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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 왕국의 고토 닝샤
둔황을 출발한 지 두 시간 반쯤인 22:10경 인촨 시내 상공으로 접어들었다. 기체 밖으로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조명들이 인촨시의 윤곽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도시를 관통하는 황허 건너편으로 활주로 조명등이 보이고 10여 분 후에 사뿐히 착륙했다.
'별들의 고향(星星之乡)'으로 알려진 닝샤(宁夏) 회족자치주의 성도 인촨에 발을 내딛었다. 기온은 21도로 반팔 셔츠 속으로 서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공항 근무자나 택시 기사 등 남성들의 몸집이 크고 목소리는 괄괄하여 중국 서북방의 결기가 풍겨 나온다.
고루(鼓楼) 부근 호텔("同福酒店")에 짐을 내리니 밤 11시 반이다. 늦은 시각까지 과일, 먹거리, 장신구 등을 파는 행상들이 띄엄 띄엄 자리하고 있는 숙소 지척의 너른 보행가 거리는 젊은 남녀 너댓 커플이 눈에 띌뿐 밤날씨처럼 썰렁한 파시 분위기이다.
여행 다섯째 날 아침을 인촨(银川)에서 맞는다. 긴 복도의 객실 중 벌써 퇴실을 한 몇몇 객실은 문이 열려 있고, 3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내려가니 투숙객들이 여기저기 식탁에 앉아 아침을 들고 있다. 아침 식사 메뉴는 기대 이상으로 다양하고 모두 입맛에 거슬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번 출행은 5박6일 일정으로 항공편, 렌트카, 야간열차 등을 이용해서 중국 서북지역 3개 성의 3개 성도를 포함해서 여허 곳을 한꺼번에 둘러보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은 여정이다. 마주 앉아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상하이로 돌아가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항공편을 오늘 날자로 바꾼 동행 Y의 결정은 십분 이해가 된다.
기실 이번 중국 서북 지역을 둘러본 일정은 내게 있어 '여행' 보다는 '탐방'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자료를 통해서만 듣고 보던 그 지역의 역사, 문화, 날씨, 음식 등을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탐방의 목적을 잘 달성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방문지별로 치밀하게 나누어 배분하고, 일정 내내 체력과 호기심이 바닥나지 않게 컨디션도 잘 유지해야만 한다.
동행과 함께 하는 출행은 플러스적인 요소도 많지만 마이너스적인 위험도 적지 않다. 출발 전 서로 막연히 주거지를 벗어난 미지의 곳을 둘러보고자 의기투합했지만,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출행의 목적이 '여행'과 '탐방'으로 갈릴 수도 있다. 또 서로의 관심과 취향이 달라 몇날 몇칠 시간과 동선을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 위기의 상황과 맞딱들일 수 있는 탐험대나 고산 등정대, 또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등에는 반드시 대장이나 선장이 절대 결정권을 갖는다. 이는 중요하고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의견의 분열을 차단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여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까다롭고 한편 고집스러운 면도 있는 사람과 이곳까지의 길고 먼 여정을 함께 해준 동료가 고마울 뿐이다.
오늘은 서하 왕릉군과 닝샤박물관을 둘러보면 부족함이 없는 일정이 될 것이고, 마지막 내일 여정은 느긋하게 마음 가는대로 따라가면 족할 듯 싶다. 어제 묵었던 창이 없던 방을 퇴실하고 다른 방으로 하루 더 예약을 마쳤다.
银川 城고속도로를 달려 허란산 남단 동편에 자리한 서하왕릉군으로 향했다. 웅장한 자연 풍경, 풍부한 역사 문화, 다양한 민족 풍광을 가진 깐수, 칭하이, 샨시(陕西) 등과 함께 닝샤(宁夏) 지역은 황허가 지나며 물산이 풍부하여 '서북의 소강남(西北小江南)'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강렬한 태양 광선 아래 도로변에 무성히 숲을 이룬 포플러 아카시아 등 수종의 나무들은 황량함 가운데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운전 중에도 여기저기 통화를 하고 메시지를 주고 받는 여성 택시 기사는 어릴 적에 허난성에서 부모를 따라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인촨에서 꼭 가봐야할 곳들 중 하나로 포도주 와이너리를 추천하지만 넉넉치 않은 시간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호텔 프런트에서 집어 들었던 접이식 안내서에는 이 지역 수많은 와이너리를 담고 있었다.
인촨(銀川) 시내에서 서쪽을 향해 40여 분쯤 달리자 이곳 사람들이 '아버지 산'이라 부른다는 허란(賀兰) 산맥이 탁 트인 평원 끝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저 산자락 암벽 어딘가에는 1980년 발견된 3000~1만 년 전 암각화 수천 점이 여전히 세월의 이불을 덮어 쓰고 있을 것이다.
서하(西夏, 1038-1227년)는 북송 시대 송나라 서북쪽에 있었던 티베트 계열의 탕구트(党项) 족이 세운 왕조로 1227년 칭기즈칸의 몽골군 침입으로 멸망했다. 인촨 서쪽 서하왕릉 유적군에는 서하 황제 일가의 무덤 9기와 순장된 신하 등의 묘 250기가 5만3000㎡에 달하는 평원에 펼쳐져 있다고 한다.
오전 열 시 반경 서하왕릉 여행자센터에 도착해서 88위엔 입장를 지불하고 '서하박물관(西夏博物馆)'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제1전시관은 약 200년에 걸친 서하의 역사, 역사, 교육, 법제, 주요 전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2전시관에서는 한자와 유사해 보이지만 다른 독자적인 서하의 자체 문자가 독특해 보인다. 서하가 중국을 통일했더라면 현재의 중국어는 서하의 문자가 통용되고 있을 것이라는 쌩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제3관은 주로 당시 성행했던 불교 관련 유적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도 간쑤성 과저우현(瓜州县) 남쪽 70km 지점에 위치한 유림굴(榆林窟)은 서하왕조 시대에 굴착된 석굴로 제274호굴과 제2호굴을 재현해 놓았다. 암굴 내부 형태와 벽화 실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한데, "중국의 복제 기술은 가히 세계 제일"이라며 감탄하는 동행의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4전시관은 서하 왕국의 경제와 생활상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도기 등 당시의 유물은 그럴려니 하겠지만 제지(制紙), 장기와 바둑, 장묘, 주조(酒造), 제염 등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에 대한 자료들은 어떻게 수집하고 고증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특히 이 박물관은 중국 다른 지역의 박물관 들과 달리 송, 요, 금, 원, 서하 등 이 지역을 지배했던 여러 민족의 왕조별 탑, 도자기 등 유물들을 사진과 함께 비교 설명해 놓은 전시 기법이 돋보인다. 2층은 시기별 도자기 유물, 주요 유적지의 발굴 보존 관련 전시관을 둘러보고 제5관의 서하왕릉 전시관도 훌쩍 둘러본 후 들어선지 한 시간 반만에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셔틀버스를 타고 허란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평원에 띄엄띄엄 자리한 서하왕릉을 탐방할 차례다. 박물관 밖 회랑은 그늘이 져서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좋은 통로다. 곧이어 셔틀버스 승강장까지의 지하로 놓인 이동 통로로 들어서자 냉기가 온몸으로 스미며 열기로 뜨거워진 몸을 순식간에 식혀준다. 이곳의 환경과 특성을 꼼꼼하게 관찰하여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건축가의 센스와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건축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릉으로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31인승 미니 버스에 올랐다. 좌석이 다 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왕릉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승객들을 실은 버스가 10여 분 간격으로 출발지점으로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리며 이마의 땀을 씻거나 손부채를 흔드는 모습이 바깥의 뜨거운 날씨를 짐작케 한다.
황량한 허란산을 등지고 얕은 쥐파먹은듯 초목이 듬성 듬성한 망망한 대평원에 흩어져 있는 왕릉은 토루처럼 보이기도 하고 평범한 흙무덤처럼 보이기도 한다.
달리는 셔틀버스는 족히 수 킬로미터 간격으로 산재한 왕릉 사이를 달리며 차내 스피커를 통해 이곳의 지형, 왕조 내력 등으로 짐작되는 설명을 쏟아낸다.
서하릉은 서쪽 하란산에 기대어 동쪽으로 인촨평원이 펼쳐진 배산면하(背山面河)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 10여 km, 동서 4.5km, 면적 50여km²에 왕릉 9기, 부장묘 271기, 건물터 1곳, 그리고 벽돌 가마터 여러 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버스는 왕릉이 산재한 인촨평원을 15분 여를 달려 서하박물관 남서쪽 '태릉(泰陵)으로 불리는 3호릉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서하왕릉예술관' 부근에 관람객을 내려놓았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사각 회랑 형태의 단층 건물인 서하왕릉예술관은 이계천 등 서하왕국의 역대 제왕들과 흥망성쇠의 역사를 실물 크기 인물상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예술관에서 3호릉으로 가는 길목 양쪽에 도열한 서하비림의 비석들을 지나자 허란산을 배경으로 3호릉이 위용을 드러낸다. 3호릉은 서하왕조를 개국한 경종 이원호(景宗 李元昊, 1003-1048년)의 능으로 묘역 면적은 약 15만 m²로 일부 훼손되었지만 규모가 가장 큰 왕릉이라 한다.
황토 진흙 등으로 쌓아올린 릉을 보호했던 외곽 건물은 파괴되고 없지만, 능원의 궐대(阙台)와 능대(陵台), 능성(陵城)의 신벽(神墙), 문궐(门阙), 각대(角台) 등은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양호하게 남아있어 천 년 세월을 무색케 한다. 역사는 남아 있지만 그 역사를 일으킨 민족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으니, 주인공 없는 역사를 대면하고 있자니 살아 숨쉬지 못하는 화석을 보고 있는 듯 씁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셔틀버스를 기다려 여행자센터로 돌아오니 오후 한시 반경이다. 너른 주차장 건너편 승강장에서 버스에 올라 인촨 시내로 향한다. 서북의 태양은 중천에서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다.
닝샤박물관
출행 마지막날 아침이다. 아침을 들고 호텔 옆 버스정류장에서 33번 버스를 타고 닝샤박물관으로 향했다.
닝샤박물관 앞 광장을 끼고 맞은편에 닝샤도서관, 안쪽에 닝샤대극원이 각각 위용을 자랑하며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 개관 시각 전이라 도서관을 둘러볼 요량으로 너른 계단을 올라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섰다. 다른 공공시설과는 달리 이 도서관은 출입시 신분 확인 등 절차 없이 프리패스다.
내부로 들어서니 족히 축구장 넓이와 맞먹는 큰 규모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채광이 되는 지붕 아래 홀을 가운데 두고 사방 열람실이 자리해 있다. 서가에는 각종 분야의 수많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너른 열람실에는 다양한 연령층 남녀들이 탐독하고 있다.
1층 한켠에 '서부미술관'이라는 현판이 걸린 공간이 자리하는데 왠만한 도서실 크기보다 더 커 보인다. 안으로 들어서니입구 옆에 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고 벽면에는 최근에 그린 작품들이 걸려 있다. 천천히 발을 옮기며 작품들을 한 점씩 찬찬히 감상했다.
짙은 무채색 계열 물감으로 나목을 그려 낸 <경관(景观)>, 거꾸로 선 사람과 손을 형상화한 <너 아직 괜찮니(你还好吗)>, 투박한 질감의 성곽 길 좁은 하늘 위를 날으는 붉은색 가오리연을 그린 <발월유한(发月留根)>, 깊고 험한 암곡 사이를 날으는 백색 군조를 담아 낸 <장행비가(长行飞歌)>, 포플러 숲 속에 양(羊) 세마리가 든 <동행(同行)>, 고양이 정물화 <일세(一岁)>, 황량한 들판 <시월(十月)>, 넓은 초원의 야크 떼와 유목민, 바구니를 목에 걸고 사과를 수확하는 처녀를 담은 치우예(邱野) 작가의 <소녀(少女)>, 청록색이 가득한 까오카이훙(高凯宏) 작가의 <연꽃(荷花)>, 소나무와 매화, 소수민족 여인과 야크를 담은 <인물(人物)>, 말 두 마리를 심플하게 담아낸 작품,...
벽면에 일정 간격을 두고 걸려 있는 채색화는 대부분 2000년 이후에 그려진 작품들로 중국 서북 지역의 풍광을 잘 담아내고 있다.
널찍한 화랑 내부에도 열람실처럼 책상과 걸상이 놓여 있는데, 젊은 여성 한 사람이 책을 펴고 앉아 있어 그녀 등 뒤쪽 그림에 대해 몇 마디 물어 보며 말을 걸었다.
공무원 시험 면접을 앞두고 있다는 그녀는 다른 열람실에 비해 이용하는 사람이 드물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더란다. 미술관 열람실 옆에는 차나 커피 숍이 구비된 열람실도 자리하는데 그 내부가 우리나라 왠만한 동네 도서실 크기와 맞먹는 규모다. 내부 몇몇 곳만 둘러보았을 뿐인데 들어선지 한 시간이 훌쩍 흘러버린 도서관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닝샤박물관은 남북 출입문이 있는데 관람객들은 대극원앞 광장을 사이에 두고 도서관과 마주보는 북문 대신 남문을 통해서 출입할 수 있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극원 관람객들과 뒤섞이는 혼잡을 피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니 투명한 원형 유리창으로 장식된 높은 천정의 대형 중앙홀이 맞이한다. 1층에 자리하는 '닝샤 암각화 전시관(石刻史书)'에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방대한 수의 각종 문양의 암각화와 탁본들이 전시되고 있다.
이 암각화들은 닝샤 후이족 자치구 인촨시 허란현 허란산(贺兰山) 동쪽 기슭 27곳에 총 19,752점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고대 인류의 방목, 사냥, 제사, 전쟁, 오락, 춤 등의 장면을 담고 있어 고대 인류 문화사와 원시 예술사를 연구하는 문화의 보고라고 평가된다.
사슴, 산양, 말, 맷돼지, 낙타, 호랑이, 물고기 등 각종 동물, 특정 부호나 문양, 태양, 얼굴, 춤을 추거나 싸우는 사람, 사냥 모습, 주술사(巫師), 제사 장면 등 그림의 주제가 매우 다양하다. 설명에 따르면 암각화 제작 시기가 어떤 학자는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000년 쯤이라 하고 다른 학자는 기원전 2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출토된 암각화 덩어리와 힘께 탁본을 함께 전시하여 암각화 내용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암각화들은 대상의 특징을 콕 찝어 내어 단순화하여 한눈에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어 옛 사람의 솜씨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탁본을 해 놓은 암각화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사실성이 돋보여 현대 회화에도 결코 뒤지지 않아 보인다.
전시관 벽면을 자연 암벽처럼 조성하여 암각화 유적에 대한 설명을 벽면에 새긴 점이 전시실의 주제와 잘 매칭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곳에는 태양신, 손바닥, 사람 얼굴 등 문양이 한꺼번에 많이 발굴되었는데, 이들 암각화에는 아래 태양신 문양에 대한 설명처럼 그럴듯한 해석을 덧붙여 놓은 것도 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세상에 범람하고 죽음이 산길을 뒤덮고... 그들은 태양의 영혼이 그들과 함께한다고 굳게 믿었고 더 이상 죽음과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높이 1.3m, 길이 2.2m의 거대한 소 암각화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몸은 두 개의 칼 같은 뿔 치켜든 꼬리와 머리로 포효하며 불운과 악령을 물리치는 능력을 표현했다.
소의 전체 윤곽은 이중선, 등 부분은 3겹의 선의 현대 입체주의 기법이 적용되어 소가 점점 더 크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편 배 속에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4마리의 송아지를 그린 것은 다산의 열망을 상징한다."
허란산 암각화를 접하니 우리나라의 반구대(盤龜臺) 암각화가 떠올랐다.
1971년 울주군 반구대에서 발견된
암각화에는 7종 75점에 달하는 고래를 비롯해서 호랑이, 사슴, 산양, 멧돼지, 늑대 등 동물 22종을 포함하여 총 353점의 그림이 등장한다고 한다.
러시아의 암각화 학자 니콜라이 보코벤코는 반구대 암각화를 두고 "삼성 브랜드와도 맞먹는 가치가 있다.<2018.1.9일자 부산일보 4면 인용>"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란산 기슭 광대한 암벽에서 발견된 2만여 점에 달하는 방대한 이 암각화들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해야할 지 가늠할 수 조차 없을 듯 싶다.
기획전시실에는 '우시(无锡) 근현대 명인전'이 개최되고 있다. 장쑤성에 소재한 우시의 작품들이 중국 서북의 변방인 닝샤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은 중국 내 지역간 문화교류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옆 '호산호수 입아수(好山好水入我手)' 주제의 전시관에서는 청나라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시기의 산수화, 화조도 등 족자와 부채 그림 등 전통 수묵화와 채색화들을 감상했다.
혁명의 깃발 등 강렬한 붉은 색이 두드러진 공장도, 식수도, 추경 돌격대, 여성 청소부 등 정치 선전화와 함께 어약도(魚躍圖), 매화도, 인장, 서예 작품, 죽공예품 등 전시품도 구색을 맞추고 있다.
박물관 2층으로 올라 '공산당 혁명관'을 건너띄고 '닝샤 통사 진열관'만 둘러볼 작정인데 어디가 관람 시작점인지 알 수가 없다. 흰색 제복에 모자를 쓴 안내원에게 묻자 그녀는 복도를 따라 족히 100미터를 함께 걸어서 반대 방향 진열관 입구까지 안내해 준다.
닝샤통사진열관은 '삭색장청(朔色长天)'이라는 표제 아래 마가요(马家窑), 앙소(仰韶), 제가(齐家), 채원(菜园) 등 기원전 4만 년경부터 시작된 선사시대 여러 문화의 유적지와 유물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주요 유물에는 채색 도기, 각종 옥 제품, 묘장품 토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계속해서 기원전 11-8세기 융족과 서주의 대립(戎周争雄) 시기 때의 갑옷, 무기, 전차, 장신구 등 유물이 발굴된 야오허위엔(姚河塬) 유적지, 진한 시기 이 지역 만리장성 축조, 흉노족의 천거, 당대의 비단길, 위나라에서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130개의 수미산 석굴, 둔황 막고굴, 당나라 시기 무덤 출토 인물상 등의 역사와 유물 소개가 이어진다.
서하(西夏) 왕국 전시실에는 서하 왕조 연표를 시작으로 서하의 고유 문자, 목조 인쇄판, 서책 제본 기술, 석각품, 도자기 등이 소개되고 있다. 특히 1977년 서하릉 지구에서 발굴된 길이 120cm, 폭 38cm, 높이 45cm의 청동 소는 균형잡힌 비율, 매끄러운 선, 사실적인 형상 등이 서하의 높은 주조 기술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팔괘 동종, 불경 목활자본 등 유물은 서하에도 불교 뿐아니라 도교 등 다양한 신앙 활동이 성행했고 인쇄 사업도 활발했음을 짐작케 한다.
'천하황하 부닝샤(天下黄河 富宁夏)' 표제 아래 민속 복장, 주거지, 지역별 인구 분포, 농경과 목축, 가재 도구, 거리 모습, 양피 배, 고유 음식, 절기별 풍속, 예절 풍속, 농민화 등 민속회화, 건축과 조각 등을 소개하는 3층 '닝샤 민속진열관'을 끝으로 닝샤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닝샤를 비롯한 중국 서북지역은 한족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이 오랜 시간 서로 세력을 다투고 문물을 교류하며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다. 그러니 만큼 닝샤박물관은 중국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이 지역에서 융성하고 스러져간 다양한 민족 여러 왕조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 유적을 접할 수 있어 좋았다.
오후 한 시경에 호텔로 돌아와서 짐을 프런트에 맡긴 후 출출한 배를 달래기로 했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는 입 안을 바짝 마르게 하고 호기심과 의욕을 짓눌러 꺾는다. 호텔 맞은편 편의점에서 로컬 맥주('西夏啤酒') 캔 하나를 사들고 그 옆 '컨더지(肯德基, KFC)'에서 치킨을 안주삼아 5박6일 여정을 갈무리해 본다.
택시를 타고 시 중심부 동쪽 황허 건너편에 자리한 인촨 허동(银川河东) 공항으로 향했다. 여느 지방 공항처럼 허동 공항에서 상하이로 가는 남방항공 비행기도 출발 시각 보다 한 시간여 늦게 이륙했다.
몸은 고단하고 '별들의 고향' 닝샤의 밤하늘 별들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중국 '서북의 강남'에서 남쪽 상하이로의 귀로는 은하수(銀河水)를 따라 가는 길이니 자못 낭만스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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