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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코스(통일안보공원~통일전망대) 11.7km
해파랑길 50코스는 고성의 통일안보공원에서 최북단 마을 명파마을과 갈 수 없는 출입국사무소가 있는 제진검문소까지 걷고 이후 7번 국도는 차량으로 이동하여 3.8선 비무장지대 안의 통일전망대까지 도보 약 5km와 차량이동 약7km를 진행하는 11.7km의 최북단 마지막 길이다. 어렴풋이 들리는 소음에 눈을 뜨고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6시를 넘어가고 있다, 커튼을 제치고 창문을 여니 밤새 내리던 비는 오지 않고 하늘은 험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날씨이다, 그래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대충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벌써 회원분들은 따뜻한 황태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룻밤을 함께하신 회원님들의 얼굴엔 한층 즐거운 분위이다, 자리를 잡고 강원도의 토속음식의 하나인 황태해장국으로 식사를 마친 뒤 체크아웃을 하고 오전 8시 콘도를 출발한다,
이곳에서 통일안보공원까지는 약 6~700m, 걸어도 되지만 버스로 이동하여 통일안보공원 내 출입국사무소를 들어가자니 아직 문은 닫혀있다, 한참을 기다려 9시부터 등록과정을 진행하고 15분정도 안보영상을 시청한 뒤 37명의 우보(愚步)들이 통일전망대를 향해 북으로 북으로 출발한다, 마지막 50코스의 길은 비교적 편안한 길이라고 알고 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은 거미줄과 빗물이 마르지 않은 산속으로 안내한다, ‘통일의 염원을 앉고 북으로 오르는 길은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을 걷게 한다!’ 생각하며 낮으막한 등성이 두어개를 넘고 약 3km정도를 전진하니 눈앞에 우리나라 동해안 최북단 마을 명파리 마을과 명파초등학교가 정겨운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온다,
데크계단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명파해수욕장이다, 해파랑길 이정표는 좌측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와 명파해변을 바라볼 것인가? 꼭 보고가자고 회원들을 해변으로 안내한다, 명파리 해변의 바다는 지금까지 지나온 수많은 해변보다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정말로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바닷물에 발을 담가볼 수 있는 곳! ‘청파’라는 닉네임을 만들었던 19살 시절의 만리포 해변을 떠 올린다, 잠시 회상에 젖어 하늘을 올려보고 길을 재촉한다, 해변을 나와 마지막 북으로 걷는 길은 예전까지 사용하던 구도로를 따라 제진검문소 방향으로 꺾어진다, 앞에 군부대가 있고 “민간인과 차량은 유턴하여 사거리에서 7번 국도로 진입하세요,” 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우측으로 오르는 길로 올라서니 “제진검문소”이다,
검문소 앞에 올라서니 위병이 다가와 친절하게 안내한다, 북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오물 등을 절대로 버리면 안된다는 주위와 함께 차도를 건너 한적한 곳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차량의 통행이 빈번한 이곳 통일전망대 제진검문소 입구의 하늘도 같은 하늘이건만 총을 든 위병들이 오고가는 분위기에 또 다른 위압감이 밀려온다, 우리의 버스가 도착하자 모두 탑승하고 위병의 검문과 함게 우리를 태운 버스는 검문소를 지나 북으로 북진을 한다. 이제 7km만 차를 타고 달리면 그리고 그리던 통일전망대이다.
제진검문소까지 산길, 들길, 바다를 걸어 5km, 이제 차를 타고 7km를 달려 차는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가자!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순간은 잊어버리고 힘차게 함성을 질러보자! 일부 회원과 가족을 먼져 전망대로 올려보내고 완주들은 조금 천천히 전망대를 오른다, 먼저 와 대기하던 일행들이 힘찬 박수와 환호로 음원하고 나도 모르게 워킹 회이팅!! 을 부르짖으며 감격의 환호로 응답한다, 통일전망대에 오르던 많은 관광객들도 함께 환영해 준다, 이 순간을 위하여 장장 3년간 750km의 걷기와 35,000km의 차량이동으로 이곳까지 달려왔다,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다, 아직까지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리며 일행들과 기념촬영을 한다, 하늘을 보니 이름모를 새 한마리가 북녘 하늘로 날개짓을 한다, ‘북으로 계속 걷고픈 내 대신 소식 좀 전해다오’ 속으로 되내이며 통일전망대 망루에 올라 북녘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천을 바라본다, 멀리 아스라이 금강산이 보이고 삼일포 해변, 총석정도 보이는 것만 같다.
우리가 살아온 그 땅, 그 하늘, 그 바다이건만 가 볼 수 없는 세계 유일의 분단의 현장에 서있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체결한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 남북으로 각각 2km씩 4km나 되는 구역을 DMZ(비무장지대)로 정한 서해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 고성통일전망대까지 248km의 엄청난 국토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었다, 말 그대로 군대를 주둔할 수 없으며, 무기 또는 군사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구역이 바로 비무장지대이다,
동해에서 서해까지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는 이제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생태계의 보고가 되어 있다, 산악과 평야, 계곡과 분지, 여러 개의 하천과 강이 함께하며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3,000여종의 식물 중 절반 정도와 70여종의 포유류 가운데 절반이, 320여종의 조류 가운데 1/5이 이곳에서 발견되는 생태계의 보고가 되었다, 남과 북이 한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전투를 벌여 황폐했던 비무장지대가 긴 세월 동안 스스로 자정 능력으로 치유되어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것이다.
2019년 12월 8일 첫발을 딛은 해파랑길을 시작하자 코로나-19 감염병의 출현으로 너무나 많은 시련을 우리에게 주었다, 개인이나 또는 몇 명의 인원이 아닌 대형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단체활동이 제약을 받으면서도 창가로 띄어 앉기 등으로 철저한 방역과 함께 힘겹게 이곳까지 걸어왔다, 1개월에 1~2회씩 약35,000km의 차량 이동과 오늘 35개월 만에 이곳 통일전망대에 함께 선 자랑스런 20여명의 일행과 대장정을 환영하여 주신 20여명의 회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느 때는 무념무상으로, 어느 때는 천천히, 산하를 감상하며 앞으로의 시간이 점점 작아지는 마지막 시간을 아쉬워하며 걸어왔다, 젊은 시절에는 혼자서 백두대간 종주와 1,000봉우리를 정복하고 지칠대로 지친 내 생애의 흐노애락을 이곳 해파랑길 이어걷기 종주에 모두 쏟아냈다.
걷기 붐을 타고 산행에서 걷기로 전환한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러간다, 그동안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깝게는 “내포문화숲길”, “강화나들길”, “대부도해솔길”, 태안솔바람길“, ”태안솔향기길“ “북한산길”, “군산구불길”, “대청호반길”, “서산아라메길” 그리고 멀게는 ”지리산둘레길“, 제주올레길”, “강릉바우길”, “남해바래길” 등등 아직 다 완주하지 못한 길까지 많은 길을 걸어최장 동해안 해파랑길 750km를 걸어서 드디어 이곳에 도착하였다, 60이 넘은 나이에 나는 하였고, 걸어왔다, 계획하고 시도했던 그 길을 걸어 수없이 많은 길에서 만난 길동무는 함께 한 일행뿐이 아니라 숱한 인영을 함께 한 하늘과 구름, 바람과 비, 숲길과 들길, 이름모를 새들과 풀벌레,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자연 속의 벗들과 만났으며, 조석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 속의 내 모습도 만났다.
태양과 바다를 품은 넉넉한 해파랑길의 인솔기를 쓸 수 있는 양식도 그동안 걸어오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모르면 책을 펼쳐 찾아도 보며 주마등같이 흐르는 느낌들이 남아 있었기에 가능하였으리라...,
오늘만은 제발 청명한 날씨로 남아주기를 마음졸이며 애태웠던 지난 시간처럼 어제 아침 일찍 바라본 무지개에게 제발 청명한 날씨를 주시기를 기원한 보람이 있었는지 해금강이 보이고 삼일포가 보이는 청명한 날씨 덕분에 다행히 북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창조주께 감사한다,
바람도 오가고, 구름도 오가며, 새들도 오가는데, 사람은 갈 수 없는 북녘땅과 바다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 보련다.
벅찬 마음을 뒤로 하고 귀가길에 오른다, 집으로 오는 길에 구수하고 진한 두부전골로 늦은 점심과 알코올도 곁들인 후 차에 올라 준비해간 클럽의 인증서와 완주메달을 증정하는 간단한 행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35,000km 차량과 함께 한 애마에게도 메달을 걸어주고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3년여의 여정을 마무리 한다, 언제 다시 부산의 오륙도에서 남해안 “남파랑길”을 지나고, 다시 완도에서 강화까지 “서해랑길”을 지나고 끝으로 강화에서 통일전망대까지의 “평화의 길”을 걸어 다시 이곳 통일전망대에 설 수 있을까??
이제 어디로 갈까? 목적이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 자식들에게 흉한 모습 보이지 않고 조용히 가는 그날을 생각하며!!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 목적을 따라 혼자라도 걷고 걸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다.
해파랑이여 안~~~~~녕!!!!
“후련하고 시원하다” 모두를 껴안고 한없이 울고도 싶고 감격에 겨워 소리쳐 울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들처럼 매일 걸어 40일, 50일간 완주를 한 것이 아니라, 직업전선에서 뛰고 있는 평범한 50~70대 평범한 주말 나드리 여행객들이 오로지 걸어보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에 1~2회씩 지리산길을 시작으로 해파랑길 이어걷기를 마지막으로 끝낸 나의 첫 느낌입니다.
세계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우한폐렴”이라는 괴질이 번지고 있는데 확실한 병원체를 규명하지도 못하고 예방약과 치료제가 없는 유행병이 번진다며 간혹 뉴스가 보도되던 2019년 12월 9일부터 2022년 10월 3일을 마지막으로 햇수로 4년! 달수로 35개월 동안 코로나-19를 피해가면서 부산 오륙도를 출발하여 3.8선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서는 날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힘겹게 걸어와 마지막 지점에 서고 보니 마음으로 느끼는 첫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해파랑길을 출발할 때 50여 명에 가깝던 일행은 서서히 줄어들면서 코로나-19 유행이 최정점에 달하던 때에는 운영비가 부족하여 자발적으로 경비를 인상해가며 마지막까지 참여해 주신 20여 명의 마니아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어느덧 해파랑길을 걷고 나니 아쉬움과 후련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은 나뿐이 아니라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진행 일정을 정하고 참가자가 적어서 연기하는 게 아닐까 걱정, 걷는 날 날씨라도 나쁠까 봐 걱정이요, 혹여 사고라도 있을까 봐 걱정이요, 새벽같이 달여오신 회원들께 부족함이 있을까 봐 노심초사, 이내 심장은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들어 쉼쉬기도 어렵다.
이제 첫걸음을 완성했으니 내친김에 코리아둘레길 남파랑길, 서해랑길까지 걸어보잔다, 천안에서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전라남도 바닷가 남파랑길은 당일 일정은 무리이다, 그렇다고 서해랑길 안도, 목포도 당일로는 무리가 따른다, 고심 끝에 서해랑길 충남 서천 장항항에서 시작하는 서해랑길 56코스부터 계획하여 안내하고 있다. 해파랑길은 듬성듬성 답사를 한 코스가 많아서 그런대로 인솔을 하였으나 서해랑길은 일행들과 똑같은 초행길이 전부일진데, 인솔하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이제 더 마음을 졸이는 인솔은 하고 싶지 않은데 그간 땀과 진한 동지애로 뭉친 일행들의 요청을 무시할 수 없다. 결정의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다가온다.
그간 함께 고생하고 또 도와주신 모든 분의 얼굴이 한분 한분 스쳐 간다, 일일이 닉네임을 나열하기는 그렇고 그간 애쓰신 모든분들을 함께하신 일행들은 모두가 알 것이니, 수고하셨다는 덕담이라도 건네주시길.... 모든 분께 정말 정말 감사했습니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해파랑길 인솔을 끝내고 2022년 10월 3일 청파 김경배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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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늦었지만 해팡랑길 750km 이어걷기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제16회 바다의 날 기념 제3회 관동별곡 8백리 걷기 문화축전에 참석하여 금강산콘도에 머물며 고성 건봉사, 화진포, 거진항, 송지호 호숫길, 왕곡마을 등을 둘러보며 해파랑길 끝부분을 걷던 추억이 아련합니다.
10월 16일부터 시작하는 금년 6월에 개통된 전남 해남부터 인천 강화까지 서쪽(西) 바다(海)와 함께(랑) 걷는 약 1,800km의 국내 최장거리 걷기 여행길 서해랑길 이어걷기도 꼭 완주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