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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5월의 찬란한 봄도 이제 오는 여름에게 그 자리는 내어 주려 합니다. 문경에 가서 밭일을 하고자 마음먹고 어제 야근을 끝내고 일찍 차를 몰고 막 나가다가 무엇을 하려다 보도에 차가 올라가고 나무를 들이받고 앞 바퀴가 터지고 저는 다시 가방을 챙겨서 집으로 와서 이렇게 전합니다. 차는 수리점에 맡겼습니다. 제 삶은 대부분 이와 같았습니다. 무언가 하려고 하다가 그대로 되지 않고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가 꼭 해야 되는 일을 모든 것을 막고 시키셨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체념하고 다시 책상에 앉았으니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은 참 드뭅니다. 오늘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같이 배우고자 합니다. 제가 처음에 블로그와 카페를 시작할 때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모두가 형제자매로 함께 배웁시다 했는데 성령의 감동으로 어떤 성경의 내용을 깨닫게 되면 곧 제가 선생이 되어서 날뛰는 모습을 저도 모르게 여러 번 보였는데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배워라 하셨고 저는 제가 도를 넘어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되면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저 멀리 두고 제가 선생이 되고 모두가 제게 배우는 형제와 자매가 되는 아주 불경하고 좋지 않은 상태가 되니 언제나 저는 예수님께 배우는 자세, 그리고 모든 분께 배우는 자세를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시 심기 일전해서 같이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저도 여러분도 같이 배우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입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25. "Therefore I tell you, do not worry about your life, what you will eat or drink; or about your body, what you will wear. Is not life more important than food, and the body more important than clothes?
26. Look at the birds of the air; they do not sow or reap or store away in barns, and yet your heavenly Father feeds them. Are you not much more valuable than they?
27. Who of you by worrying can add a single hour to his life?
28. "And why do you worry about clothes? See how the lilies of the field grow. They do not labor or spin.
29. Yet I tell you that not even Solomon in all his splendor was dressed like one of these.
30. If that is how God clothes the grass of the field, which is here today and tomorrow is thrown into the fire, will he not much more clothe you, O you of little faith?
31. So do not worry, saying, `What shall we eat?' or `What shall we drink?' or `What shall we wear?'
32. For the pagans run after all these things, and your heavenly Father knows that you need them.
33.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34.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다시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함께 예수님께 배우면서 전합니다. 이 내용을 놓고 본문을 마태복음 6장 25-34절로 놓고 전하려고 했는데 25절의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는 구절에 와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목숨과 몸을 음식과 옷과 잠시 비교를 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목숨과 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우리는 몸을 위하여 생명을 위하여 무엇을 먹고 마실 때 골라서 먹고 마십니다. 그리고 옷도 계절별로 날씨에 따라서 몸에 쾌적한 옷을 입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우리에게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하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여러 글들을 찾아서 보았는데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선 속이 시원하게 설명을 하는 글을 찾지 못했고 이제는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는데 역시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계속 쉬지 않고 묵상을 이어가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를 시켜 주셨습니다.
몸이 중요하고 목숨이 중요하기에 이를 위해서 우리는 다양한 정보를 갖고서 먹거리와 마실 음료를 선택을 하고 옷도 패션과 기능을 동시에 생각하며 잘 입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하고 계십니까? 이 말씀을 듣는 이는 모두가 베드로를 비롯해서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를 알 때 우리는 이 말씀의 더 깊은 의미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인 무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음식과 음료와 그리고 옷 보다 더 중요한 목숨과 몸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염려하는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입니다. 그런데 믿는 하나님의 백성은 생명과 몸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입어야 하는 양식과 옷이 또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독자는 아! 영의 양식인 성경 말씀을 의미하는구나 하고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옷은 성도가 입는 흰옷입니다. 이에 대한 관심은 믿지 않는 이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가 이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오직 육신의 먹고 마시는 일과 입는 옷에만 관심을 두고서 이 문제 즉 의식주의 해결과 이 부분에 있어 남보다 더 누리고 살기 위해서 온갖 정력을 다 바치고 진작 영의 양식과 옷에 대해선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살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일에 관심을 두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됩니다. 우리의 생명과 몸은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 즉 창조물로 하나님의 작품이 된 우리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는 모두가 이런 존재로 나아갈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믿지 않는 이와 같이 생명과 몸에 대해서 더욱 깊은 영향을 미치는 영적인 양식과 옷에는 관심이 없이 오직 세상의 사람이 관심을 자기는 육신의 양식과 옷에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두고 염려하고 있기에 더욱 중요한 영의 양식과 영의 옷에 대해서 신경을 쓰라는 말씀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 의미를 우리는 반드시 찾아내어서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이런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이해로 나아가는 은총을 베푸신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찬양하지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받을 수가 있는 가장 귀한 축복이라 굳게 믿습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에 대한 글도 그렇고 로마서 3장 21-26절의 이해도 그렇고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와 로마서 4장 17-22절의 이해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박국서 2장 4절의 이해와 로마서 7장 6절의 율법으로부터 자유에 대한 이해도 그렇습니다. 다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게 많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온 세상의 신학대학의 교수님께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성경의 이해를 전했습니다. 서툰 영어로 번역을 해서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자료가 여기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다 있습니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우리가 목숨을 위해서 몸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그리고 입는 것을 신중하게 골라서 먹고 마시고 입는데 목숨과 의복이 더 이것들보다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말라고 하시니 이 의미를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몸과 생명을 위해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라고 하시니 도대체 무슨 의미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밝혀야 합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이를 이해하겠습니까? 제게 온 이해는 예수님께서 주신 것으로 예수님께 먼저 영광을 돌립니다.
앞에서 이미 설명을 드렸지만 반복해서 다시 설명을 드리면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는 먹는 것보다 귀하고 입는 것보다 귀한 생명과 몸을 위해서 이렇게 염려를 말고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이는 뒤에서 계속 말씀하시는 구절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그렇게 대부분의 분들이 설명을 하는데 이렇게 해도 예수님의 생명과 몸이 더 중하지 아니하냐 하는 구절은 이해가 여전히 되지 않고 있습니다. 무언가 소중한 생명과 몸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일보다 더 급하고 더 우선해서 해야 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바로 33절에 있는 그의 나라와 의로 연결해서 바로 풀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이 연결을 합니다. 그런데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고 귀한 영혼과 몸이 육신의 양식을 먹고 마시고 옷을 입는 것을 염려하지 말고 노력할 때 우리의 몸과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느냐 하는 문제가 또 남습니다.
우리는 무언가 반드시 먹고 마시고 입는 일보다 더욱 우리의 영혼과 생명과 그리고 몸에 큰 영향을 끼치고 또 귀한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할 우리가 반드시 더욱 열심으로 해야 되는 것을 발견해야 이 문제가 해결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의 사람과 다른 반드시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하고 영적인 흰옷을 입어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바로 이렇게 성경을 읽어라 기도를 해라 흰옷을 입어라 하지 않으시고 육신의 양식의 문제와 옷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시면서 이를 먼저 해결하십니까? 우리도 역시 먹고 마시고 입고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이를 해결하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와 들풀을 이야기하시면서 더욱 귀한 우리 믿는 이들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으시고 반드시 먹이고 입히시고 마시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믿음이 없기에 발생한다고 하십니다. 해야 될 일을 하지 않고 신경을 그렇게 쓰지 않아도 되는 일에 너무 염려하면서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먹고 마시고 입게 하신 능력이 충분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에게 생명과 몸은 바로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료와 입는 옷과 너무나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생명만큼 먹는 음식이 중하고 몸 만큼 입는 옷이 중요합니다. 이 둘이 뗄라야 뗄 수가 없습니다. 먹는 것과 생명을 거의 동일시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겐 의식주의 해결이 인생의 거의 전부입니다. 한국에서도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명문대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갖고자 태어나기 전부터 하는 태교를 시작으로 모든 한국의 청소년이 적어도 30이 될 때까지 죽도록 친구도 노는 것도 반납하고 공부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 먹고 마시는 일 외에는 관심도 이해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단지 70-80년이며 죽고 난 후에 심판이 있음도 죽고 난 후에 예수님을 믿고 누릴 새로운 말로 표현이 되지 않는 놀라운 세상과 영생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겐 육신의 양식과 옷과 집 등이 생명과 몸 보다 더 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얻기 위해서 과로하다 죽고, 또 욕심으로 이를 얻고자 생명도 바치고 죄도 짓고 부모도 형제도 외면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에게 음식보다 옷보다 생명이 더 중하고 몸이 더 중하다는 이야기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도 여러분도 이 구절을 이해를 하지 못하면 바로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이 되어서 이들과 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 주님! 생명을 위해서 몸을 위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해서 속속 수집하고 몸과 생명을 더욱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염려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랬기에 아니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지 하고 묵상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로 깨닫게 되고 차가 사고가 나서 꼼짝 못하고 이렇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이제부터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믿는 우리는 이들과 똑같습니까? 절대로 같지 않습니다. 외모도 불신자와 조금도 다름없이 믿지 않는 이와 같고 또 살다가 죽고 병들고 늙는 것은 같아보지만 절대로 같은 생명도 아니고 같은 몸도 아님을 굳게 믿으시고 세상의 가르침에서 속히 벗어나고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이의 몸과 생명은 영생의 생명이요, 몸도 죄가 용서가 된 깨끗한 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신부가 된 거룩한 몸과 영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신 이유가 바로 죄인인 죽어야만 했던 우리 죄로 물이 든 우리를 구원하셔서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예수를 믿는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의 사람과 전혀 다른 생명과 몸을 가지고 예수님의 신부로서 거룩하게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임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당시의 예수님을 따르는 그분의 백성에게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제 믿는 우리가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과 백성들의 몸과 영혼이 즉 생명이 육신의 양식과 음료와 옷 보다 중함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런 몸과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가 이런 몸과 생명이 없는 세상의 사람과 같이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 생명의 말씀도 등한히 하고 흰옷을 입는 것도 저 멀리 두고 세상에 젖어서 죄를 짓고 산다면 이는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영생의 양식과 흰옷을 입는 일이 우리에게 또 이와 같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 아닐 수가 없으니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말씀을 미리 주시고 훈련을 시키시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과 바로 연결이 됩니다. 보시겠습니다.
신 29: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 너희에게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양식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직접 오셨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뵈옵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완전히 빠져서 음식과 옷을 생명과 양식과 별로 다르게 여기지 않는 것에 함몰이 되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존재다 라고 믿고 살면 절대로 아니 됨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태어나 이들의 문화와 교육을 그대로 어려서부터 받기에 이들과 동일시하며 살고 있으나 실상은 예수를 믿는 우리는 이들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새로운 창조물이며 천국을 향해서 가는 존재입니다. 이제 이 말씀 부분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었을 줄로 믿습니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부언하면 당시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던 사람과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우리는 일반 세상의 사람과 너무나 다른 존재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십니다. 자신을 믿는 새롭게 창조가 되고 거듭나게 될 보통 세상의 사람과 모습은 같지만 영생의 삶과 죄를 용서받은 새로운 몸을 지닐 자신의 제자와 백성을 보시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속히 바로 이해를 하고 이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매일 만나는 세상의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까?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이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 중에는 육체와 정신은 즉 사람의 생명의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믿고 물질이 사라지면 즉 우리의 육체가 죽으면 바로 정신도 없어진다고 믿는 이들이 온 세상에 너무나 많습니다. 또 진화론자는 하나님 없이 물질이 저절로 시간이 감에 따라서 발전을 해서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질의 존재가 없어지면 즉 생명이 사라지면 끝이다 라고 믿고 삽니다. 이렇게 사는 지구상의 인구가 적어도 60% 이상이 됩니다. 이들의 가르침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우면서 삽니다. 이들은 먹고 마시는 음식과 음료 그리고 옷 즉 물질을 우리의 몸 즉 물질로 이루어진 몸의 유지를 위해서 먹는다라고 생각하고 같은 물질로 보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과 몸과 생명을 다라고 믿고 삽니다. 이들에겐 정말로 먹고 마시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이런 인생은 자신이 이렇게 사는 것이 죄로 인함임을 알지 못합니다.
제 어머니께서 소천하셨을 때 대가족의 대부분이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50이 다 된 조카에게 누구야! 할머니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삼촌아! 할머니 돌아가셔서 저기 누워 계시는데 어떻게 다시 만나냐 했습니다. 죽음을 끝으로 보고 다시 만날 수가 없다고 믿습니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삽니다. 한국의 경우 불교를 믿어 윤회를 믿기도 하지만 죽는 자에게 짐승이 되고 나무가 되어 다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인생은 윤회가 절대로 없고 한 번 살고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을 즉 소망이 없고 죽어야만 하는 인간을 구원하셔서 새로운 생명과 몸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사는 영생을 바라고 새롭게 창조된 몸을 소망하는 반드시 그렇게 될 당시의 모인 무리와 지금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받고서 새롭게 창조가 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새롭게 창조된 몸과 우리의 영생을 누릴 생명의 귀함은 세상이 그 무엇으로도 비교가 불가합니다. 이제 세상의 사람이 생각하는 몸과 생명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을 수가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귀한 몸과 영생의 생명을 지닌 무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바로 위의 우리가 배우는 말씀입니다. 이 배경을 놓치고 잊고서 세상의 사람의 수준으로 위의 구절을 대하게 되면 이해가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분이 이제는 즉시 새롭게 창조가 되고 영생을 누릴 생명임을 자각하시고 세상의 사람의 수준에서 벗어나셔서 위의 말씀을 읽고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당시에 예수님 앞에 있던 무리와 지금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너무나 귀한 생명과 몸을 지닌 새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위의 말씀 생명과 몸이 먹과 마시는 음식과 음료 그리고 옷보다 중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분들의 생명과 육체도 역시 귀하고 중함은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거듭나고 새로운 생명을 몸을 지닌 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자각을 하지 못해도 우리는 이를 자각하고 그들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을 해야 될 것입니다.
제 차 수리비가 약 400만 원 나왔습니다. 문경에 가서 있어야 할 사람이 사고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니 사고도 감사를 드립니다. 제 부서진 차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다시 본문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입고하는 문제에 염려하지 말고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의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진리로 받아들어야 합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으나 하나님 되시는 분이심을 잘 몰랐고 믿지 않았습니다. 재물을 다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의미도 몰랐습니다. 그냥 베드로와 요한 등이 배도 가족도 버려두고 들판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신 흠모할 것 없어 보이는 예수님과 지내니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누리고 가진 부와 물질이 너무나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믿어져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자는 이름도 없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 수천 년 또 앞으로 올 세상에서 지옥에 간 못난 사람으로 기록이 되어 회자가 되고 있고 그냥 보통 사람으로 그들에게 보였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후에 부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 하늘에 계시고 재림 후에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 등 제자들은 당시에 초라했지만 겨우 몇십 년의 고난 후에 역시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큰 자로 하늘의 별 즉 태양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이들이 추앙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영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름도 없고 작아 보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인생의 영광 중에서 가장 큰 영광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장 복되고 귀한 일을 하고 가장 높고 귀한 영생의 삶을 위해서 잠시 고난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굳게 강철과 같이 돌과 같이 철과 같이 단단하게 믿고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해야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염려에 빠지면 영적인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염려는 스트레스를 가져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염려로 우리가 걱정하는 현실과 미래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도리어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합니다. 근심이 지나치면 뼈가 마릅니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울합니다. 속히 이 모든 근심과 염려를 중단해야 합니다. 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며 주님께서 말라고 하시기 때문이며 우리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즉 물질에 하나님에 나누어서 섬기면 염려가 옵니다. 이제 염려를 접어야 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과 뜻과 힘을 다 모아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함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그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염려를 접고 일심으로 해야 할 일을 설명하십니다.
저는 이 글을 어제 오늘 새벽에 걸쳐서 기도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잠시 접고 산책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잡니다. 새벽에 일어나니 3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고를 당해서 400만 원을 물어야 하고 밭 일도 접었으니 당장 이를 생각하니 조금 암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묵상하면서 새 힘을 얻습니다. 제가 배우면서 전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글을 이렇게 쓰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진리를 깨닫는 기쁨과 기대는 작은 물질적인 손실을 크게 뛰어넘으니 다시 힘이 샘솟습니다. 속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과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에 대해서 예수님께 배울 큰 기대가 있고 그리고 놀라운 보배를 얻는 희망이 저를 힘차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벽이 이슬같이 내리고 있으니 모든 글을 읽으시는 분이 함께 누리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선 믿는 우리도 잘 이해도 어렵지만 또 그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그 교회에 충성하면서 삽니다. 주일을 지키고 헌금을 하고 그리고 교회에서 여러 분야에서 각각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예배에 잘 참석하고 다양한 교회 활동에 같이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인정을 받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됩니다. 그리고 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우리는 세상의 법을 지키면서 세상의 사람과 믿는 타 교회 교인과 경쟁을 하면서 잘 살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에 대해선 무엇이 하나님의 의인지 또 잘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로 대부분의 세상의 크리스천이 살고 있는데 과연 예수님의 말씀에 즉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지 우리는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염려말라 2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의미에 대해서 이어집니다. 기도해 주시고 많이 읽어 주시고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우리 모두가 함께 염려말라에 대해서 배움을 감사합니다. 우둔한 종을 사고로 막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며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모든 염려에서 해방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귀한 존재에 대해 늘 잊지 말게 하시고 새 생명을 지니고서 믿지 않는 이들과 같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해서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해서 소홀히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배우고 실천해서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속히 건설되게 하소서! 놀라운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베풀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