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 이야기 』
조 성 복
-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한 마을에 이웃하고 살던 가난한 젊은 남녀가 있었다.
둘은 어려서부터 서로 눈이 맞아 결혼까지 약속했는데, 어느 날 젊은 남자가 먼 외지로 돈 벌러 나가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여인은 그 남자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잊지 못해 밤낮으로 기다리며 그리워하다 그만 상사병에 걸려 죽고 말았다.
그 후 그녀의 무덤가에 웬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그리고 꽃 진 자리에 붉은 열매가 맺혔는데 그 열매가 오늘날 우리가 즐겨 마시는 커피 열매라고.-
이 얘기는 에티오피아로 여행 갔을 때 현지인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다.
일행이 탄 버스가 깊은 고산지대를 향해 이동 중이었는데 가는 길이 지루했던지 기분 전환용으로 동행한 가이드가 즉석에서 문제를 냈다.
“이 지역은 커피 생산지로 유명합니다. 그래 커피와 관련된 문젠데요.” 하더니,
“커피 색깔이 까맣고 핏빛인 이유를 아시는 분은?” 했다.
아무도 대답을 않자, 가이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재미있다는 듯이, ‘그럼 커피가 쓴 이유는요?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은 이유는?’하고 닦달하듯 연거푸 묻더니 한마디 더 질문 하기를,
“커피가 향이 좋은 이유를 아시는 분은?”
이구동성으로 답이 나왔으나 내가 들어도 시원찮다.
그러자 가이드가 함께 동석한 작은 키에 눈이 빛나는 현지인에게 뭐라고 귓속말로 묻는 것 같더니 금세 좌중을 주목시키며,
“에~ 방금 이곳 현지인에게서 들은 얘긴데요, 참 안타깝네요.” 하자, 모두들 무슨 뜻일까? 싶어 가이드 입으로 눈을 모았다.
가이드는 까무잡잡한 현지인이 뭐라고 한마디 할 때마다 통역을 했다.
‘커피색이 까만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다 지쳐 죽은 여인의 얼굴빛이라네요.’라고,
웅성거리던 버스 안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리고 무안해진 얼굴들이었다.
가이드는 눈이 빛나는 현지인의 말을 받아 계속해서 통역을 했다.
커피 색깔이 핏빛인 것은 여인이 너무나 울어서 피눈물을 쏟아 그런 것이고, 커피가 쓴 이유 역시 기다림에 지쳐 속이 썩어 문드러져 내린 여인의 심장이라고 해 한마디 한마디가 절절했다.
또한,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은 이유는 죽은 여인이 외지로 떠난 남자를 밤낮없이 기다리느라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까지,
이때 앞쪽 누군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그러나 다 들리는 소리로 한마디 던지기를,
“나두 그런 사랑 한 번 해봤으면…” 남편 되는 이였다.
그러자 곁에 앉았던 여인이 뼈있는 목소리로 답을 받았다.
“나두 그런 사랑 한 번 받아봤으면…” 아내 되는 사람이었다.
묘한 분위를 눈치를 챈 가이드가 노련한 말투로 둘 사이를 다시 봉합시켰다.
“어휴! 두 분이 젤 잘 어울리시는데요. 뭐”
가이드는 끝으로 커피 향이 깊고 은은한 것은 남자를 그리워하며 사랑했던 여인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마음이 녹아들어서 그렇노라 했다.
지루한 여행길이라 웃자고 시작한 얘기가 버스 안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얘기는 현지인이 지어낸 것일 수도, 아니면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현지인의 말대로 그 말이 전설이든 사실이든 아니면 지어낸 것이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남녀 간의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 얘기는 얼마든지 많다.
그런데도 이런 얘기에 귀 기울여지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이 인간이고, 주제는 인간의 근본 심성을 다루었다는 데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고산지대의 삶에 찌들어 고달픈 하루를 살고 있어도 이들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 것은, 히어로 같은 수준 높은 인간이 되어 순수한 영혼과 깨끗한 사랑의 존귀함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러한 이야기에 정신적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었는지도…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는 물질 만능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불안해 하는 우리와는 달리 모든 것이 열악한 삶을 살면서도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은 이 나라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정신적 지주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봄이 간다.
내 사는 집 마당가에 서 있는 오래된 살구나무에서 연분홍 빛깔의 꽃이 진다.
그림 같은 풍경이라 가슴이 마구 뒤설레 주체할 수 없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렇지만도 않은 게, 살구나무는 지금 이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답게만 보이던 살구나무는 꽃잎 떨구느라 눈물 마를 날이 없겠다. 그러니 살구나무 편에서 보면 가슴 찢어지는 아픔일 테고,
그런데도 한심한 것은,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하지를 않나?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다 죽은 여인의 애환이 담겨 있다는 커피 한잔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를 않나…?
꽃이 진다.
내일, 저 나무 밑을 지날 때는 떨어진 꽃잎을 비켜서 걸어야겠다.
= 2007.봄. / 커피의 나라 에티오피아를 여행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