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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6
내가 네 기도를 들었으매 / 인명진 목사
많은 사람들의 세상을 살다 갔고, 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성경의 다윗만큼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다윗의 성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인생 성공의 지혜와 요령을 알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되는 대로 막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대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령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지혜는 무엇이었을까요?
다윗이 어떤 지혜와 어떤 요령으로 살았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더 말할 것도 없이 다윗은 그의 인생에 문제만 생기면 하나님께 달려가 엎드려 기도하고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사실 다윗의 주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군대도 있고 신하들도 있고 참모도 있었지만 다윗은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힘들고 어려운 그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성공한 인생을 살았던 요령이고 지혜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다윗에게는 되는데 왜 나에게는 안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지난 주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어도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한번 들어주시고 감사할지 안 할지 두고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두 번 속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는 속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되풀이해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말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왜 다윗은 되는데 나는 안 되는가, 왜 다윗의 기도는 들어주시면서 내 기도는 들어주시기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많은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실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생각하실 때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사람의 기도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사람이 나에게 기도하고 부탁하는 것을 안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를 들어줄 수밖에 없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특수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의 특수관계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던 사람, 하나님과 특별한 사연,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기도하고 부탁하는 것을 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합니다.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부탁을 한다면 부담스럽게 꼭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물론 들어주면 좋겠지만 못 들어준다고 해도 마음에 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라면 예를 들어 같은 고향사람이라든지 같은 학교 출신이 부탁을 하면 거절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내가 과거에 신세를 진 사람이 부탁을 해도 그것을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목사가 제일 거절하기 어려운 청이 교인들의 청입니다.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청을 거절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게 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특수관계가 중요합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보통관계여서는 안 됩니다. 개개인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 중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떠나라고 했을 때 이유를 묻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주저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상상해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라고 했을 때도 자식을 바치라고 했을 때도 망설이지 않고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늘 부담을 느끼셨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라는 대로 다 했으니 잘못되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당연히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런 아브라함이 부탁을 하면 들어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특수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시편 105편 39-42절에서 “여호와께서 낮에는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는 불로 밝히셨으며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가져 오시고 또 하늘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셨도다 반석을 여신즉 물이 흘러나와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고 반석에서 물을 내려주신 것은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리는 것을 보고 그냥 놔둘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시편 132편 1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다윗을 위하여 그의 모든 겸손을 기억하소서” 다윗이 하나님께 행한 모든 겸손한 일을 기억하시라는 것은 다시 말해 다윗과 하나님의 특수관계를 기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특수관계의 예는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참으로 감동스러운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윗이 자기를 위해서 왕궁을 지어놓고 누워있다가 하나님의 법궤가 아직도 천막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신 것입니다.
다윗은 늘 입버릇처럼 나는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 한분만으로 아쉬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다윗은 하나님 한분으로 아쉬울 것 없다고 했는데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면서 아쉬운 것이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아쉬울 것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일편단심입니다. 이와 같은 다윗의 마음씨를 보고 어떻게 다윗의 기도를 거절할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의 기도는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응답된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20장 1-6절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이사야선지를 보내서 집을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죽음을 통고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이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는 그렇다 해도 여간해서는 들어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분위기를 보면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하나님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묻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흔쾌히 히스기야 왕의 수명을 15년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던 이유가 3절에 나옵니다.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하나님과 히스기야 왕의 관계가 보통 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관계인 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히스기야 왕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히스기야 왕이 부탁하는 것은 거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사람의 관계에서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특수관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특수관계로 맺어 놓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미안해하실 만한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라고 생각할 만한 일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하시는 특별한 사건이나 일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사람과의 관계에서 볼 때 저 사람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고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보통 사람이 부탁하면 쉽게 미안하지 않고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부탁하면 거절하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생각할 때 ‘내가 저 사람에게 신세를 졌는데...’ ‘저 사람 때문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하는 특별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제 인생을 되돌아보면 하나님과 그런 특별한 관계가 몇 번 있었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그와 같은 하나님과 저 사이의 특별한 관계가 제 인생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절절이 느끼게 됩니다. 제가 자랑이 될 것 같아 죄송스럽지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대로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가서 노동자로 일을 했습니다. 갈 데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교회에서 청빙도 있었고 외국 유학의 기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것을 마다하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가 되어 일했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다면 분명 가난한 노동자 속에 계실 것이다, 노동자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라는 신앙의 확신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좋은 양복과 가운을 입는 대신 공장으로 가서 가난한 노동자들과 함께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하나님께서 깜짝 놀라셨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떻게 하면 큰 교회로 갈까 생각하는데 저 사람은 왜 그 길을 마다하고 공장으로 가는가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아마 드물게 보는 사건이라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로 제 인생은 가난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많은 고문과 네 번에 걸쳐 3년이 넘는 감옥생활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 일로 하나님께서 늘 저에게 미안해하시고 부담을 느끼시고 할 수만 있다면 잘해주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평생을 통해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6년 2년간의 호주에서의 삶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저는 한국에 일자리도 없고 살 집도 없었습니다. 당시 군사독재의 무서운 고난이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호주에는 좋은 집도 있었고 담임으로 있는 교회도 있었고 안전하게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무작정 집도 일자리도 없는 한국 땅으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감옥에 가더라도 고난당하는 이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고 호주에서 편안하게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그런 제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도 마음이 많이 뭉클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제 생각 밖의 많은 축복으로 제 인생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과 저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이런 감동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제가 엎드려 기도할 때 그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늘 큰 은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특수관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하나님을 감동하시게 하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엎드려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저 사람의 청은 거절할 수 없다, 저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와 다윗과의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그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이고 나는 하나님과 그런 관계가 아닌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특수관계에 있던 사람이고 나는 보통관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그냥 평범한 보통관계여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의 부탁은 쉽게 거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우리의 기도는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것처럼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히스기야 왕에게 하셨던 것처럼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고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네 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네 기도를 들었으니 네 기도를 들어주겠다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되었는데 나는 왜 안 되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또한 해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할 때 하나님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으매 네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옛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것 같은 응답이 여러분에게 있을 수 있도록 하나님과 특수한 관계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통관계가 아니라 특별한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께서 이런 축복을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