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한국에서만 미역이 널리 소비되게 될 수 있었던 배경
미역은 바다에서 서식하는 미역과의 갈조류인 일년생 해초이다. 식물과 유사하지만 분류상으로는 식물이 아니라 원생생물에 속한다. 원시식물 또는 미생물과도 유사한 특징이 있다. 뿌리는 나뭇가지 모양이고 줄기는 둥글고 납작하다. 대체로 가을에서 겨울에 자라고 봄에서 초여름 동안에 물속을 헤엄치는 홀씨인 유주자를 내어서 번식한다. 여러 포기를 겹쳐서 펼쳐 길이 약 2m, 너비 약 15㎝ 정도로 만들어 햇볕에 건조해 보관 및 저장했다. 칼슘의 함량이 많고 흡수율이 높아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풍습이 있다. 자연산 미역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있다. 양식은 동해 남부 연안과 완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에서 성행한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은 30만톤 정도로 차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는 것으로 통계상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과잉생산되면 오히려 어민들이 손해를 입게 되므로 생산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며, 수요만 증가하면 생산량은 굉장히 증가할 것이다.
미역은 옛날에는 여러 포기를 겹쳐서 펼쳐, 길이 약 2m, 너비 약 15㎝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서 햇볕에 건조시켜서 보관 및 저장하였다. 요즈음에는 100℃의 물에 잠시 데쳐서 소금으로 주물러서 소금 절임으로 하여 저장하기도 한다. 소금 절임은 건조 미역보다 장마철에 변질하지 않아서 보장성이 높다. 미역의 이용은 쇠고기 · 홍합 · 광어 등을 넣어서 끓인 국이 가장 보편적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해산을 한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풍습이 있다. 미역에는 칼슘의 함량이 많을 뿐 아니라 흡수율이 높아서 칼슘이 많이 요구되는 산모에게 좋고, 갑상선호르몬의 주성분인 요드의 함량도 높다. 또한, 혈압강하작용을 하는 라미닌(laminine)이라는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으며, 핏속의 콜레스테롤의 양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다. 섬유질의 함량이 많아서 장의 운동을 촉진시킴으로써 임산부에 생기기 쉬운 변비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그리고 자극성이 적어 자극성 음식물을 기피하는 산모에게 매우 적합하다고 하겠다. 따라서, 해산날이 가까워지면 미리 미역을 사다가 놓는데, 이때 장사꾼이 미역을 그대로 주는가 꺾어서 접어주는가에 따라 순산을 점쳐보는 습속도 있다. 무기질, 비타민 및 섬유질성분, 점질성다당류, 아이오딘을 함유하고 있어 식용된다.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주로 이용되는 식품으로 한국 기록에는 고려시대인 12세기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중국 기록에는 8세기에 이미 한국 사람들이 먹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등 오래전부터 널리 식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산모에게 미역국을 먹이는 풍습도 있다. 한방에서 미역은 해채(海菜)나 감곽(甘藿), 자채(紫菜), 해대(海帶) 등으로 불린다.
미역의 이용에서 미역국 이외에 미역을 잘게 썰어서 장과 기름을 치고 주물러 무친 미역무침, 마른미역을 잘게 썰어 기름을 쳐서 간하여 번철에 볶은 미역볶음, 생미역을 손바닥 크기로 잘라서 고추장을 넣고 밥을 싸서 먹는 미역쌈, 마른미역을 반듯반듯하고 약간 잘게 썰어서 끓는 기름에 튀긴 미역자반, 잘게 뜯은 생미역에다 고추장 · 된장 · 고기 · 파 · 기름 · 깨소금을 쳐서 주물러 물을 약간만 붓고 끓인 미역지짐 등이 있다. 그리고 물에 빤 미역을 잘게 뜯어 양념한 고기와 한데 무쳐서 볶은 것을 냉국에 넣고 초를 친 미역찬국, 미역귀로 담근 미역귀김치 등의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동의보감에서는 미역의 약성에 대하여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무독하다. 속열을 버리고 혹의 결기를 다스리며 이뇨작용이 있다.”고 하였다. 미역국의 역사적 배경을 보면 당나라때 서견과 그의 동료들이 지은 백과사전 초학기에 “고래가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뜯어 먹어 산후의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을 보고 고구려 사람들이 산모에게 미역을 먹인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송나라때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에서는 ˝미역은 고려에서 귀천이 없이 널리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이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라고 나와 있다. 조선 헌종때 실학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산부계곽변증설에는 구전 전승의 기록에 ‘어떤 사람이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막 새끼를 낳은 고래에게 먹혀 배 속에 들어 갔더니 그 안에 미역이 가득 붙어 있었으며 장부의 악혈이 모두 물로 변해 있었다. 고래 배 속에서 겨우 빠져나와 미역이 산후 조리하는 데 효험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고려 시대에 이미 몽골에 수출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11대 문종 12년(1058년)에 곽전은 바닷가의 미역을 따는 곳을 하사하였다”라는 기록과 “고려 26대 충선왕 재위 중(1301년)에 미역을 원나라 황태후에게 바쳤다”라는 기록도 있다. 민간에서는 산후선약이라 하여 산모가 출산한 후에 바로 미역국을 먹이는데, 이를 ‘첫국밥’이라 하며, 이때 사용하는 미역은 ‘해산미역’이라 하여 넓고 긴 것을 고르며 값을 깎지 않고 사오는 풍습이 있다. 《동의보감》에선 “해채는 성질이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없다. 효능은 열이 나면서 답답한 것을 없애고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20세기 이후 양식기술의 발달로 가공품으로 많이 이용·수출되고 있으며, 국이나 냉국 혹은 무침·볶음·쌈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식용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한국에서 미역이 널리 소비되는 배경은 해조류 채취·가공 기술의 지역적 발전과 함께, 미역이 전통 식문화에서 생활 식품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동해안·동남해안에서 미역 채취에 쓰였던 동틀개 같은 전통 채취기구는 미역 채취의 확산과 지역별 소비 습관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기에 한국에서 미역 소비가 널리 퍼진 배경에 해조류 채취 기술의 지역적 분화로 동해안·동남해안에서 미역·다시마 채취에 동틀개가 널리 사용되며 채취량이 늘었고, 물이 탁한 지역에서도 채취를 쉽게할 수 있다. 즉 틀이는 수심이 깊거나 물이 탁한 곳에서도 미역을 감아 올릴 수 있어 채취 범위가 확대되었다. 지역별 명칭과 사용 방식의 다양성해 젔다. 강원도·경상남도 등에서 동틀개를 지역명(예: 왕틀개)으로 부르며, 지역 문화와 소비 습관이 형성되었다. 동틀개는 미역 채취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 지역 내 미역 공급을 안정화했고, 이는 가공·유통을 거쳐 식탁에 미역이 널리 들어가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현대 소비 패턴과의 연계되여 미역은 국(미역국)뿐 아니라 나물, 볶음, 튀김 등 다양한 형태로 조리되며, 한국 식문화에서 일상 식품으로 자리 잡아 소비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역 양식업은 우리나라 양식어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대표적인 양식어업으로 국민들의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수산물인 미역의 안정적인 공급을 담당하여온 어업이다. 미역은 과거부터 약방의 감초처럼 생일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온 수산물이며, 우리네 어머니들의 산후조리용으로 사랑받아 온 식품으로, 과거 우리나라의 산업이 크게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 외화획득에도 한몫을 하여 왔다. 미역양식업은 반농반어의 형태가 많은 어촌에서 뚜렷한 수입원이 없었던 겨울철의 농한기와 어한기에 영위할 수 있었던 수입원의 의미가 있다. 최근 들어 다른 수산업 분야와 함께 규모화가 이루어지고, 영세한 개인경영에서 가공과 유통 등을 망라한 영어 조합법인 등으로 탈바꿈하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역양식업은 그저 당연히 존재하는 어업에서 건강 웰빙 음식으로 국내외적 상황이 미역양식업을 현재의 상태로 지속하는데 각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