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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사랑안에 머물며
형제애로 피조물인
서로에게 기쁨과 감사함이 되어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01. 모임 일시 및 장소
ㅇ일시 : 2022년 10월 15일 (토) 오전 8시 30분
ㅇ장소 : : 경의중앙선 서강대역 1번출구 (안)
02. 코스 :
노고산 성지 ○---○ 경의선 숲길 ○---○ 용산 성심학교
※ 2019년에 걸었던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중에서
제3코스 일치의 길중 일부 순례길을 선택하여 갈예정입니다..
※ 구간 거리 ; 약 6.5km
※ 소요시간 ; 약 4시간
03.준비물 :
-.장갑. (경)등산화. 스틱. 식수. 기부금 1,000원
04.난이도 : " 하 "
05.진행자 : 이재전프란치스코
010~4217~1994
06.참가자 명단입니다 (존칭은 생략입니다)
01. 김성일임마뉴엘
02. 이문순요세피나
03. 이재전프란치스코
07 기부금
05월 18,000
10월 12,000
= 30,000
※ 알림 사항
1. 모임 시간을 준수합니다.
(지각시 진행자에게 미리 연락바랍니다)
2. 진행자(선두 리딩자) 보다 앞서 걷거나
너무 뒤쳐지지 않도록 합니다-
이탈시 진행자에게 사전 연락 바랍니다
3. 일회용품 사용 피하며 개인 컵을 사용합니다
4 걷기중 일어나는 사고는
진행자및 평의회는 책임지지 않으며,
안전 사고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5. 체력에 맞게 주3회 정도 걷기 생활화를 합니다.
6.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각에는 걷기 여행을 삼가 바랍니다.
(걷기 종료시간 : 하절기 오후 7시, 동절기 오후 6시)
7. 혼자 여행을 할 경우에는 주변 사람에게 행선지를
꼭 알려둡니다.
8. 숲속 동·식물을 보호합니다
일년에 1~2차례정도는 걷기 모임에서
성지순례로 걷기를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2019년 서울대교구 성지순례길
제3코스 일치의 길중에서 일부 순례길을 선택하여 가고자 합니다
천주교회에서 "성지순례’ " 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즉 성지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거나 성인들의 유적지인 성역을 방문해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를 일컫습니다.
신자분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들 성지를 찾아가
축제와 미사에 참석하며 그 장소에 얽힌 종교적인 전승을 실존적으로 체험하고 자신이 속한
신앙공동체의 정체성과 일체감을 확인하게 되고는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성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은
엄밀하게 말하면 크게 성지와 사적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성지는 피를 흘리고 죽은 순교지와 순교자의 유해가
묻혀 있거나 보존돼 있는 곳을 말하며
사적지는 순교자들이나 성인들이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곳과
교우촌 등을 말합니다..
샤스탕 (Chastan) 야고보 신부 한국명은 정아각백(鄭牙各伯)으로
한국姓은 정(鄭)씨이고 이름은 본명인 야고보를 한문으로 표기하여 아각백(牙各伯)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프랑스 마르꾸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생하여 1826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1827년 사제로
서품을 받고 1836년 조선에 들어와 먼저 입국하여있던
모방 신부와 함께 전교하던중 1839년 앵베를 주교의 권면에 따라 관가에 자수하여 앵베를 주교와 모방 신부와 함께 3명의 궁녀와 200여명에 이르는 교도들과 함께 한강변 모래사장이 있던 새남터에서 35세의 나이로 목이 잘려 순교하였으며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으로 부터 복자에 올랐으며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하여 시성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입니다.
1827년 1월 파리 외방 전교회 사제가 된 정(샤스탕) 신부는
1836년 12월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곧 한국말을 배우는 한편
나 신부와 함께 각 지방에 퍼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성사를 거행하였읍니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는 이 땅을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피로 물들였고 정 신부도 범 주교, 나 신부와 함께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35세,
이 땅에 들어온 지 2년 9개월 만이었다.
앵베르(1797. 4. 15 ~ 1839. 9. 21 Laurent Joseph Marius Imbert) 라우렌시오 주교 한국명은 범세형(范世亨)으로 프랑스 마린난이란 작은 마을에서 출생하여 1818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1819년 12월 18일 사제 서품을 받고 1820년 선교사로 중국에 입국하여 12년간 중국에서 할동하다가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이던 브르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을 앞둔 상황에서 선종하자 1836년 4월 26일 2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7년 5월 14일 조선에 입국하면서 조선에 천주교가 창설된지 53년 조선 대목구가 설정된지 6년만에 조선 땅에
주교가 들어왔습니다.
이로서 조선에 먼저 들어와 있던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를 만나 선교하던중 1839년 기해박해시 천주교 신자들의 안전을 우려한 앵베르 주교는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와 함께 관청을 찿아 자수하기에 이르고 그해 9월 21일 새남터에서 참수로 순교하여 20여일이 지난 후 신자들에 의하여 이곳 서강대학교가 위치한 노고산에 묻혔으나 1843년 삼성산으로 이장되었다가 1901년
명동 대성당으로 이장되었으며 세 성인의 유해 일부가 절두산 순교성지에도 모셔져있다 이후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되어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습니다
모방 베드로
한국 이름은 나 백다록(羅伯多祿),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하여 순교한 신부로 1836년 1월 입국하여 서울 정하상의
집에 머물며 제2대 교구장인 범 주교를 도와 경기 충청 등
지방까지 선교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 마음을 두고 1836년 2월에 최양업을, 3월에는 최방제를, 7월에는 김대건을 서울로 불러 직접 라틴어를 가르치고 성직자가 되는 데 필요한 덕행을 쌓게 하다가, 때마침 귀국하는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함께 이들을 비밀리에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어요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35세의 나이로 한국에 입국한지
3년 9개월만에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와 함께 참수로 순교하여
이곳 노고산을 거처 삼성산에 이장되었다가
명동 대성당의 지하 그로토에 이장되었으며 유해 일부는
절두산 순교성지에 모셔져 있습니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하여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시성되었습니다
이곳은 서강대학교 내의 성 이냐시오관 건물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노고산성지의 앞길을 따라
약 100m가량 올라가면 이냐시오관이 있어요
2021년 5월 14일 예수회 창립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회심 500주년을 기념하는 이냐시오의 해(2021. 5. 20 ~ 2022. 7. 31)를 맞아 교황청의 공식 교령을 통해 서강대학교의 이냐시오 성당을 "전대사 수여 순례 기념성당"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로서 국내에서 전대사 수여 기념성당으로 지정된 성당은
이곳의 이냐시오 성당과 예수회 쎈터 성당 두 곳 뿐이라 해요
이에 따라서 전 세계 예수회 성당에서는 "이냐시오의 해" 기간동안 고해성사와 전대사 기념성당에서의 영성체를 하는 조건으로 전대사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는 2021년 7월 12일 프란치스코 교종의
반포를 통하여 성 이냐시오 성당이
"전대사 수여 순례 기념성당"으로 지정되었음을 승인하고
성당을 찿는 순례자들에게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노고산성지의 앞길을 따라 약 100m가량 올라가면 이냐시오관이 나오며 이 이냐시오 성당에서는 주일 오전 11시와 오후 5시 30분과 오후 7시 30분에 미사를 봉헌할수 있으며 평일 월 ~ 금요일 낮 12시에 미사가 있으며 방학 기간과 토요일에는 전례가 없습니다
성 이냐시오 성당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의 벽에 못 박히신 십자가 상이 있으나 미사시에만 성전을 개방하여 아쉽게도 성전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어요
버려진 철길에서 시민들의 문화 산책로로 경의선 숲길은
마포구에서 용산구까지 이어진 총 6.3Km의 선형 공원입니다.
기존의 공원형태를 벗어나 길게 이어진 숲길은
2012년 3월 대흥동 구간을 시작으로 염리동, 새창고개,
연남동 구간, 원효로, 신수동, 와우교 구간이
2016년 전체 조성되었습니다.
철길을 따라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의선숲길은
서울의 대표적인 산책로로 도심과 숲, 과거와 현재,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시민의 휴식공간입니다.
루소. 칸트. 그리고 벤야민 걷기의 달인들
문학사 혹은 철학사에서 알아주는
걷기의 달인들이 있습니다.
장 자크 루소와 임마뉴엘 칸트, 발터 벤야민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세 사람은 모두 걷기와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생 동안 걷고 또 걸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걸었어요.
루소는 자연 속에서, 칸트는 마을에서,
벤야민은 도심 속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걸었다고 해요
" 걷기 " 는 루소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함으로서 사회적 만남을 최소화하였는데 루소는 근시가 심하였고 로마황제
" 마루쿠스 아우레리우스 " 처럼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평생을
비뇨기질환 (전립선 비대증) 때문에 수시로 화장실에
가야 했던 그는 " 자연으로의 회귀 " 를 주장하였던 루소로서는 걷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걷기는 루소의 철학에 딱 맞았어요
걷기의 양과 질에서 루소에 필적하는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프랑스의 안시, 샹베리, 리옹을 도보로 다녔고 심지어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의 토리노까지 걸어서 갔으니 말입니다.
루소의 최초의 걷기는 가출에서 시작됐고
이후는 낭만적 꿈을 좇아 떠난 여행으로 나타났어요.
그는 들판을 지나고 숲을 걸으며 멀리서
성이 보일 때마다 성주의 딸과의 연애사건을 꿈꾸었어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고 죽은 칸트도 걷기에는 일가견이 있었어요. 그는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만큼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에서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길로, 일정한 걸음걸이로 걸었다고 전해져요. 요컨대 규칙성이 문제였는데. 말하자면 그는 건강을 유지하고 규칙적인 삶의 한 방편을 찾고자 하는 목적에서 걸었다고 해요.
그는 모든 생활을 분 단위로 계산하며 일정한 규칙과 질서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가 무색할 정도로 정말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아닐 수 없었어요
그의 걷기에는 필연성이 나타나 있어요
오후 5시에 산책을 시작하는 것과 걷다보면 결국 도착하는 것이 걷기의 필연성입니다. 우리는 칸트가 걷는 모습을 보면서 숨이 막힐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회중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가슴속에는 도덕법칙이 있다”고 말하곤 하였어요.
벤야민의 걷기는 관찰과 체험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는 파리 도심을, 그것도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결과물이자 소비의 공간인 ‘파사주(passage)’를 걸었다.
파사주는 19세기 후반에 파리에 들어서기 시작한 새로운 시대의 건축물로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유리 구조물로 덮어 ‘외부이면서도 내부인’ 독특한 형태의 쇼핑 공간입니다
걷기와 관련해서 한 사람을 더 언급한다면 소설가 발자크를 들 수 있습니다. 다만 그는 자신이 걷기보다는 걷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는 걷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걸음의 원리와 서로 다른 걷기의 방식을 분석해 『발걸음의 이론』을 썼다고 해요 비록 그는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비만증에 걸리면 걷지 못한다’는 사실만큼은 알고 있었어요
[ 펌글 ]
옛 용산 신학교 성당인 성심 성당은 조적조 양식으로
명동 주교좌성당과 중림동 약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였습니다. 일반 교구 성당과는 달리 평면 형식을 가진
이 성당은 지형의 특성을 잘 이용하여 지은 아담한 성당으로
현재 성심 기념관(옛 용산 신학교 생활관)과 더불어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1902~1958년까지 이 성당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모셨다가 가톨릭 신학 대학 이전과 함께 혜화동 신학 대학으로 모셔 갔으며 또한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 소 브뤼기에르 주교와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의 유해를 모시기도 했었습니다.
– 옛 용산 신학교 생활관(성심 기념관)
현재 성심 수녀회 한국 관구 사무실과 성심 기념관으로 쓰고 있는
옛 용산 신학교 건물은 1892년 배론 예수 성심 신학교가
용산구 원효로로 이전되면서 코스트 신부에 의해
학교 건물로 지어졌습니다. 6·25 전란 때 일부 파괴된 건물을 보수하여 사용하다 2007년 완전하게 복원하였고
옛 용산 신학교 성당과 더불어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었어요
삶은 순교입니다
순교는 사랑입니다
중앙 아래부터 보자면 안드레아 김대건의 머리글자인
A와 K가 보이고 그 아래에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연도와
순교연도가 로마자로 표기 되어있습니다.
MDCCCXXI (1821) MDCCCILVI (1846)
그리고 좌측과 우측의 원형은 김대건 신부님의 문장으로
FACERE ET PATI FORTIA (큰일을 당해도 용감)
RECTE ET FORTITER (바르고 강하게)
용감하고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좌측 상단과 우측 상단에는 용산신학교의 개교일과
서울교구와 대구교구가 분리된 날짜가 로마자로 표기되어있습니다.
상단 원 안에는 뮈텔 주교의 문장이 있고
아래 세개의 별은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를 상징하고
태극문양은 조선을 뜻하고 아래 둘러싸고 있는 팔마가지는 박해와 순교를 나타내며
그 아래 작은 글자는 「순교자들의 꽃은 만발하라」라는
뜻이라 합니다.
요세피나자매님의 권유로 십자가의 길 14처 기도를 하였어요
첫댓글 비움으로서 아름답게 보이는 가을 풀잎 사이로 십자가 사랑과 부활을
담는 귀중한 시간 덕분에 잘 걸었습니다.건강하십시요 ~
저도 오랫만의 성지순례길에
감사하구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에도 1~2회 안팎으로 성지순례를
할수있기를 기원하면서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