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나온 시나위의 앨범이다.
이론과 청취자의 수준은 해외 유수의 대중가수와 연주자에게 맞춰져 있던 80년대 라디오에서 진짜 시끄러운 음악을 하는 20대 청년들이 나타났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인데 기성세대는 소리를 죽이며 '별 미친 음악! 이 있네...' 했지만 어떤 이들은 실황연주와 가까운 음반의 소리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사실 음반에 나오는 락그룹의 연주는 너무 정리되어 있고 가수위주의 목소리가 강조되다 보니 전주와 간주가 무시되고 베이스기타의 연주음이나 드럼의 킥! 심벌의 소리 그리고 기타의 섬세한 소리까지 듣기 어려웠다.
밴드의 음반을 만드는 과정은 솔로가수보다 더 복잡한 과정을 밟았으나 듣는 이의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제 연주를 듣거나 방송에서 실제 연주를 녹화했을 때 들리는 음악이 반주테입이나 립싱크의 공연보다 왜곡되어 들리고 그에 알맞는 음향이나 연주는 보기 어려웠다.
음반판매도 적고 그나마 숫자대로 나누면 수입이 안되고 공연장에서 공연을 해서 수입을 유지 하기 어렵고 결국 해체의 순서로 가는데 이들에게 군입대는 피하기 어려운 과정이고 제대 후 다시 음악을 하더라도 피끓는 감성을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팬들이 많은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다가 같이 늙어갔고 나이를 줄여가면서 활동을 했다.
또한 외국에서 온 음악이다 보니 비교가 되고 무시를 하기도 했으나 이들은 가요계 전반의 연주자들 그리고 제반환경 개선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지금의 다양한 교육기관 그리고 실용음악이라는 분야를 발전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시나위의 1집을 보면 외국음악을 흉내내고 따라 하다가 자신감을 갖고 나이에 비해 오래된 연주경력을 믿고 어려운 여건에서 저지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밴드를 이끌던 기타의 신대철 그리고 비슷한 시기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서너살 많던 가수 임재범 그리고 드럼의 강종수 ... 베이스의 박영배 키보드의 김형준이 함께 만든다.
1집이 영향력은 있었지만 2집에서 꽃을 피는데 이때는 김종서가 전면에 나서며 나머지는 다 교체된다.
1집 음반을 만들 때 녹음의 작업환경이 좋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 까? 생각하지만 거친 시나위의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또 다른 장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본격적인 메틀은 아니지만 청취자들이 듣기에 편안한 곡이라 생각하며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아마추어 밴드들이 연주를 했던 곡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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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및 음반
시나위 1집
f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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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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