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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서장'통한 선공부] <31> 서장 (書狀)
여사인(呂舍人)에 대한 답서(2) "[마른 똥막대기]는 어떻습니까? 붙잡을 곳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뱃속이 갑갑함을 느낄 때가 바로 좋은 소식입니다. ...다만 세간의 잡다하고 피곤한 일들을 사량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른 똥막대기] 위에 돌려 놓고, 사량하고 또 사량하여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곳에 이르러 기량이 문득 다하면, 곧 스스로 깨달을 것입니다.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려서는 안됩니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달음을 기다린다면 영원히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다른 일은 결코 사량하지 말고 다만 [마른 똥막대�]를 사량하되, 언제 깨달을 것인가는 묻지 마십시오. 지극히 빌고 빕니다.
부처의 지위에서는 본래 의심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삶도 없고 죽음도 없고 유(有)도 없고 무(無)도 없고 열반도 없고 반야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이렇게 말하는 자도 없고, 이 말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자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음을 아는 자도 없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는 자도 없습니다."
왜 불확실하고 의문스러운가? 깨달음의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범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깨달아서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 공부의 가장 요긴한 부분은, 어떻게 하면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범부는 보이는 것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들리는 것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냄새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맛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느낌에 의지하고 집착하며, 생각에 의지하고 집착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집착은 생각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 즉 사량분별에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이다.
범부는 이와 같이 사량분별 속에서 모든 것을 찾아서 그것에 머무르고 집착한다. 그러나 사량분별 속에서 무엇에 머무르고 의지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해소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킬 뿐이고, 그 머무름과 의지가 또 하나의 불안의 원인이 되어 사실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이처럼 잡을 것 없는 곳에서 살아 있는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이며, 지혜의 바른 눈을 갖추는 것이다. 완전히 놓아버림 속에서 되살아나는 이러한 체험이 없다면 아무리 오래 선을 공부하고 좌선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의식 속에 의지하여 꾸며내는 망상일 뿐이다. 김태완/ 부산대 강사.철학 [출처 : 부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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