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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에 TV채널을 놓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 이때 재판관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아버지가 보고 싶은 뉴스를 보도록 하여라!” “오늘은 어머니가 안 보고는 못살겠다고 하는 드라마가 있으니, 남편과 자식들은 어머니, 아내에게 채널 선택권을 줘라!” 한국 사람들을 다스리는 자는 누구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명박을 나를 다스리는 자로 인정 못하겠어! 왜냐면 그는 처음과 달리 독재를 하고 있어, 그러니 나는 오늘 서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겠어” 이래서 오늘 저녁 시끄럽습니다. |
(14절)『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이 말이 왜
나왔습니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쓰고자 하셨기 때문에 어차피 모세는 나그네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브
라함이 자기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처럼 모세가 나그네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나온 말
입니다.
<모세의 선택>
모세는 행운의 사나이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신데렐라, 남자니까 남데렐라입니다.
태어나자마자 강물에 던져져서 죽어야 할 모세가, 애굽의 궁궐에서 장차 왕이 될 수도 있는 신분
이 되었으니 시시한 신데렐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이 40세가 되는 동안 애굽에서 공주의 양아들이 되어 왕족으로 자랐습니다.
모세는 자기의 수양어머니를 진정으로 “나를 다스리는 분” 진정으로 그 수양어머니를, “나의 재
판관”으로 삼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은 그가 애굽의 왕이 될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
합니다.
모세는 자기가 애굽인이 아니라 히브리인의 혈통을 가지고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만 아는 것이 아니라 수양어머니도 알고, 궁궐 안의 모든 사람도 다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뭡니까?
모세가 양어머니에게 복종하고, 성실하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자
기의 핏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세의 혈족들, 히브리인들은 자고 나면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 노예 신세입니다.
그들에 대해서 눈을 감으면 모세의 앞날은 탄탄대로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길을 가지 않기로 서서히 마음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동족들은 저렇게 뼈 빠지게 고생하는 데, 나만 출세할 수 없다. 오히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면, 저렇게 핍박받는 동족들을 위해서 헌신해야 되겠다. 이렇게 결정했습니다.
모세는 자기를 다스리는 자, 자기의 재판관으로 애굽의 왕, 수양어머니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동족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자기 동족들을 다스리는 자가 나를 다스리도록 해야겠
다. 나의 동족들의 재판관이 나의 재판관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결심을 굳히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렇게 선택하실 수 있겠습니까?
당시 최고 강대국의 왕이 될 수도 있는데, 노예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천국이 사실은 지옥이고, 눈에 보이는 지옥이 사실은 천국일 수가 있어요. 모세의 이 선택은 세기
적인 선택입니다. 이 선택은 모세의 뒤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세의 실책>
모세가 하루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 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감독관일 자기 동족들을 참혹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러서
자기 동족들이 피를 튀기면서 여기저기 쓰러집니다. 모세는 그 광경을 보면서 피가 끓었습니다.
그러자 모세가 좌우를 둘러봅니다. 저걸 내가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지, 하고 말입니다.
(12)『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좌우를 둘러보니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애굽의 감독관이 그 사람뿐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혈기를 세우고 그 감독관을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모래를 파고 묻어버렸습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꼭 좌우를 살핍니다.
길을 건널 때도 항상 좌우를 살핍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가 실수를 한 겁
니다. 자기 혈기를 다스리지 못한 것도 그렇지만, 위로 하나님이 계신지를 살피지 않은 것이 실수
였습니다.
우리가 길을 건널 때는 좌우만 살피면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좌우 뿐 만이
아니라, 위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봐야 합니다.
모세는 그 다음 날 현장에 다시 나가봅니다.
‘범죄 심리학’에 보면 범인은 현장에 꼭 다시 나가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 동족들끼리 쌈이 붙었어요.
모세는 이번에 좌우를 살피지도 않고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남이 아니죠, 동족입니다마
는 어쨌든 남의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둘 중에서 모세가 보기에 잘 못한 사람에게 꾸짖
었습니다.
(13절)『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모세는 무슨 맘을 먹고 그 싸움에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까?
모세는 지금 애굽 왕자의 신분입니다. 대단한 지위에 있습니다. 모세에게 거역했다가는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그런 위엄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꾸짖으면 당연히, “제가 잘못했습
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할 줄 알았지요. 그러면 그때, “동족끼리 잘 지내야지 이렇게 다투면 되
겠습니까?”하고 점잖게 타이르고 무게 잡고 되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이 자가 맘과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잘 못한 사람이 뭐라고 합니까?
(14절)『그가 이르되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 되었도다』
나는 너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나를 다스리는 자도 아니고 재판관으로 삼지도 않았
다. 네가 뭐냐? 이겁니다. 모세 생각에는 적어도 동족이라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죠.
결국은 모세는 혈기로 인한 실수와 믿었던 동족으로부터 실망감을 안고 떠나야 되었습니다.
어제 애굽의 관리를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이 탄로 났습니다. 도망자가 된 것입니다.
이 때 모세의 나이가 40입니다. 이 당시 40이 청년입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30이 넘어야 결혼
을 생각하는데, 모세 당시는 40세가 결혼 적령기입니다. 모세는 아직 미혼입니다.
< 미디안으로 >
모세는 미디안이라는 곳을 갔습니다. 애굽 왕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까지 가야 했습니다.
오늘날 미디안의 위치가 정확히 어딘지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디안”이라는 말은 사람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창25:1~2『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 소생입니다.
아마도 ‘미디안’이라는 지명은 바로 이 미디안 족속들이 사는 곳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그 지역을
정확하게 찾지 못하는 것은, 미디안 족이 양을 치는 목축업을 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옮겨 다닙니
다.
지금이야, 전라도, 경상도라고 정해놓으면 그 지역 이름이 정해지지만, 당시는 미디안 족속이 사
는 곳을 미디안이라고 했지요, 미디안이 전라도 살면 전라도가 미디안이고, 경상도로 이사 가면
경상도가 미디안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미디안을 찾아간 것은 미디안이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
니다.
하나님이 모세로 하여금 미디안 족속이 사는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미디안에 도착한 모세가 어떻게 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지역에서 우물가에 앉았는데, 마침 그곳에 일곱 명의 아가씨가 양떼를 몰고 왔습
니다. 양떼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는데, 다른 남자 목자들이 여자들이라고 얕잡아 보고 순서를 무
시하고 쫓아냅니다.
이걸 보고 있던 모세가 약자인 여자의 편을 들어줍니다.
모세가 기본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약자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모세는 미디안에서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자기가 도와줬던 처녀들의 아버지가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18절)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대체적으로 ‘이드로’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르우엘은 본명이고, 직
명이 이드로 일 것으로 이해하지요. 이드로가 그 날은 딸들이 일찍 들어온 것을 보고 어찌 이리 일
찍 들어올 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우물에서 깡패 같은 다른 목동들의 방해를 물리치게
해 준 청년 이야기를 했지요. 이드로는 “그렇다면 그 귀한 손님을 왜 모시고 오지 않았느냐? 어서
가서 모셔오라” 해서, 융숭하게 대접을 했더니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21절)『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미디안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도 얻게 됩니다.
(22절)『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이 당시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가 이름을 짓습니다. 이 이름도 당연히 모세가 지었습니다.
아들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데, 게르솜의 뜻이 나오지요?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이 말씀은 요즘 새롭게 해석합니다.
종전에는 모세가 여기서 타국이라고 지칭한 나라가 어디냐 했을 때, 지금까지는 미디안일 거라
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새로운 해석은 미디안이 아니라, 애굽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한 남자가 아내를 얻고, 그곳에서 아들을 얻었다면 바로 그곳이 고향이 아니겠느냐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 생각은요?
모세는 미디안에서 평안을 얻었습니다. 21절에도 보면,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아마도 미디안이 이제 내 고향이 되었다고 판
단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애굽에서의 40년이 사실은 타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애굽이 히브리 민족의 고향은 아니지요. 이들의 고향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
다. 모세는 이것을 서서히 깨달아가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고향은 어딥니까? ··· 고향은 아내(남편)가 있는 곳, 자식이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고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향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믿는 사람에게 고향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곳이 고향이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곳은 아무리 좋았어도 그곳은 진정한 고향이 아닙니다.
모세는 비로소 고향이 어디인지 서서히 눈을 떠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자기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모세에게 미디안은 이 땅에서의 고향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어딥니까? 온고을 교회가 있는 이곳이 고향입니다.
그리고 진짜 고향은 천국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 만나는 곳이 고향이고, 그 고향을 디딤돌로 해서 천국이 진짜 고향이 됩니
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고향이라고 하지 않고, 본향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향요? ··· 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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