolfgang Goethe University 박사 /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 중국
369 장주(莊周, 莊子, 전369?-전286) 중국 전국시대 송(宋)나라 몽(蒙;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 중국 철학자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선인이 바로 남화노선이다. /명가(名家)의 혜시(惠施, 전370?-전310?)의 벗이다.
O
1011, 강절(康節) 소옹(邵雍, 1011-1077) 중국 북송 성리학자(性理學者), 상수학자(象數學者), 시인(詩人). 자는 요부(堯夫), 자호(自號)는 안락(安樂)이며, 강절(康節)은 사후에 내려진 시호(諡號)이다.
1017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중국 북송(960-1127)의 유교 사상가.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존칭하여 주자(周子)라고도 한다. 송나라 시대 유학의 형이상학적 사유는 주돈이에 의하여 시작되었다고 말해지곤 한다. - 신유학의 시초
1033 이천(伊川) 정이(程頤, 1033-1107), 자는 정숙(正叔)이고, 이천선생(伊川先生)이라고 불렀다. 북송北宋시대의 관리이자 이학가(理學家),
1086 호헌(胡憲, 1086-1162) 자는 원중(原仲), 호는 적계(籍溪)이다. 字原仲,號籍溪先生。南宋祟安(今屬福建)人。胡安國的侄子。生而靜愨,不妄笑語,從胡安國學習,又向譙定學《易》。紹興中期,入太學。紹興十三年(1143年)朱熹之父朱松臨終指定胡憲、劉勉之、劉子翬為朱熹的業師,朱熹自稱向胡憲學習最久。
1130 회암(晦庵) 주희(朱熹, 朱子, 1130-1200). 자 원회(元晦)․중회(仲晦). 호 회암(晦庵)․회옹(晦翁) 중국 송대(宋代)의 유학자. [이 회자는 회재(晦齋)이언적(李彦迪, 1491-1553)으로 이어진다.] / 주희(朱熹, 1130-1200) 중국 남송의 유학자, 어려서는 부친의 지기인 호적계(胡籍溪)[호헌(胡憲)]·유백수(劉白水)·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과거급제 이후에는 주돈이와 정호 등의 학통을 이은 ...
1610 황종희(黃宗羲, 1610-1695) 중국 명말 청초의 학자, 사상가. 저장성 위야오 현 출신이며, 자는 태충(太沖), 호는 남뢰(南雷)·이주(梨州)이다. 《宋元学案》
1794 위원(魏源, 1794-1857), 『찬평당송팔대가문독본(纂評唐宋八大家文讀本)』8권을 만들었다.
1811 증국번(曾国藩, 쩡궈판, 1811-1872) 중국 청대 말기의 정치가, 학자이다. 자인 척생(滌生, 디성)이라고도 불렸다. 태평천국군을 진압, 송학(宋學)을 중심으로 한 유교이념에 의해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데 몰두한 보수주의자이며, 또 정치적으로도 외국 근대 공업의 도입에 주력한 실리주의자였다.
1837 장지동(張之洞, 1837-1909), 중국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 유교적인 전통을 살리면서 근대화 정책을 취하였으며, 평향 탄광, 한양 제철소, 방직 공장, 생사 공장 등을 창설하였다. 저서로 《권학편(勸學篇)》, 《장문양공전집》
1840 아편전쟁(鴉片戰爭)은 19세기 중반에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다음과 같이 2번의 전쟁이 있다. 제1차 아편전쟁(1840-1842) 영국 측은 난징조약 체결과 홍콩의 할양, 광둥 이외의 다섯 항구를 추가 개항.
1851-1864)[15년간] 태평천국의 난: 홍수전 / 태평천국(太平天国, 1851-1864)은 중국 청나라 말기에 홍수전(洪秀全)이 세운 기독교적인 이념의 신정(神政) 국가였다.
1856 제2차 아편 전쟁(1856-1860), 일명 상선(商船) 애로(Arrow)호 전쟁은 1859년에 수도 베이징 근처까지 이르렀고, 1860년에는 황제의 별궁인 원명원(圓明園)을 약탈.- 이 약탈의 장소에 빅톨 위고의 상을 세운다고 한다.(43UMA).
1927 경희태(卿希泰, 1927-2017)四川省三台县人,中华人民共和国哲学家、宗教学家,中华人民共和国道教学研究的开拓者。中国道教思想史, 《宗教学研究》(主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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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 니콜라우스 쿠자(Nicolaus Cusa), (Nicolas Krebs, Nicolas de Cues, 1401-1464), 독일 철학자, 추기경, 교황 비오2세의 부제였다. 그의 자연에 대한 우주론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스콜라의 대안 중의 하나였다. 카시러에게 영향을 주었다.
1548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 도미니크 수도사, 이탈리아 사상가, 철학자. 10여년을 감옥에 회유과 억박에 시달리면서도 굴복하지 않은 서양사에서 전무후무한 유일한 순교자. 1600년 2월 8일 사형 선고를 받을 때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고 있는 당신들(그를 사형하려는 로마 교황청측)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고 전한다. - [전쟁공포를 심는 자본가는 인민의 트르와제르(trois R, 저항, 봉기, 혁명)를 두려워하여 가짜뉴스 가짜사실을 확대 재생산 한다.]
1552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중국어: 利瑪竇, 1552-1610) 로마 가톨릭교회의 사제,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호(號)는 서강(西江), 청태(淸泰) 존칭은 태서유사(泰西儒士)이다. / 천주실의(天主實義)는 루지에리 선교사가 1584년 저술한 《천주실록》(天主實錄)의 개정판으로서 1593년이나 1594년에 저술된 책으로 추정된다. / 이수광(1563–1628)에 의해 조선에 전해진다.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 리베리아 반도에서 온 유태인 가계의 출신으로 네델란드에서 활동한 철학자이다. 그는 그리스트교나 유태교가 지닌 유일신의 불변성과 독자적 고유성에 대해 부정하고, 살아있고 움직이는 자연 즉 신을 주장한다. 윤리학
1646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따로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새로운 논리계산(명제계산)을 발명하고자 했다. 단자론(1710)
1712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스위스 제네바 공화국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사회계약론자이자 직접민주주의자, 공화주의자, 계몽주의 철학자이다.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관념철학을 대표하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1775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 독일의 철학자. 자연주의 철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 독일 관념론의 완성자로 불리기도 한다(발터 슐쯔).
1798 꽁뜨(Auguste Comte, né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1818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유태계 가정, 독일 라인란트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 역사학자, 경제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맑스주의의 창시자.
1820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영국 출신의 사회학자, 철학자이다. 오귀스트 콩트의 체계에 필적할 대규모의 종합사회학 체계를 세워 영국 사회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1842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 철학자, 심리학자.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확립자 철학·종교학·심리학 등에 뛰어난 연구를 많이 남겼다. 1873년에 하버드 메디컬 스쿨의 해부학, 생리학 강사, 1875년에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
1842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A. Kropotkin, 1842-1921) 러시아 귀족 가계 출신,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운동가, 철학자였다. 보로딘(Бороди́н)이라는 가명으로 활동. 《만물은 서로 돕는다》(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1902)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폴란드 유대인 가계, 프랑스 철학자. 플로티노스 주의자라 할 수 있다.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출신 독일 철학자. 신칸트학파, 마르부르크 학파.
1875 언더힐(Evelyn Underhill, 1875–1941) 영국 카톨릭 작가. 평화주의자 이다. 종교와 정신적 실천 특히 크리스트교 신비주의에 관한 책을 여러권 썼다.
1875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
1894 보만(Thorleif Boman, 1894-1978), 노르웨이인,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Hebrew Thought Compared with Greek, 1954)[영어판 1960](허혁 옮김, 분도출판, 1975). [유태인인지, 교수인지 종교인인지 등에 관한 자료는 구글에도, Wiki에도 없다.]
1926 마트롱(Alexandre Matheron, 1926) 프랑스 철학자, 스피노자 전문. Individu et communauté chez Spinoza, Paris, Éditions de Minuit, 1969,
1941 쿠데트(Allison Coudert, 1941-) 미국 여성철학자. PhD from the Warburg Institute, University of London. University of California, 유대종교와 과학 사이 관계 연구. Leibniz and the Kabbalah,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