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그녀
각기 다른 사회가 채택한 상상의 질서는 서로 다르다.
인종은 현대 미국인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세 무슬림에게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았다.
중세 인도에서 카스트는 생과 사의 문제였지만 현대 유럽에서 계급제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 중 일부는 기원전 1200년경의 것으로 미래를 점치는 데 쓰인 갑골문이었다.
그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잇다.
"하오 왕비(은나라 중흥군주 무정[武丁,기원전1250~1192년재위]의 두 번째 왕비)가 아이를 낳으려합니다. 아들일까요?"
답은 이렇게 쓰여 있다.
"만일 정일(丁日)에 낳으면 길하니 아들일 것이다. 만일 그 아이가 경일(庚日)에 태어난다면 매우 길하다."
그러나 하오 왕비는 갑인(甲㝙)일에 아기를 낳았다. 갑골문은 시무룩한 기록으로 맺는다.
"3주일과 하루가 지난 후인 갑인일에 아기를 낳았다. 길하지 않았다 딸이었다"
그로부터 3천여 년 후 중국 공산당 정부는 '한 자녀'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즈음에도 많은 가정들은 여자아이의 탄생을 불길하다고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때때로 부모들은 갓 태어난 여자 아이를 유기하거나 살해했다.
아들을 낳을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주인은 아버지인 경우가 자장 많앗고 남편이나 남자 형제일 때도 있었다.
많은 법체계는 강간을 재산권침해로 다루었는데 ,
달리 말해 강간의 피해자는 강간당한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이란 뜻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적 제재의 내용은 소유권 이전이엇다.
강간범은 피해자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 신부 값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앗고
지불과 동시에 여자는 강간범의 소유물이 되었다.
성경의 규정은 이렇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그녀를 붙잡아서 동침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남자는 그 젊은 여성의 아버지에게 은 50세겔을 지불해야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신명기 22:28~29)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것이 타당한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어느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전혀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복잡한 거리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줍는 것은 도둑질로 취급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면 범죄가 아니었다.
사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었다.
남편이 된다는 것은 아내의 성을 완전히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는 말은 누군가가 본인의 지갑을 훔쳤다는 말처럼 비논리적인 것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고대 중동에서만 통용되던 것이 아니었고,
2006년 기준으로 53개국에서 아내는 남편을 강간죄로 기소할 수 없었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1997년에 이르러서야 강간법이 개정되어 부부간 강간이라는 법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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