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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 3:3, 6-7)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에스겔 37:9-10)
1. 니고데모의 딜레마와 도덕적 수리(Repair)의 파산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오해하여 범하는 가장 치명적인 비극은, 구원을 자신의 성품과 도덕성을 조금 다듬고 개선하는 '수리(Repair) 작업' 정도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한결같이 인간의 내면을 갈고닦아 선한 사람으로 개조하라고 가르칩니다. 더 많이 참아내고, 더 많이 수양하며, 구제와 봉사를 통해 내 삶의 모난 부분을 예쁘게 깎아내려 발버둥 칩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가 바로 이 '종교적 개조'의 최고봉에 서 있던 엘리트였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낸 지성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훌륭한 선생입니다"라며 칭찬을 건넸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도덕적 지침이나 훌륭한 윤리적 가르침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벼락같은 선언은 니고데모의 모든 이성과 종교적 자부심을 산산조각 내버립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주님의 이 선언은 인간을 향한 가장 무서운 사형 선고입니다! "니고데모야, 네가 평생 동안 쌓아 올린 그 알량한 율법의 지식, 네가 갈고닦은 그 고상한 도덕과 인격은 쓰레기통에나 던져 버려라! 육으로 난 것은 철저히 육일 뿐이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너의 그 썩어빠진 자아(Ego) 위에다 아무리 예쁜 페인트칠을 하고 윤리적인 포장지를 씌워본들, 그것은 칠한 무덤에 불과하다! 너는 고쳐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죽고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만 하는 존재다!"
구원은 고장 난 시계를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죽어 악취가 나는 송장을 완전히 폐기 처분하고, 그 자리에 하늘의 거룩한 생명을 부어 넣어 전혀 새로운 존재로 창조해 내는 우주적인 대격변입니다!
2. 팔링게네시아(Paliggenesia) : 십자가 위에서 터진 제2의 창세기
사도 바울은 디도서 3장 5절에서 이 우주적 기적의 실체를 **'중생(重生)'**이라는 단어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쓰인 헬라어 원어가 바로 기독교 구원론의 맹렬한 폭발력을 담고 있는 **‘팔링게네시아(Paliggenesia)’**입니다.
이 단어는 '다시, 새롭게'를 뜻하는 '팔린(Palin)'과 '태어남, 기원, 창조'를 뜻하는 '게네시스(Genesis)'의 합성어입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제2의 창세기(Genesis 2.0)'**라는 뜻입니다! 태초에 흑암과 공허가 가득했던 깊은 심연 위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시며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을 때 천지가 진동하며 우주가 창조되었던 것처럼, 죄악으로 캄캄하게 죽어 있던 우리 영혼의 무덤 속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폭풍처럼 밀고 들어오셔서 벼락같은 새 생명을 창조해 내신 사건! 이것이 바로 팔링게네시아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의지로 결심을 하고, 손을 들어 예수를 믿겠다고 다짐해서 이 팔링게네시아가 일어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기가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어머니의 태를 열고 태어날 수 없듯이, 죽은 영혼은 스스로를 거듭나게 할 능력이 단 1퍼센트도 없습니다. 중생은 내 편에서 쥐어짜 내는 종교적 열심의 결과물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From above), 즉 하늘 보좌로부터 일방적이고도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성령의 절대적인 **'공급과 충만'**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이성은 끊임없이 내가 무언가를 보태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구원의 역사에 인간의 그 어떤 더러운 공로도 섞이는 것을 결단코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성령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의 그 무한한 생명수를 끌어와, 파산한 우리 영혼에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의 죽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영적인 눈이 번쩍 뜨여 창조주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이 기적!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을 붕괴시키는 중생의 폭발입니다.
3.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 : 얄팍한 계산을 박살 내는 루아흐(Ruach)의 맹렬함
이 팔링게네시아의 경이로운 기적이 구약성경에서 가장 처절하고도 장엄하게 시각화된 곳이 바로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 환상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아 간 골짜기에는 시체들이 썩어 문드러지고 오랜 세월이 지나, 수분이 완전히 증발해 버린 하얀 '마른 뼈'들만이 가득했습니다. 관절은 다 끊어지고 두개골과 갈비뼈가 여기저기 흩어져 나뒹구는 완벽한 죽음의 현장!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 질문 앞에서 세상의 모든 과학과 철학은 침묵해야 합니다. 이 뼈들은 스스로 모여들 힘이 없습니다. 뼈들끼리 회의를 열어 "우리 힘을 합쳐 다시 살아보자"라고 결의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 군상의 가장 적나라한 영적 실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절대 불가능의 뼈들을 향해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말씀이 선포되자 뼈들이 소리를 내며 맞아떨어지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속에는 생명이 없는 끔찍한 시체 더미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우주를 뒤흔드는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이 벼락같이 떨어집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여기서 '생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성령의 거센 바람을 뜻하는 **‘루아흐(Ruach)’**입니다! 하늘 문이 찢어지고 하나님의 맹렬한 루아흐가 폭풍처럼 골짜기를 덮치자, 죽어 있던 수백만 구의 시체들의 콧구멍 속으로 창조주의 호흡이 거침없이 밀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살아나서 두 발로 땅을 박차고 일어나는데, 성경은 그들을 가리켜 "극히 큰 군대더라!"라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구원은 인간이 얄팍한 자원을 모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보려는 초라한 몸부림이 아닙니다. 구원은 뼈다귀처럼 말라 비틀어진 내 영혼을 향해, 우주의 창조주께서 십자가의 피 묻은 생기를, 그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맹렬한 **'공급과 충만'**의 루아흐를 사정없이 불어넣어 버리시는 사건입니다. 이 생기가 내 안에 터져 들어올 때, 우리는 비로소 죄의 포로 된 노예에서 세상을 짓밟고 일어서는 십자가의 위대한 군대로 재창조되는 것입니다!
4. 조지 휘트필드의 사자후 : 지옥의 낭떠러지에서 외치는 단 하나의 진리
18세기 영국과 미국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던, 그야말로 성령의 루아흐에 사로잡힌 불꽃 같은 설교자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는 평생 동안 수만 번의 설교를 하면서, 유독 "당신은 거듭나야만 합니다! (You must be born again!)"라는 이 요한복음 3장 3절의 설교를 300번이 넘게 반복해서 토해냈습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왜 목사님은 만날 때마다 '우리는 거듭나야만 한다'는 똑같은 설교만 하십니까? 다른 성경 말씀도 많지 않습니까?"
그때 휘트필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의 불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이렇게 사자후를 질렀습니다.
"내가 왜 당신에게 계속해서 이 말씀을 전하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거듭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한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져 영원토록 끔찍한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교회에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냈든, 당신이 주일 예배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든, 그것은 썩어질 육신의 옷을 입고 종교놀음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의 그 돌같이 굳은 심장이 찢어지고 성령의 새 심장으로 교체되는 이 팔링게네시아(거듭남)의 기적이 없다면, 당신의 모든 종교 생활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외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존경하는 목회자 여러분. 오늘날 강단에서 왜 성도들의 삶이 변하지 않습니까? 왜 교회 안에 십자가의 야성을 잃어버린 종교인들만 넘쳐납니까? 그것은 강단에서 이 피 묻은 '거듭남의 절대성'을 선포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법, 얄팍한 처세술과 위로만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죽은 송장을 향해 화장품을 발라주는 짓을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강단은 도덕 강연장이 아닙니다. 강단은 에스겔 골짜기를 향해 창조주의 생기(루아흐)를 벼락같이 대언하여, 마른 뼈들을 박살 내고 살려내는 영적 전쟁터입니다!
5. 결론 : 종교적 화장술을 버리고, 맹렬한 성령의 호흡을 구하라!
존경하는 모든 세대의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이 시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 계신 거룩한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영혼은 진짜로 호흡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교인'이라는 화려한 이름표를 달고, 속으로는 마른 뼈처럼 수분이 다 말라 비틀어진 채 종교적 관습의 골짜기에 나뒹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3대째 모태신앙이니까", "내가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니까"라는 그 알량한 조건들을 당장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십시오!
여러분의 그 썩어질 자아를 조금 고쳐서 써보려는 피곤한 도덕적 수리(Repair) 작업을 이제 완전히 끝장내십시오. 타락한 본성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어 장사 지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 텅 빈 가슴을 찢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십시오! "오 주님! 내게는 스스로 살아날 능력이 없습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이 더러운 옛 자아를 박살 내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 묻은 생기, 성령의 압도적인 루아흐를 내 마른 뼈 속으로 맹렬하게 불어넣어 주시옵소서!"
하늘 문을 찢고 쏟아져 내리는 이 팔링게네시아의 거대한 폭풍, 오직 십자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그 무한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공급과 충만'**이 오늘 이 강단과 여러분의 심장 속에 벼락처럼 내리꽂히기를! 그리하여 죽었던 영혼들이 십자가의 군대로 맹렬하게 부활하여 세상을 뒤집어엎는 위대한 기적이 일어나기를,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맹렬히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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