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선지식 및 명찰순례 49차 겸 대구불교대학 상반기성지순례 전남 부안 개암사, 내소사를 다녀와서(2006.6.11.)
그전날 밤까지 계속 내리던 비는 그치고 상쾌한 새벽바람은 얼굴을 스친다.
이날 53선지식 49차 행사는 대구불교대학 재학생 상반기 성지순례행사와 같이 하는 뜻깊은 하루였다.
2006.6.11.07:20경 대형버스 7대에 법우 약315명을 태우고 목적지인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능가산 내소사,개암사로 출발했다.
차량인솔자는 1호차량 전병효님, 2호차량 이석정님, 3호차량 최득영님, 4호차량 정병관님, 5호차량 임숙이님, 6호차량 소명섭님, 7호차량 이승호님 이다.
5호차량은 정원2명을 초과한 47명이 탑승했다. 차량 내에서는 장주일님,신군자님,임숙이님,윤석배님,이영미님등이 아침대용인 떡 사찰안내유인물, 생수, 과일 등을 법우들 에게 나누어 주고, 인원파악을 한다.
차량은 성서홈프러스를 거쳐서 경부고속도로를 진입하고 있었다.
차량내에서 법우 전원 다같이 인사하기,장주일님의 집전에 따라 천수경,예불문,이산혜연선사발원문,관세음보살 릴레이 정근, 반야심경을 독송한다.
차량은 금강휴게소에 도착했다.
뜨거운 커피한잔 들고 휴게소 뒤편 난간에 기대어 서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멍하게 바라보니,
강을 끼고 굽이쳐 이어지는 소나무 숲으로 덮인 푸른 산이 밀려오고,
물길 따라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이 가슴을 적신다.
차량은 휴게소를 출발했다.
차량내에서는 1부 차중법회의식을 마치고, 단장 이대원님, 집행위원장 김상수님 인사말씀, 장춘원님 일정소개, 보시자명단 발표,임숙이님 사찰안내,소속감 및 자신감고취를 위하여 참석법우들 3분 스피치 겸 자기소개를 한다.
10:13경 차량내에서 법회,사찰안내,자기소개등을 공식적인 의식을 마치고, 나머지 시간을 이용하여 신묘장구대다라니 15회 독송을 했다.
11:40경 개암사 입구에 도착했다.
개암사(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는
부안에서 보안을 향해 내려가다, 봉은에서 개암저수지를 휘돌아 올라가면 울금바위 아래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은 백제무왕 35년(634년)에 묘련왕사가 변한에 있는 궁전을 절로 고쳐 지을 때 묘암의 궁전을 묘암사, 개암의 궁전을 개암사라 부른데서 비롯되었다. 40여년 후인 통일신라 문무왕16년(676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이곳에 들어와 절을 다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려 충숙왕(1313년)때에는 원감국사가 순천 송광사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중창하면서 황금전,청련각, 청허루등 30여동을 지어 큰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웅보전, 응진전, 지장전,관음전,월성대, 요사채가 있어 한적한 편이다. 대웅전 오른쪽 새로 지은 요사를 둘러싼 대나무가지 울타리와 갈대는 입구의 단풍길과 함께 개암사의 고요한 멋을 더해준다. 보물 제 292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정면 3간, 측면3간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내용 -
12:00경,
참석한 법우들이 많아 대웅보전에서 법회를 볼수 없어서 대웅보전앞 마당에서 전병효님의 집전에 따라 삼귀의례,반야심경, 도기대 총학생회장의 발원문의 순서로 법회의식을 마쳤다.
108배 대참회의식은 대웅보전에서 졸업생, 지장전에서 2학년,관음전,응진전에서 1학년을 분산 배치하여 108배 의식에 들어가서 약20분간에 걸쳐서 진행했다.
개암사에서 미리 준비한 비빔밥 점심공양을 질서정연하게 먹었다.
점심공양을 위하여 봉사활동 해주신 개암사 신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날 채국 너무 달고, 새콤해서..........
약1시간동안 개별적인 사찰경내 관람하고, 사진 찍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들이 좋다.
13:40경 개암사를 떠나 차량은 인근에 있는 내소사로 출발했다.
작은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편도1차선의 숲길을 따라 차량은 진행하고 있었다.
14:00경 내소사에 도착했다.
내소사는,
백제무왕 34년(633)에 창건 되었다고 전한다.
혜구(惠丘)두타 스님이 이 곳에 절을 세워 큰 절을 '대소래사', 작은 절을 '소소래사'라고 하였는데 그 중 대소래사는 불타 없어지고 지금의 내소사는 소소래사 이다.보유한 문화재로는 국가 지정문화재 4점과 지방 유형문화재 2점이 있다. 또한 잘 보존된 봉래루 화장실 등 옛 건축물과 근래에 신축한 무설당, 진화사, 범종각, 보종각, 선원, 회승당 등의 건축물이 도량에 조화롭게 잘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꽃살문양보물 제291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조선시대때 건립된 것으로 전면에 꽃살무늬를 조각한 문짝을 달았는데 이들은 모두 정교한 공예품들이며, 단청이 없어 더욱 자연스러운 고찰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녀 아래 귀한 대와 내부 충량머리는 용머리를 조각하였으며,전내 후불벽에는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큰 것이다.경내에는 이 외에도 고려 동종, 법화 경절본사본, 영산회 괘불탱화 등의 국가지정 문화재와 설선다와 요사, 삼층석탑 등의 지방유형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3층석탑 대웅보전 무설전 내소사에는 수령이 약 5백 여년이 되는 느티나무(할아버지 당산) 와 높이 약 20m, 둘레 7.5m의 약 천여년 쯤 되는 느티나무(할머니 당산)가 있으며, 봉래루 앞 마당에는 하늘을 찌를듯한 수령 300여년으로 추정되는 거목 "보리수"가 자리하고 있다.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한 내용 -
대웅전에 얽힌 전설:법당이 세워진 후 전각에 단청을 하고 벽화를 그릴 적임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노인이 나타나서 자신이 벽화를 그릴 터이니 벽화를 그리는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달이 다 되어도 화공이 나오지 않고 기척이 없자, 호기심 많은 이 절의 선우스님이 살짝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화공은 없고 오색 영롱한 관음조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오는 스님을 보더니만 단청 한 곳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날아간 그 관음조는 능가산 중턱에 앉았는데, 그때부터쯤 노스님이 그곳에 암자를 짓고 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스님을 관음조의 화신이라고 불렀으며, 이후에도 암자에 스님들이 살았으나 어느때부터 암자는 폐쇄되고 터만 남게되었다. 이제 그 암자터를 복원하여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을 봉안하니 모든 공덕을 성취하는 관음기도도량은 거듭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전 동쪽 도리는 바닥만 채색되고 덧그림이 빠져 있다고 전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때의 목수는 호랑이가 현화한 대호선사이고 벽화글 그린 관음조는 관세음보살의 현화라고 한다.
- 사찰안내 유인물에서 인용한 내용임-
법우들은 내소사 주차장에서 내려서 걷는다.
절 입구에 들어서니 하늘을 찌를 듯한 전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그 숲 속 흙길 산책로를 따라 약10분간 걸었다.
전나무 향기가 실바람에 실려와서 머리,가슴,어깨를 타고 전신을 휘감는다.
동행한 후배에게 나는 물었다.
풀잎소리가 들리는가.
전나무 향기가 나는가
흙 냄새, 계곡에 흐르는 물 냄새가 나는가
저 바위사이에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들리는가
그렇다고 대답한다.
한쪽 구석에 작고 수줍게 핀 야생화를 보고도 감동하는 법우가 내소사에 간다고 하니 내소사 뒤쪽 산 중턱에 있는 청연암에 필히 가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후배등 법우8-9명과 같이 내소사 우측 비탈진 숲길을 따라 약30분간 걸어올라 가니 청연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절벽 난간에 붙어 있다.
인기척을 듣고 스님이 일행들을 반긴다.
청연암 마루에 앉아 앞을 보니 푸르스름한 물결이 일렁거리는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닷가 건너편 보이는 산에 고창선운사가 있다고 한다. 암자 옆 바위사이로 흘러나오는 감로수 한 바가지로 갈증을 해소하고, 대나무 숲으로 둘러져 있는 주위가 시원하다.
아쉬움을 뒤로하며 스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일행들은 청연암을 약10분간 내려오다가 관음전에서 3배의 예를 올리고, 내소사에 도착하여 법당에서 3배의 예를 올리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전나무숲길을 따라 내려오니 일행들은 주변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부르는 손길을 뿌리치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15:40 이다.
16:00경 차량은 내소사를 출발하여 오다가 젓갈등을 구입하기 위하여 잠시 들렸다가 대구로 향했다.
장주일님의 집전으로 예불문,반야심경,사홍서원,산회가로 회향법회를 마쳤다.
불교용품등 경품 약20점을 추첨하여 법우들에게 나누어 주고, 피로를 풀기 위하여 옆사람 어깨,머리를 가볍게 주물러 주는등의 방법으로 피로를 풀어주고,
이영미님, 이귀화님의 좋은글 낭송, 김방자님 선구자등 가곡, 박영희님,오동주님,최금숙님등 가요독창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21:40경 대구 반월당에 도착했다.
다음달 53선지식 및 명찰순례는 2006.7.9.(둘째 일요일)07:00경 희방사,부석사로 떠날 것을 기약하고 아쉬움을 남기며 헤어졌다.
2006년6월14일
多禪(鄭鍾國)기록하다
0. 본 순례준비를 위하여 수고하신 기획위원, 집행위원님 수고 했습니다.
0. 보시내역등은 결산보고를 통하여 자세한 내역이 공개될 것입니다.
0. 귀감이 되는 성현의 말씀, 좋은 양식이 되는 글,좋아하는 시등을 준비하여 돌아오는 길에 낭송등으로 법우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0. 2006.6.11. 내소사,개암사 49차 53선지식 겸 대구불교대학상반기성지순례에 참석한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존칭은 생략합니다)
1호차량(50주)
전병효,전병현,서성희,김경자(53),김정례,이판기,반영우,박성옥,지순귀,박혜영,장정숙,이향미,조갑순,조갑순지인,이영미(50주),유진경,최인숙,최인숙지인,김귀란,김귀란지인,반향란, 반향란지인,배의순,배의순지인,이명자,이정숙,소금란,소금란지인,
이수옥,이휘수,정명자,김은정,홍동숙,김경자(99),김일호,최득용,차옥자,심영애,
홍영희,김순자,신경희,서현옥,김준호,이제언,최철이
2호차량(50주,야)
이석정(47야),박춘생,최동식,김동회,이성욱,도재철,추조이,이미향,최경환,이분임,이현숙,김창은,김영자,정순분,김영자,신수자,신미지,권수연,이앵름,박양임,김창덕,김외숙,김정자,김동훈,홍성용,이미희,조안나,송주연,이경림,이태진,정기석,정준홍,김태화,권명순,황순애,송경희,김기순,최석순,김재화,김현숙,박명희,박길영,황이숙,임효숙,성낙국,최광호
3호차량(50야)
최득영(49야),류명애,이현숙,석태선,이영미(50야),이해숙,최대부,서돈수,임운선,
배태순,장하라,서순옥,박은주,주영화,변복남,배보경,배보경지인,정수남,이정희,
이원우,이경희,장순화,김선조,양영희,정연옥,최경옥,김위선,장덕순,이미희,문상희,김종숙,전영철,석순태,정잠순,박정옥,정기숙,윤금숙,권영대,전용표,장하택,김유택,하기룡,박승계,이점석,정군표,손창수
4호차량(50야)
정병관,노태근,정석화,김미남,홍애자,이경화,백석,오문기,조혁규,서장일,손태자,손정애,김미영,권오분,권윤옥,장준선,장영기,김의혜,진종순,석춘화,김미형,권순옥,
엄심행,우성정,허동극,김인선,곽말선,이뉸자,문춘연,배윤희,여월매,임오숙,이연옥,박경미,이영주,서태호,김광식,김순연,이복선,권순희,송경숙,양재연,곽태자,김정자,이승혁,이상호
5호차량(졸업생)
정선자,이대원,정종국,권순자,오동주,김상수,최금숙,김숙기,장주일,이정호,임금순,김방자,유귀분,우재강,정상환,이금실,서태대,류을희,김풍길,이영미(47야),신군자,
임미라,고영순,임숙이,임숙이지인,진숙자,이희자,유정희,윤석배,박영희(46야),
현태홍,장성근,정관식,김성집,김영봉,홍명순,장복례,김갑덕,김영희,심현석,김규,장춘원,이숙교,이귀순,이임순,이경희,이복희
6호차량(49주)
김정희,김매화,윤두선,류복희,정필규,서상덕,이순태,박정남,박준,서대호,김금자,
이기숙,최화산,소명섭,장순자,허남숙,송점순,김상길,김광령,최희순,노정임,강명자,노화순,이옥석,강혜숙,구수현,성희재,이재만,조훈님,김재숙,노미현,최외자,문윤남,김미영,이봉자,오경자,이현경,한경자,배현순,윤남이,조윤자,이영숙,김정수,곽수자,조정옥
7호차량(49야)
진태호,이경출,박만택,장문자,도기대,송미화,이승호,조영순,장종영,이기동,설동덕,이숙교,김명수지인,김명수,주숙이,이수경,장옥희,승현숙,박명숙,김광효,박영조,
신연화,최정순,이홍명,배윤덕,윤정숙,장금자,주효숙,김희정,이순,김기식,이정옥,
오성문,성석희,임성조,김옥주,박진수,홍양표,최성화,최동배,권우철,하재옥,최경찬,남재갑,장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