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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명학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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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문화 스크랩 [不遷位] 安東 47位 불천위
혜명 추천 0 조회 358 17.11.17 19:2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安東 47位 不遷位(불천위)

안동지역 不遷位 祭祀의 제도와 관행의 틈새

[출처] 안동문화콘텐츠 김영순 안동대 교수

 

먼저 불천위를 성씨별로 구분한다. 이것은 안동에 세거한 주요한 씨족들을 이해하는 데 큰 보탬이 된다. 이들 선조의 세거지와 각 씨족들의 동성마을을 이해하는 것에도 정확한 단서를 만든다. 무엇보다 역사적 시기와 사회적 관계는 한결 가볍게 접근할 수 있다.

 

불천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정 기간 안동지역에서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각 씨족간에 1가 있는 성씨는 모두 11씨족인데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능성구씨 : 백담 구봉령

봉화금씨 : 성성재 금란수

안동김씨 : 보백당 김계행

흥해배씨 : 임연재 배삼익

원주변씨 : 간재 변중일

전의이씨 : 난졸재 이산두

고성이씨 : 청옹 이후영

안동장씨 : 경당 장흥효

청주정씨 : 죽간 정두

횡성조씨 : 월천 조목

진주하씨 : 단계 하위지

 

2가 있는 씨족은 3성씨로 광산김씨영천이씨 한산이씨이다.

광산김씨는 군자리의 일대에 사는 예안파가 주류를 이루는데 계암이 여기에 속하고, 풍천의 담암파와 유일재가 파조가 된 유일재파가 있다. 유일재와 계암은 방계의 족친간인 셈이다.

영천이씨의 불천위로 예안에서 서로 마을은 다른 곳이나 이간재는 이농암의 증손이다. 소호리에 세거한 이대산은 이수은의 현손이다.

 

풍산 오미리에 가세를 편 풍산김씨에는 불천위가 3이다. , 죽봉 김간, 유연당 김대현, 허백당 김양진이다. 허백당의 증손이 유연당이고, 죽봉의 고조부가 유연당이다.

 

안동지역에서 씨족이 가장 번창한 안동권씨는 모두 고려 개국공신 권태사공의 자손인데 15파로 나뉜다. 4의 불천위는 부정공파의 권등암과 권송소 및 임하지파에 속하는 권이우당과 복야공파의 권병곡으로 구분된다.

 

한 씨족에서 5인 성씨는 3족속인데, 풍산류씨전주류씨 의성김씨이다.

풍산류씨는 5위가 모두 당내에 들어간다. 류귀촌은 류입암의 종동생이고, 류겸암과 류서애는 형제간으로서 류입암의 자제이며, 류파산은 겸암과 서애의 종숙부이면서 류입암과 종동생이다. 그러므로 류입암과 류귀촌 및 류파산은 종형제간으로서 류입암이 맏형인 셈이다.

전주류씨는 모두 임동면 수곡리 무실에서 터전을 마련한 기봉(復起)의 후손이다. 류백졸암은 5인물 가운데 앞 시대의 사람이고 안동의 무실류씨를 일군 기봉공의 손자이다. 류삼산은 화산오룡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손자가 류호고와이다. 류정재는 증숙조인 류동암(長源)에게 학문을 익혔다. 류동암은 조선 후기에 안동의 예서를 집대성한 "상변통고"의 저자이다. 류용와는 奉侍의 아들이다.

의성김씨는 3위가 3대에 걸친 祖孫間이다. 김청계의 4가 김학봉이고, 김청계의 손자가 김운천인 셈이다. 김제산은 김청계의 증손인 김표은의 증손이다. 김표은은 병자호란 후, 임하댐의 건설로 이미 수몰된 길안 용계리의 도연폭포가 있는 곳에서 은거하면서 와룡초당을 짓고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그 선비의 군자다움을 일러 후세에 숭정처사(崇禎處士)’ 불린 사람이다. 하지만 김구와는 위의 4위와 함께 모두 원사공파의 후손이나, 오우당()의 후손이다.

 

마지막으로 진성이씨 내에는 8의 불천위가 있다. 이들을 가장 쉽게 구분하면 이퇴계의 선조와 후손과 방계친으로 나뉘어진다. 진성이씨 선조 중에서 가장 상대에 속하는 이정(尊諱)3이노송정, 이정공의 손자이자 이퇴계의 숙부인 이송재, 이퇴계의 중형 이온계, 이노송정의 손자이자 이정의 증손인 이퇴계, 이퇴계의 손자 이동암, 이송재의 5세손인 이반초당이다. 이반초당은 고성이씨 이청옹이 외조부가 된다. 그리고 이후산은 이학천(奉春)의 후손이고 이덕삼(德三)의 아들이다.

 

특정한 씨족 가운데 여러 불천위를 모신 경우는 각 위간에 부자와 손자, 증손의 관계뿐만 아니라 당내간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대부분이 한 선조의 후손으로 세대 몇 세대를 비켜서 다시 가문의 문호를 열기도 한다.

 

不遷位配位

 

불천위의 배위는 혼인으로 연결짓는 처가와 외가 및 매가(妹家)의 관계를 파악하려 하는 것이다. 안동지역의 각 가문에서는 세대의 수를 올라가면 조상의 외가를 알고 그들과 관계하는 것을 예절로 삼고 있다.

 

특히 4대조상의 외가를 구분하면 여성과 관계하는 것으로, 어머니의 친정은 나의 외가이고, 할머니의 친정은 아버지의 외가로서 나의 진외가이고, 증조모의 친정은 아버지의 진외가이며, 나의 증외가이고, 고조모의 친정은 나의 선외가가 된다. 그 다음으로서 숫자의 세대로 구분하여 5대조, 6대조, 10대조, 15대조 외가로 올라간다.

 

특히 불천위가 있는 종가의 경우, 배위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종가의 자손은 불천위로 삼은 할머니의 친정으로서, 그 자손과 외척의 연비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15대조 외가’, “불천위인 00할매의 외가에서 왔다고 이야기한다. 본인과 아버지의 처가이고 자신과 자식의 외가의 경우를 통틀어 연사가라고 한다. 이런 관계로 맺은 친척을 연비일가라 한다. 불천위가 있는 종가에서는 대체로 배위의 자손과 아직도 내왕을 한다. 평소보다는 주로 집안의 대사가 있을 경우인데, 그것은 초상, 길사, 불천위와 관련되는 일이 생겼을 경우에 연락을 닿게 한다.

 

또한 불천위 제사가 있는 날에 참례하기도 한다. 이들이 오면은 가장 큰손님으로 접대한다. 불천위의 배위는 자손을 번성시키고 한 가문을 지속시킨 귀감이 되는 사람이고, 배위의 본가에서는 할머니로서 난 자식이 자신의 가문의 영예를 더하였기 때문이다.

 

불천위의 외가는 아마도 누대로 내려오면서 서로 주고받은 관계에 의한 관습에서 지금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갑자기 몇 대만에 이어진 경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간혹 그 관계를 추적하지 못하는 종가의 경우도 더러 생긴다. 게다가 불천위의 경우, 지금도 그 외가의 외손봉사를 하고 있는 종가도 있다.

 

그 배위는 전체를 분류만 해 보기로 한다.

안동권씨가 12(관향이 화산, 영가인 경우도 포함됨), 영양남씨가 5, 봉화금씨가 3명이다.

함창김씨, 재령이씨, 전주류씨, 문소김씨, 동래정씨, 영천이씨, 무안박씨, 진성이씨는 각각 2명씩이다.

그 외 1명씩인 경우는 다음과 같다. 안동김씨, 황성조씨, 전의이씨, 이천서씨, 의령남씨, 벽진이씨, 전주이씨, 양천허씨, 여흥민씨, 선성이씨, 영해신씨, 信川강씨, 영양김씨, 고창오씨, 장수황씨, 월성이씨, 연안김씨, 김해허씨, 선성김씨로 모두 34명이다.

 

그 외 축문의 경우에 관향을 열거하지 않고 00김씨(4), 00신씨, 00이씨(3)로 성만 읽는 경우가 있다. 거의 본관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모르는 경우도 있으나 삼가는 것 같다. 47위 가운데 부인이 3명인 경우가 1, 2위인 경우가 11, 1위인 경우가 35명이다. 모두 59명에 해당한다.

 

[출처] 안동문화콘텐츠 김영순 안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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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위제사 不遷位祭祀

[출처] 문화원형백과

 

불천위제사는 4대봉사의 대수가 넘어가도 체천(遞遷)하거나 그 신주를 매주(埋主)하지 않고 영원히 사당에 모시고 奉祀하는 일종의 忌祭이다. 예서에는 규정이 보이지 않는다.

* 체천(遞遷) : 봉사손(奉祀孫)의 대수가 다한 神主最長房이 그 제사를 물려받아 받들게 하는 것

 

불천위에는 국왕이 하사한 국불천위(國不遷位)와 문중과 향내(鄕內)의 유림회의에서 결정한 사불천위(私不遷位)가 있다. 또 불천위는 신주를 조매(逝埋)하지 않고 계속 봉사한다 하여 부조위(不逝位)라 부르는 곳도 있다.

 

불천위제사는 다른 기제와 달리 유림이나 기타의 향중인사들도 참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유명한 선조를 가진 문중의 후손들은 이 제사를 큰 영예로 생각하여 성대하게 치른다. 불천위제사는 특히 명문의 후손들의 혈연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구심적인 상징이 된다.

 

[출처] 문화원형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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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의 불천위제사를 아십니까?

[出處] 安東文化 201103월호

   

 

[出處] 安東文化 2011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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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위제사 不遷位祭祀

[출처] 안동하회마을 홈페이지/()안동하회마을보존회

   

 

위패(位牌)?

 

유교(儒敎) 의식(儀式)에 따라 돌아가신 어느 위()를 상징하고 모시기 위하여, 나무에 당해 위()을 적어 넣어서 만든 패()이다.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국기를 만들 듯이, 돌아가신 어느 위를 상징하여 모시기 위하여 위패를 만든다. 위패를 "신주(神主)"라고도 부른다.

 

사당(祠堂)이란?

 

위패를 모셔두기 위하여 만들어진 집을 사당이라 한다.

 

감실(鑒室)이란?

 

위패를 모셔두기 위하여 만들어진 방을 감실이라 하며, 사당 안에는 감실이 있다. 그러나, 사당을 별도로 만들지 못한 경우에는 사랑방 마루의 지붕 아래에 감실을 만들어서 위패를 모신다.

 

4() 봉사(奉祀)?

 

자기로부터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는 차례로 1, 2, 3, 4대로 계산하며, 그러므로 고조부는 4대조가 된다. 사림층에서의 제사는 고조부까지 드리며, 이를 4대 봉사(奉祀)라 하며, 4대 이상은 위패를 조매(挑埋)하고 더 이상 그 위()에 대하여 기제사(忌祭祠)를 드리지 않는다.

* 조매(挑埋)위패를 땅에 묻는 것

 

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학행이 높은 위에 대해서는 조매하지 않고 영원토록 모시는 위를 불천위 또는 부조위라고 하며, 해마다 기일(忌日)에 제사를 올리며 이를 불천위제사라 한다. 불천위는 예조의 승인에 의하였으나 나중에는 도()의 유림에서 승인 또는 서원에서 인정하는 불천위가 생겨났으며, 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국불천(國不遷), 도불천(道不遷), 원불천향천위(院不遷)로 구별하여 부르기도 한다.

 

한 집에 불천위가 2위 이상 있으면 각각 사당을 따로 하는 것이 원칙이며, 하회마을의 양진당에는 2위의 불천위가 모셔져 있으므로 사당이 둘이다.

 

서원(書院) 향사(享祀)

 

서원에는 각기 그 서원에서 배향(配享)한 위()를 사당(祠堂)을 만들어 모시고 있으며, 배향된 위에게 올리는 제사를 향사라 한다. 병산서원에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선생을 주향(主享)으로, 선생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柳袗) 공을 종향(從享)으로 하여 존덕사(尊德祠)에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향사를 올린다.

 

화천서원에서는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선생을 주향(主享)으로, 선생의 제자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 공과 선생의 종손(從孫)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공을 종향(從享)으로 하여 경덕사(景德祠)에 모시고 있다.

 

외손봉사(外孫奉祀) 및 외외손봉사(外外孫奉祀)

 

외가 조상이나 외가의 외가 조상에 대하여 받드는 제사를 외손봉사(外孫奉祀) 및 외외손봉사(外外孫奉祀)라 한다. 풍산류씨 10세인 류자온(柳子溫) ()의 외조 권옹(權雍) ()은 유명(遺命)으로 외손이 제사를 받들라고 하였으므로 해마다 풍산류씨가 외손봉사로 시제(時祭)를 올린다.

 

뿐만 아니라, 권옹(權雍) ()의 장인이며, 류자온(柳子溫) ()의 외외증조부(外外曾祖父)인 이조정랑 배소(裵素) ()도 후손이 없었으므로 해마다 풍산류씨가 외외손봉사로 시제(時祭)를 올린다.

 

또한, 서애 류성룡 선생의 장인도 후손이 없었으므로 선생의 후손들이 해마다 외손봉사로 시제를 올린다.

 

[출처] 안동하회마을 홈페이지/()안동하회마을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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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음식] 불천위제사(제례)음식

[출처] 안동문화콘텐츠

 

안동에는 유난히 불천위제사가 많다.

* 불천위제사 : 제사는 보통 위로 4(고조부)까지 지낸다. 불천위 제사란 후손들이 계속 제사를 올리는 특별한 제사를 말한다. ‘위패를 영구히 받드는 제사’, ‘영원히 제사를 지내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다.

 

불천위제사는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에 대하여 4대봉사가 끝난 후에도 영원토록 지내는 기제사이다. 불천위제사의 대상을 불천위라고 한다.불천위는 사후에 국가 또는 유림에서 사회적 공헌도를 인정하여 추대 받은 사람이다. 물론 불천위에 대한 인식은 조선 후기 문중의식의 성장에 따라, 그리고 종법질서의 확립과 병행하여 확대 정착되었다.

 

안동댐과 임하댐 건설로 많은 사람들이 외지로 이주하기 전에는 안동댐 모두 50위의 불천위가 있었다. 전국 어디에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불천위이다. 그 가운데 6위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안동에서 불천위제사가 치러지고 있다.

 

불천위제사는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 가운데 위상이 가장 높고 의례절차가 체계화되어 있어서, 일반 제사의 전범이 되었다. 그럼 여기서, 음력 98127(99.1.24)에 모셔진 퇴계 이황 선생의 불천위제사 음식에 대하여, 김영순 선생이 조사한 자료에 근거하여 살펴보자.

 

하나의 제기에 높이 괴어 올린 , 아래에서부터 본편(시루떡) - 맞편(짝편) - 당귀떡 - 찰편 ?경단부편) - 잡과편 - - 조약등을 순서대로 괴었다. 어적(魚炙), 육적(肉炙), 계적(鷄炙)을 하나의 제기에 담은 도적’(都炙)의 경우, 밑에서부터 방어 - 상어 - 홍어 - 청어 - 문어 - 쇠고기 - 닭고기의 순으로 전부 날것을 담았다. 제기가 구분되어 있는 계란탕’, ‘명태탕’, ‘문어탕’, ‘쇠고기탕’, ‘닭탕으로 5탕을 올렸다.

* 부편 :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콩가루에 꿀과 계핏가루 섞은 것을 소로 넣고 경단처럼 동들게 빚어 쪄서 겉에 곶감채를 묻힌 떡

 

채소의 경우에는 한 접시에 고사리, 시금치, 토란, 도라지, , 박나물을 구분을 지어가며 함께 담았다. 이것이 물론 전부는 아니다. , , 국수, 대구포, 편적(처녑), 쇠고기 육회, 조기자반, 배추침채(물김치), 편청, 간장, 그리고 과일(, 사과, 대추, , 곶감, , 대추)과 술이 따랐다.

 

퇴계 선생은 검약하게 제사를 지내라고 말씀하셨기에 다른 가문의 불천위제사보다 제사음식이 일반적으로 약소하다고 한다. 그래도 선생은 학덕이 높은 까닭에 일반적인 기제사보다 더 성대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탕의 수에서 드러난다. 일반 기제사에서는 3탕을 쓰다가 선생의 불천위 제사에서는 5탕을 올렸다. 봉사위가 당상관 이상의 품계일 때만 5탕을 쓴다고 한다. 조상의 품계와 공적에 비례하여 탕이 올려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불천위제사 음식은 일반 기제사 음식보다 질과 양에서 더 우위에 있었다. 불천위는 가문을 빛낸 조상으로서 자손만대로 받들어 모셔야 하는 분이므로 제사음식이 더 성대한 것이다. 물론 불천위제사는 일반 기제사보다도 참제자의 수가 많고 공개적인 제사라는 점에서도 음식이 풍성하고 과시적으로 차려질 수 있다. 불천위제사 음식 가운데서 주목되는 것은 전통적으로 육류와 생선을 날 것으로 올리는 예가 많았고, 아직도 그런 종가가 여럿 있는 점이다. 그것은 갓 잡은 날것이 익힌 것보다 더 신선한 것이므로, 더 깨끗하여 더 신성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 불천위 조상에게 가장 신선한 제물을 올린다는 것은 일반 조상에 대해서보다 각별한 정성을 쏟는다는 뜻이다.

 

그밖에 안동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제사 음식에 대한 규칙을 살펴보자.

 

제사음식의 '본편'이라 불린 시루떡을 가장 많이 쌓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떡을 층층이 괴어서 높게 한다. 시루떡 위에 올라가는 갖가지 떡은 외형상 본편을 장식하는 형상으로서, 모양과 색, 재료, 만드는 법 등이 다양하다. 이러한 떡을 높게 괴어서 올린 것은 "제사에 떡을 안 올리면 조상이 섭섭하게 여긴다"고 하는 기본적 필요조건을 훨씬 상회하고 있다. 제사상에 올라간 떡의 종류와 양은 비록 가문마다 차이가 있고 경제사정에 따라서 편차가 있다고 할지라도, 모든 떡을 의미한다.

 

도적의 구성은, '우모린(羽毛鱗)'이라 하여 '깃털 있는 날짐승 고기'(), '털이 난 네 발 짐승고기'(), '어류 즉 생선'()을 기본으로 하다. 우모린의 구성에 대해서는 하늘, 육지, 바다에서 나는 모든 고기를 상징적으로 집약한 결과로 인식하고 있다. 도적을 쌓을 때에도 하단에는 바다에서 나는 어류를, 중간에는 뭍에서 나는 고기, 상단에는 날짐승을 순차적으로 올려서 그러한 상징성을 수직적으로도 잘 표현하고 있다. 간혹 어떤 가문에서는 '우모린개(羽毛鱗?)'라 하여 맨 아래층을 하나 더 설정하고 여기에 바다의 맨 밑바닥에 사는 패각류(?)를 추가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도 역시 우주적 수직구도를 적용하였다. 다른 지역에서는 여러 제기에 담을 동물성 제물을 안동지역에서는 하나의 제기에 높이 괴였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출처 : 배영동의안동지역 음식의 유교문화적 색채와 향기, 안동 선비음식의 전통과 향기, p55~56 >

 

[출처] 안동문화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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