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구명은 실명(失明)을 당하고도 춘추시대(春秋時代) 8국의 역사를 나라별로 적은 역사책인 國語를 저술한 공자와 비슷한 시기의 노나라 학자이다. 좌구명은 사마천(司馬遷)이 궁형을 당하고도 살아남아 역사책을 기술하는데 정신적 지주가 된 인물이다.
이에 사마천은 ‘報任少卿書(소경 임안에게 보내는 답서)’에서 시련을 극복한 특별한 인물의 하나로 좌구명을 거론하였다. 공자가 본받을 만한 인물로 좌구명을 직접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좌구명의 연배는 공자보다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구명이 춘추좌전의 저자라는 해설이 많은데 이는 나이로 볼 때 잘못된 것이다. 공자가 춘추를 쓰고 돌아가신 때가 73세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춘추좌전은 다만 좌씨가 해설했다는 것이지 좌구명과는 관련이 없다.
① 朱子
足은 過也라 : 주(足)는 지나침이라.
② 程子
左丘明은 古之聞人也라 : 좌구명은 옛적에 소문난 사람이라.
③ 謝氏
二者之可恥는 有甚於穿窬也라 左丘明이 恥之하니 其所養을 可知矣라 夫子 自言丘亦恥之라 하시니 蓋竊比老彭之意요 又以深戒學者하야 使察乎此而立心以直也시니라
두 가지를 가히 부끄러워함은 벽을 뚫고 넘어가는(도둑질하는) 것보다 심함이 있음이라. 좌구명이 그것을 부끄러워하니 그 소양을 가히 알만하니라. 공자가 스스로 ‘나 또한 부끄러워하노라’ 라고 말씀하시니 대개 절비노팽(은나라 현인인 노팽의 겸손함을 그윽히 비유하여:술이편 1장 참조)의 뜻이오, 또한 배우는 자를 깊이 경계하여 이를 살피게 하고 마음 세움을 곧게 하심이라. 穿 뚫을 천 窬 넘을 유
출처
:
『논어
易解』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