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대 있는 짬뽕 외 4편
김석돈
들어보셨나요?
‘뼈대’라는 걸출한 오브제의 마차에 짬뽕국물을 모셔서 식객의 입맛 잡아보겠다고 나선 중화요리 집 메뉴랍니다.
맛집 등극 8할은 네이밍, 뼈다귀해장국에서 뼈대 바르고 얼큰짬뽕에서 짬뽕 추려내 ‘뼈대 있는 짬뽕’이라 作名했는데 어떠세요, 킁킁, 구미 당기시나요.
저 깔끔한 행갈이 좀 보세요.
탱탱한 면발에 고추기름 동동 띄운 육수 붓고 푸짐한 뼈다귀를 얹었습니다. 그 위에 하얀 팽이버섯과 파란 부추 몇 가닥 고명으로 마무리하니 젓가락보다 스마트폰 카메라 앱이 먼저 시식을 하네요.
맛집 승패는 맛 대 맛.
고스란히 식객의 몫이지요. 첫입에 녹아들던 한식의 깊은 맛과 중식의 쫄깃한 식감이 마지막 국물 쪽 들여 마실 때까지 질기게 달라붙지요.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도 그 여운이 얼얼합니다.
코 박고 면발 빨아 넣으며 얼굴 시뻘겋게 식객 노릇하다가 멋쩍은 듯 슬며시 매무새 고치고 양반걸음으로 점잖게 출구를 나서는 ‘뼈대 있는 짬뽕 집’.
나도 뼈대 있는 시詩 한 사발 따끈하게 요리하여 독자의 책상 위에 올리고 싶습니다.
불알 대방출
대박 세일, 좌판 깔았다
봄 햇살 좋은 텃밭 언저리 골라 앉은
큰개불알꽃들,
동안거 해제된 초록을 무더기로 펼쳐놓고
창고대방출 행사가 시작되었다
퇴색한 호객 구호 같지만
누구는 억장이 무너지고,
또 어느 곳에서는 자투리 희망이 되기도 하는
‘원가세일, 창고 대방출!’
기고 구르며 살아온 큰개불알꽃
시절인연 놓치지 않으려는 듯
까치발 치켜세워 보지만
그래봤자 개불알,
눈길 한번 제대로 주는 이 없다
현삼과 귀화식물
엄연히 족보 있는 꽃이 분명하건만
놀림거리로 호명되면서도
푸른 줄기 놓지 않는 큰개불알풀
그를 보면, 동란動亂 후
베이비 대방출로 세상구경 나온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마땅한 주특기 하나 없으며서
머릿수 아니면 불알 값으로
밥술이나 얻어먹으며 살아왔지
이 봄 가고 가을 오면
큰개불알풀, 너야
톡톡 영근 개불알 대방출 이벤트라도 펼치겠지만
베이비부머, 우리의 가을은
쭉정이 대방출로 창고나 비워 줘야겠지
고목을 필사筆寫하다
김석돈
육필 시 한 수 읊는다
아름드리 밑동,
굵은 주지, 잔가지, 우듬지로 행갈이 한
느티나무의 기승전결이 완벽하다
어느 혹한의 밤이었던가
알몸의 노구老軀는
바람에 홀로 농락당하는 걸 느꼈으리
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쓸쓸함, 분노 더는 견디지 못해
부르르 살 떨릴 즈음
그 외로움 떠먹고 살아야하는
시인의 운명을 보았으리
그때부터
고독을 뜨겁게 흠모하고
시로 풀어 텅 빈 몸속에 쌓았으리라
무성하던 이파리 다 내려놓고
뭉뚝한 몸으로 그려내는 은유
산처럼 웅장하고
옹이 진 만큼 울림이 무겁다
검버섯 핀 나목의 자화상,
온몸으로 토해내는 절명의 시 한 편을
내 가슴에 철필로 베끼고 싶다
갯바람체로 쓰는 편지
김석돈
갯그령, 볏과의 여러해살이풀
목 길게 빼고 신두리 사구에 서 있다
가족들 빠져나간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진 독거노인의 모습 같다
입 닫아걸고 혀 묶어버린 채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야윈 체구
저 물 건너
금방이라도 누군가 찾아올 것만 같은지
두 눈 바다에 띄워놓고
물결 소리를 더듬어 본다
그마저 싱거웠든지
곧추세웠던 까치발 풀썩 내려놓고
늘어진 이파리 끝으로
모래 위에 갯바람체 편지를 쓴다
손끝 닳아 뭉그러지는 줄 모르고
쓰고, 또 써 내려가는 독거의 절규
서늘한 먹구름
모래 언덕을 덮치건만
갯그령 붓놀림 멈출 줄 모른다
그나저나 저놈의 편지는 언제 부치나
풍탁風鐸
김석돈
물고기 날아올랐다
은빛 비늘 벗어버리고
절집 처마 끝으로 출가한
물고기 스님
풍경 속 몸놀림이 가볍다
적막한 산중 절간
실바람 보살이라도 찾아들면
쇠줄에 매달린 스님은
풍탁을 두드린다
별빛 감아 안고
퍼져나가는 염불소리
속세의 눈물보다 진하게
극락교를 건너간다
가을바람 소슬하다
물고기 스님의 독경 소리가
허공에 금강도량을 펼치며
절집 구석구석 스며들겠다
당선 소감
김석돈
나이테가 부르는 허기일까요? 친구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나인 듯 내가 아니면서 남인 듯 남이 아닌 친구. 봄 햇살 화사하게 내리는 날이면 진달래 화전 지져 놓고 초대하고 싶은 친구. 가을 하늘 골똘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뭉게구름 문장으로 엮어 나를 둥실 태워주는 친구. 내 안의 저 깊은 곳에서 반짝 스치는 마음 한 자락 건져 올려 오가는 길손 쉬었다 갈 수 있는 나무 그늘 만들어 주는 친구. 나는 그의 얼을 다듬고, 다시 그 상像에 나의 삶 비춰볼 수 있는 친구 하나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그런 친구를 들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요. 묵정밭 갈아엎듯 마음부터 일구고 그가 똬리 틀 나만의 텃밭을 가꾸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겉모습은 물론 식성과 호기심, 말수까지 살피며 다가서려 노력하였건만 그는 호락호락 내 품에 안기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였던가? 인내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금쪽같은 작품들 속에서 제 친구의 손을 잡아 내 곁에 앉혀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시詩, 그 친구를 담고 살아갈 수 있는 가슴을 허락받은 것 같아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시가 무엇인지? 손에 쥐여 주시며, 시와 교감할 수 있는 길을 터주시고, 시가 삶이고, 삶이 시와 같아야 한다며 이끌어 주신 이영식 선생님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함께 수련하면서 격려와 위안을 품앗이하던 초안산시발전소 시우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제 친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달래고 씨름하며 함께 울고 웃으렵니다. ‘사람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이 있지요. 시의 깊이를 위해 고독을 사랑하렵니다. 시처럼 살기 위해 시를 사모하고, 문장을 고르고 다듬는 데 한눈팔지 않겠다고 손가락을 걸어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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