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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하루 전날, 월성 핵발전소 홍보관 앞의 나아리 주민 농성장은 10년이 흐른 3544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장영식
월성 핵발전소 앞. 매주 월요일 아침 8시가 되면, 집단 이주를 요구하는 나아리 주민들이 핵발전으로 발생한 핵폐기물 모형과 자신들의 직함을 적은 관을 끌고 월성한국수력원자력 정문 앞까지 돌아오는 시위를 합니다. 벌써 3544일, 10년이나 흘렀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상여와 관을 끌고 시위를 했습니다. 실제 상복을 입고 상여곡도 틀었습니다. 핵발전소 앞에서 사는 것은 죽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70세대가 넘게 참여했던 시위는 지난 10년 동안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세월에 장사가 없었습니다.
나아리 주민 농성장 앞의 관들의 빛이 바래어서 낡아 있었다. 우리 사회의 낡고 경색된 마음처럼. ⓒ장영식
한국전력은 월성핵발전소를 지을 때, 마을이 발전하고 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회유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핵발전소가 ‘꿈의 공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주민들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상선암 수술을 했고, 어떤 사람은 혈액암 수술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뼈에 암이 달라붙었습니다. 소변 검사에서는 삼중수소가 배출됐습니다. 삼중수소는 아이들의 소변 검사에서도 배출됐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 핵발전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마을의 지하수가 오염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하수 대신 생수를 사다 먹었습니다. 그러나 아픈 것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핵발전소의 중대한 위험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월성핵발전소 주변 마을의 가축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머리가 없거나 눈이 먼 송아지, 생식기가 없는 송아지, 뼈만 있고 살이 없는 가축들도 태어났습니다. 강아지들이 사산되고, 기형적인 물고기들이 잡혔습니다.(김우창, "원전마을", 한티재, 87-109쪽 참조)
나아리 마을 주민 농성장에서부터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 정문 앞으로 핵폐기물을 상징하는 드럼통과 '사는 게 죽는 것과 똑같은 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으로 빛바랜 낡은 관을 끌고 시위를 하는 모습. ⓒ장영식
핵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방사능 물질들은 보이지도 않았고,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냄새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웠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매일매일 지속적으로 피폭되는 위험에 노출됐습니다. 그래서 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농성장도 만들었고, 매일 상여 시위도 했습니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습니다. 잠시 찾아오는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을 가졌지만,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찾아왔고, 대통령이 되었지만 변화가 없었습니다.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원전부흥’을 외친 대통령이 되자 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이 날라왔습니다. 농성장 주변의 현수막도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느린 폭력’은 방사능만이 아닙니다. 주민들 몸속에 존재하는 삼중수소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삶에 놓인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나아리 마을 주민들이 월성한국수력원자력 정문 앞으로 끌고 가는 빛바랜 낡은 관은 바로 우리 사회의 관이며, 우리 자신의 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월성 핵발전소가 있는 마을에서는 기형적인 물고기가 잡히고, 기형적인 가축들이 태어나고 사산되기도 했다. ⓒ장영식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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