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동창들 단톡방에서
요즈음은 부쩍 고향생각이 많이 납니다.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어릴 때 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제가 4학년 때 담임선생님(현재 은퇴사제)에게 엉덩이를 맞고
울면서 집에 오자(학교에서 집까지 100~150M),
어머니께서 내 엉덩이가 피멍이 든 것을 보시고
그 선생님에게 따지러 가신 것을 기억합니다.
얘가 뭘 잘못했길래 이 지경을 만들었냐고~~
그 때 정말 호되게 맞았거든요.
그러자 선생님 왈
**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교육목적 상 단체로 때렸으니 이해해 달라고~~
그런데 매를 맞게 한 사건의 주인공이
58년 만에 자백을 했습니다.
물론 공소시효는 지나 죄를 물을 수는 없지만 ㅎ ㅎ ㅎ
그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으며
그 때를 떠 올려 보았습니다.
A
그리고는 박찬용 신부님이 은퇴후
피정강론 하시는 동영상을 친구들에게 보냈습니다.
성당에서 찍은 영상이라 사진이나 말 소리가 선명치 않아
잘 알아볼 수 없었지요.
B
C
C
C
B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 박찬용 선생님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오늘 만큼은 선생님으로 부르고 싶군요.
저는 용천국민학교 졸업생 *** 스테파노 입니다.
2년 전 이맘 때 메일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저를 알아보실까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인상착의를 말씀하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 후 한번 만수동 성당을 찾았는데
마침 꾸르실료 피정지도를 가셔서
만나 뵙지 못하고 아쉬움을 안은 채 돌아왔지요.
그 이후 가끔 선생님으로 신부님으로 기억은 했지만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매년 용천국민학교 동창회(체육대회, 친목모임 등) 때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데,
정말 그 당시 선생님들은 존경받는 분들 이었지요.
작년 여름에는 대천 요나성당에서
구역식구들과 성지순례겸 친목여행 도중
오산 주임신부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원가톨릭 대학에 강의도 하신다고 하며,
책 번역 차 오셨다고 한 것으로 기억하는 데
횟집에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말 재미있으신 분이었고,
신부님에 대해서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요즈음은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 란
충격적인 말이 자꾸만 떠 오릅니다.
또한 "(經師易求 人事難得;경사이구 인사난득)
책을보고 이론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만나기가 쉽지만
행동과 실천 즉 일(삶)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만
나기가 쉽지않다"는 말과 같이
참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참 평화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는 행운아 들이지요.
정말 주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선생님은 어느 날,
부활신 예수님 처럼 "쨘!" 하고 나타나셔서
1년이란 짧은 기간 우리와 함께 하셨는데
많은 추억을 남기신 분이었습니다.
젊고 패기있고, 운동을 잘 하시고,
여름에는 나무그늘 밑에서 이야기도 잘 해주셨지요
(무서운 이야기, 낭궁동자 등)
하지만 엄할 땐 엄하게 대하셔서 무서워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또 어느 날,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듯이 "뿅~"하고 자취를 감추셨고,
우리의 기억에서도 점차 멀어졌지요.
그런데 3년 전 동창회에서
인천교구 신부님으로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된 것입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청학동 성당으로 소임지가 바뀌었더군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이 실려있는데
언제 사진인지는 모르지만,
학창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웃으시는 모습이 꼭 같네요...
증명사진 정도의 사진인데 프린트해서
제 책상에 붙여놓고 보면서 메일을 쓰고 있습니다.
청학동 성당은 신설본당인 것 같아 많이 힘드실 것 같지만
추진력이 있으시니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부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언제나 떠올리면 가슴 깊은 곳에
형님과도 같았던 선생님의 그 따스함이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살아가면서 기쁨을 줍니다.
이런 날에야 감사 인사 전할 수 있는 저 죄송함이 앞서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나의 선생님!
2003.5.15 스테파노 올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선생님 답글 2003/05/20
사랑하는 *** 군에게,
이제 같이 늙어가는 *** 군에게 호칭을 어찌할까 싶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신설성당을 자원해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군이 이메일 보낸 시점에는
최종 마무리 단계에서 반갑게 받아보고 이제야 답장을 씁니다.
어제 새 성당 새 사제관에 입주했습니다.
인터넷도 이제 연결됐습니다.
내가 봐도 아담하고 예쁜 성당입니다.
언제든지 인천에 올 기회가 있으면 들려주기 바랍니다(032-832****).
많이 변했겠지만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사제생활 중에도 용천국민학교가 교사생활의 전부이기에
용천국민학교 때의 이야기를 곧잘 합니다.
신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신부님이 학교 교사였다는 게 실감이 안 나는가 봅니다.
축구 육상 코치도 했다면 믿기지 않는 표정이고
더구나 마스게임까지 지도했다면 웃고 맙니다.
가을철에 벼 이삭을 주워 축구공 배구공을 샀던 일,
학교 실습원에서 고구마 등을 재배하던 일,
어려운 아이들에게 문구류들을 사주던 일,
아픈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수원 도립병원을 다녀오던 일들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나이가 19세였으니
요즈음에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시골학교 어려운 살림에 성장하던 아이들에게
공부하라 소리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중에 몇몇은 학업에 성공한 친구들도 있어
가끔 소식이 옵니다.
내겐 부끄럽지만 보람이 됩니다.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
로마에서 성서학을 전공하고 귀국한 뒤
인하대에서 문학 박사학위도 받고
서울 가톨릭신학대 인하대 성심여대 등에서 강의하면서
본당사제로 어느새 3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60세가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니
사제로 잘 늙어가길 기도합니다.
언제쯤 제자들이 여럿이 모일 기회가 있으면
불러주기 바랍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럼 또 소식 주기바라며
건강하고 재미있는 삶 가꿔나가길 빕니다.
2003.5.20 *** 드림.
박찬용 선생님! 신부님!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신부님의 성서박사의 좋은 달란트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 용천국민학교 제자 일동 -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희 동창 초등학교 단톡방에도 타임머신 많이 탄답니다.
나이 탓인지 벌써 추억을 먹고 살아요~ㅎㅎ
감사합니다.
요즈음은 단톡방 재미가 쏠쏠합니다.
짓궂은 친구가 내가 기타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내라고 얼마나 보채는지
술 한잔 마시고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단다"를 부르는데
숨도 차고 반주도 엉망으로 목소리나 들으라고 보냈더니
가사가 맘에 든다고 하더군요
친구들 덕분에 어린시절의 마음으로 생활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