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82. ‘그’의 계엄령과 <광염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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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82
82. ‘그’의 계엄령과 <광염소나타>
“아아 그의 얼굴! 그의 숨소리가 차차 높아지면서 눈은 미친 사람과 같이 빛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그 음보를 홱 내어 던지며 문득 벼락같이 그의 두 손은 피아노 위에 덮치었습니다. 그의 광포스런 소나타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폭풍우같이, 또는 무서운 물결같이 사람으로 하여금 숨 막히게 하는 그 힘, - 그것은 베토벤 이래로 근대 음악가에게서 보지 못하던 광포스런 야성이었습니다. 무섭고도 참담스런 주림, 빈곤, 압축된 감정, 거기서 튀어져 나온 맹염(猛炎), 공포, 홍소- 아아, 나는 너무 숨이 답답하여 뜻하지 않고 두 손을 홱 내저었습니다. 그날 밤이 새도록 그는 흥분이 되어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등재된 김동인(金東仁,1900~1951)의 소설 <광염소나타>의 한 부분이다.
‘그(내란죄에 해당하여 호칭 생략)’는 12월 3일 밤 10시 28분, 불콰한 얼굴로 긴급 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비상계엄령 선포’를 읽는 그의 광기(狂氣) 서린 목소리에, <광염소나타>의 광포(狂暴)한 선율이 떠올랐다. 소설 내용은 천재적인 작곡가 백성수를 주인공으로, 그가 예술적인 영감을 얻기 위해 거듭 방화와 살인을 감행함으로써 새 작곡을 한다는 광인(狂人)의 생활을 그렸다. 〈광화사〉와 함께 김동인의 탐미주의적 경향의 대표작으로. 살인·방화·시간(屍姦)·시체 희롱 등의 악마적 범죄 행위가 예술적인 충동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에드거 앨런 포, 오스카 와일드, 샤를 보들레르의 세계와 상통한다.
이 <광염소나타>에서 ‘술’은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 ‘그(백성수)’의 아버지는 천재 음악가였지만 알코올 중독자로 비극적인 삶을 살았고, 결국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한다. 술은 그의 아버지가 가진 천재성과 동시에 그의 파멸의 상징이다. 이는 그가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과 연결된다. 그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지만, 그 재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술과 같은 파괴적인 요소(방화(放火) 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 부분은 ‘그(백성수)’가 미친 듯이 광증(狂症)으로 ‘광염(狂炎)소나타’를 치는 묘사이다.
늘 술에 취한 듯한 불콰한 얼굴과 광태(狂態)로 읽는 ‘그’의 계엄령 오선지의 어휘들은 <광염소나타>처럼 ‘피의 선율’이었다. 「피를 토하는 심정,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소추, 유례없던 상황, 판사 겁박,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장관 탄핵 시도, 행정부 마비, 마약 범죄 단속, 국가 본질 기능 훼손, 마약 천국, 민생치안 공황, 예산 폭거, 국가 재정 농락, 정쟁 수단, 입법 독재 예산 탄핵, 국정 마비, 헌정 질서 짓밟고, 내란 획책, 명백한 반국가 행위, 국정 마비, 국회 범죄자 집단 소굴, 국가 사법행정 시스템 마비,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 자유민주주의 체제 붕괴 괴물, 풍전등화, 북한 공산 세력 위협, 자유와 행복 약탈,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일거에 척결, 망국의 나락, …」.
이어지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 “일체 정치활동 금지”, “언론과 출판 계엄사 통제”, “계엄법에 의해 처단”,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을 읽는 ‘그(내란죄에 해당하여 호칭 생략)’의 ‘계엄령’은 ‘그(백동수)’에게 ‘광염소나타’였다.(소설에서 백동수는 정신병원에 감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