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밥상
박경선 (대구대곡본당)
햇살 좋은 날, 새내기교사 유수인 선생님과 합창부 아이들을 데리고 출장을 가는 버스 속에서다. “저는 상 중에 가장 기분 좋은 상이 교장선생님이 차려주신 밥상이었어요.” “어머, 그렇게 말하니 너무 시적이네요.” 나이 많은 교장이 젊은 선생님들께 밥상을 차려주어 기분 좋은 상이 되었다니!
‘그렇다면 내가 차려주는 밥상의 의미를 섬김의 밥상으로 받아들였단 말인가? 하긴, 낮은 자세로 섬김을 실천하며 사신 예수님도 남자라서 제자의 발을 씻어주셨지, 나같은 여자였다면 밥해주는 섬김을 실천하지 않았을까? 아니지, 예수님이야 오병이어의 기적으로도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데 구태여 밥을 해주실 필요는 없었겠지.’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주며 행복해하는 버릇은 2006년에 교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인 것 같다. 아침 굶고 오는 아이들을 교문 앞에서 찾아내어 김밥 한 줄 건네고, 학교 급식이 없는 여름, 겨울 방학 동안에 일직 선생님들께 밥을 해주었다. 교장 경력 5년차에 접어들어선 지금도 내 손으로 밥 한 끼 해주기를 즐긴다. 특히 요즘은 집근처 학교에 발령을 받아서 선생님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가 수월하다. 유 선생님이 말하는 새내기교사 연수일도 그랬다. 교장실에서 새내기선생님들에게 수업기술, 생활지도 등의 잔소리 같은 노하우를 한 시간 전수한 뒤 퇴근 시간에 맞춰 학교 앞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 소문난 맛집으로 오라고 하였다. 교감선생님이 아파트 가정집에 소문난 맛집이 있다며 선생님들을 데리고 들어서는데 앞치마 두른 교장이 반기자 선생님들은 그제야 “까악! 정말 식당가는 줄 알고 깜쪽같이 속았어요.”하며 즐거워들 했다. 좁은 아파트에 열 댓 명이 둘러앉으면 자리도 꽉 차지만 그 숫자가 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상차림이다. 그래서 80여명의 교직원을 연령대별로 초대하는 방법을 찾아봤다. 20대는 예진회(예쁜 대진 교사회), 3, 40대는 귀진회(귀한 대진 교사회) 행정실 식구와 교무실 보조교사들은 아진회(아름다운 대진 교사회), 50대는 우진회(우아한 대진 교사회)로 분류하여 초대하였다. 초대 요일은 언제나 월요일이다. 일요일 날 장을 봐서 음식을 마련한 뒤 월요일 날 선생님들이 퇴근해서 수목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집으로 달려와 전날 준비해둔 국을 덥히고 밥을 퍼고 상을 차린다. 교대 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의를 나가면서 종강 파티를 할 때도 내 강의를 들은 선생님들을 우리 집에 모셔 밥상을 내며 미래의 빛나는 작가상도 함께 준다.
이번 여름방학 때는 남편 퇴임에 맞춰 마련한 고령 전원주택에 한 학기 간 수고한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을 초대하였다. 집 이름도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이라고 지어 찾아오기 쉽게 세로로 된 현수막을 내세워두었다. 교장이 별장 같은 펜션을 한 채씩 드릴 테니 아무 준비할 것 없이 가족끼리 와서 여유를 즐기고 가라고 방학 전날 공고하였는데 다니러 온 선생님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부부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학부모 연수일에는 모든 학모님이 지나는 걸음에 가족끼리 와서 차 한 잔, 밥 한 끼 잡숫고 가시라고 공고해두었다. 아침 등굣길에 등교 지도를 해주시는 아파트 어르신 스마일봉사단 열 여섯 분도 가을 나들이 겸 다녀가시도록 초대해 두었다. 어제는 책읽어주는 학부모 명예교사들과 아이들을 초대하여 숯불에 바베큐를 해먹으며 베나의 집 정원에서 엄마 편, 아이 편 나누어 운동회도 하였다. 고기 굽다 남은 참숯불에 알밤을 구워먹고 고구마를 구워 호호 불며 먹는 맛도 깊어가는 가을의 낭만에 더 보태어졌다.
황당한 일도 몇 가지 있긴 하다. 한 패거리 몰려와서 하룻밤 묵고 가는 교감, 교장 연수 동기 팀이 성의라며 봉투를 몰래 숨겨두고 도망친 날, “베풀고 싶은 우리 부부 마음을 이리도 몰라주는가?” 싶어 펄펄 뛰다가 「웰빙 음식 맛이 너무 좋았고, 방이 훈훈해서 너무 잘 잤고 샤워하는 물이 온천수처럼 매끄러워 너무 좋았어.」 그들이 받은 만족과 행복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을 헤아려 그 성의를「들꽃마을」에 전하고 왔다. 남편 퇴임식 때도 제자들이 기념식수를 우리 집 정원에 심겠다는 바람에 남편은 몸만 오라고 펄펄 뛰었다. 하지만 마흔 아홉 살 난 제자들이 35년 전 초등학교 때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고 저네들 결정 사항이라며 반송을 가져와 심고 퇴임 기념식수 표석까지 새겨와 놓고 가는 바람에 그 나무를 볼 때마다 부담이 된다. 남은여생도 베풀고 나누며 살라는 훈시를 하며 서있는 나무 같다. 차차 초대 손님의 범위를 넓혀가야겠다. 하긴, 지금도 남편은 잡초 뽑느라 그림 한 점 못 그리고 나는 밥하느라 글 한 편 못 쓰지만 주말마다 장을 봐 와서 새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으면 날마다 잔치하는 기분으로 흥분된다. 이렇게 밥상으로나마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을 흉내 낼 수 있는 건강과 여건에 감사하는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