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재빠르게 가고 있다. 하긴 봄도 오래 머물고 싶어하지 않겠다. 마당에 노란 병아리 한 마리 놀지 않고, 아지랑이 노는 들녘에 꼴 베는 더벅머리총각도 없고, 목에낭골 밭자락에 나물 캐는 댕기머리처녀 하나 없는데 누구랑 놀 것인가. 혹시 긴 겨울밤을 게으름부린 늑장 탓에 이제사 질정 없이 서둘러야 했는가. 매일 아침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 수목이 가득한 길을 십여 분 걸어나오며 하는 생각이다. 급할 것이 없어 늘 염치없어하는 행보가 이런저런 생각들로 꼬물댄다.
봄꽃은 화려하나 짧다. 봄꽃이 짧은 것은 한도 없는 화려함, 끝도 없을 욕망에 온힘을 쏟아 쉬이 탈진해버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겨우내 기다렸던 성마름이 일시에 치밀어오르는 탓인가. 봄은 꽃을 먼저 앞세우고 뒤이어 연초록 잎이 따른다. 여기저기 무리를 이룬 꽃들이 햇살에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세상이 온통 새삼스럽다. 꽃이 지고 나면 새순을 돋우며 내년에 올 봄날을 긴 기다림으로 채울 것이다. 봄꽃들과는 달리 가을꽃이 오래 견디는 것은 봄부터 여름까지 푸른 잎사귀가 먼저 힘을 돋워놓은 탓이다. 가을꽃이 화려하지 않으나 그윽하고 쉬이 지지 않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봄꽃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리다. 화려하지 말든지 짧지나 말든지…. "흘러가는 물과 지는 꽃, 들어가는 나이를 기다려달란들 들어줄 리가 없다." 문득 일본 와카의 한 소설이 무상하다.
노변을 가득 채우고 있던 왕벚꽃이 밤새 스친 바바람에 많이도 졌다. 도로 위로 꽃잎이 뒹군다. 그윽하게 내려앉은 봄볕 사이로 젊은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간다. 조그마한 손이 유모차 밖으로 나와 봄 햇살을 만지작거린다. 엔제부터인가 흔하지 않은 풍경이다. 그지없이 이쁘고 싱그럽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경우가 어느 틈에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더군다나 결혼을 망설이거나 포기까지 한다는 젊음을 여기저기에서 보고 듣는다.
청춘조차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가 더 커져버린 오늘이 자본주의를 닮았다. 보는 것 듣는 것이 많아지고 덩달아 아는 것이 늘어나는 통에 바라는 것마저 커져버린 탓인가, 아니면 시절이 가는은 불편한 것이 아니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선언하고 말았는가. 성공했거나 전도가 양양하거나, 혹은 금수저를 타고난 청춘은 별 어려움 없이 가정을 꾸미는 성싶다. 유모차를 밀며 봄길을 걷는 정겨운 모습에 오늘의 청춘이 맞닥뜨린 명암을 떠올리는 건 내 처지에서 오는 변명이다. 서른이 넘은 두 아들을 아직 장가보내지 못한 애비의 무능이 애꿎은 수저에 혐의를 씌우는 꼴이다.
요즈음 새롭게 눈여기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서민들이 사는 아파트단지에는 아이들 모습이 많아 보이지 않지만 중산층 아파트단지에는 아이들 뜀박질과 웃음소리가 맑다. 아내 가게가 있는 잠실 중산층 아파트단지에서 보고 느낀 것이다 내가 젊고 철없는 아빠였던 1980년대와는 반대현상이다. 올해엔 유난히 벌과 나비가 보이지 않는다. 어제 유일하게 흰나비 한 마리를 보았다. 서민아파트단지에 아이들 모습이 귀해지고 봄꽃에 벌과 나비가 보이지 않는 시절이란,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별수 없는 의혹이 앞선다.
고향마을 봄은 꽃을 따라 벌과 나비가 날아들고 있을 것이다. 홀로 계신 노모는 올봄에도 마당에 돋는 풀을 매실 것이다. 올해로 아버님이 가신 지 스무 해다. 그 스무 해의 적막을 연중 한두 번 찾아가는 자식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구순의 노모는 고향마을 본가에 홀로 계신다. 무슨 마음이, 어떤 힘이 당신으로 하여금 아침 해에 하루를 맞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해 그림자로 이웃을 삼게 하는가. 저무는 석양을 향해 "고단했것다. 쉬었다 내일 오니라 나도 쉴란다" 하시는가. 제 삶에 치야 돌보아드리지 못하는 자식의 무능이 당신으로 하여금 순리가 몸에 배이도록 했다면, 그도 몹쓸 효라고 위안삼아야 하는 것인지. 무능한 자식보다 마당에 돋는 풀이 당신을 푸접 삼도록 하니 풀들이 더욱 왕성하기를 빌어야 하는가. 부덕의 도리, 부모의 도리, 도리를 다하고 다하고 다한 다음, 이제 당신의 도리를 챙기는 중이신가. 어찌 세월이 이런가. 봄이 가고 있다. (박춘 수필집 《그것을 이해해야 한다》, 북인, 2024)
첫댓글 글 올려 주심에 감사와 환영합니다. ^^ 선생님 작품도 두루 올려주세요. <한 오백 년 야광 염주>는 시대가 변해도 읽힐 우수한 작품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