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신의 길
신성한 매실 758
깜짝 놀란 최림이 반문했다.
“확실해요?”
“네, 산 사람의 이마에도 어떤 숫자도 새겨넣었어요.”
“666이란 숫자?”
“네, 맞아요.”
최림은 코를 막고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새카맣게 그을린 시체가 떡하니 나왔다.
머리카락부터 몸까지 흔적도 없이 타버렸지만, 이상하게도 눈은 부릅뜨고 있었다. 최림은 이게 여의도 방화·살인 중 한 명의 시체라고 짐작했다.
코를 막고 있었지만, 시체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냄새가 풍겼다.
최림은 얼른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번엔 동굴 안을 살펴보았는데 벽면에 특이한 그림을 발견했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습니까?”
“교주님요. 그는 예언, 기도뿐만 아니라 문학, 그림에도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악령이? 쳇, 여러 가지 하네.’
특이하게도 벽화는 나름대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그려져 있었다.
마치 전두태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그린 벽화의 첫 그림은 불길 안에서 한 남자와 여러 여자가 혼음하는 장면이었다.
남녀 모두 사정 전, 절정에 이르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는 불타는 제단 안에서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뒤편에 유유히 흐르는 강이 있었다.
‘이게 뭐지?’
그림은 보면 볼수록 난해했다.
세 번째 그림은 어떤 산속에 누워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남자의 이마 위에 666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었고, 전체 산을 표현한 위쪽엔 천황(天凰)이라는 한자어가 쓰여 있었다.
‘666과 천황 즉 하늘의 제왕? 그렇다면 놈이 다스리는 나라는 궁극적으로 하늘이 다스리는 나라란 뜻인가?’
최림은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아 마지막 그림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었다.
마지막 그림의 주인공은 전두태였다.
이전까지 남자의 얼굴을 두리뭉실하게 그렸는데 이 그림은 누가 봐도 그가 틀림없었다.
전두태가 양팔을 뻗어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마지막 그림!
그의 후광은 불이 훨훨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 위에 있는 한자어는 ‘신(神)’이었다.
최림은 그림을 다 보자마자 어떤 환상에 빠져들었다.
놀랍게도 전두태가 마지막 화형의 대상이었다.
이 화형 거치대엔 십자가 모형의 형틀이 있었다.
전두태는 스스로 두 팔을 벌렸다.
이어 두 팔목에 못을 박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최림이었다.
사람들이 전두태가 죽는 것을 보느라 신경 쓸 여유가 없던 틈을 타서 벌어진 일이었다.
천년왕국 식구들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이때 김유리가 도저히 그대로 볼 수가 없어 단상 앞으로 뛰었다.
하지만 이내 천년왕국 신도들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다.
‘훨훨’
군중 속에서 누가 소리쳤다.
“전두태이다. 전두태가 죽어가고 있다!”
그제야 사람들이 놀라 화형 거치대 쪽으로 달렸다.
하지만 이런 그들은 김유리가 제지하였다.
“교주님의 뜻입니다.”
김유리는 타오르는 화형 거치대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전두태의 유언을 낭독했다.
‘신(神)의 길로 들어서기 위함이다. 슬퍼하지 말라. 다 이루었다.’
이제 그가 불타고 있었다.
그런데 못을 박고 난 최림의 눈에 기이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휴거?’
전두태의 몸이 공중으로 천천히 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최림의 귀는 환청으로 가득했다.
‘다 이루었다 …. 다 이루었다. …. 다 이루었다.’
‘아니야! 이건 꿈이야!’
최림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들었으나, 이곳은 불통이었다.
할 수 없이 여자에게 부탁했다.
“지금 당장 내려가세요. 가셔서 이 번호로 제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고 무조건 내일 점심때까지 이곳으로 오라고 하십시오.”
최림은 미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날 밤, 최림은 내일 있을 결전을 대비하였다.
먼저 가부좌를 틀어서 천하의 기를 모았다.
그런 후 그 옛날 무림 거사에게 배웠던 능력을 하나씩 재현하였다.
그건 첫째, 투시였다.
본채 밖에서 벽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안에 뭐가 있는지 다 보였다.
둘째, 순간이동이었다.
처음엔 제자리에서 50cm 이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5m 이상 이동이 가능해졌다.
셋째, 염력이었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아 처음엔 작은 병을 넘어뜨렸지만, 이내 장독을 부실만큼 강하게 되었다.
넷째, 검술이었다.
빗자루를 부러뜨려 목검을 만들었다.
처음엔 자신이 생각해도 소드 스컬러 초급이었는데 계속 연습하다 보니, 소드 익스퍼트 중급으로 기량이 향상되었다.
‘됐어!’
이 종합 훈련으로 최림은 자신감을 갖추게 되었다.
다음 날, 전두태 일행은 예상외로 점심시간 한참 전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아침인데도 앞마당에서 불을 피웠다.
그리곤 남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알몸으로 떼창으로 노래했다.
‘미친놈들 아냐?’
단 전두태는 피곤한지 별체에 들어가 있었다.
“때가 왔음이라. 온 세상 악한 자들이 불에 태워질 때, 천년왕국이 왔음이라. 태워라, 처단하라, 때가 왔음이라, 심판의 날이 왔음이라.”
하늘의 해는 마치 구슬 같은 쟁반처럼 떠서 마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김유리 일행은 다 같이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어제 기도가 잘 끝난 것처럼 보였다.
마당 중앙에는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주위 둘레에는 술이 있었다.
그들은 아침 술이라 그런지 꽤 과음하였다.
노래가 끝나자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잔에 술을 가득 붓고 김유리 앞으로 나왔다.
“천녕왕국 2인자에게 제가 한 잔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꺼억~”
옆에 있던 수행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왜요. 그날 여의도 방화 ·살인에 김유리 신도님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 조직의 2인자지. 하하.”
“2인자라 호홋! 지금 들으니 그리 기분이 나쁘진 않네요. 하지만 저는 2인자가 아니랍니다. 단지 교주님을 보좌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일뿐!”
김유리는 술에 취한 청년의 말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기려 했다.
그때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나머지 청년도 갑자기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고 김유리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우리에겐 님이 2인자이십니다!”
그제야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김유리는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자 제일 처음 술을 준비한 청년이 말했다.
“어제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꿈에 현 교주님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유리 님만 남아 우리를 다스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교주님이 안 계시면 유리 님이 우리의 지도자이십니다.”
그 말에 옛 민서라의 수행원이었던 자가 격노했다.
“그만들 해!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저리 교주님이 멀쩡하게 살아계시는데.”
“…….”
김유리도 머쓱한지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까지. 그만 안에 들어가서 식사나 하자!”
수행원이 신경질적으로 모닥불에 물을 부어버렸다.
본채 지붕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최림은 시계를 보았다.
11시 정각이었다.
‘너무 빨리 왔는데. 하. 이런!’
이제 놈들은 배가 고픈지 본채 옆에 딸린 식당으로 향했다.
최림은 김유리가 놈들과 분리되는 순간만 노렸다.
그녀의 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과연 김유리는 천상, 여자였다.
그녀는 식사 전에 야외 세면대로 향했다.
나머지는 이미 식당 안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최림은 지붕에서 그녀 앞으로 가볍게 날았다.
휘리릭~.
헉!
깜짝 놀라는 김유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최림은 얼른 세면대 앞 숲으로 그녀를 끌고 갔다.
“김유리! 잘 들어.”
“…….”
“넌 오늘 나에게 자수한 거다. 알았지? 네 언니 올 때까지 이곳에 있어야 해.”
최림은 그녀에게 입마개를 하고 얼른 나무에 묶었다.
‘음, 음, 음 …….’
“기다려. 금방 끝내고 올 테니.”
‘음, 음, 음 …….’
“시끄러워. 넌 잘 못 알고 있는 거야. 전두태는 사람이 아니라, 악령이거든!”
최림은 어서 미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식당 쪽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놈들은 먹는 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창문을 통해서 보니 J시 원룸 주인의 아들과 그 친구가 있었다.
최림은 이 둘도 김유리처럼 구해주고 싶었다.
자칫 전투가 벌어지면 그 둘이 죽게 되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최림은 그들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식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전두태는 별채로, 민채원의 수행원은 본채로 들어갔다.
다행히 원룸 주인 아들과 친구는 담배를 피울 요량으로 세면대 쪽으로 걸어갔다.
최림은 이때다 싶어 그들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곤 둘을 향해 실탄 없는 권총을 겨누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놀라는 데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장은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