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뮤니스트 정치 강좌 4강>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발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이형로
제국주의 전쟁과 국제주의 1.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 2.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3. 전쟁과 노동계급 4. 민족주의의 역사와 본질 5. 민족 자결권,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논쟁 6. 제국주의 대한 규정과 국제주의 원칙 7. 결론 및 이후 토론 주제 |
1.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년 4개월이 되었고,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조직적인 학살도 8개월이 넘었습니다. 경제 위기, 팬데믹, 기후 위기, 그리고 최근 두 전쟁에서 벌어진 끔찍한 학살은 자본주의 체제가 향하는 길이 인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 사이에도 가자 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프롤레타리아트에 폭탄과 총알의 홍수가 쏟아졌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약 1만 명이 사망했고, 양측의 군사 사상자(사망 및 부상자)는 5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전쟁을 피해 난민이 된 사람은 630만 명(유엔난민기구는 국내 실향민 370만 명, 난민 630만 명을 합쳐 우크라이나 난민 수를 1,000만 명으로 발표했다)이며, 이 중 수십만 명은 군 복무를 피해도망치거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 무자비한 전쟁 폭력 속에서도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이나에 계속 돈을 쏟아붓고, 러시아는 계속 공세를 유지하면서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가자 지구에서는 전쟁 관련 누적 사망자가 4만 명에 가까워지고 있고(7월 15일 가자 보건부 발표 사망자 38,664명), 이 중 45%는 어린이였고, 부상자는 8만 명에 달합니다. 유엔은 가자지구내 건물의 35%가 파괴됐다고 추산하고, 약 1만 구의 시신이 그 잔해에 깔려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의 전쟁은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적 갈등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이며, 자본주의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한 상황에서 벌어진 두 전쟁은 수많은 분쟁 지역 중 일부가 터졌을 뿐이며, 또 다른 분쟁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전쟁은 특히, 어느 쪽도 타협할 수 없는 수십 년에 걸친 분쟁의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러한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적(敵)-경쟁국의 완전한 패배로만 끝날 수 있는데, 주로 경제적 고갈로 인해 잠시 멈췄다가 언젠가 다시 발발할 뿐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결과는 필연적으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적 투쟁, 즉 제국주의적 쟁탈전으로 이어집니다. 기존 자본과 비교해 잉여가치의 양이 감소할수록 이 쟁탈전은 더욱 폭력적으로 변해 결국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러한 전쟁은 지난 1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1914~1918년과 1939~1945년에는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제국주의 대학살 전쟁이 있었고, 그 후로도 전쟁은 거의 모든 대륙에서 끊임없이 일어났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55개의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전쟁의 평균 지속 기간도 이전보다 약 1/3이 길어진 8~11년을 기록했습니다. 이에 따라 2023년 기준으로 분쟁에 노출된 인구수가 20억 명에 달하고 1억 800만 명이 난민으로 내몰렸습니다. 유엔은 전 세계적으로 지속하는 11개의 위기(미얀마,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아프리카의 뿔, 사헬, 아프가니스탄, 레바논, 시리아, 예멘, 남수단, 나이지리아)를 지적했는데, 최근에는 이곳보다 더 심각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이라크, 중국, 인도, 대만 및 중국해와 같은 지역도 추가해야 합니다. 이 중 여러 곳에서 국경 분쟁, 인종 청소, 공동체 간의 폭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의 지속적인 경제 위기와 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시작되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입니다.
2.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분쟁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입니다. 60년 동안의 성장률 하락(‘전후 호황' 종식 이후에는 더욱 빠르게 하락)으로 인해 위기가 심화하자 세계 부르주아지는 체제 유지를 위해 지난 40년 동안 세계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 왔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특히 '글로벌 사우스'(남미, 중미, 아시아, 아프리카 대부분)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과도한 착취, 금융 규제 완화, 그리고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부채로 미래를 저당 잡히며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임금, 연금, 사회 서비스의 삭감을 동반한 대규모 투기가 발생했고, 극소수의 부유층은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다수 인류는 가난해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 사회, 환경, 건강까지 모든 영역에서 엄청나게 복잡한 모순이 발생하고 있고, 이 체제는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미국, 일본, 유럽의 부유한 국가들도 막대한 부채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브릭스(BRICS)'의 상황도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은 2007~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같은 금융 투기 위기(주로 부동산)에 직면해 있고, 아르헨티나와 같이 한때 부유했던 국가들은 금융 붕괴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투기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현재 그 규모는 세계 GDP의 13배에 달합니다. 한편, 2023년 1월 전 세계 부채는 국내총생산 대비 349%인 300조 달러를 기록했으며,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경제 위기는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도 사회 붕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미 현금이 부족한 '부유한' 국가로 전 세계적인 이주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경제적 기회가 점점 더 제한되는 국가에 도착한 이민자들은 (이민자가 필요했던 과거와 달리) 불청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가장 가난한 노동계급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악용하는 분노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에서 나타난 '타자'에 대한 공포는 양측의 모든 국민에 투여할 수 있는 민족주의의 강력한 독(毒)입니다.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이 지구에 초래한 환경 재앙까지 더해지고 있습니다. 사헬 지역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사하라 사막이 수십 년 동안 남쪽으로 점점 더 이동했습니다. 이에 따라 목축업자들이 경작자들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부르키나파소에서 니제르, 차드, 말리,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거쳐 수단까지 제국주의 열강과 제국주의 지하디스트 지망생들이 이러한 갈등을 이용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세계 경제 위기로 인해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붕괴하거나 이웃 국가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의 지형 변화는 생활 수준에 대한 위협과 기후 변화로 인한 환경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전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희토류와 코발트와 같은 기타 광물 등 신기술과 이에 필요한 원자재를 둘러싼 무역 전쟁이 심화하면서 갈등이 더욱 격화하고 있습니다. 원자재 확보 경쟁은 분쟁의 핵심인데, 원자재가 중요한 이유는 세계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패권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자재가 풍부한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을 통제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평화로운 선택지가 바닥난 국제 부르주아지들은 점점 더 일반화되는 제국주의 분쟁의 각본을 쓰고 있으며, 이들은 모두 경쟁국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제국주의 경쟁, 특히 세계 주요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이 격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 무역에서 달러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고, 중국은 2049년까지 세계 1위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은 더욱 심화하고 있는데, 특히 중국 기술을 약화하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2024년까지 미국 투자자들이 AI, 양자 컴퓨팅, 심지어 반도체 등 특정 분야의 주요 부문에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공포했고, 프랑스는 중국 전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EU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중국해에서는 분쟁이 완화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데, 지난 6년 동안 미국과 중국 정부는 대만 문제에 대해 점점 더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양국은 본토의 침공에 대비해 대규모 훈련과 전쟁게임을 실시했습니다 나토가 즉각적인 살상 책임을 현지인에게 떠넘길 수 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달리, 대만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미군이 처음부터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 결과 전 세계적인 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큽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 위기와 이윤 추구 경쟁으로 인해 제국주의 대립과 전 세계적인 분쟁이 확대되는 것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징후 중의 하나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인류는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볼 뿐인데도, 자본주의는 매일 전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순수한 광기나 어리석은 정치인, 군부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가 아닙니다. 현재 상황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위기, 즉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와 파괴만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 수십 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경제 위기에서 중요한 걸음을 내디딘 시기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세계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지만, 스스로 붕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체제 위기가 지속할수록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전쟁에 의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제국주의 열강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대리전쟁이 벌어집니다. 재정 자원과 무기가 제공되고 향후 원조에 대한 고상한 약속이 이루어지며, 이러한 약속이 지켜지면 원조를 받는 국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제국주의가 지속적으로 전쟁을 부추기거나 촉발하는 역학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통제하기 어렵고 억제하기 거의 불가능한 역학 관계는 강대국 사이의 직접적인군사적 대결이라는 영구적인 위험을 수반합니다.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중국, 이란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각본이 점점 더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대적인 국가들이 자국자본의 특정 이익을 지키기 위해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 체제가 유지되는 한, 지배계급 사이의 게임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는 피비린내 나는 갈등을 계속 보게 될 것입니다.
3. 전쟁과 노동계급
자본주의 전쟁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끔찍한 잔인함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자'에게는 시장 경쟁자를 제거하고 그들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으며, 이는 구조적 위기에 처한 현대 경제의 생산 요구에 유용합니다. 이는 원자재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의미하며, 또한 이윤율을 높이려는 시도이며, 결과적으로 자본 자산과 가치의 파괴를 통해 축적 주기를 새롭게 시작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핵무기가 있든 없든, 현재의 위기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의 전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를 향한 새로운 쟁탈전과 태평양에서 중국과 미국의 작전은 그들 대리인의 군사적 움직임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세계 노동계급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파괴와 죽음, 전례 없는 잔인한 야만으로 가득 찬 미래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중동과 홍해, 콩고에서 수단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무력 분쟁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 노동계급의 고통도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의 근처에 와 있습니다. 오늘날 하르키우, 헤르손,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주변에 어떤 일이 닥칠지 미리 보여줍니다. 제국주의 전쟁은 전면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양측 군대 또는 두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두 제국주의 이해관계 사이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는 모든 지역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입니다. 부르주아지가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은 국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수단과 국가를 소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1914년 민족주의 바이러스는 1차 세계대전의 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조합도 민족주의에 감염되어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결의를 포기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들을 학살에 나서게 부추기고 파업권을 포기할 구실을 찾았습니다. 소수의 국제주의자만이 전쟁에 반대했고 그들 대부분은 지금의 우리처럼 조롱을 받았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라는 레닌의 요구가 전쟁 반대 투쟁을 사회주의 투쟁으로 만들겠다는 침머발트 좌파의 결의안에 반향을 일으키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전쟁은 자본의 위기로 인해 발생합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벌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프롤레타리아가 벌이는 전쟁입니다. 전쟁과 관련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이용하는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무기는 이미 풍부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민주주의’ 또는 ‘국익’의 수호, 무력으로 강제해야 하는 ‘보편적’ 종교적 원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와 양측의 잔학 행위는 어떤 종류의 반대 의견도 압살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가자지구와 같은 곳에서는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전쟁을 반대하거나 징병을 거부하는 이들과 전 세계의 모든 난민에게 지지를 보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인도주의적 평화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선의의 동정은 제국주의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 노동계급만이 이전의 모든 전쟁보다 훨씬 더 파괴적인 전쟁의 위험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착취당하고 전시에는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처지이지만,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자신의 지형에서 싸우는 계급으로 행동한다면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것을 수행할 독자적인 전략과 전술을 갖춘 국제 정당(세계혁명당)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노동계급을 현혹하는 수많은 함정으로 포장된 길을 넘어서 나가야 합니다.
비록 지금은 소수이고 영향력이 없지만, 전 세계에는 모든 전쟁과 조국 방어 투쟁을 거부하는 것이 노동계급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많은 조직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민족주의 흐름에 맞서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반전 투쟁이 사회주의로 향하는 투쟁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끝까지 맞서 싸웠습니다. 오늘날의 국제주의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민족국가나 잠재적인 민족국가도 옹호하지 않습니다. 코뮤니스트혁명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모든 국가와 국경을 폐지하여,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와 전쟁이 만든 비참함을 피해 이주하거나 난민이 될 필요가 없는 세계 인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민족주의의 역사와 본질
지금 진행 중인 두 전쟁은 민족주의 기치 아래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이 착취자를 위해 죽고, 계급적 이익을 잊도록 설득하는 대표적인 거짓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런데 이른바 ‘좌파’ 세력, 특히 ‘혁명적’이고 ‘국제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세력 상당수는 ‘반(反)제국주의’ 또는 ‘차악(次惡)’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한쪽 또는 다른 쪽을 지지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 '조국 수호'를 지지하기 위해 러시아의 제국주의 야욕을 비난하고, 스탈린주의자들은 ’러시아 방어‘를 촉구하기 위해 미국과 나토 제국주의의 군사력을 비난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하마스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논거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나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 같은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는 계급으로 나뉘며, 팔레스타인 국가 또는 이스라엘 국가라는 것은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또는 이스라엘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의미합니다. 과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격렬한 계급투쟁이 보여주듯이 두 국가 모두에서 노동계급은 착취자들을 지지하는 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그리고 다른 모든 전쟁은 (대리전을 포함한) 제국주의 사이 전쟁이며, 반(反)제국주의 성격을 갖지 않습니다. 이러한 전쟁은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싸우는 세계 전쟁으로 향하는 단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반제국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투쟁이며,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급투쟁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수의 좌파 세력이 사로잡혀 있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의 역사와 본질은 무엇일까요?
19세기에 민족국가의 형성은 보호 관세 장벽을 배경으로 국가 자본을 개발하고 농업을 자본화하여 농업 인구와 장인을 임금 노동자로 전환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는 봉건제를 철폐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주의 안의 한 계급으로 만들어 진보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역할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임금 노동자를 별개의 계급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계급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가 의존하는 피착취계급이면서 착취를 끝내고자 하는 분명한 이해관계를 가진 계급입니다. 따라서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더 높은 형태의 사회 조직, 즉 코뮤니즘 건설을 위한 주체가 될 계급입니다. 민족주의 투쟁의 일반적인 내용은 봉건제와의 투쟁을 통한 민족국가의 통합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 체제 및 노동계급의 발전이었습니다. 이것이 민족주의의 내용이었고, 프롤레타리아 정치 조직은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데 부르주아지를 정치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민족주의 투쟁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유리한 곳에서 지지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민족 부르주아지에 대한 지지가 전술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적어도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국가의 형성과 통합 단계가 일반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원자재 공급원, 자본 수출을 위한 무대, 시장, 무역로를 전 세계적으로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세
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제국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국가 형성을 위한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이어졌고, 그중 1차 세계대전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전쟁이었습니다.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의 물질적 필요의 변화는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내용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국가의 이익을 투사하려는 제국주의 투쟁, 즉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투쟁에 대한 지지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민족주의의 내용 변화는 민족투쟁에 대한 코뮤니스트의 정치적 태도를 재평가하게 했습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코뮤니스트들이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성격 때문에 부르주아 민족투쟁을 전술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이러한 투쟁이 자국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를 학살하는 광범위한 제국주의 투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제 민족투쟁은 노동계급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반대하는 반(反)혁명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및 다양한 좌파들은 이러한 민족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고 민족주의의 근거로서 현재를 19세기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봅니다.
이들은 민족주의 투쟁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전술적 문제라고 결론을 내리고, 전술적으로 어떤 민족주의 단체를 지지할지 선택하게 됩니다. 이 전술은 일반적으로 특정 부르주아 민족주의 투쟁이 주요 제국주의 열강의 이익을 어떻게 약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평가에 기초합니다.
5. 민족 자결권, 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논쟁
위와 같이 민족주의를 전술적으로 판단하는 좌파 세력은 맑스가 특정 독립투쟁을 지지했다거나 레닌이 민족자결권을 옹호했다고 끊임없이 주장하는 데, 이러한 기계적 '맑스주의'는 맑스주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맑스, 엥겔스의 민족운동 지지
맑스는 자본주의 초기에, 봉건적, 전(前) 자본주의적 구조에 대한 승리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었던 민족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맑스는 이미 1871년 파리 코뮌을 계기로 '민족전쟁'의 허구성을 폭로했습니다.
"근대의 가장 엄청난 전쟁이 끝난 후,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군대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진압하기 위해 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비스마르크가 상상하는 것처럼 격동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최종 탄압이 아니라 오히려 부르주아 사회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여준다. 낡은 사회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웅적 노력은 민족전쟁이지만, 이것은 계급투쟁을 지연시키고, 계급투쟁이 내전으로 폭발하자마자 폐기할 단순한 정부의 사기임이 입
증되었다. 계급 지배는 더는 민족의 제복으로 위장할 수 없으며, 정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항할 때는 하나이다!"
(맑스, '파리의 몰락', 「프랑스 내전」, 1871년)
맑스와 엥겔스에게 민족운동이 진보적인지를 판단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당시 유럽 대륙 전체에서 반동의 보루였던 러시아 절대주의의 권력에 도전하는 지였습니다. 따라서 독일과 폴란드 민족운동은 지지를 받았지만, 많은 슬라브 민족주의는 반동적이라고 반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코뮤니스트는 자본주의 식민지에서도 식민지 약탈과 착취를 비난하면서도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자에 대항하는 원주민 영주와 족장들의 모든 봉기를 지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아메드 아라비 파샤가 이끄는 영국에 대항하는 봉기에 대해 엥겔스는 1882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현재의 환상을 공유하지 않고도 (농민은 경험을 통해 깨닫기까지 수 세기 동안 속임 당하기 때문에) 억압받는 사람들의 편이 될 수 있으며, 동시에 현재의 군사적 적대자 편을 들지 않으면서 영국의 잔혹함에 맞서 싸
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엥겔스, ‘1882년 8월 9일, 에드워드 베른슈타인에게 보낸 편지’, 「맑스 엥겔스 전집」 46권)
이러한 운동은 혁명적 민족 부르주아지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농민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려는 원주민 봉건제나 아시아 독재자들의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반면에 중국과 같은 일부 대중적 식민지 반란은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된 민족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거나 피억압국가의 계급투쟁에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국제주의자들은 맑스와 엥겔스가 이런저런 민족운동을 지지한 것이 옳았는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당시의 코뮤니스트들이 민족운동이 진보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피억압 민족의 '감정'이나 민족 자결권에 대한 영원한 '권리', 심지어 특정 국가에서 획득한 특정 조건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초기(상승기)에는 독립적인 자본주의 국가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미래에 자본주의 무덤을 파게 될 노동계급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한 조건 성숙에 유리한 것이 진보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쇠퇴기, 제국주의 시대에는 '민족독립'을 위한 전략이 더는 유효하지 않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대 레닌의 논쟁
민족해방, 민족 자결권에 대한 논쟁은 제2 인터내셔널 내부의 좌파였던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입장을 비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코뮤니스트좌파는 이 전쟁에 대해 자본주의의 진보적 단계가 분명히 끝났고, 유럽과 미국의 거대 제국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프롤레타리아혁명과 더 높은 형태의 경제 및 사회 조직, 즉 코뮤니즘 건설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전제에서 볼셰비키가 1917년 즉각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위해 싸운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유럽에서의 혁명이 러시아혁명을 세계 코뮤니스트혁명의 무대로 전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족 문제에 대해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졌습니다. 1917년에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의제였다면, 이제 노동자들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투쟁해야 하며, 계급의 적(敵)인 민족 부르주아지를 더는 어떤 형태로든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레닌도 1917년 4월 테제에서 이를 인식했는데, 이에 따라 볼셰비키는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 있어 민족 부르주아지에 대한 강령적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대신 그들은 10월혁명을 세계혁명의 첫걸음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레닌은 1916년 이후 자본주의가 "기생과 쇠퇴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문제는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레닌의 동지인 부하린과 피아타코프(Georgy Pyatakov)는 1915~16년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분석을 공유하면서 더는 자결권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레닌은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민족 자결권에 대한 테제에서 "노동자의 임무는 사회주의를 위한 내전, 계급전쟁이라는 슬로건 아래 억압민족과 피억압 민족 모두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레닌은 이 테제에 서명한 동지들에 불만을 품고 이 모든 것을 라덱의 영향 때문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았고. 읽지 않았으며 공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라덱의 말을 두세 번 듣고(그는 오래된 "폴란드" 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혼란스러워했다) 서명했다.” (1916년 3월, 레닌이 A.G. 쉴랴프니코프에게 보낸 편지)
물론 오래된 '폴란드‘병은 민족 자결권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레닌은 수많은 국적을 가진 '감옥'이었던 옛 차르 제국에 대한 혐오감으로 추상적인 자결권을 주장했습니다. 러시아혁명이 절정에 달했을 때, 레닌의 주장은 계속해서 도전을 받았습니다. 1919년 제8차 러시아코뮤니스트당(볼셰비키) 대회에서 새로운 당 강령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하린과 피아타코프의 견해를 논의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 논쟁에서 패했지만, 그들만이 민족 자결권을 반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까지 이르는 동안 많은 혁명가가 계급적 차원에서 반대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 정책에 가장 분명하게 반대했는데, 이제 노동자들은 국적이 아닌 계급에 기초해 싸워야 하며, 민족해방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키고, 노동자들의 운명을 민족 부르주아지의 손에 맡긴다고 주장했습니다. 룩셈부르크는 1896년 조국 폴란드에 대한 논쟁에서, 폴란드 부르주아지가 "금 사슬로 러시아에 묶여 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심지어 민족주의를 둘러싸고 폴란드 사회당(PPS)에서 분열하여 국제주의 입장을 내세운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사회민주당(SDKPiL)을 창당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은 1905년 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러시아 노동자들과의 공동 대의를 위해 사회민주당(SDKPiL)으로 몰리면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룩셈부르크와 노동자들은 1905년 폴란드 민족 부르주아지가 민족주의 대의를 위해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의 파업과 결합한 노동자들의 파업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목격했습니다. 사회민주당(SDKPiL)이 사회당(PPS)의 다수를 차지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피우수트스키(Józef Klemens Piłsudski)의 사회당(PPS) 소수파는 공개적으로 쇼비니즘을 표방했고, 이후 서구 열강과 함께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데 가담하게 됩니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보다 더 명확한 보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1905년 12월 룩셈부르크는 실제로 민족적 대의가 어떻게 노동계급의 대의를 제거하는 데 사용되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민족민주 철도'라는 슬로건 아래 철도 노동자들은 철도 파업을 중단하고, 파업 중인 노동자들에게 총을 겨누며 업무 복귀를 강요했다. 민족민주주의는 국가 슬로건 아래 총파업과 다른 형태의 파업이 '국부'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 성전을 시작했다. (...) 민족민주주의는 국가 슬로건 아래 (...) '폴란드 팔콘'을 조직했다 (...) 사회주의자들을 살해하고 파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무장전투부대 (...) " ("민족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민족 문제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글. Monthly Review Press.)
볼셰비키는 1919년 강령에서 민족 자결권이라는 표현을 생략했지만, 폴란드를 포함한 옛 차르 제국의 외곽 지
역에 대한 분리 독립을 허용했습니다.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를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민족 자결권을 부여받은) 국가들은 새로 부여받은 자유를 이용하여 러시아혁명을 필멸의 적(敵)으로 삼는 독일 제국주의와 동맹을 맺고, 독일의 보호 아래 러시아 자체에 반혁명의 기치를 들고 나아갔다 (...) 볼셰비키들은 자신과 혁명에 큰 상처를 주면서까지 자본주의의 지배 아래서는 민족 자결권이 없으며, 계급 사회에서는 민족의 각 계급이 다른 방식으로 '자기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며, 부르주아 계급에 민족적 자유의 관점은 계급적 지배의 관점에 완전히 종속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핀란드 부르주아지는 우크라이나의 소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폭력적 통치가 볼셰비즘과 결부되어야 한다면 민족의 자유보다 독일의 폭력적 통치를 선호한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러시아혁명의 민족 문제", 민족 문제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의 글. Monthly Review Press.)
일부에서는 당시 볼셰비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룩셈부르크의 주장이 불공평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요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 국가 중 실제로 독립한 나라는 없었지만, 룩셈부르크는 이들 모두 제국주의 열강의 도구였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의 명확한 입장은 1916년 '양자택일'에서 가장 잘 요약되었습니다.
"자유로운 제국주의 시대에 더는 민족전쟁이 있을 수 없다. (...) 어떠한 피억압 민족도 제국주의 국가의 정치와 제국주의전쟁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꽃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이 제국주의 강대국 지배계급 동료의 부속물이자 부속품인 약소국들은 강대국들이 벌이는 제국주의 게임의 졸에 불과하다." (로자 룩셈부르크, 「선집」, R. 로커 편집, 223쪽)
1919년 대다수 볼셰비키가 이를 받아들였지만, 유럽의 혁명적 기류가 사그라들고 러시아혁명이 고립된 채로 남게 되자 볼셰비키는 혁명적 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절박한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강대국의 식민지나 반(半)식민지에서 민족 부르주아 운동을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레닌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라는 팸플릿의 마지막에 쓴 내용처럼, 이제 그러한 운동은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에서 수탈하는 '초(超)이윤'을 차단함으로써 제국주의를 약화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초이윤이 없다면 제국주의 열강은 제국주의 국가의 '노동자 귀족'을 매수하여 대도시 노동자들의 혁명적 야망을 저지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은 룩셈부르크와 비슷한 입장을 가졌던 로이(M.N.Roy)와 술탄 자데(Sultan Zade) 같은 코뮤니스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이 정책의 정치적 결론은 식민지의 노동자 정치 조직이 민족 부르주아 세력의 통제 아래 놓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책의 이론적 근거는 세계의 특정 지역에서 부르주아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며, 진보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1917년 자본주의가 혁명의 시기로 무르익었다고 본 4월 테제와는 명백히 모순되는 것이었고, 따라서 10월혁명의 모든 기초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코민테른 창립 테제에서 주장한 것처럼 세계의 한 지역에서는 부르주아혁명이, 다른 지역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면, 자본주의는 아직 혁명을 위해 무르익은 세계 체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또한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의 부르주아혁명이 거대자본주의 국가의 사회주의혁명을 지원해야 하므로 한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할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이후 스탈린주의자들은 레닌 글을 인용해 ‘일국 사회주의론’의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자본주의 발전은 나라마다 극히 불균등하게 진행된다. (...) 그렇다면, 사회주의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승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이 불가피하게 나온다. 사회주의는 처음에 하나의 나라 또는 여러 나라에서 승리할 것이지만, 그사이 다른 나라는 한동안 부르주아적인 또는 전(前)부르주아적인 나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군사 강령”, 「레닌 전집」 64권).
그러나 이 구절은 ‘일국 사회주의’론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동시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 승리를 상정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레닌은 식민지의 정치투쟁이 제국주의 열강을 뿌리까지 뒤흔들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후 탈식민지화가 진행되면서 이러한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탈식민지화는 경제 권력 구조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 구(舊)식민지는 미국이 그 지배국들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제국주의 사이 세력 투쟁의 결과로 독립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제국주의 열강은 이 지역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지역 부르주아 계급이 관리하지만, 잉여가치는 여전히 거대 제국주의 국가로 계속 흘러 들어갑니다. 오늘날, 이 지역들은 명목상의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국제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민족해방을 위한 진보적인 전쟁은 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反)식민지 투쟁 중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단지 새로운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그쳤을 뿐입니다.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의 결과는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으로의 대치로 나타났습니다.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후예들
역사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정치 세력을 민족 부르주아지에 종속시키는 정책은 완전한 재앙이었으며, 민족 부르주아지에 의한 수만 명의 노동자 학살, 노동자 조직의 파괴, 혁명적 투쟁의 소멸로 이어졌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1927년 중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반(反)혁명이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운동의 후계자들에게 물려준 유산이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책을 뒷받침해 왔습니다. 트로츠키 자신도 이러한 정책을 되풀이하면서 그 안에 담긴 모든 모순을 명확하게 재현했습니다. 중국 사태가 발생한 지 12년이 지난 1939년, 그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가 모든 힘을 다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의 단계이다. 이러한 쇠퇴의 원인은 생산력이 민족국가의 경계뿐만 아니라 사유 재산의 틀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분할하고 재분할하려 한다. 민족전쟁 대신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난다. 그들은 완전히 반동적이다." (트로츠키, 「레닌의 제국주의」, 1939년)
그러나 다음 쪽에서 이렇게 말을 바꿉니다.
"민족 통일과 민족독립을 위한 피억압 민족의 투쟁은 한편으로는 자기 발전에 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고, 다른 한편
으로는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하기 때문에 두 배로 진보적이다." (같은 책)
첫 번째 인용문처럼 민족국가가 자본주의의 족쇄라면, 새로운 민족국가의 창설이 어떻게 국가 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그러한 투쟁이 어떻게 진보적일 수 있을까요? 첫 번째 인용문처럼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면, 노동자들은 민족 부르주아혁명이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또한, 트로츠키가 분명히 말했듯이, 제국주의 전쟁이 전적으로 반동적이라면,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어떻게 명백히 제국주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을 지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론이 아니라 모순덩어리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로츠키의 후계자들은 이러한 모순을 덜 드러내려고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노력 중 하나로 부르주아지에 대한 특정 유형의 지지는 완전한 지지가 아니라 ‘비판적 지지’라고 주장하는 이론이 개발되었는데, 이는 ‘지지’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라고 합니다. 민족운동과 그 운동의 주체를 구분하여 민족운동을 지지할 수 있지만, 그 배후에 있는 민족 부르주아지는 지지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궤변은 트로츠키주의 정치 입장의 근본적인 부르주아적 성격을 숨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입장의 반동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른바 ‘좌파’ 안에서 폭넓은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기를 들어 영국의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한국의 노동자연대는 하마스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를 계속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트로츠키의 궤변을 따라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해결책은 어느 한쪽의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경쟁을
낳는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억압받는 민족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의미한
다.” (“제국주의, 경쟁, 그리고 폭력”, 「사회주의노동자」 2023.12.04.)
이것은 하마스 살인자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민간인 살해와 여성 강간을 '정당화'하는 하마스라는 전쟁기구를 지지하는 SWP는 제국주의 전쟁을 위한 자본주의의 중요한 병사 모집 수단 중 하나입니다. 하마스 군대와 정치 세력(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반제국주의' 단체들)은 실제로 '반(反)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라 여느 민족해방 '운동'과 마찬가지로 강대국들이 곳곳에 배치한 비밀 기관과 군사 자산을 이용해 만들어낸 자본주의 국가 세력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와 탄압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과 SWP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하마스와 같은 지하디스트, 파시스트 민족주의 산물을 옹호하는 논리는 어디서 나올까요? 이러한 모든 입장은 제국주의 분쟁에서 용어 취향에 따라 '약자', '반식민지 국가' 또는 '억압받는 민족국가'는 ’옳은 편‘이기 때문에 방어해야 한다는 부르주아 도덕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자들에게 전쟁 지지를 촉구합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한쪽을 지지할 것을 강요하는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피억압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배계급 사이의 전쟁에 총알받이로 나아가 자국지배계급을 위해 싸우다가 희생당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피억압국가'든 '억압국가'든 특정 자본주의 세력이 반(反)제국주의의 한 축을 구성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 정치는 어떤 한 국가나 몇몇 국가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 발전에서 특정 성숙 단계의 산물
이다. 그것은 국내에서도 국제적인 현상이자 그 모든 상호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고 그로부터 어떤 국가도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분할될 수 없는 전체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유니우스 팸플릿」 7장, 1915년)
또한, 제국주의 분쟁에서 경제 및 군사 발전 측면에서 완전히 같은 수준에 있는 국가들이 서로 대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정적인 기준은 어느 계급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모든 제국주의 전쟁의 비극적 공통점은 양쪽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유혈 충돌이며, 양쪽 모두에서 노동계급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자국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위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족 자결권, ‘민족 해방 전쟁’ 또는 ‘민족의 독립’에 대한 주장은 현재 ‘반식민지 운동’으로서의 하마스 또는 ‘반제국주의 세력’으로서의 후티 반군 등의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들은 민족해방투쟁이 억압에 반대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은 많은 나라에서 억압당하는 소수가 있으므로 사실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수가 자신의 지배계급 또는 부르주아지 일부와 동일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동계급을 민족해방운동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것은 그들을 자본주의 도살장으로 유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은 반(反)제국주의 투쟁이 아닙니다. 민족주의 운동은 단지 군사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국주의 강대국에서 후원자와 지지자를 찾는데 의존합니다.
6. 제국주의 대한 규정과 국제주의 원칙
민족 자결권을 주장하는 그룹 중 일부는 코뮤니스트좌파가 ‘모든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말고, 전쟁을 내전(계급전쟁)으로 전환하자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슬로건을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반식민지/피억압국에서는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하는 민족자결/민족해방 전쟁에 참가하고, 나아가 이것을 노동계급 주도의 인민전쟁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프롤레리아트의 임무”라고 주장합니다.
“‘좌익공산주의’(코뮤니스트좌파-필자)는 우스꽝스럽게도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란 같은 자본주의 반(半)식민지 나라들까지 모두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로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 이란’의 사실상 대리인으로) 성격을 규정한다. 그에 따라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및 미국)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및 이란)에 대해서도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슬로건을 적용한다.
제국주의 세계질서가 억압민족과 피억압민족으로,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와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개도국·신흥국, 제3세계 등으로 불리는) 자본주의 반(半)식민지 나라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자본주의 국가는 사실상 모두 제국주의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 그래서 현 ‘이-팔 전쟁’은 양측 모두에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논리다.” (“현 가자 전쟁에서 양측 모두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희화적 논리”, 노동자혁명당(준), 2023.10.27.)
우선,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3개 단체 입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국가는 (크기, 부, 힘을 막론하고)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합니다.
“제국주의에 대해 매우 일반적인 정의를 내리자면, 제국주의는 다른 국가와 영토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배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는 한 국가의 정책이다. (...) 오직 자본주의에서만 이 용어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 맑스주의 접근법은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법칙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쇠퇴기의 내재적 필연이라는 견해를 공유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 혁명」 335호)
“거대 제국주의의 지원, 조언 그리고 무기를 받아들임으로써 그 대리인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부르주아 분파들은 그들이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움켜잡자마자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으로 된다. 어떤 국가도 완전한 경제적 자급자족 상태에서 축적할 수 없으므로, 그들은 더욱 후진적인 다른 국가의 희생으로 팽창을 시작할 수밖에 없으며, 이렇게 하여 합병정책, 부등가교환 등에 관여하게 된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민족국가는 제국주의적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 평론」 2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제국주의가 세계 체제이며, 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새로운 역사적 시대)이므로 모든 국가는 이 체제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 사이 경쟁 산물인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발전의 명백한 전환점을 기록했다. 이는 자본의 집적과 집중화 과정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고, 자본축적 과정에 내재한 순환적 위기가 앞으로는 세계 전쟁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세계적인 위기가 될 것임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시대, 즉, 모든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부분이 되고 그 경제를 지배하는 법칙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음을 입증했다.
따라서 제국주의는 단순히 자본주의 강대국이 약소국에 대해 가하는 정책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중심지의 금융과 산업의 촉수가 주변 지역의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다. 이 과정은 어떠한 국경도 인정하지 않으며, 주변부 지역의 토착 부르주아지에 어떠한 국가적 충성심도 명령하지 않는다. 토착 부르주아지는 국제 자본가계급의
부분이며 전통적인 (그리고 새로운) 자본주의 중심부의 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국제 금융자본의 계획에 얽혀 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 「2020년 강령」)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은 20세기 이후의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갖는다고 규정합니다.
“20세기 이래 국제무대에서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 전쟁은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프롤레타리아혁명은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노동계급이 세계의 모든 지배계급을 적(敵)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라는 혁명적 원칙은 항상 유효하므로, 노동계급은 자신의 착취자들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위의 비판으로 돌아가서, 코뮤니스트좌파가 모든 국가를 제국주의로 규정한다는 주장은 너무 단순하고, 사실이 아니라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작동에서 비롯되었고, 모든 국가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약소국의 경우 이러한 야망을 실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국주의는 세계 체제이며, 자본주의 세계 운영의 한 단계이므로 모든 국가는 어떤 식으로든 이 체제에 참여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는 동등한 참여가 아닙디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하위파트너 또는 강대국 블록의 하위 구성원으로서 참여합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가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소국의 경우 이러한 야망을 사실상 실현할 수 없습니다.
제국주의의 근간은 잉여가치를 지배적인 제국주의 열강에 이전하는 과정이며, 이러한 이전이 모든 국가에 혜택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이 과정의 주요 수혜자이자 지배자는 과거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거대 제국주의 자본입니다. 주변국(군소 강대국)의 역할은 강대국의 하수인 역할입니다. 이들의 역할은 주로 노동자들의 잉여가치가 이들을 착취하는 거대 제국주의 자본으로 원활하게 이전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속한 지역에서 자본의 지배가 위협받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배하는 강대국의 지배력과 그로 인한 특권은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 강대국으로부터 항상 위협을 받지만, 신흥 강대국의 도전이 체제 전체의 작동 방식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이는 단순히 체제를 지배할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다는 것(최근 중국의 부상)을 의미합니다. 20세기에 보았듯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제국주의 주도권은 바뀌었지만, 세계 체제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에 참여하는 시대에 ’진정한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투쟁뿐입니다. 물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은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입니다. 이른바 '좌파'가 그토록 사랑하는 '반(反)제국주의' 투쟁은 실제로는 제국주의 사이 투쟁입니다. 그들의 실제내용은 제국주의의 협력 속에서 한 국가의 지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남미, 베트남의 유명한 해방 투쟁은 실제로 여러 국가의 지위를 미 제국주의의 고객에서 러시아 제국주의의 고객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최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국가들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방향을 바꾸려는 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제국주의 국가와 피지배(반식민지) 국가가 존재하며, 피지배 국가에 대한 지원이 제국주의를 약화한다는 좌파의 주장은 제국주의를 (체제 전복 없이는 해결책이 없는) 자본주의의 한 단계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민족해방투쟁은 피억압 민족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가 아니라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투쟁은 어떤 경우에도 제국주의를 약화하지 않는데, 제국주의의 뿌리,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공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민족해방투쟁이 제국주의 블록 하나를 약화하면, 그와 더불어 단지 다른 하나를 강화할 뿐입니다.
7. 결 론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제국주의 강대국과 주변국(중소 강대국), 약소국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주변국의 부르주아지는 때때로 제국주의 서열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반(反)제국주의' 수사와 사회적 선동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세계 자본주의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필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민족해방운동'은 부르주아 분파의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계급에 대한 제국주의 사이 대결 구도의 일부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민족해방' 또는 '민족 자결권'에 대한 모든 이론과 구호는 계급 안에서 민족주의적 균열을 조장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 통제 아래 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 편을 들어 노동계급 운동이 발전한다거나 혁명적 국제주의의 부활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어떤 구실이나 명분으로도 전쟁에 참여해서 전쟁에 맞설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국제주의자의 첫 번째 임무는 민족 부르주아지와 국제 제국주의의 수많은 촉수로부터 노동계급을 해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와 전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위한 혁명적 대안을 옹호해야 합니다.
자본주의는 오래전에 세계 인류 공동체를 위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발전시키는 진보적 역할을 중단했습니다. 이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임금 노동, 화폐, 국가가 없는 새로운사회, 바로 코뮤니즘입니다. 아직은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계급 고유의 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두 전쟁과 각종 위기가 일으키는 대재앙의 상황에서 더욱 절박한 국면이 다가온다 해도 대대적인 계급투쟁이 즉시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기에 세계의 노동자들은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긴축과 착취는 노동계급에 대한 자본가의 계급전쟁입니다. 노동계급은 항상 군사적 또는 경제적으로 전쟁의 희생자입니다. 노동계급은 생활수준 하락에 맞선 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을 연결해야 합니다.
평화의 시대에는 과잉 착취당하고 전쟁의 시대에는 학살당하는 노동계급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노동계급이 무언가를 위해 일하고 때때로 희생해야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리 계급의 적(敵)인 부르주아지의 이익이 아닌 노동계급의 이익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와 지구 생태를 위한 이익입니다.
노동계급이 제국주의 전쟁과 착취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
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익을 위해 민족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여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해 투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방어해야 할 국제주의 원칙입니다.
<이후 토론 주제> -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 (이윤율 하락 경향, 시장 포화) - 제국주의 전쟁의 성격과 전망 (1~2차 세계대전, 일반화된 전쟁, 세계대전 가능성) - 민족주의의 본질, 계급의식에 미치는 영향 - 민족(해방) 투쟁, 민족 자결권은 누가 주도하고 누구에 도움이 되는가? - 국제주의 원칙과 계급투쟁의 연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