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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4050세대 정치인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마에하라 세이지 국가전략상, 하시모토 도오루 오사카 시장. |
영토분쟁을 둘러싼 동북아(東北亞) 3국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19세기식 민족주의가 부활하면서, 100여 년 전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최근 상황과 관련해 주목할 부분은 ‘갑자기’ 변화된 일본의 대응자세에 관한 부분이다.
영토가 국가적 자존(identity)의 출발점이란 것은 이해하지만,
전후(戰後) 보아온 일본의 대외(對外)정책 흐름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비밀외교나 ‘조용한 외교’를 통한, 화(和)에 기초한 대응이 아니다.
정면으로 맞서는 강경대응이 최근 일본의 일관된 자세이다.
‘네마와시(根回し)’로 불리는, 즉 주변의 공기와 흐름을 이해한 뒤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남의 얘기를 듣기보다 자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퍼부은 뒤 곧바로 밀어붙이는 식이다.
강경대응에 나서는 인물들의 면면도 기존과 크게 다르다.
태평양전쟁 이전 군국주의(軍國主義)에 미련을 가진 한물간 정치인이나 지도층에 의한 ‘부분적 대응’이 아니다.
정부 각료·여당은 물론 야당 정치인과 언론, 그리고 사회지도층 대부분이 똘똘 뭉쳐서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반일(反日)시위의 규모와 그로 인한 피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일본 내부의 응집력이 강해지고 있다.
8월부터 시작된 독도분쟁 이후, 한국 언론 대부분은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강경대응의 배경으로 우익론(右翼論)을 제시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이 득세를 하면서
19세기식 제국주의적 발상이 아시아에 엄습하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소 부족한 분석이다.
한물간 역사관을 가진 일부 정치인의 우향우(右向右)가 아니라 앞으로 당분간 계속될 우향우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누가 일본 정국(政局)을 주도하더라도 일본의 우향우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우익 대두’를 근거로 한 상황 설명은 일본 전체가 이미 변화된 상태에서
세상 변화에 둔감한 ‘낡은 분석’이라고 볼 수 있다.
‘우향우로 나선 일본’이 아니라, ‘우향우가 상식화되고 있는 일본’에 대한 분석이 절실하다.
노다 총리의 등장과 4050세대
지난 2010년 6월 자위대를 사열하는 노다 일본 총리. 노다 총리는 각료의 절반 이상을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로 충원, ‘포스트 단카이’시대를 열었다. |
일본의 우향우를 일본 내 일부가 아닌 전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가장 큰 근거는 세대론(世代論)에서 찾을 수 있다.
한 시대를 지배하던 흐름과 생각은 사람이 바뀌는 순간 급속하게 변한다.
세대론이 가장 잘 통하는 곳으로 일본만 한 나라도 없다.
일본은 집단을 통해 살아가는 곳이다.
특출한 개인적 리더십이나 카리스마에 호소하는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공기와 집단의식이 중심에 서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같은 언어로 전국이 일원화(一元化)되어 있으며
중산층이 두껍다는 점도 일본에서 세대론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이다.
세대론에 입각해 일본을 조명해 볼 때,
무대 중심에 선 주인공은 40대와 50대이다(이하 4050).
이들은 일본을 지탱하는 머리이자 허리에 해당된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에 출생한 세대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세대(團塊世代·이하 단카이)의 뒤를 잇고 있다.
일본의 시대정신이 우향우로 돌변한 것은
이들이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부분을 지배하면서부터이다.
정확히 말해 단카이의 대표격인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를 이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서부터이다.
간 전 총리는 1946년생, 노다 현 총리는 1957년생이다.
노다 총리는 각료의 절반 이상을 자신과 비슷한 연령층의 인물에서 등용했다.
4050 지도부 시대가 온 것이다.
4050은 버블경제를 발판으로 한 ‘버블세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버블경제는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지속된, 고도성장기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1990년대 초 버블붕괴 때까지 일본은 매년 10%에 가까운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뉴욕, 아니 미국 전체를 통째로 사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일본주식회사’의 위력이 전 세계를 진동하던 시기이다.
역사를 모르는 세대
버블세대는 일본주식회사에 언제 입사(入社)했는가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눠진다.
좁은 의미의 버블세대는 1980년대 말에 직장에 들어간 연령층이다.
출생연도가 1965년부터 1969년에 해당된다.
넓은 의미에서의 버블세대는 고도성장기에 직장에 들어가 버블경제를 경험한, 단카이 이하의 세대를 포괄한다.
이들은 1980년대 초 일본주식회사에 들어간 세대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4050은 넓은 의미의 버블세대다.
2010년 일본 인구통계에 따르면 총인구 1억2581만명 가운데
약 26.5%에 해당되는 3323만명이 405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 4명 중 한 명이 4050인 셈이다.
이들은 한국으로 치자면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유신(維新)세대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486세대에 해당된다.
일본의 4050은 기존의 한국인이 보는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역사관을 갖고 있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일본인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다.
하나는 태평양전쟁에서 살아남은 장로(長老)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1990년대 버블경제가 끝난 뒤 태어난 20~30대(이하 2030)이다.
장로세대 가운데 1945년 종전(終戰) 직후 태어난 단카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일본인의 모습일지 모르겠다.
이들은 한국의 경제발전과 국제화가 궤도에 오른 1980년대에 일본의 허리와 머리에 해당하던 사람들이다.
단카이는 일본의 재(再)무장에 반대하고 비핵(非核) 3원칙을 규정한 평화헌법에 애착을 갖고 있다.
이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이나 중국에서 저지른 역사적 과오를 어느 정도 솔직히 시인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에도 이바지했다.
2030은 한일 간의 직간접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익숙해진 세대이다.
영화·노래·텔레비전·만화·캐릭터 등을 통해 일본 젊은이들의 생각과 모습이 한국에 곧바로 전해지고 있다.
인터넷은 한국과 일본의 2030을 직접 연결시켜 주는 핫 라인이다.
일본의 4050은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가장 낯선 세대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4050과 한국과의 접점(接點)이 없다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4050은 단카이와 달리 아시아에서 벌어진 과거사를 전혀 모르고 자라났다.
전쟁에서 패한 부모세대 밑에서 자란 단카이는 직간접으로 전쟁의 상처와 고통을 듣거나 알고 있다.
4050은 다르다.
이들은 1868년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전후한 일본사(日本史)까지 배웠을 뿐,
근대화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만행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2030이 한국전쟁을 모르는 것처럼, 태평양전쟁과 패전의 비참함을 모른다.
학교 교과서에 이에 관한 얘기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침략사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사 부분에 주목하는 교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는 역사적 해석 없이 연대기(年代記)를 주입식으로 가르친다.
아시아 주변국을 괴롭히다가 패전을 맞은 근현대사는 일본인들에게는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터부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에 관한 논의도 사라져 버린다.
일본 4050을 이해하는 키워드, ‘버블경제’
4050은 버블세대이다. 한국인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버블경제야말로 4050을 읽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일본인 자체가 경제동물이라고 불리지만,
4050 캐릭터의 핵심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경험하지 못했던
초유의 버블경제란 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1980년대에 4050이 성년에 들어섰을 때 일본의 버블경제가 시작됐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극복하면서 일본은 세계경제 무대에서 경쟁상대가 없는 단독선두로 나섰다.
미국과 유럽은 1985년 플라자 협약을 통해 엔화의 가치를 1달러에 240엔으로 격상시켰다.
이후 2년 만에 1달러에 143엔까지 올라갔다.
플라자 협약 이전과 비교해 볼 때 가만히 앉아서 엔이 거의 200% 올라갔다.
엔화가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는 사실상 기축(基軸)통화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가 엔에 투자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젊을수록 변화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당시 2030이던 일본의 4050은 엔의 위력을 감지하는 순간 밖으로 눈을 돌렸다.
비행기표 값과 호텔비를 빼도 국내보다 외국여행이 훨씬 싸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이 주로 간 지역은 교과서에서 배운 문화 문명대국, 즉 유럽·미국이다.
한국·중국 등 아시아권에 대한 지식이 전무(全無)한 상태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1980년대 말 일본 대학생들이 졸업여행지로 가장 선호한 곳은 파리·로마·런던 그리고 뉴욕이었다.
2주 동안 이뤄진 대학 졸업여행을 통해 이들은 책에서 배운
서방세계의 어제와 오늘을 피부로 절감했다.
지난해 300만명이 넘는 일본인이 한국을 다녀갔지만
1980년대에는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극소수였다.
당시 20대 전후의 젊은이들에게 비친 한국은 ‘가깝지만 먼 나라’,
‘북한 김일성 체제에 버금가는 군사독재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오랫동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공산중국은 일본 젊은이들의 머릿속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의 나라쯤으로 인식됐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1980년대의 한국도 자유로운 외국여행과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한국인의 일본여행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이때는 유신세대와 486세대가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한 시기였다.
따라서 한국인의 일본 4050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대학생이 일주일만 아르바이트 하면 루이비통 구입
일본의 버블세대는 초유의 해외여행을 통해 다른 나라 국민들은 체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을 했다.
바로 자신감이다. 이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서방 선진국에서 대접을 받은 유색인(有色人)이다.
이것이 엔의 위력 덕분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1980년대 말 뉴욕 5번가에 위치한 최고의 호텔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1박(泊) 호텔비는
도쿄의 3평짜리 비즈니스호텔 숙박료와 비슷했고,
세계 최고의 호텔인 파리의 리츠호텔 스위트룸 숙박비가 도쿄의 사성(四星)급 호텔비 정도였다고 한다.
“왜 이렇게 싸지?”라는 말이 당시 서방의 최고급 문화와 문명을 접한 일본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프랑스 고급 브랜드의 대명사인 루이비통이 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도
1980년대 초 일본인을 통해서였다.
버블경제 당시 일본 대학생이 하루 두 시간씩 일주일만 아르바이트를 하면
현재 300만원 선인 중간 레벨의 루이비통 가방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100만원 이상에 팔리는 루이비통 지갑도 당시 고등학생용 선물 정도로 여겼다.
이는 유럽이 유로체제에 들어가기 전이라 지금과 달리
명품 브랜드 상품의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높게 오른 엔 덕분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그런 명품들은 ‘간단히’ 살 수 있는 일용품 정도에 불과했다.
미국에 대한 인식도 크게 변했다.
지금의 4050을 단카이 및 그 이전 세대와 확실히 구별하는 것이 바로 미국에 대한 인식이다.
거지와 치안부재로 악명 높던 1980년대의 뉴욕을 목격하면서
일본의 4050이 과거의 승전국 미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일본인이 터부시하는 말 중 하나가 ‘아카센(赤線)’이다.
2차대전 후 일본에 진주(進駐)한 미 점령군을 상대로 한 매춘구역을 말한다.
말 그대로 붉은 선을 그어 일반 거주지나 상권과 구별했던 곳이다.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더불어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감독의 대표작으로
<아카센지대(赤線地帶)>라는 영화가 있다.
1957년 작(作)인 이 영화에는 자신의 부인이 미군을 상대로 한 매춘에 나섰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를 아카센으로 보내는 남편의 모습이 등장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과 싸웠던 구(舊)일본군 출신 실업자인 남편은 부인이 벌어온 달러로 생활해 간다.
아카센은 1958년 법으로 금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카센 폐지 이후 한 세대 만에 일본은 미국을 따라잡았다.
현재 4050은 그 같은 엄청난 미일(美日) 역전극을 미국 현지를 돌아다니며 직접 경험한 세대다.
‘헤이와 보케’
4050의 특징 중 하나로 탈(脫)이념, 나아가 무(無)이념을 빼놓을 수 없다.
4050은 특별한 신념이나 정치적 확신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에 나타난 4050의 우향우 성향을 보면서 우(右)이데올로기를 가진 세대라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판단은 다르다. 이들은 머릿속에 아예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한국에 맞서는 과정에서 우향우로 갔다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나아가 국가주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일 경우 쉽게 작용하는,
감성에 호소하는 이데올로기다. 이념과 무관한 일본의 4050이 우향우로 빠진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4050은 ‘헤이와 보케(平和ボケ)’의 대명사로 불린다.
명사 ‘평화’와 ‘멍하게 되고 분별력을 잃는다’는 의미의 동사 ‘보케루(惚ける)’가 결합한 말로,
국가적 차원의 평화나 안전보장, 전쟁에 관한 식견이 부족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쟁 안전보장 동맹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떤 식으로 구체화되는지에 대한
논의나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 ‘헤이와 보케’이다.
점령군이 만들어준 평화헌법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아온 세대가 4050이다.
적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도 없이, 미국이 만들어준 평화헌법을 가지고 세상을 대해왔다.
일본의 4050은 국가관이나 안보의식을 가질 이유도 배경도 없다.
버블경제에 익숙하기 때문에 빈부나 사회적 차별을 둘러싼 논쟁과도 거리가 멀다.
이들은 스스로 원해서 이데올로기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필요 없는, 무이념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었다.
민주화 투쟁, 통일운동, 경제적 평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놓고 밤을 새우곤 했던
한국의 유신세대나 486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일본의 4050이다.
4050의 맏형 아베 신조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는 총리 시절 해외순방 시 아내 아이케 여사의 손을 잡고 비행기 트랩을 내려 충격을 주었다. |
아무리 ‘헤이와 보케’라 하지만, 4050도 나름 중시하는 것이 있다. 회사에서 출세하고 이성(異性)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4050이 지향하는 인생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대신, 생활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1954년 출생한 4050의 머리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9월 26일 자민당 총재에 당선되면서 일본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부활한 버블세대의 맏형이다.
곧 치러질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압도적으로 누를 것으로 전망된다.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리더십 부재가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주면서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2006년 9월부터 정확히 1년간 총리로 재임했던 아베는 일본인에게 자신감과 안정감을 불러일으킬 구관의 대표로 등장했다. 최고(最高)는 아니지만, 적어도 최악(最惡)은 아닐 것이란 믿음이 아베에게 쏠려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아베 전 총리는 우익 수준을 넘어,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로까지 통하는 인물이다.
과거사에 관한 사죄 재검토에서부터, 헌법 개정, 군사력 강화 등 그동안 일부에서 논의되던
우향우의 논리가 아베의 입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다.
자민당 총재 경선 때도 ‘일본의 우향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인물이다.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하고 아베가 다시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일본과 주변 아시아 국가와의 갈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는 버블세대의 첫 총리다. 총리 시절 그는
해외순방 시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모습이 TV를 통해 나가자 단카이는 공(公)과 사(私)를 구별하지 못하는 유치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과거 일본 총리들은 외국 순방 시 비행기에서 자기가 먼저 내리고
부인은 나중에 내리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베 전 총리가 보여준 모습이 4050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회사에서 출세하고 이성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4050이 지향하는 인생관이기 때문이다.
삶을 논할 때 4050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인생(自分が納得できる生き方)’이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인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인생’
버블세대의 대표 가수인 야마시타 다쓰로. |
아베의 경우 정치인이 되면서 ‘헤이와 보케’에서 벗어났겠지만, 그 역시 무이념이나 탈이념으로 점철된 청춘을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볼 때 청년기의 아베가 경험했을 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미일동맹 문제를 둘러싼 안보논쟁,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반미(反美)투쟁, 반공(反共)투쟁 등은 앞선 단카이의 몫일 뿐 아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성탄절이나 연말에 고급호텔에 묵으면서 샴페인과 부대시설을 즐기는 연인용 패키지 상품이 등장했다. 이것은 일본의 버블세대가 가장 애용한, 1980년대 일본에서 탄생한 신종문화 패키지이다. 연말이 되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호텔방에서 샴페인의 황제로 불리는 돈페리옹 모에에샹동과 캐비아를 즐기는 것이 일본 4050의 행복이다.
버블경제 당시 최고의 히트 가수였던 야마시타 다쓰로(山下達郞)의 ‘크리스마스 이브(クリスマス·イブ)’는 당시 아베와 같은 청춘을 찬미하는 축가(祝歌)인 동시에, 4050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만드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지금도 매년 연말 국영열차인 JR도카이(東海)의 텔레비전 광고음악으로 활용되고 있다. 버블경제 당시 터지고 넘친 돈페리옹 샴페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대의 초상화가 야마시타의 노래들이다.
밤 11시~새벽 5시까지 심야방송을 하면서 24시간 종일방송체제가 시작된 것도 버블경제 시절이던 1980년대였다.
심야방송시간에도 낮에 방송된 프로그램을 재방송한 것이 아니라, 전부 새로 만들어 내보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인 AKB48을 만든
아키모토 야스시(秋元康)는 버블경제 당시 텔레비전을 지배한 4050을 대표하는 문화인이다.
버블세대를 대표하는 가수인 톤네루즈(とんねるず), 이나가키 준이치(稻垣潤一),
사키야 겐지로(崎谷健次郞)를 유명인으로 만든 작곡가이자 프로모터가 아키모토이다.
우향우의 대표주자격인 노다 총리, 외무대신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친한파(親韓派)’라고 불리는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국가전략상 등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인생’에 주목한 버블세대이다.
오타쿠 문화의 탄생
4050의 청춘기는 하나만 열심히 파고드는 오타쿠(お宅) 문화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팔방미인(八方美人)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경우 ‘팔방미인’이란 ‘두루 알면서 대부분을 만족시켜 준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일본에서는 정반대다.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지랖만 넓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강하다.
한 가지에 집중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본식 미덕이다.
작년 노벨화학상에 이어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일본인이 수상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만 파고드는 오타쿠 문화가 기초과학 분야와 접목(接木)되어 성과를 거둔 것이다.
4050은 외국에 환대를 받는 동안에도 나름 하나를 파면서 열심히 배운다.
외국에서 본 새로운 것, 흥미로운 것, 아름다운 것들이 일본인을 통해 일본 안에서 진화된다.
버블세대가 주목한 외국의 새로운 문화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음식이다.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이기는 하지만 특정 국가를 이해하는
최고 최선의 방법 중 하나가 음식에 대한 이해이다.
음식문화를 이해한다면 그 나라의 절반은 알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음식과 관련해 일본은 미식(美食)대국 프랑스를 넘어선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스시(すし)나 사시미(刺身)로 상징되는 일본요리만을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인이 만든 프랑스 요리나 이탈리아 요리는 현지 수준을 넘어선다고 한다.
미슐랭 레드가이드의 고향인 프랑스보다 더 많은 스타 레스토랑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외국을 열심히 돌아다닌 4050은 음식과 와인, 치즈 등 기존의 일본인과 무관한 미식세계에 정통하다.
도쿄에서 전 세계 요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한 4050의 미식세계가 일본 안에 정착됐다는 의미이다.
단카이는 500엔짜리 라멘이나 우동을 통해 자신의 청빈함을 자랑한다.
한국에도 소개된 나카노 고지(中野孝次)의 《청빈의 사상(淸貧の思想)》 같은 책이
단카이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4050은 다르다. 라멘이나 스시보다 유럽 황제의 요리와 프랑스 최고급 와인에 더 관심이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요리 프로그램으로, 현재도 전 세계 TV 어딘가에서 방영되고 있는
<요리의 철인(料理の鐵人)>은 4050의 세계관을 반영한 일본식 미식문화의 결정판이다.
현재 청년층인 일본의 2030은 이념으로 살아온 아버지뻘인 단카이가 아닌,
소프트하고 심플하게 살아가는 세련된 선배인 4050을 지지한다.
일본 젊은이에게 ‘청빈의 사상’은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위선자의 잠꼬대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20세기 말 이미 버블은 끝났지만, 버블이 남긴 달콤한 기억과 향기는 21세기의 2030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카이를 잊고 4050에 맞는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일본은 가까운 시일 내에 총선을 통해 그동안 미뤄왔던 내부조정에 들어갈 것이다.
누가 정권을 잡는다 하더라도 핵심은 개헌으로 집약될 수 있다.
민주당의 노다 총리, 자민당의 아베 총재, 일본유신회 대표이자 오사카(大阪) 시장인
하시모토 도오루(橋下徹) 모두가 우향우로 방향을 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독도와 종군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앞으로 더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개헌을 통해 일본이 본격적으로 군사력 강화에 나설 경우 중국과의 관계 악화도 불을 보듯 뻔하다.
앞에서 살펴본 일본 4050의 배경을 이해한다면 단카이에게나 통하던
20세기 스타일의 대일(對日)외교는 어려울 것임을 전망할 수 있다.
일본 메이지 헌법은 메이지유신이 단행된 후 20여 년이 지난 1889년 2월 제정됐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당시 일본 최고 지도부가 외국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배우고,
토론과 논의를 거듭한 끝에 제정한 헌법이다.
그리고 일단 헌법이 제정되자 곧바로 국력(國力)을 하나로 모아 대륙침략에 나섰다.
여기서 보듯, 결심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결정되면 곧바로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본인이다.
냉전이 끝나면서부터 시작된,
길고도 긴 일본의 개헌 논의는 이번 총선이 끝나는 즉시 급물살을 탈 것이다.
개헌이 결정되는 순간, 일본열도(列島)에서는 엄청난 속도로 변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일본 4050의 어제를 보면 오늘과 내일을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우향우는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단카이세대에게 통하던 논리는 4050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적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적을 이긴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일본의 4050을 제대로 안다면,
적어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그랬던 것처럼 그들에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