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시민 여러분. 언론의 행간에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언소주 사설 탐정입니다.
오늘은 조선일보의 2026년 4월 13일 자 사설, <[사설] 평지풍파 외교 파장, 증폭 말고 진정시켜야>를 도마 위에 올려보겠습니다. 대통령이 SNS에 올린 팔레스타인 관련 동영상과 그로 인한 외교적 파장을 다룬 글인데요. 겉보기엔 나라 걱정으로 가득 찬 충언 같지만, 늘 그렇듯 우리는 기사의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알맹이를 봐야 합니다. 돋보기를 들고 하나씩 뜯어볼까요?
1. 현상과 본질: '외교 걱정'이라는 껍데기와 '정권 때리기'라는 프레임
먼저 기사가 말하는 현상(Fact)은 '대통령이 사실관계가 부정확한 팔레스타인 관련 영상을 공유해 이스라엘의 항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합리적으로 추론해 보자면, 이 사설이 진짜 유도하려는 프레임(Intent)은 '현 정권은 SNS나 하다가 쓸데없는 외교적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아마추어'라는 낙인찍기입니다. 정보 검증의 아쉬움은 지적할 수 있으나, 사설은 이를 '외교적 참사'로 과장하고 희화화하여 국정 신뢰도를 흠집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2. 논리적 허점 타격: "진정시키라"면서 확성기를 켜는 모순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사설의 제목은 분명 "증폭 말고 진정시켜야"입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을 통해 이 사안을 가장 크게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정말 외교적 마찰을 진정시키고 '국익'을 지키고 싶다면, 상대국의 반발을 국내 정치의 공격 무기로 삼아 자국 정부를 코너로 모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을 끄자면서 한 손에는 소화기를, 다른 한 손에는 휘발유를 들고 있는 격이죠. 더구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인권 유린이라는 '거대한 진실'에는 철저히 눈을 감아버립니다.
3. 지정학적 맥락: 보수 언론이 숨긴 '진짜 국익'과 호르무즈 해협
여기서 우리는 시야를 넓혀 맥락을 봐야 합니다.조선일보가 부르짖는 그 '국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국제사회의 만류와 휴전 협상 중에도 레바논을 폭격하며 기어이 전쟁을 질질 끌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전쟁 수행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타격을 입고, 아무 상관 없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까지 치솟는 물가와 경제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습니다.
특히 중동발 위기가 고조될 때 대한민국 경제의 생명줄인 원유 수송로, '호르무즈 해협'이 위협받습니다. 이 호르무즈 해협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 이란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입니다.
이런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대통령이 팔레스타인과 아랍 세계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 것은 단순한 '감성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최악의 경제 위기를 막고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아랍권에 보내는 고도의 전략적 시그널이자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이런 중대한 경제적·지정학적 맥락은 싹둑 잘라먹고, 오직 '이스라엘이 화났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있습니다. 장기판에서 수십 수 앞을 봐야 할 외교전에, 당장 눈앞의 폰(Pawn) 하나 먹히는 것만 보고 훈수를 두는 꼴입니다. 과연 누구의 시각이 대한민국의 '진짜 국익'에 부합합니까?
4. 역사/사회적 맥락: '국익'을 고무줄처럼 늘려 쓰는 언론의 이중잣대
과거 보수 정권 시절, 대통령의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 때 보수 언론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언론의 보도가 오히려 국익을 훼손한다"며 정부를 결사옹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가 안보와 경제의 명줄이 달린 중동 외교의 복잡한 셈법은 무시한 채, 소통 과정의 일부 오류만을 침소봉대하여 "평지풍파"라며 매섭게 질타합니다. 자기 편일 때는 '국익'을 방패로 삼고, 반대 편일 때는 '국익'을 창으로 삼아 정부를 공격하는 파렴치한 이중잣대입니다.
탐정의 결론
시민 여러분, 이 사설은 겉으로는 '외교적 안정'을 염원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대한민국의 거시적 국익(호르무즈 해협과 중동 경제 리스크 방어)마저 정파적 이익의 제물로 바치는 위험한 선동 기사입니다.
물론 국가 원수의 메시지는 정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이 그 실수를 빌미로 자국 정부의 다층적인 외교 전략을 무력화하고, 특정 국가(이스라엘)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확성기 노릇을 한다면, 우리는 그 기사의 행간에 숨은 '악의'를 읽어내야 합니다.
기득권 언론이 짜놓은 근시안적인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세계 경제와 국익의 큰 그림을 읽어내는 시민의 매서운 눈. 그것이 바로 우리 언론소비자들의 진정한 '주권' 아닐까요?
지금까지 언소주 사설 탐정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bU11ZQy3ro