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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왕의 인생관 전1:12-2:11 12:9-14
통계청이 5년마다 실시하는 경제활동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젊은 연령층은 줄어들고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다보니 한국인들의 은퇴준비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노후가 불안한 요인들이 한국인의 경제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 국민이 경제적 행복의 최대 걸림돌이 되는 요인을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일자리 부족, 30대는 주택문제 40대는 자녀 양육 및 교육을 경제적 행복의 최대 걸림돌로 꼽았다. 이에 비해 5-60대는 노후준비 부족을 경제적 행복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불안한 현실을 대하다 보면 오늘날 한국사회는 미래 희망을 논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그저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당면과제일 뿐인데 어려운 빈곤층이 증가하고 있으며,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다 보니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핵심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뾰족한 답이 없이 늘 불만과 갈등이 잠재해 있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사회이다. 성경을 통해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난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이 남긴 책이라고 하는 전도서는 지혜가 뛰어난 솔로몬왕이 세상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인생관을 기록한 책이므로 이 전도서를 통해 오늘의 우리사회의 갖가지 인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에게 바닷가의 모래같이 지혜와 명철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매 솔로몬의 지혜가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했습니다(왕상4:29-30). 솔로몬 왕의 지혜는 워낙 뛰어났기에 그의 명성이 사방 모든 민족들 가운데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지혜를 얻고자 온갖 경험을 다 해본 사람처럼 인생들로 하여금 이 전도서를 통해 지혜를 얻도록 하라는 말로 전도서를 기록했다고 하면서 여기 기록된 것은 올바른 것이요 곧 진리의 말씀들이라고 하였다(전12:10).
사실 ‘전도자’라는 말은 히브리어 코헬렛(Qoheleth)을 번역한 것인데 코헬렛은 말씀의 수집자 또는 집회의 연사 등으로 생각하는데 우리말로는 전도자로 해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이름을 전도서라고 한 것은 중국어 성경에서 온 것이며 말씀 선포자인 솔로몬의 설교를 담은 글을 뜻한다. 그런데 이 전도서 첫장을 시작하는 2절은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헛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2장에서는 어떤 것이 헛되다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하는데 즐거움도 헛되고 지혜자도 우매자도 헛된 인생을 살게 되고 수고하여 무엇을 취하였어도 헛되다고 하면서 ‘헤벨(헛됨)’이란 말을 7번을 반복한다. 예를 들면 솔로몬 왕 자신이 사업을 크게도 늘이기도 하였고 집들도 크게 지어 천명의 후궁들로 살게도 하였고 노비들도 많이 두어 수고라는 것도 모르고 살기도 하였고 다른 왕들이 소유한 보배들 보다 많이 소유해 보기도 하였고 또 처첩도 많이 두었을 뿐 아니라 나이가 들었어도 지혜도 감하지 않아서 전도서 2장 10절 말씀처럼 무엇이든지 자기 눈이 원하는 것들을 금하지 아니하였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고 다 해봤는데 인생을 다 살아보고 생각해 보니 지난날 그렇게 열심히 마음에 원했던 일들을 하였던 것이 마치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되고 헛되다는 내용이 전도서를 기록한 동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헤벨’ 헛되다라는 것을 단순히 아무 쓸데없다라는 헛됨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이란 하나님 없이 그 무엇을 성취하였더라도 지나고 나면 마치 손에 바람을 잡는 것처럼 헛된 것이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전 인류에게 주고자 하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니라’(전 12:13)고 끝을 맺는다.
이처럼 전도서는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깊은 회의를 하면서도 전도서의 주제는 인간은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인생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이란 시편(102:11,103:15)에서 말하듯이 한낮 풀과 같은 인생이요 또는 야고보서(4:14)에 말하듯이 아침안개 같은 인생이므로 전도서 서두에서 말하듯이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헛되고 헛되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솔로몬 왕을 통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한다. 정말 안개같은 인생이요 풀같은 짧은 인생을 조금이라도 더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젊은 시절부터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충고하는 책이 전도서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물질을 이웃을 위해 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본다.
1. 인생무상을 생각하자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 달 12월을 지나고 있다. 엊그제께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마지막 달이라니 그렇다고 특별히 해놓은 것도 없는데 이렇게 시간이 가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만 그럴까?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온 것 같지만 연말이 오면 인생은 무상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이제 노년이 되면 더욱 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은 일생이 덧없이 흘러감을 두고 이르는 말인데 예수믿는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물론 예배는 드렸고 선한 일을 할려고 생각도 했지만 모두가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 밖에는 생각이 안날 것이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거의가 다 이 몸 하나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돈벌고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세상사람들과는 달라야 하는데 즉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사랑과 겸손 기도의 신앙생활로 신앙인격으로 변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면 반드시 행함도 뒤따라야 하는데 말로만 예수님 사랑하고 날 위해서 살았다면 인생무상이라는 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성도들이 믿음과 행함의 균형적인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세속적인 삶을 정리해야 한다.
세속적인 삶이란? 야고보서에 보니 4:13어떤 사람들이 오늘이나 내일 다른 도시에 가서 그곳에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돈을 벌어 보리라고 생각하는 계획을 했다. 사실 장사하는 사람이 돈 벌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세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야보고는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약4:14)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뭔가 한 해를 보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보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무엇인가? 도대체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하기를 너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도다. 인간이란 내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들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씀이다. 아무리 안개가 짙게 끼었어도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안개인데 잠시잠간만 존재하는 것이 안개인데 마치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고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즉 인생무상하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하는 지혜와 교훈을 안개로부터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기위해 주님을 예배하며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여러분 무엇보다도 장사하여 돈을 버는 것도 좋고 1년 계획도 좋고, 10년 계획도 좋지만 나라는 존재의 한계, 인생무상의 한계를 생각하며 주어진 하루 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 자신의 인생무상의 한계를 생각하면 자기 자신을 과신하거나 자만하지도 않게 될 것이고 자신을 자랑하지도 않을 것이고 낮아지고 겸손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는 1952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패션잡지 엘르지의 편집장으로 저명한 저널리스트이며 자상한 아버지이고 좋은 말을 골라 쓰는 유머러스하고 멋진 남자였는데 1995년 44세에 갑작스런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였는데 졸지에 자신의 무력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3주 후 의식을 회복했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쪽 눈꺼풀 뿐. 말도 할 수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는 불구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1년 3개월 동안 움직일 수 있는 왼쪽 눈을 자그마치 20만 번 이상 깜박거리면서 책을 발간하게 되었는데 그 책이름은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입니다.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태로 잠수복을 입은 것 같은 상태이나 정신은 나비처럼 자유스럽게 날라다닐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힌 제목이니라.
우리들도 나이가 들면 갑작스런 여건의 변화라 할까 잘 나가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고 백수가 되거나 초라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장도미니크는 그 정도가 아니라 하루 아침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추락한 사람인데 그처럼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글을 쓰는 장 도미니끄 보비와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면 멀쩡한 사지를 굴려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한다.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 머리글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자기 자신은 입에 침이 고이기만 하지 고인 침,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 정말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고백한 장 도미니크 보비는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침을 삼킬 수조차 없었던 그는 그의 인생을 결코 불행하게 마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무상의 한계를 절감하며 깜박거릴 수 있는 왼쪽 눈 하나만으로도 그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그리스도안에서 영원을 사모하고 영생을 기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야보고는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님 없는 인생을 아침안개로 말했고
모세 또한 시편 90:5-6,12에 안개같은 인생을 풀로 비유했습니다.
5.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12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마치 인생은 아침에 돋는 풀처럼 돋아났다가 저녁에는 벤 바되는 풀과 같고 그리고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말라버리고 만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을 풀로 비유한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의 무상함을 알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시편 90:12에 하나님께 우리에게 나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며 기도하였습니다.
풀과 같은 인생 안개같은 인생을 내가 얼마나 살아가야 할지 나는 모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남을 날을 계수함을 나에게 가르쳐 주사 자만하지도 말고 자기 육신과 세상의 것을 자랑하지도 말고 이 유한하게 제한된 인생무상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주님! 하나님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들이 되어지길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생명,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 같은 인생이라고 한 모세의 말처럼 나의 날 계수함을 저에게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겸손히 하루하루를 마치는 오늘이야말로 내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최선의 삶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최선의 삶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2.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자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도 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사에 내가 또는 우리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하리라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결정하기 보다는 먼저 나의 삶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지를 묻고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님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았던 바울의 신앙고백을 통해 잠시 하나님의 절대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에 사도 바울의 고백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하겠다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내려놓고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계획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 계획이 주의 뜻이 아니면 수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사람의 계획이 부족해 보여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면 그 계획이 잘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함으로서 더 이상 나의 뜻을 앞세우지도 말고 나의 계획을 앞세우지도 맙시다. 대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던 헬렌켈러의 이야기를 할 까 합니다.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장애자였습니다.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난과 역경에 쓰러지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당당히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 주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몇마디 옮겨 적습니다.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기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을 원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감사와 찬송은 사탄을 물리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눈을 돌릴 때는 오직 절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불가능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세어 보면 더 많은 가능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잃은 것에 대하여 고민하고 슬퍼하지 말고 주신 것들을 보고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의 감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감사와 불평은 할수록 커집니다.
감사를 할수록 감사의 조건이 커지고 불평할수록 불평할 일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헬렌켈러는 상황이나 환경을 초월한 감사로 인해 언제나 감사의 능력으로 행복된 삶을 살았던 장애인이었습니다. 헬렌켈러는 그녀의 소원에도 불구하고 단 3일의 볼 수 있는 기회마저 신으로부터 부여받지 못했으나 그의 글과 생각은 두 눈을 다 가진 사람보다 더 예리하게 사물을 관찰하고 그리고 있었다.
헬렌켈러는 오히려 두 눈을 다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를 하고 있다. 마치 내일이면 눈이 멀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당신의 눈을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방법은 당신이 지닌 다른 모든 감각들에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즉 내일이면 귀가 멀 지도 모른다는 듯이 음악을 감상하고, 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오케스트라의 멋진 하모니를 음미하도록 하십시오. 내일이면 촉각이 없어져 버릴 듯이 조심스럽게 모든 물건들을 만져 보십시오. 내일이면 이제 다시는 냄새도 맛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꽃들의 향기를 맡아 보고 온갖 음식의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맛보도록 하십시오.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사용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과 기쁨과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영광이 당신 앞에 드러날 것입니다. 얼마나 평범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헬렌켈러는 다 가졌으면서도 가진 것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오히려 불쌍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앞도 못보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기관을 다 가진 사람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한 삶을 살았으니 행복이란 무엇을 가졌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잠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말씀으로 그를 인정하고 살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살자
사도 야고보는 야고보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약4:17)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 죄니라. 그렇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린 인생무상의 한계를 생각하며 하나님 섭리와 주권을 신뢰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선행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악을 행하는 것만 죄라 하지 않고 선을 행치 않는 것도 죄라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할 때 돈을 벌겠다는 계획과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궁극적인 돈을 버는 목적과 가치는 그 물질을 단지 나혼자 소유하기 위한 것만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만족 자기영광 그런 것은 허탄한 자랑에 불과합니다. 선을 행할 줄 알도록 주님께서 우리에게 양심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그런 양심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신 다는 것을 알고 이웃 사랑의 선행을 실천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얼마 전 영화배우이신 원로 신영균씨에 대한 이름이 인터넷 상에서 검색 1위가 된 적이 있습니다. 자수성가해 번 5백억원이라는 큰돈을 사회에 기부하였으며 서울대모교에도 100억원이라는 큰 돈을 기부했다는 일로 젊은 사람들이 검색을 한 것입니다.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내놓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신영균은 60-70년대를 풍미한 영화배우입니다. 그는 서울의대 출신 치과의사이자 제15대,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종교는 기독교이며 그의 마지막 소망은 관속에 읽던 성경책 한권 넣어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행은 행할 때 도움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도다 했습니다.
수년전 행복전도사로 이름을 올렸던 행복전도사 최윤희 부부의 자살이 생각납니다. 최윤희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 3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갖가지 강연과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는데 2001년부터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꾸준히 출연하며 행복전도사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방송 등을 통해 여성의 행복과 희망을 주제로 강의해 왔던 최윤희씨는 ‘밥은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마라’, ‘행복멘토 최윤희의 희망수업’ 등의 저서를 남겼는데 인생문제가 생기자 최씨는 남편과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것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해 자칭 행복전도사 최윤희였지만, 결국 자신이 어려움에 닥치니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선택하고 만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4. 하나님없는 삶은 다 헛되다
오늘 전도서의 본문을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말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사업도 크게 벌였고 소유도 늘렸으며 향락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나고 나면 결국 바람을 잡는 것 같이 헛되도다 라고 말하는 전도자의 고백인데 인생의 삶에 있어서 물질이나 감각적인 육신에서 오는 즐거움과 쾌락이란 잠시 후면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시험 삼아 자신이 무엇을 즐거워하는지 알아 보려고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보았다고 했습니다.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고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했다는 말은 보이는 것이나 느낄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추구해 보았다는 말입니다. 즉, 눈은 가시적인 쾌락을, 마음은 내면적 만족감을 일컫는 말로 모든 것을 막론하고 즐거움을 쫓았다는 것입니다.
궁궐도 건축해 보았고 아름다운 궁중정원과 과수원도 만들었고 각종 진귀한 보물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노예들을 사들이기도 하였으며 노래하는 남녀들을 고용했고 첩들도 수 없이 두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그의 눈이 원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고 그의 마음이 기뻐하는 것을 절제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성취한 뒤에는 더 큰 허탈과 허무에 빠졌습니다. 모든 것이 다 헛되이 바람을 잡는 것 같다는 말로 그것을 대변해 주는 것을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그는 해 아래 유익한 것이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뜬구름 잡는 것같이 바람을 손에 잡는 것처럼 허무하다고 인생늦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전도서에서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말씀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본 사람으로 그는 사리를 분별할 수 있었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그의 결론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해봤어도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의 끝은 헛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고 뜻대로 할 수 있는, 그런 상황까지 가면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돈과 향락과 쾌락에 빠져 끝내 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겠지요. 이렇게 말하여도 폐인이 되어도 좋으니 여한 없이 살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길 것 다 즐기고, 가질 것 다 가져보고, 누릴 것 다 누리는 인생을 단 한번이라도 살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전도자가 그런 결론을 내었다 하더라도 그래도 해 보고 싶다면 그것이 바로 마귀가 주는 생각이며 인생을 지옥으로 끌고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 없이 살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에 올린 수익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던 신화적인 존재인 제시 리버무어라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돈을 제일 좋아 합니다. 하지만 돈 때문에 망한 사람도 수없이 많습니다. 돈을 가장 짧은 시간에 벌 수 있는 곳이 주식시장입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주식이나 채권을 기초로 해서 더욱 쉽게 벌 거나 잃을 수 있는 상품을 파생상품이라고 합니다. 1900년도 미국의 주식시장 파생상품 왕자하면 제시 리버무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단기간에 올린 수익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단기간에 엄청난 고수익을 올리고 또 단기간에 엄청난 손실을 보는 롤러 코스터타는 것 같은 트레이더로서의 극적인 인생이 리버무어를 전설이자 신화로 만들었다. 그런 전설적인 리버무어가 왜 거액의 돈 벌고도 자살했을까? 정상에 오르니 더 오를 데가 없어지고 술 여자 담배 여행 즐겨도 늘 공허하고. 인생만사가 한순간 헛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어느 순간. 호텔방에서 권총으로 자살로 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제시 리버무어이다.
1877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제시 리버무어는 10대 초반에 단돈 5달러를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14살 때부터 주식중개회사에서 주식 호가판을 관리하는 사환으로 틈틈이 주가 변동 패턴을 찾기 위한 일기를 쓰며 모의 투자도 해보았다. 15살 때 첫 거래를 시작하여 3.12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이 그의 트레이더 인생의 출발이었다. 21살 때 뉴욕 증권거래소를 무대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이듬해에 거의 모든 자산을 잃었다. 하지만 500달러를 빌려 이틀 만에 2천5백 달러를 만들어 뉴욕으로 돌아왔다. 빌린 돈을 갚고 나머지 돈으로 다시 주식거래에 전념했다. 예측은 정확했지만 체결 지연으로 인해 파산하기도 했다. 1902년 25세때 리버무어는 사설 거래소에서 충분한 자금을 마련하여 다시 뉴욕 증권거래소로 돌아왔다.
1907년 10월 24일 정오 경,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급격한 하락장세가 펼쳐지면서 대폭락이 주식시장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런 와중에서도 리버무어는 지속적인 공매도로 순식간에 1백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당시를 ‘내 인생 최고의 날’로 회고했다.
1907년과 1929년 금융공황 당시 월스트리트로 몰려든 인파중에서 제시 리버무어는 대폭락장에서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에 올린 수익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1929년의 ‘대박’ 이후 그의 삶은 트레이더로서나 개인적으로나 내리막이었다. 아내 도로시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결혼 14년 만에 이혼하였고 재혼하면서 자녀들과 자주 만나지도 못했으며 리버무어 자신은 낭비와 사치 속에 쇼걸이나 배우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1940년 63세 리버무어는 호텔 휴대품 보관소 의자에 앉아 32구경 콜트 자동권총을 자신의 오른쪽 귀 뒷부분에 발사하면서 생을 마감했다. 주식시장에서 단기간에 올린 수익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던 리버무어는 단기간에 롤러 코스터 타는 것 같은 극적인 삶이 리버무어를 전설이자 신화로 만들어 주었지만 마지막은 자살로 끝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없이 살았던 한 사람의 인생관이 이렇게 비극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전도자가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나서 말하는 경험은 탐욕은 그칠 줄 모르는 것이며 또한 쾌락도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탐닉은 탐닉을 부르고, 쾌락은 쾌락을 부릅니다. 끊임없이 만족을 추구하지만 도대체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빠져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들어가 결국에는 패망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블랙홀의 입구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듯이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 올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독이 무서운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다가도 금단현상에 무릎 끊어 더 깊은 절망과 자포자기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지혜자의 말을 듣는 우리들은 인생무상하다는 것이 실감있게 들려져야 합니다. 단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권하는 말을 듣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갈 데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절제와 인내 그리고 자기 죽음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쳐서 성령께 자신을 복종시키는 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로 어려서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았던 우리가 잘 아는 미국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5.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
우리나라는 역사도 짧고 또 하나님을 잘 믿은 대통령이 많지 않지만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역사도 오래고 또 청교도들에 의해 세운 나라이므로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는 하나님을 잘 믿었던 대통령들이 여러명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나 루즈벨트 대통령도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부터 60년전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미국 대통령이 아이젠하워대통령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서유럽 주둔 연합군 최고사령관을 역임했고 퇴임 후에는 미국의 34대 대통령으로 인생을 살았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제2차 대전을 끝나게 한 최대의 전쟁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무대가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었는데 여기에 동원된 전쟁물자와 인원만 놓고 봐도 288만명의 군대, 1만3천7백대의 전투기, 9천척의 군함이 동원된 것만 봐도 역사상 최대상륙작전이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었다! 어떻게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하여 2차 대전을 끝나게 하였는가? 이 큰 전쟁의 중심에는 유럽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34대 대통령 이었던 아이젠하워가 있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하면 신앙심 깊은 가문에서 자라 성경을 즐겨 읽고 기도하며 주일성수를 실천한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을 것이다. 주일성수와 기도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그의 일대기를 보면 삶 곳곳에 배어 있는 가슴 찡한 하나님의 역사와 그리스도인의 정신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아이젠하워가 연합군총사령관의 임무를 맡고 영국으로 가려고 비행기에 올랐을 때 그는 단 성경 한권의 책만 휴대했다는 사실만 봐도 어린시절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란 믿음의 신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중에도 늘 성경을 휴대하고 읽었던 그의 신앙심,
군입대후 14년간 진급이 안됐을때도 철저히 인내한 그의 가치관,
유럽군총사령관시 처칠, 몽고매리, 드골등 까다로운 리더들과 소통하고 화합한 리더십 이야기,
대통령 재임 8년 중에도 철저히 주일성수를 지킨 감동적인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그가 대통령이었던 때 미국은 모든 장관이 크리스천이었으며 또 가장 선교사를 많이 파송했던 때이고 주일이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온 가족이 교회로 가서 예배드렸던 때였고 각급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던 때가 바로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때였다는 잊어서는 안된다. 그의 인생 중 가장 큰 업적은 2차대전을 끝나게 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인데 어떻게 그 상륙작전이 이루어 졌는가를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부모의 신앙교육으로부터 인생을 출발
텍사스주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지냈지만 독실한 크리스챤인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였는데 그 부모님의 성이 아이젠하워이며 그의 본래 이름은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Dewight David Eisenhower)이다.
드와이트라는 이름은 당시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부흥사인 드와이트 무디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이름이고 데이비드는 다윗왕의 이름이다. 이러한 이름조차도 신앙을 표현할 정도로 그의 가정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가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늘 성경을 읽어주었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가르쳤던 신앙교육속에서 아이젠하워는 주일성수와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드와이트가 한번은 고등학교 시절 넘어져서 다리를 다쳤는데 퉁퉁 부어오르더니 피부색깔이 새까맣게 변하고 다리가 썩어가기 시작하였다.
알고 보니 병균이 감염 되어 패혈증이 왔다는 것입니다. 병원 의사는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더 위험하다고 말하였지만 그는 다리 자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으므로 수술하지 않고 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했답니다.
기도하는데 오히려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어요. 환부는 더 검게 부어오르고, 열은 더 높아지고 마침내 혼수상태에 이를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의사가 몇 번이고 찾아와 더 악화되어 생명을 잃기 전에 빨리 다리를 자르자고 말합니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다리는 물론, 목숨도 보존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다리의 검은 빛이 옅어지면서 붓기가 빠지고 열이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음 날 일어나 앉을 정도로 회복이 되고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서 그 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들어가 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리를 잘랐으면 사관학교에도 못 들어갔고 마침내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 최고 사령관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 기도로 시작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도의 사람 아이젠 하워는 2차 대전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전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인데 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우리나라 인천상륙작전 보다 더 큰 작전인데 아이젠하워가 연합군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세가 연합군 쪽으로 기울자, 미국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장군은 육·해·공군 합동으로 프랑스 북부해안 상륙작전을 감행하기 위해 사상최대의 진격함대를 조직하는 일을 맡았다. 상륙작전 전날, 그는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올라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휘관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과 훈련받은 것을 동원할 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으니, 이제 우리는 행동을 개시해야 합니다!’
작전개시 전날까지 폭우로 인해서 도저히 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없을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파도가 치고 물결, 풍랑이 크게 일어서 배가 상륙하고 진격하기에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뒤따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프랑스 북부 공격은 그 유명한 제2차 세계대전의 'D-데이' 6월 6일에 시작되었다. 처음에 6월 5일 이었는데 영국해협의 날씨가 25년 만에 최악의 상태였기 때문에 작전이 24시간 연기된 뒤 6월 6일 동트기 전 영국기습부대가 주요교량을 점거하고 미국 공수사단이 야간상륙하면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 날 6,500여 척의 함선 12,000여 대의 공군기 상륙주정(上陸舟艇) 4,126척 수송선 804척과 수백 대의 수륙양용 특수장갑차로 편성된 대부대가 15만 6,000명의 병력을 노르망디에 상륙시켰는데, 13만 2,500명은 배로 영국해협을 건넜고 2만 3,500명은 공중수송되었다. 영국·캐나다 합동군은 동부해안으로 미국군은 서부해안으로 상륙했다. 첫 날에만 170,000명의 병력이 동원되는 인류 사상 최대의 상륙작전이라고 불리어지는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날 밤인 1944년 6월 5일은 폭우, 안개 등으로 작전수행이 어려운 악천후 때문에 연합군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 처칠 수상, 아이젠하워 사령관도 모두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특히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17시간이나 기도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1944년 6월6일, 기적같이 날씨가 개이고 드디어 아이젠하워의 총지휘 아래 미국 제1군, 영국 제2군, 캐나다 제1군을 주축으로 삼은 연합군이 북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상륙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결국 나치 독일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마침내 패배를 인정한 히틀러가 이듬해 자살함으로써 2차대전은 막을 내렸습니다.
연합군측이 이 상륙작전에서 승리한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날씨였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연합군 상륙 날짜인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의 날씨가 악천후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해 해안 경비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연합군은 이 날이 상륙작전을 펴기에는 최적의 날씨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날씨때문에 'D데이'는 6일로 연기되었지만 6일 새벽이 되어도 날씨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날씨는 좋아집니다'라는 기상예보자의 확신에 찬 조언에 수뇌부는 "OK, GO!" 결단을 내리게 되고, 그 결단은 역사가 되었습니다. 연합군의 판단과는 달리 독일군 기상장교는 6일에도 악천후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했고, 이에 독일군의 경계는 소홀해져 결과적으로 상륙작전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승리는 배후에 날씨를 조정하시고 악마의 군대 히틀러를 잠재우신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더 놀랍고 재밌는 사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개시되던 날, 히틀러는 수면제를 복용하여 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서부전선 지휘관이었던 롬멜장군도 부인의 생일로 베를린에 있었으므로 전선에서 기민한 지휘를 내릴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총제적으로 독일군의 방심이 승리의 기폭제가 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만일 히틀러가 계속 승전했다면 인류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해도 끔찍합니다. 2차 대전으로 죽은 사람이 총 7400만명이라고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는 싸움, 주 예수 그리스도가 대장되셔서 지휘하시는 인생전투, 예수님이 선장되셔서 항해하시는 인생항해,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삶의 행진만이 승리를 보장합니다. 그리고 그 안전보장은 세상의 힘이나 물질이나 나의 능력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분의 지시를 받기 위해 엎드리는 사람들, 동시에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노르망디상륙작전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 아이젠하워는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속에 2차대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노르망디 승리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3)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간증
그런데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개시하는 그날, 하나님이 악천후를 싹 걷어내 주시고 좋은 일기를 주셔서 진격하여 그 교두보를 발판으로 유럽 전체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합니다. 1944년 8월 25일 파리를 탈환하고, 마침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에 이렇게 간증합니다.
‘작전개시이후 24시간내에 벌어진 사건들은 내 인생에서 전능하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지독했던 날씨가 갑자기 개면서 대공습을 감행할 수 있었고 피해는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었습니다.’
-저자 피터 드러커 ‘주일성수와 기도의 대통령 아이젠하워’ 위의 말들은 본문중 나오는 말이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했던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룰뿐더러 삶 곳곳에 배어 있는 가슴 찡한 하나님의 역사와 기독교적 정신을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피터 드러커는 리더는 히틀러와 같이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젠하워같이 온화하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놀라운 리더십은 대통령 퇴임시에도 재임중 지지율을 유지한 전무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고 훗날 크리스천 최고의 리더로 평가받는다. 신앙인 아이젠하워는 절대 권력을 유지하고 화려하게 살수 있었지만 그는 말년에 거의 전재산을 기부하고 낡은 포드자동차 한대와 하루세끼 식사가 가능한 정도의 재산만 남기고 여생을 보냈다. 각국 역사가들은 그를 미국 최고의 대통령, 역사상 가장 훌륭한 지휘관! 이란 수식어를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평소 유언대로 한 사병이 죽었을때 묻히는 평범한 관에 잠든채 전세계인의 애도속에 검소한 장례식을 치루며 인생을 마감했다.
한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당시 소련수상이었던 후루시초프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날은 주일이었다. 같이 교회 가자는 요청을 거부하여 아이젠하워는 혼자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왔다. 화가 난 후루시초프는 ‘예배를 마치고와서 내게 무슨 핑계를 댈까?’라고만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때에 아이젠하워가 말했습니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당신을 제가 초청해서 귀한 손님이지만 예배보다 더 귀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이젠하워는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 드렸던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성경 한 구절을 늘 가슴에 품고 날마다 외우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슥4:6)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 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6. 솔로몬 왕의 인생관
전도서는 한 인간의 자기고백서이기도 한데 문학으로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속에 실재했던 한 인간이 자기 삶을 성찰하며 고백한 참회록입니다. 그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수용하셨기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다시 다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인간의 참회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화시켜 오늘 우리에게 까지 전해 주신 이유는 그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꼭 하고 싶은 하나님의 얘기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두 번 살 수 없는 기회이기에 연습이 불가능한 오직 한 번의 삶이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도록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솔로몬의 인생관을 소개한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전도서 5:18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과 부요를 누리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주어진 일에 수고함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매일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시간 안에서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하며 하는 일에 대하여 즐거움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받는 축복과 누리는 축복을 함께 받아야지 어떤 사람은 물질을 받았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헛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도서를 기록한 목적은 다음의 말씀을 보면 알게 됩니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잠언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훈계가 되는 짧은 말을 중심으로 격언과 교훈을 말한다.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이 부분은 전도서의 마지막 부분으로 저자가 저술 경위와 목적 그리고 결론을 밝힌 내용입니다.
지혜자의 말은 찌르는 채찍 같고 스승의 말씀은 잘 박힌 못이라고 했습니다. 지혜자가 권면한 말은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고, 스승의 가르침은 사람을 곧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찌르는 채찍은 날카로운 못이 박힌 막대기로 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그런 막대기로 짐승들을 몰 때 목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말을 잘 듣지 않는 소나 양을 뾰족한 곳으로 찔러 통제하는 것이지요. 잘 박힌 못이 있어야 선반을 맬 수 있습니다. 또 모자나 옷을 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스승이 가르치는 교훈은 사람을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다 한 목자에게서 나왔다는 말은 그러한 교훈이나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전도서 내용의 영감성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아들아’ 하고 부른 것은 단순한 혈육관계의 자녀가 아니라 지혜자의 말을 듣는 자녀라는 뜻으로, 고대 문서에서 흔히 독자들을 가리키는 애칭입니다.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을 떠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전혀 허망하다는 것이다. 전도자는 해아래서 행하는 인간의 어떤 것도 하나님 없이는 인간들이 이룬 권세 인기 명성 쾌락 등 어느 것도 하나님이 인생가운데 만들어 놓은 공허함을 채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소망을 둔 인생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않고 살아간다면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 우주만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인간의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시간 안에서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수고하며 하는 일에 대하여 즐거움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은 받는 축복과 누리는 축복을 함께 받아야지 어떤 사람은 물질을 받았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헛된 사람이라는 것이다. 24시간을 초로 그리고 돈으로 환산하면 매일 자고 일어나면 통장에 86400원이 입금되어 있는데 만약 건강을 잃어버리면 그 잔고도 쓰지 못하는 날이 누구에게나 곧 오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솔로몬왕은 서두에 인생의 삶을 헛되고 헛된 것을 반복하며 헛된 인생을 노래하였지만 후반부에는 그가 하고픈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을 결론으로 마칩니다. 마치 햇볕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림자가 짙듯이 강한 부정으로 강한 긍정을 이끌어 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도서는 등대와 같이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잠언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이 지혜서로서 빛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사람이 행복하고 만족하지 못하면 오히려 낙태된 자보다 못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배경과 외적 조건보다 마음의 상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육체가 다시 흙이 되기 전에, 영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게 돌아가기 전에 그 분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흙에서 취해진 육신은 다시 흙으로, 하나님이 주신 영혼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의 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은 진리 중의 진리이고 지혜 중의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내릴 수 있는 최고의 결론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